“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제 한국 교회에서도 제왕적인 담임목사가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제왕적인 담임목사가 기업 총수처럼 처신하면 교회는 기업으로 전락합니다. 제왕적 담임목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면 정치집단이 됩니다. 제왕적인 목사가 돈이든 이성이든 명예든, 욕망의 덫에 빠지면 교회는 분란에 휩싸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인들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교세 확장 능력이 담임목사 기준5월14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 은퇴를 2년 앞둔 이재철(68) 담임목사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예배당을 울렸다. 한국 교회에 대한 맹렬한 반성이고 고발이었다. 이어 후임 담임목사 선정 결과를 보고했다.
“대부분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누가 지금보다 교세를 더 확장시킬 수 있느냐를 우선 고려합니다. 바꿔 말하면 최악의 경우에도 누가 현재 교세를 위축시키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체가 CEO를 채용하는 기준은 될 수 있어도, 교회의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한 달 전 청빙위원회를 결성하고 세 차례 토의를 거듭해 내린 결론은 공동목회. 내부 목사 4명이 영성총괄, 교회학교, 목회총괄, 대외업무를 각각 나눠 맡아 이 목사 이후의 100주년기념교회를 끌고 가는 방식이다. 공동목회도, (혈연관계가 없는) 내부 선임도 한국 교회에서는 파격적인 일이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 아들 목사한테 교회를 대물림하는 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등록교인 10만 명, 출석교인 5만 명의 초대형 교회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장로교단에서도 교인 수가 가장 많다. 2년 전 은퇴한 김삼환(72) 원로목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과 세계교회협의회 대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명성교회는 정상적인 교회 합병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교회가 아들의 교회를 합병하고, 아들이 담임목사직을 맡는다는 것이다. 김하나 목사는 2014년 3월 명성교회에서 5km 떨어진 경기도 하남 덕풍동에 새노래명성교회를 설립했다. 명성교회에서 수백억원대의 설립자금을 대주고 1천 명 이상 교인들도 보내주었다. 법적 소유권자도 명성교회다. 누가 봐도 세습이다.
아버지의 명성과 아들의 ‘새노래명성’이 합병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교단은 2013년 9월 총회에서 세습 금지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해당 교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당시 1033명이 참석한 총회 투표에서 세습금지법 찬성이 870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삼환 목사는 2015년 말 일흔을 넘기면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여전히 원로목사로 주일 여섯 차례 예배를 주재한다. 본인이 해외에 나가 있을 때는, 아들 목사한테 종종 설교를 맡긴다.
명성교회는 김 목사 은퇴를 석 달 앞둔 2015년 9월27일 후임 담임목사 청빙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그 전부터 “김 목사가 은퇴하지 않는다” “아들 교회와 합병한다” “징검다리 세습을 한다”는 등 추측이 나돌았다.
지난 2월 청빙위원회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명성교회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작심한 듯 일사천리로 세습 절차를 진행했다. 한 달 뒤인 3월8일 열린 청빙위원회에서는 김하나 목사 청빙안과 두 교회 합병안을 결의했다. 위원 18명 중 15명이 찬성했다. 3월19일에는 국민투표에 해당하는 공동의회 투표가 진행됐다. 김하나 목사를 청빙하는 안과 두 교회 합병안이 각각 8104명 참석자의 74.1%와 72.7% 찬성으로 통과됐다. 반대 투표도 2천 명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그날 명성교회는 “여러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명성교회 신앙공동체의 장기적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아들 김하나 목사는 2013년 세습금지법 통과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세습은 옳지 않다”는 뜻을 비쳤다. 교계 토론회에서도 교회 모임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3월 명성교회 청빙위원들이 찾아왔을 때도 “간곡하게 사양의 말씀을 드렸다”고 예배 시간에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하나 목사 세습의 전제가 두 교회의 합병이고, 그것이 성사되려면 새노래명성교회의 공동의회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들 목사의 새노래명성교회는 공동의회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김하나 목사는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피하고 있다. 