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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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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 비선 조직, 30여개 진보단체 동향 파악했다

알파팀, 국정원과 논의 이후 민변·광우병국민대책회의 파일 작성

진보단체 정부 지원금 현황 집중 분석하고 보수 지원 근거 마련
등록 2017-05-09 17:47 수정 2020-05-03 04:28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러 출두할 때, 그의 곁을 지킨 건 우파단체 회원들이었다. 국정원과 우파단체의 커넥션은 새 정부가 꼭 밝히고 수사해야 할 과제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러 출두할 때, 그의 곁을 지킨 건 우파단체 회원들이었다. 국정원과 우파단체의 커넥션은 새 정부가 꼭 밝히고 수사해야 할 과제다.

국가정보원 민간 여론 조작 조직 ‘알파팀’은 국정원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이들은 국정원으로부터 “단체를 설립해, 좌익 추적 소식지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뒤 광범위하게 좌파단체의 동향을 조사했다.

“좌익 추적 소식지 만들라”

이 입수한 알파팀의 ‘좌파단체 동향 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단체 이념 식별표’를 만들어 임의로 특정 시민단체들을 좌익으로 분류해 ‘정부 지원금 현황’을 조사했다. 이들은 또 당시 활동하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등 주요 시민사회 연대 단위에 소속된 단체를 망라한 ‘종북파 실체-2008정리본’이란 보고서도 작성했다. 알파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노총, 아름다운재단, 인권운동사랑방, 문화연대, 언론연대 등 주요 단체를 상대로는 ‘개별 동향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확인한 알파팀의 개별 보고서는 최소 36건에 이른다.

2008년 12월20일 알파팀의 한 멤버는 팀 리더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의 지시에 따라 ‘좌익단체 정부 지원금 현황’(이하 ‘좌익 지원금 현황 보고서’)을 조사해 보고했다. 이 보고서를 받아든 김성욱 대표는 전자우편을 통해 “앞으로 크게 쓰일 것”이라고 치하했다.

보고서를 보면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대책위원회,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에 소속된 단체들이 받았던 정부 지원금 내역이 합계로 정리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속한 단체들의 정부 지원금 내역을 모두 합치면 24억5101만원,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22억9901만원인 것으로 집계된다.(아래 표 참조) 보고서에는 뉴라이트재단,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모임 등 우파단체들의 지원 내역도 정리돼 있다. 이를 보면, 대한민국재향군인회(500만원),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1100만원)를 제외하고 모두 0원으로 표기돼 있다.

이 보고서는 국정원이 김성욱 대표에게 ‘알파팀’ 설립 지시를 하기 전 미리 만든 것이다.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던 한 알파팀 팀원은 에 “(보고서가) 국정원에 직접 보고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온 지 불과 3개월 뒤인 2009년 2월 이명박 정권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속한 1842개 단체(2009년 2월 현재)를 모두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규정하고 각 정부 부처에 이들을 “각종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대책회의는 “돈으로 시민단체를 길들이려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반발했지만 정부의 결정을 뒤집진 못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로부터 빼앗은 보조금이 흘러간 곳은 우파단체였다. 행정안전부는 5월부터 보수단체들에게 무더기로 수천만원씩 ‘공익사업’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확인한 국정원의 직접 지시는 2009년 3월27일 나왔다. 국정원은 이날 알파팀에 “단체를 설립해서, 좌익 추적 소식지를 제작하고 1인시위 및 기자회견 활동을 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이를 받아든 김성욱 대표는 알파팀원들에게 “임의단체 설립을 시급하게 알아보고, 자발적 탐사에 나서 후속 조치를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

이 무렵부터 같은 해 5월25일까지 알파팀은 좌익단체 동향 파악에 주력한다. 이 입수한 알파팀의 ‘좌파단체 동향 보고서’는 총 36건이다. 단체별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간부 등 주요 인사 △최근 언론 보도 현황 △주요 주장 △참가하는 연대 단위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보고서 형식이 완결적이진 않지만 개별 단체가 주력하는 ‘이슈’를 정확히 파악한 점이 눈에 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보고서는 이 단체의 주요 인사로 이종구(상임의장·성공회대), 김승환(상임공동의장·충북대), 강내희(비상임공동위원장·중앙대), 김세균(비상임공동의장·서울대), 손호철(비상임의장·서강대), 이윤미(교육위원장·충북대), 주경복(비상임공동의장·건국대), 김보경(사무국장·건국대) 등을 꼽았다. 또 이들의 언론 기고를 발췌해 정리해놓았다. 보고서는 이어 민교협의 주요 주장을 ‘한-미 동맹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 제공’으로 정리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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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한 정부 지원금 내역은 알파팀이 작성한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사실 관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1998년 이후 정부지원금을 전혀 받고 있지 않습니다.

