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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청와대의 ‘오장육부’로 불리는 이유

‘진경준 사건’부터 우병우 수석 비리 의혹, 미르·K스포츠재단까지… ‘최순실 게이트’ 총정리
등록 2016-10-04 09:29 수정 2020-05-02 19:28
‘더 친절한 기자들’ 가운데 가장 깊고 자세하고 풍부한 기사를 골라 에 싣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자세한 사실과 풍부한 배경 정보를 담아 더욱 친절한 문체로 전해드립니다. _편집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미르재단.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을 출연받아 세워진 미르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비선 측근’으로 불리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재단 설립부터 운영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미르재단.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을 출연받아 세워진 미르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비선 측근’으로 불리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재단 설립부터 운영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은 어떻게 기업들로부터 800억원이라는 큰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른다는 최순실씨가 공공연하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뭘까요? 언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필이 문제라더니, 느닷없이 최순실씨가 등장한 격입니다. 비선 논란의 최종 종착지로 꼽히는 최순실씨는 어떤 인물이고, 받고 있는 의혹의 근거는 무엇인지, 이번 파문이 어디로 향할지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진경준 ‘공짜 주식’이 불러온 나비효과

청와대의 ‘비선 실세’ 논란이야말로 이 정권을 관통하는 이슈라고 할 만합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유독 “흙 속에 숨은 진주” 같은 인물을 발굴해내는 ‘깜짝 인사’가 잦았습니다. 집권여당 내에서, 행정부에서, 심지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이유를 모르는 ‘불통’ 행보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의심했습니다. 국무총리 인선에 두 차례나 실패한 ‘인사 참극’ 이후, 비선 실세로 정윤회씨가 지목됐던 것이 2014년의 ‘정윤회 게이트’입니다. 당시 세간에 떠도는 ‘비선 실세론’을 청와대 보고서로 작성했던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내부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고 말해 세간의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정윤회씨 전 부인이기도 한 최순실(이혼 뒤 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이름은 2년간 물밑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2년 만에 최순실씨를 다시 끄집어낸 시발점 역시 청와대의 ‘인사 실패’였습니다.

지난 7월18일,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49)이 현직 검사장급으로는 최초로 구속됐습니다. 68년 검찰 역사상 최악의 비리 스캔들로 꼽히는 ‘진경준 사건’입니다. 3월25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진 검사장이 일반인은 접근할 수도 없는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2005년 구입해 상장 뒤인 2015년 팔아치워 ‘주식 대박’을 터뜨린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검사장급으로 승진하려면 검찰·법무부는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엄격한 인사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검사가 업무 연관성이 있는 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데, 민정수석실이 몰랐을까요? 이때 우 수석이 진 검사장과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법무부에서도 가깝게 근무하는 등 친분이 깊고, 검사장 승진에도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는 7월18일치 1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 넥슨, 5년 전 1326억원에 사줬다’고 보도합니다. 진 검사장이 다리를 놔줘 우 수석 처가의 ‘골칫거리 땅’을 넥슨이 사도록 주선했고, 우 수석은 대신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눈감아줬다는 이야깁니다. ‘부실 검증 책임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리의 주체로 우 수석을 지목한 것입니다. 를 비롯해 잇단 언론의 취재로 우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 가족회사 설립을 통한 횡령·탈세 논란 등 비리도 무더기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의 신임을 얻은 ‘실세 수석’을 보수언론의 대표 격인 가 정면 공격한 것은, 4월 총선 참패 이후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도 청와대가 이쯤에서 ‘쇄신’할 필요가 있다는 보수세력의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반대의 강수를 둡니다. 대통령은 7월21일, 우 수석 비리 의혹이 폭로된 지 3일 만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집니다. (…)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시기 바랍니다.”