진심으로 합병 세습을 원치 않기에 공동의회 절차를 거부하는지, 아니면 여론의 비난을 덜기 위해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지, 이번 의 취재 중에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 속마음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명성교회는 단일 교회로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부목사가 70명이 넘고, 매일 네 차례 새벽기도에 수천 명이 참석한다. 명성교회 쪽은 “역차별은 안 된다”는 점과 “교인들이 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듯하게 성장한 김하나 목사는 충분히 자격 있다. 미국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3년 동안 새노래명성교회를 잘 키웠다. 명성교회 교인들도 김 목사를 신뢰한다. 김삼환 목사라고 욕먹고 싶겠나. 김하나 목사도 젊은 사람인데 이런 부담을 지고 싶겠나. 외부 사람을 잘못 청빙하면 교회가 무너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런 걱정이 크다. 우리 교회의 후임 목사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이 똑똑하고 겸손한 김하나 목사를 원한다. 두 분이 희생하는 일이다.”(김태우 장로)
‘교회=가족재벌 체제’ 자체가 문제명성교회는 방대한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 기독교 방송국 C채널, 경북 영주 영광여중고, 안동 성소병원 등 언론·교육·병원·복지에서 여러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민영 교도소인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도 운영한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어서 에티오피아의 종합병원인 명성기독병원, 캄보디아 신학대학, 필리핀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마닐라 한국아카데미 등을 세웠다. 이한명 대외협력국장은 “모르는 외부인한테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게 교회 내부의 공감대”라고 말했다. 명성교회 공동체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아들 목사가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현실 논리다.
장로교 대표 교회의 세습 추진에 교계의 개혁 인사들이 화가 났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신학대 교수와 대학원생, 목회자의 세습 반대 성명이 이어졌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방인성 목사는 명성교회 쪽의 세습 역차별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미 세습한 교회 사례들을 보자. 대체로 교회 운영이 잘 안 된다. 아들한테 물려준 충현교회 원로목사는 임종 전에 ‘가장 잘못한 게 세습한 것’이라고 회개했다. 감리교단의 유명한 김선도·김홍도·김국도 목사 삼형제도 다 아들에게 세습했는데, 교회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목사 주변의 이해관계로 얽힌 기득권자들이 세습 논리를 편다. 아버지의 우상화에 익숙한 교인들의 안정 희구 심리도 작용한다. 이건 비극이다.” 방 목사는 “아들 김하나 목사가 아버지 교회를 물려받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하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거다.
익명을 요구한 명성교회의 한 교인은 “교회를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가족재벌 체제로 키워왔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성교회가 소유한 법인들의 등기부등본을 떼보라. 두 아들과 역시 목사인 사위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100명 넘는 상근 직원들이 충성스럽게 그 조직을 끌고 나간다. 재벌 체제는 무너지고 있는데, 명성교회는 족벌경영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
다른 교인은 “명성교회 교인들은 순종적이다. 바깥에서는 세습하지 말라고 떠들어도, 교회 안은 조용하다. ‘머슴 교회’를 내세운 김삼환 목사가 교회를 잘 키워왔다. 교인들의 신망이 높다. 김 목사가 평생 쌓은 명예를 잃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 기독교 언론은 “거산 김영삼이 정치 9단이라면 은파(김삼환 목사의 호)는 목회 9단”이라고 표현했다.
명성교회의 세습 사태가 불거지면서, 2년 전 재정장로가 자살한 사건에도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시 재정장로가 따로 관리하다 남은 잔액이 800억원대였다. 명성교회는 그것을 ‘비자금’이라고 보도한 기독교 언론사와 언론인을 고소해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명성교회 쪽은 보고 절차에 일부 하자가 있을 뿐, 공적 용도로 자금을 집행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피고 쪽 엄상익 변호사는 “20년 동안 공동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운영한 비자금이다. 그런데 재정장로 자살 때 검찰은 수사도 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건설업체한테 고리의 사채로 운용한 자료도 나왔다”고 주장했다.
