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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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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휴가야?” 부장님, 제발 이 말만은…

쉴 권리 찾아나선 직장인들의 수다…

1년차 미만 노동자 휴가 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움직임
등록 2017-03-04 00:45 수정 2020-05-02 19:28
근로기준법상 근속 연수가 1년이 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연차휴가가 없다. 그들은 자신을 ‘연차 빈곤자’,‘연차 푸어’라 부른다. 박승화 기자

근로기준법상 근속 연수가 1년이 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연차휴가가 없다. 그들은 자신을 ‘연차 빈곤자’,‘연차 푸어’라 부른다. 박승화 기자

올 1월 중소기업에 입사한 직장인 노승아(가명·24)씨는 신입사원 교육 과정 중 휴가와 관련된 설명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 신입사원은 법적으로 연차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개월 개근을 해야 월차가 하나씩 생기고, 사정이 있어 휴가를 붙여 쓰려면 다음해 연차에서 ‘땡겨’ 써야 한다. 2월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난관에 부딪혔다. 겨우 하나 생긴 월차를 써야 하나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회사에서 경조사 휴가 처리를 해줬지만, 쉴 권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이토록 황폐한 줄은 직장인이 되고 처음 알았다.

시민 개인이 입법 발의한 최초 사례

이리저리 눈치 보다 겨우 입을 뗐는데, “또 휴가야?”라고 말하는 부장님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직장인들이 모였다. 새 직장에서 첫해에는 연차가 없는 줄도 몰랐던 억울한 신입사원들도 비장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2월22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톡톡 연차보장 수다회’가 열렸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18일 1년 미만 노동자의 연차휴가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최초 제안자는 평범한 시민이다. 정치 스타트업 와글이 운영하는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http://toktok.io)에 한 워킹맘이 제안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반도의 흔한 직장인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저는 최근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이게 웬걸, 근로기준법 연차휴가 기준에 따라 1년 만근하지 않은 임직원에게는 연차가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현실에 맞닥뜨렸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휴가 하루가 저출산 정책에도, 사회 초년생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제안에 1700여 명의 시민이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단한 노동 현실을 토로한 댓글이 200개 가까이 이어졌다. 국회톡톡 운영진은 안건당 1천 명 이상의 참여자가 발생하면 해당 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전자우편 안내장을 보낸다는 방침에 따라 지난 11월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전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고 입법 활동을 요청했다. 이에 한정애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응답해 시민과 의원이 연결됐고, 법안은 근로기준법 제60조 가운데 3항을 삭제하는 것으로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시민단체가 아닌 개인이 법안을 제안해 발의에 이른 최초의 사례다.

시민 참가자들은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같은 뜻을 가진 시민들이 어떤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국회톡톡에 최초로 안건을 올린 강은하(가명·29)씨가 사정이 비슷한 이들끼리 만나 법안 통과까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국회 톡톡 연차보장 수다회’가 열린 배경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나 ‘연차 제로’

원래 참석 예정자는 20명 남짓이었으나 실제로 참여한 사람은 8명. 당일 오후에 갑자기 7명이 야근으로 불참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불참자는 대부분 신입사원이었다.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미생들의 수다’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대부분의 미생은 휴가는커녕 저녁 시간을 마음대로 쓸 자유조차 없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속 연수가 1년이 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연차휴가가 없다.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월차)가 생기지만, 이를 사용하면 다음 연도 유급휴가에서 차감된다. 근로기준법 제60조 1항은 이렇게 쓰여 있다.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2년차 직장인이 되어야 유급휴가 15일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2항, “사용자는 계속하여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퍼센트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1년차 직장인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월차를 준다는 말이다.

문제는 3항이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최초 1년간의 근로에 대하여 유급휴가를 주는 경우에는 제2항에 따른 휴가를 포함하여 15일로 하고, 근로자가 제2항에 따른 휴가를 이미 사용한 경우에는 그 사용한 휴가 일수를 15일에서 뺀다.” 이로 인해 노동자가 사실상 사용할 수 있는 유급휴가는 2년 동안 총 15일에 지나지 않는다.