사실상 우 수석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죠.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리 의혹에도 청와대는 침묵했습니다. 이런 ‘버티기’는 왜일까요. 청와대의 상황 인식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발언은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와의 통화에서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면서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우병우 비리 의혹 보도 중에 등장한 ‘재단 비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우병우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우병우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는 이때 우병우 수석의 비리 폭로와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심장한 보도를 내놓습니다. 7월26일 계열사인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은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이라는 보도를 합니다. ‘문화재단 미르’라는 곳이 기업들로부터 486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후원받았는데, 사실상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보도였습니다. 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단 설립과 내부 인사까지 간여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8월2일에는 K스포츠재단에도 380억원을 모아줬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8월12일에는 청와대가 두 재단과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우 수석 의혹에 가려 이 보도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최순실’이라는 키워드도 등장하지 않아 파장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때쯤 위기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청와대의 반격은 언론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8월17일 저녁 MBC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에게 감찰 내용을 흘렸다’는 보도를 내보냅니다. 이석수 특감이 기자에게 “우 수석의 가족회사에 대해 조사하고 있고 우 수석이 계속 버틸 경우 특별감찰활동 만기(8월19일) 이후 검찰에 사건을 넘기겠다”고 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을 입수했다는 보도인데, 카카오톡 대화로 보이는 이 내용을 MBC가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틀 뒤엔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이 “중대한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항으로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며 “배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이 특감을 비판했습니다. 정윤회 게이트 당시 ‘문건 유출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검찰·김진태, 에 ‘부패 언론’ 공격
‘친박 돌격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대우조선 호화 접대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친박 돌격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대우조선 호화 접대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 특감을 쳐내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전개였습니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 후보 당시 고안한 것이었고, 이석수 변호사를 특별감찰관으로 선임한 것도 역시 박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우 수석 비리 진상 규명 요구가 거세진 7월25일 특별감찰이 시작됐지만, 적당한 선에서 무마해주고 끝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사가 ‘청와대가 바라는 선’을 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특감이 우 수석 비리뿐 아니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 비리를 수사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이석수 특감을 쳐낸 청와대는 8월22일, 를 조준합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검찰이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사정수사’ 차원에서 6월부터 대우조선해양을 수사하고 있던 검찰이, 8월22일 갑자기 박수환(58)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를 불러서 조사하겠다고 언론에 공표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의 홍보대행사인 뉴스컴의 박 대표가, 정·재계와 ‘유력 일간지 고위 간부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사장 연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결정타는 여당이 날렸습니다. 8월26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유력 언론인이 2011년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접대를 받았다”며 공세를 펼친 데 이어, 8월29일에는 의 송희영 주필이 접대받은 언론인임을 공개해 쐐기를 박았습니다. 같은 날 검찰은 이석수 특감과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이날 이 특감은 청와대에 사표를 냈습니다. 는 송희영 주필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이후 는 ‘쌍둥이 재단’ 보도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완승입니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청와대가 와 정면 대결을 불사할 정도로 우 수석을 감싸고 도는 것 같습니다. 각종 검증을 맡고 있는 우 수석이 박근혜 정권의 ‘약점’을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돈 것도 이 때문입니다. 청와대의 ‘약점’이란 게 ‘쌍둥이 재단’과 관련한 ‘비선’의 존재라는 ‘카더라’도 돌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늘 ‘비선 실세’를 의심했습니다. 재단 설립을 빙자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까지 휘두를 수 있는 이 또한 비선 실세가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정·재계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었습니다. 바로 박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최순실씨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재단의 문제는 국내에선 TV조선 외에 보도하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오히려 외국에 적을 둔 언론인 가 8월18일 “구체적 증거는 없지만 청와대 내에 파다한 최순실 배후설이 정황상 설득력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재단의 배경을 차츰 깊이 더듬어가고 있던 가 이즈음 후속 보도를 중단하면서, 두 재단에 대한 국내 보도는 잠잠해졌습니다.

수그러드나 싶던 두 재단 문제를 ‘메가톤급 이슈’로 부활시킨 것이 입니다. 특별취재팀은 9월20일, K스포츠재단 인사에 최씨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을 확보해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또 체육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인 K스포츠재단 정동춘 이사장은, 취재 결과 최순실씨가 다니는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으로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씨가 지난해까지 살았던 서울 신사동 집과 이 마사지센터가 불과 50m 거리에 있다고 하니, ‘동네 사람’을 중책에 앉힌 셈입니다

‘시스템 밖’의 권력자
각각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 최순실씨의 모습. 한겨레 이정우 기자

각각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 최순실씨의 모습. 한겨레 이정우 기자

최순실씨는 어떤 인물이기에, 박 대통령의 ‘측근 실세’로 꼽는 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 것일까요?

