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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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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sewolarchive.org’

<한겨레21>·빠띠·정보공개센터 등 ‘세월호 아카이브’ 구축…

세월호 기록 공개하고 시민 의견 모아 제도 개선
등록 2017-03-21 14:45 수정 2020-05-02 19:28

“세월호 문제인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월1일 새해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시기조차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달리 많은 시민이 아프고 슬픈 그날을 애써 기억하려 한다.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진실을 알아야 참사를 막아낼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힘이 너무 강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강제 해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와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검찰의 해경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망각’을 원하는 이들은 고삐를 세게 쥐었다. 탄핵 이후에도 그들이 휘둘렀던 권력의 효과가 남았다. 검찰 수사는 이미 오래전에 마무리됐다. 진상을 밝힐 특조위는 사라졌고, 새로운 특조위가 꾸려질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자료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세월호 아카이브’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아카이브’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망각에 맞서 그날을 기억하려는 이들이 모여 ‘세월호 아카이브’(sewolarchive.org·사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억의 바탕이 될 기록을 모아 공개해 시민과 연구자들이 세월호 참사 자료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세월호 아카이브는 새로 만들어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특조위 자료는 국가기록원, 서울시청, 국회 등에 보존돼 있으나 자유로운 자료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세월호 아카이브 구축에는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플랫폼 개발자 조합인 ‘빠띠’, 온라인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활용해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는 ‘우주당’(우리가 주인이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 조영신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2014년 4월16일의 일상은 모두 달랐다. 빠띠의 변형준 개발자는 그때 대학생이었다. 속이 안 좋아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가 로비에서 ‘여객선 침몰’ 소식을 들었다. ‘전원 구조’ 속보를 보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 수업을 듣고 나온 뒤에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에 사고 소식을 들었다.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며 계속 바뀌는 구조인원 수를 셈해야 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때 사고 소식을 접한 조영신 변호사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점심을 먹다가 휴대전화로 사고 소식을 접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친구나 가족과도 세월호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끝내 울었다.

박은지 빠띠 프로덕트 매니저는 사실 그날에 대한 제대로 된 기억이 없다. 단순 사고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날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짐처럼 남았다. 우주당의 홍진아씨는 출근해서 참사 소식을 들었다. 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보고 회의에 들어갔다가 오보란 소식을 듣고 놀랐다. 회사 동료들과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며 마음 졸여야 했다.

해경-청와대 핫라인 음성·해경 TRS 교신 공개

참사 당일 모두 다른 곳에 있었지만 지금 바라보는 곳은 같다. 정진임 사무국장은 “세월호 참사는 동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각인된 기억이다. 기억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록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빠띠의 김영민 개발자는 “세월호를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전달하고 보존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영신 변호사가 세월호 아카이브 구축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기사와 논문이 나왔지만 인용되는 원자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해경과 선원, 정부가 하던 일의 민낯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제대로 마주해야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고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월호 아카이브에는 세월호 승객들의 신고 전화, 해양경찰청 TRS(주파수공용통신) 교신 기록, 해경-청와대 핫라인 음성 등이 공개돼 있다. 각 음성 파일에 담긴 주요 내용도 간단히 정리해 담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 사고 신고가 있었던 오전 8시52분부터 “학생들이 안에서 많이 못 나왔다”라는 소식이 해경 본청 상황실에 보고된 오전 11시4분까지 배 안의 급박한 상황과 이에 대한 해경과 청와대의 대응을 살펴볼 수 있는 특집 페이지 ‘그날의 목소리’도 별도로 만들었다. 자료별로 자신의 의견을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분노와 추모의 마음을 담을 수도 있고, 자료 보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적을 수도 있다. 자료를 보면서 구조나 피해자 지원 등의 과정에서 바뀌어야 할 제도에 대한 의견을 쓸 수도 있다. 세월호 아카이브는 이후 해경 등에서 교신한 추가 음성 파일과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등의 상황 보고 자료 등을 추가 등록할 계획이다. 세월호 아카이브 자료는 이후 최소 6개월 이상 축적될 예정이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

세월호 아카이브에서는 기록 수집 및 공개 작업과 함께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도 시민들과 고민한다. 세월호 이후 바뀌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모아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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