국경일, 명절, 공휴일을 포함한 이른바 ‘빨간 날’을 빼고 일하는 날을 헤아려보면 주 5일 노동자의 2년 근무일은 500일 정도 된다. 이 가운데 15일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일하는 날 대비 유급휴가가 3%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법안의 내용은 신입사원뿐 아니라 출산, 육아, 질병, 학업 등으로 인한 휴직 후 복직자, 이직자들에게도 적용된다. 1~2년에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새로운 계약서를 쓸 때마다 ‘연차 제로’ 상태에서 노동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이직이 잦고,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쓰나미처럼 양산되는 노동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법안이란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연차 푸어”
2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톡톡 연차보장 수다회’가 열렸다. 김진수 기자

2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치 스타트업 ‘와글’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톡톡 연차보장 수다회’가 열렸다. 김진수 기자

수다회 참가자들은 스스로 ‘연차 빈곤자’ ‘연차 푸어’라고 지칭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단 하루 휴가조차 권리로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연차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약직 노동자의 사례를 말한 한 참가자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저는 되게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워킹맘이 되면서 연차나 직장 생활과 관련해 풍파를 맞으면서 (마음이) 작아졌어요. 금융권에서 일했는데, 육아휴직하고 복직했을 때 커리어와 전혀 다른 지점에 발령받고 화가 나서 자진 퇴사 후 이직을 했어요. 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 문제로 부장님께 ‘저 연차 쓸게요’ 하니까 돌아온 대답은 ‘너만 자식 키워?’였어요. 지하철에서 펑펑 울며 집에 갔어요. 나는 정말 소모품이구나라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죠.”

페이스북에 온라인 커뮤니티 ‘육아당’을 만든 육아맘의 얘기다. 그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와” 결국 창업을 하고 “서러움 풀 곳이 없어” 육아당을 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집에는 야근한다고 거짓말하고, 회사에는 집에 빨리 가야 한다고 거짓말하며” 어렵게 행사에 참여했다는, 이한나(가명)씨는 16~17년차 직장인이지만 여전히 마음대로 휴가를 쓰기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일의 특성상 이직 혹은 재계약을 피할 수 없는데,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때마다 ‘연차 제로’에서 시작하니 그는 늘 연차 푸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돌봐야 할 아이마저 어리면 고난은 배가 된다. “워킹맘은 그나마 생기는 연차도 자기를 위해서는 못 써요. 혹시 아이가 아파서 일주일씩 유치원에 못 갈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요.”

육아맘이 말을 보탰다. “육아휴직 복직 첫해는 집에만 있던 아이들이 어린이집 등 기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종 유행성 질병에 노출되는데, 그때 제일 자주 아프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연차가 부족하고, 아빠도 마음대로 휴가를 못 쓰는 상황이면 발만 구르게 되죠.”

참가자들은 갖고 있는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은 연평균 14.2일의 휴가 가운데 8.6일만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는 개발자로 일하는데, 프로젝트를 띄우면 6개월 정도 일이 몰려요. 그 기간에는 있는 연차조차 쓰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일단 회사에서는 연차수당 주는 대신 내년에 쓰게 해준다며 연차 신청을 하라고 해요. 그러고 나면 새로운 프로젝트 생기고 야근하고, 또 연차 못 쓰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죠.” 강은하씨가 말했다.

여기에 한 참가자가 이렇게 말을 거들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성희롱 방지 교육처럼 부장님도 연차 제재 발언 못하게 하면 안 될까요?”

국제 기준에서 한참 먼 쉴 권리

한국의 연차휴가 관련 법안은 국제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강은하씨는 법안 개정을 제안하면서 해외 사례를 언급했다. 프랑스의 경우 만근 1개월부터 법정 연차 37일을 허용하고, 독일은 만근 6개월부터 법정 연차 24일을 허용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르면 1년 근무 기간에 대해 최소 3주의 연차를 두고, 이 가운데 2주는 연속해서 사용하라고 권고한다(제132호 3조3항, 8조1항). 근로기준법에서 1년 이상 근무 노동자에게 15일의 연차를 보장하는 한국은 이 협약 내용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 협약은 1970년에 개정된 내용이다.

시민들의 지지로 발의한 법안은 3월 중에 상정되고, 6월 임시국회에서 다른 휴가 관련 법안들과 논의에 오를 예정이다. ‘연차 푸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입사 첫해 다달이 발생하는 월차 12번을 보장하고, 다음해 생기는 15번의 연차 또한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불가피할 때가 아니라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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