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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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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 vs 징병제’ 넘어

남경필 경기도지사 공약으로 시작해 뜨거운 감자 된 모병제 전환

양자택일에 묻힌 평화의 목소리 “모집 방법 전환이 군대 문제 해결 못해”
등록 2016-09-28 09:10 수정 2020-05-02 19:28
모병제 전환론자들이 지난 9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모병제희망모임’ 1차 토크를 열었다. 여야 정치인과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병제희망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병제 전환론자들이 지난 9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모병제희망모임’ 1차 토크를 열었다. 여야 정치인과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병제희망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모병제론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일찍이 제301호(2003년 3월30일치) 표지이야기는 ‘징병제를 흔들어라’였다. 여기에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의 진단이 나온다. “지금의 한국군은 60만여 명 가운데 35만 명가량이 후방지원 행정·기술병 등이다. …시스템만 제대로 갖추면 30만 명으로도 효율적인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다. 3년 계획만 세우면 지금부터라도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다.”

모병제로 성공한 존재증명

생각보다 모병제 논의 역사는 길다. 혁신하는 시사주간지 은 16년 전인 2000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징병제 개혁, 모병제 전환 움직임에 주목했다. 당시 군 가산점제 논란을 통해 잠재된 징병제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징병제의 위헌판결을 통해 모병제 도입을 현실화하려는 N세대의 모임”이라고 규정한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징반모)이 생겼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군복무 기간 단축을 넘어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하자는 정책이 당시 집권 여당 민주당에서 나왔다.

표지이야기는 “민주당은 3월14일 총선 공약을 통해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유급병지원제(직업군인) 도입과 연계해 사병의 의무복무 기간 단축을 전향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변화였다. 민주노동당도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한 모델을 공약으로 내놓았고, 청년진보당은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전환을 제시했다.

새누리당 대권 주자로 모병제 주장을 확산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대권 도전을 노리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지난 9월5일 ‘모병제희망모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인구절벽’은 모병제 도입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자 찬반양론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군 병력은 63만 명이고 2022년까지 52만 명으로 감축할 계획이지만, 2025년 도래하는 ‘인구절벽’으로 장병 수급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2025년이면 20살 남성이 현재 36만 명에서 22만 명으로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모병제를 도입해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지원병에게 9급 공무원 수준의 월급 200만원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새누리당 대권 주자가 안보보수의 금기를 깨고 모병제를 주장할 만큼 징병제는 문제적 제도가 됐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반론의 정답을 말했다. 그는 “모병제가 되면 가난한 집 자식만 군대에 가게 된다”며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차원은 다르지만 새누리당 안보보수들의 반대도 이어졌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9월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모병제 공론화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남경필 지사의 모병제 공약은 한가위 밥상의 단골 주제가 됐고, 대정부질문에 나올 만큼 화제를 모았다. 지지율이 뒤처진 대권 주자 남경필은 존재증명에 성공했다. 2014년 윤일병 사망 사건 등을 통해 징병제는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고, 보수여당 대권 주자의 공약으로 모병제가 나올 만큼 위기에 처했다.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 9월1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조사에서 ‘남북이 여전히 대치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아직은 시기상조이므로 지금의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61.6%)이 ‘인구 및 병력 감소의 인권 및 복지 향상을 위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27%)보다 높았다. 그러나 모병제 찬성 의견은 리얼미터의 2011년 조사보다 12% 높아졌다. 비슷한 시기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모병제 찬성(51.1%)이 반대(43.9%)보다 높았다.

노무현, 김두관, 문재인 그리고 정의당
2014년 8월18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규탄하고 군사법 체계 개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4년 8월18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을 규탄하고 군사법 체계 개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사실 모병제 전환은 더민주의 의제다. 앞서 언급한 기사에 나오듯 남북화해 평화협력 정책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부터 점진적 모병제 전환을 모색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도 복무기간을 채운 병사들 중 군대에 남기 원하는 이들에게 대학 졸업 학력 수준의 급여를 주는 ‘유급형 모병제’ 도입이 포함됐다. 2012년 대선에서 통합민주당 대권 경선에 나섰던 김두관도 모병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청년실업 해소 차원을 강조했다.