목사 사택도 자동차도 없는 교회1517년 10월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의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그들은 돈이 헌금함에 짤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제27조)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교황이 자신의 돈으로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 건축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제86조) 루터는 이 글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의 타락을 적나라하게 질타했다. 돈에 찌든 당시 교회는 성직 매매와 세습을 일삼았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돌, 대한민국에서는 제왕적 목사직과 막대한 부의 세습이 현재진행형이다.
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 4명의 공동목회 실험은 이제 시작됐다. 이재철 목사는 별도로 사택을 제공받지 않았다. 12년 전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 그 전에 살던 집을 교회에 헌납해 그대로 쓰고 있다. 승용차 카니발도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차량을 교회 명의로 바꾼 것이다. 담임목사 봉급은 고호봉의 전임 교역자와 겨우 10여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담임목사 판공비는 없다. 이재철 목사는 “100주년기념교회는 퇴임한 원로목사가 죽을 때까지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감옥에 가 있는 사건은 상징적이다.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동맹 체제의 두 축인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재벌총수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분명한 신호다. 박정희 시대를 끌고 온 나머지 한 축은 대형 교회의 제왕적 목회다.
명성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제왕적 목회 시대의 유산인 세습의 덫으로 빠져들 것인가,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인가.
가장 최근에 세습을 완료한 교회는 경기도 수원의 새한성결교회다. 아들 주진 목사가 창립자인 아버지 주남석 목사의 뒤를 이었다. 5월14일 이·취임식 현장을 취재한 보도를 보면, 교단 소속 목사들과 교인 1천여 명의 환호가 쏟아졌다. 교단 총회장을 지낸 성남성결교회의 이용규 원로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교회의 축복”이라고 했다. 이 목사도 2013년 아들 이호현 목사에게 세습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과 달리 성결 교단은 세습방지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자료를 보면, 1970년대 이래 모두 131개 교회가 가족 세습을 했다. 1999년 이전 세습은 11개에 불과했고, 대부분 2010년 이후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인 500명 미만 교회가 43개에 그친 반면 88개 세습 교회가 500명 이상 중대형 교회였다. 유형별로는 새한성결교회 같은 직접 세습이 93개이고, 명성교회처럼 합병 등을 통한 변칙 세습이 39개에 이른다. 2000년대 이전에는 모두 직접 세습이었으나, 이후 변칙 세습이 많아지고 있다. 교단 헌법으로 세습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김동춘 국제신학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변칙 세습 사례를 조사했다.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 아들의 지교회를 설립해 담임을 맡도록 하는 지교회 세습이다. 다른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주었지만 아들한테 본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건축해 물려준 소망교회가 대표적이다. 명성교회는 아들한테 새노래명성교회를 세워주고, 시간이 흐른 뒤 합병을 추진하는 지교회 세습의 다른 형태다.
합병 세습은 기업 인수·합병(M&A)과 유사하다. 아들에게 경기도 과천 왕성교회를 지어준 뒤 왕성교회의 담임목사로 데려와 2012년 합병한 길자연 목사가 대표 사례다. 인천 청라지구의 세계비전교회도 합병을 통해 생겨났다. 아버지 김준환 목사가 새도시 종교 부지를 매입해 아들 김성현 목사가 담임을 맡는 새 교회를 세운 뒤 자신의 신동산교회와 2013년 합병했다.
교회 세습이 사회문제로 커지자 일부 교단에서 세습방지법을 제정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2013년 9월 임시입법회의에서 “부모가 담임(또는 장로)으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배우자를 연속해서 담임(장로)으로 파송할 수 없다”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명성교회가 속한 예장통합은 2013~2015년 좀더 세밀한 문구로 세습방지법을 제정했다. “해당 교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하는 담임목사(장로)의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담임목사(장로)로 청빙할 수 없다”고 총회 헌법으로 못박았다. 하지만 ‘은퇴하는’이라는 표현이, 이미 은퇴한 목사가 제3의 인물을 청빙하거나 몇 년 지난 뒤 다시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징검다리 변칙 세습’의 빌미를 남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애초 법안에는 “해당 교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한 담임목사나 장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표결을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도 비슷한 세습방지법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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