진영적 인식론의 탄생

아름다운재단에 대해선 박원순(총괄상임이사), 안철수(이사·전 안철수연구소 대표), 예종석(한양대 경영대학장), 장하성(기금운영위원·고려대 경영대학원장) 등을 주요 인사로 꼽았다. 그다음엔 재단이 “좌파(左派) 시민단체를 후원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는 우파 매체의 의혹 제기 기사를 첨부했다. 다른 단체의 보고서가 6~7쪽 분량인 것과 달리 아름다운재단의 보고서는 다섯 배가 넘는 43쪽에 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보고서에는 박원순 당시 상임이사의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 기고는 물론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연대 단위 등이 깨알같이 정리돼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경우 서준식(전 대표), 유은숙(인권하루소식 발행인) 등을 주요 인사로 뽑은 뒤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기에 대한 맹세’ 철폐 기습 시위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지시로 작성된 보고서가 실제 정부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인과관계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은 이후 오랫동안 우파 진영을 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는 진영적 인식론에 바탕이 됐다. 보고서는 이후 등 우파 인터넷 매체 기사와 칼럼의 근거로 활용됐다. 또 우파단체의 집회에서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발언의 토대가 됐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조 과 오도넬이 제시한 선전이론 ‘정당한 정보원 모델’의 한국형 버전이 국정원의 지원 속에 만들어진 셈이다. ‘정당한 정보원 모델’은 선전하고 싶은 내용을 직접 설명할 경우 권위나 정당성이 약화되기 때문에 권위를 갖춘 언론이나 기관을 활용해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생산·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선전자의 의도는 감춰지고 특정 메시지가 정당한 메시지인 것처럼 포장된다.

박근혜 정부의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으로 몰아넣은 ‘블랙리스트’는 자신과 다른 반대 진영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문화예술 검열 장치였다. 이 ‘솎아내기’는 국정원이 작성한 한 건의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좌파들의 책동에 전투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앞서 국정원은 청와대에 ‘예술위의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자금 지원 문제점 지적’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를 받아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진노했다는 이야기가 블랙리스트 재판 과정을 통해 공개됐다.

국정원부터 적폐 청산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의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란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는 보수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제1150호 표지이야기 ‘블랙리스트 공작, 국정원이 개입했다’ 참조). 이 문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좌파 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을 추진하기에 앞서 국정원으로부터 ‘정부의 좌파 지원 내역과 산하기관 장악 시나리오’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알파팀이 작성한 ‘좌익 추적 소식지’와 국정원 보고서는 무관할까. 알파팀이 두 달여에 걸쳐 정리한 ‘좌익 지원금 현황 보고서’는 국정원 보고서의 원형 아니었을까. 적폐 청산을 향한 새 정부의 첫걸음은 무조건 국정원을 향해야 한다.

취재 뒷이야기


좌파단체  동향  보고서’에서  내  이름을  만나다


알파팀이 정리한 ‘좌파단체 동향 보고서’ 목록에 ‘문화연대’라는 이름이 있었다. 반가웠다. 기자가 되기 몇 해 전 난 문화연대라는 시민단체의 활동가였다. 국정원의 민간 여론조작 조직 ‘알파팀’이 활동할 무렵 문화연대의 활동이 그만큼 활발했으니 조사 목록에 포함된 게 아니겠는가.
‘설마, 내 이름도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보고서를 살펴봤다. 결과는? 정말 있었다.
알파팀이 작성한 문화연대 보고서는 △조직의 성격 △주장①②③ △언론 보도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주장②와 ③이 활동가 시절 내가 썼던 글이다. 주장②는 2006년 9월3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한-미 FTA 협상 저지를 위한 전국행진’을 앞두고 내가 한 인터넷 매체에 실명으로 기고한 칼럼이다. 제목은 ‘포항에서 데모하다 맞아 죽은 노동자 아직 평택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다’였다. 활동가 시절 내 필명 ‘완군’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주장③ 역시 그 무렵에 쓴 글이다. 범시민사회 차원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 등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한 ‘2006 가을, 투쟁이 물든다’ 전국행진을 앞두고 쓴 글이다. 당시 나는 전국행진 기획단 상황실에 파견돼 일했다. 글에는 그때 직함과 실명이 그대로 나온다. 알파팀이 당시 문화연대가 진행한 활동들 가운데 유독 내 활동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스팔트’ 위에서 벌인 투쟁과 관련됐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내가 벌인 활동이 우파단체에 의해 수집되고 보고서로 작성돼 누군가에게 전달됐다. 이를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끔찍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 당시 내 행동은 불법이 아니었다. 내가 자유로운 시민으로 누려야 할 헌법적 기본권과 자유를 사찰한 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했다. 그런 체제를 뭐라 불러야 할까. 새 대통령의 시대에는 그런 비가시적인 ‘파시즘 통치’와 반드시 결별해야 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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