9월5일 열린 모병제희망모임에도 참석한 김두관 더민주 의원은 “내년 국방예산 400조원의 1%인 3조~4조원이면 모병제를 도입할 수 있다”며 “63만에서 30만으로 병력을 줄이면 병력 운영 절감분으로 12만~37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병제희망모임에는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두언 전 국회 국방위원장 등도 참여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도 ‘전문하사제’를 두겠다고 공약했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하면서 멀리는 모병제 전환을 염두에 둔 안이다.

정의당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 공약으로 ‘한국형 모병제’를 내세웠다. 2025년까지 군 병력을 4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면서 의무복무 기간을 6개월로 줄이고, 복무를 마친 징집자 중 원하는 이들을 선발해 4년 전문병사로 한다는 내용이다. 전문병사에게는 간부 지원 자격도 부여한다. 간부 20만 명, 전문병사 10만 명, 의무병 10만 명으로 이뤄진 40만 군대를 만들겠단 것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징병제의 틀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 스웨덴식 모병제”라고 소개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 정책에도 관여했다.

이렇게 자유주의, 진보정치 세력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드는 모병제 전환을 주장하는 시대다. 냉전 이후 모병제는 세계적 대세다. 프랑스, 독일 등 다수 국가가 모병제로 전환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이후인 1973년 모병제를 도입했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가난한 이들의 군대’가 된다는 모병제의 실폐 사례로 미국이 언급된다. 이에 김종대 의원은 기고 등을 통해 “모병제 자체가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전쟁이 문제”라고 반박한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선 난민 등 다양한 경로의 국민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공화국 정신’을 살리기 위해 징병제를 부활하자는 논의도 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모병제 대 징병제’ 대립은 오래된 주제다.

“징병제, 모병제 주장이 다르지 않다”

‘모병제 대 징병제’ 대립을 ‘나쁜 선택지’로 생각하는 평화주의자들이 있다. 평화주의·병역거부 모임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모병제 논란에 대해 “알맹이가 빠진 논쟁”이라며 “한국전쟁 이후 유지된 징병제의 문제가 무엇인지 얘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경필 지사와 유승민 의원의 대립도 “강한 군대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우리가 보기엔 모병제 전환과 징병제 유지가 다르지 않은 논리”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모병제가 군 현대화의 이름으로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군사주의가 강화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도 “모병제 도입보다 시급한 것”을 지적했다. “병역거부 평화주의자들이 무조건 감옥에 가는 현실, 병사가 폭력을 당하고 자살해도 군은 책임지지 않는 현실, 인권이 구조적으로 유린돼도 병사들의 집단적 대표권이 없는 현실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집 방법이 달라진다고 군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견해다.

징병제 연구자 백승덕씨는 “남경필 안이나 정의당 안이나 기본적으로 ‘작지만 강한’ 군대로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돈은 드는데 산출물이 없으니 바꾸자는 공기업 개혁 논리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군사주의의 개선 방향으로 ‘전면적 사회복무’를 제안했다. 지금은 병역특례 같은 사회복무가 군복무의 일부지만, 군복무를 사회복무의 일부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계급별로 생활 공간마저 분할되는 시대에 다양한 계층이 뒤섞이는 사회복무를 통해 사회적 유대감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미국 심리학자 스콧 펙의 (비전과리더십 펴냄)은 전문화된 군사집단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내 생각에는 징집제야말로 군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은 필연적으로 기능 면에서 전문화될 뿐만 아니라 심리 면에서도 점점 더 전문화되어갈 것이다. 신선한 공기는 완전히 차단될 것이다.”

펙은 지원병제(모병제)로 무력을 사용하는, 심지어 살상하는 부담을 일부에 떠넘겨 군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멀어질 것을 우려한다. 은 백승덕씨의 주장과 유사한 대안을 말한다. “보편 병역과 의무 병역 군대가 있으면 전시에는 지금의 군처럼 군사적 기능을 감당하지만, 보통 때에는 슬럼가 정비나 환경오염 예방이나 직업 훈련·교육이나 다른 요긴한 대민 활동 등의 평화적 기능에 전적으로 유용하게 기용할 수 있다.”