최씨는 최태민 목사의 다섯째딸입니다. 최태민 목사는 1970년대 ‘새마음봉사단’을, 1980년대엔 ‘육영재단’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운영하며 ‘멘토’ 노릇을 했던 인물입니다. 최씨는 이때부터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을 쌓았고, 10·26 사태 뒤 모두가 권력을 잃은 박 대통령 곁을 떠났을 때도 옆을 지키면서 40년간 고락을 함께했습니다. 문제는 최순실씨가 아무 직위도 없는 ‘시스템 밖’의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공직에 오른 인사가 아니므로 청문회를 거칠 필요도 없고,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인물들이 로비를 펼쳐도 국민이 알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약한 고리’는 대개 대통령의 친인척이었지만, 미혼에다 동생들과도 1980년대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을 벌이며 사이가 멀어진 박 대통령에게는 최씨가 혈육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얼마나 사이가 친밀하냐고요? 최순실·정윤회 부부의 딸인 승마선수 정아무개씨가 국가대표 선발을 결정짓는 승마대회에서 2위로 밀려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대한승마협회는 문체부의 감사를 받았습니다. 감사 결과가 입맛에 맞지 않았던 탓일까요? 박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을 불러 해당 감사를 진행한 문체부 과장 이름까지 ‘콕’ 찍어 경질 압박을 가한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최순실씨의 이름이 공론화되며, 청와대 인사에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폭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우병우 민정수석의 민정비서관 발탁과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순실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전추 행정관은 유명 연예인과 재계 인사들의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2013년 3급 행정관으로 청와대 제2부속실에 채용됐는데, 개인 트레이너를 공무원으로 채용했다는 비판 여론이 있었습니다.

최씨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 두 재단이 채워졌다는 정황은 추가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르재단 이사인 김영석씨는 박 대통령이 취임식 당시 입었던 한복의 디자이너인데, 이 주문을 넣은 것이 최씨였다고 합니다. 미르재단의 실권을 쥔 인물로 알려진 차은택 문화창조융합본부장도 최씨와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재단은 창립 초기엔 그럭저럭 이름이 있는 인물들로 이사진을 채웠다가, 나중에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물갈이를 하면서 내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분노… 수습 나선 전경련

9월22일 박 대통령은 그간의 무대응 원칙을 깨고 정면 돌파에 나섰습니다. “이런 비상 시기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단결과 정치권의 합심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복합적인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9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기조연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논란을 대통령이 청와대를 흔들려는 공세로 보고 있고 분노가 상당하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전경련이 황급히 수습에 나섰습니다. 9월23일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미르와 K스포츠는 기업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라며 “안 수석에게는 두 재단의 출연 규모나 방법이 결정됐을 시점에 알렸고 안 수석은 격려를 했을 뿐이지 사전 지시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9월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안종범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서,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기업에 할당했다”는 기업 고위 관계자의 녹취록을 공개해 반박했습니다.

같은 날 밤 늦게, 박 대통령은 이석수 특감의 사표를 전격 수리합니다. 이 특감은 8월29일 사표를 냈는데, 당시만 해도 ‘(특감의 내사 정보 유출에 대해) 검찰 조사를 해본 뒤에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버티던 청와대가 한 달 뒤 갑자기 사표를 수리한 까닭은 뭘까요? 9월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국정감사에 이 특감을 피감기관 증인 자격으로 불러 안종범 수석을 내사한 내용을 캐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특감의 사표가 수리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증인에 채택하려면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니, 사실상 국감장에 부르기 어려워지는 점을 노린 ‘꼼수’입니다.

일련의 보도가 지목하는 것이 최순실씨 일개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향후 거대한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최순실’로 대표되는 ‘권력형 비리’는 바로 청와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 확보한 두 재단의 법인 등기와 이사록을 보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보유한 774억원 출연금 가운데 80%가 별도의 관리·감독 없이 지출할 수 있는 ‘운영재산’이었습니다. 즉, 620억원이 재단 운영자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얘깁니다.

전두환 비자금 600억여원 ‘일해재단’과 닮은꼴

‘제2의 일해재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과거 전두환 정부는 버마 아웅산 테러 희생자 유족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며 일해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 퇴임 이후를 대비한 ‘전두환 비자금’을 조성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기업들에서 무려 600억여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5공 비리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비선’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로 최순실씨가 주목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안종범 수석의 역할을 따져보는 일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청와대가 ‘강제 모금’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정권 말기를 뒤흔드는 권력형 비리 추문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권 내내 ‘창조경제’를 부르짖었고,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화답하겠다며 탄생한 재단이 기업들로부터 비자금을 받는 수단이 될 수 있다니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창조경제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정유경 디지털뉴스팀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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