모병제 전환 주장의 배경엔 병영 사고가 있다. 백승덕씨는 “남경필 안이든 정의당 안이든 ‘이상한 사람들’이 군대에 가서 사고가 터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모병제 전환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미군의 심리군사학 연구 등을 통해 입대자들의 부적응이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등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이 검증되고 있다.” 그는 “경제적 관리 차원의 모병제, 현실의 관성적 징병제 구도가 반복되면 군사주의 극복은 더욱 어렵다”고 강조했다.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모병제”
2014년 대만 군인들이 모병 행사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모병이 부진해 전환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14년 대만 군인들이 모병 행사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모병이 부진해 전환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군사주의 문제를 연구해온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징병제와 모병제의 장단점이 있다”면서도 “불가피한 선택지라면 제도로서 모병제가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징병제와 불화하는 약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 교수는 “특권층의 병역 기피에 대한 반감은 이해한다”면서도 “모든 사람이 군에 가는 것을 형평성이라 생각하고,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병제의 장점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4년 징병률은 89%로 높다. 병역 대상 인구가 줄어들면서 징병률은 1990년대 이래 가파르게 높아졌다. 권 교수는 “대부분 국가의 징집률은 40~50% 수준으로, 심지어 이스라엘도 다양한 이유의 병역 기피를 허용한다”며 “현재의 징병제하에서 군사주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모병제가 ‘가난한 이들의 군대’를 만든다는 주장에 그는 “다른 어렵고 힘든 일도 이미 가난한 이들이 짊어지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가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저임금 상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한국에서 모병제의 의미가 여성에겐 다르다는 것이다. 모병제 전환 과정에 있는 대만은 남성 모병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성 모병에는 지원자가 넘쳐난다. 2012년 예정된 정원보다 100명 많은 900명을 선발했다.

박노자 교수도 모병제의 ‘상대적’ 진보성을 인정한다. 한국 징병제가 서구처럼 시민적·민병대적 전통을 갖지 않아서다. “1943년 일본 제국주의가 처음 실시한 징병제를, 이승만 정권이 1949년부터 부활시켰다. 상당수 장교들은 옛 일본군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한국형 징병제는 식민지 말기 강제징집의 직접적 후계 제도다. 그만큼 처음부터 극도로 반인권적이었다. 요즘은 문제라고 여기기라도 하지만, 1980년대 말까지 일본 군대식 고참 폭력, 기합 등이 당연시되곤 했다. 식민지형 제도인 만큼 한국 젊은이들은 군을 감옥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모병제 도입으로 강제징집을 없애는 것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진보다.”

현실적으로 모병제가 가능할까

그렇다면 남경필 지사의 주장처럼 ‘가고 싶은 군대’는 가능할까. 현대사, 문화, 정치, 안보 등에서 한국과 유사한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 중이지만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한국의 새누리당처럼 대만의 보수 정당인 국민당 마잉주 전 총통이 2008년 대선에서 모병제 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된 이후 중국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던 마잉주 정부는 2015년부터 단계적인 징병제 폐지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모병이 순조롭지 않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모집 목표 인원의 30% 정도밖에 지원하지 않으면서 2015년 전환 안을 폐기하고 2017년부터 전환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병이 부진해 다시 연기됐다. 대만은 이병 약 115만원(3만3625대만달러), 일병 122만원(3만5230대만달러), 상병 128만원(3만6845대만달러)의 기본급을 제시한다. 여기에 수당이 더해진다. 대만의 초임자 월급이 100만원 수준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고전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과 대만의 군복무 기간은 비슷했지만, 군축을 추진하며 기간을 빠르게 줄여 대만의 의무복무 기간은 1년이다. 모병제 전환을 염두에 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대만군도 한국처럼 구타,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과연 남경필 지사의 제안처럼 200만원 월급이면 모병이 가능할까? 미국이나 유럽처럼 시민권의 유혹과 학자금 지원 같은 강력한 유인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병제가 작동할까? 그 앞에는 사병 수를 유지해야 장교 수도 유지되는 국방부의 기득권 방어, 군사주의 문화에 안주하는 안보보수의 반대 벽도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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