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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언어는 왜 구의역 앞에서 무력해졌나

박원순 서울시장 구의역 사고 종합대책 발표, 위험업무 직영화 선포했으나 추가 비용 문제 및 서울메트로 전적자 고용 배제 등 쟁점 잠복해
등록 2016-06-22 05:33 수정 2020-05-02 19:28
6월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6월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이런 위기는 없었다.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달랐다. 세월호특별법 개정, 누리과정 예산, 청년활동비 사업 등을 놓고 ‘1:다수’의 논쟁(국무회의 등)을 과감하게 펼쳐갔고, 특정 사업으로 중앙정부와 맞서 ‘전국 이슈’를 만들었다. 시민의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로 관철되었다. 시장의 자신감을 넘어,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시장 취임 이후 최대 위기박원순  옛날에는 뭐든지 조용조용히, 뭐든지 갈등 없이 (하자) 이랬는데 지난번 서울역 고가(도로공원화) 사업하고, 청년수당 (갈등)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반대가 좀 있어야 하는구나. 그런 거 많이 (기자들이) 해주세요. 이왕이면 집중해서 해주세요. (서울시 사업 중) 반대할 거 너무 많은데 왜 안 해요?
기자들  뭘 반대해드릴까요?
박원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다시 세우기 사업)도 해주시고, 서울둘레길도 해주고, 한양도성도 해주고요. ‘한양도성을 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냐, 개인재산권 침해된다, 딴거 해라’ 이런 식으로 매일 조져주세요.

지난 5월 초 서울시 출입기자들과 모처럼 가진 만찬간담회에서 박 시장이 건넨 농담이었다.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그러니까, 지금의 위기는, 바로 그곳, 김군의 스무 살 꿈을 앗아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발차한 것일까.

모든 정치인이 마찬가지이지만 박 시장은 ‘말’없이 존립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달변은 아니나 그는 궤도를 밟는 열차처럼 육중하면서도 기민한 언어의 정치를 해온 이다.

취임 초기, 전임 시장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박 시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이 되겠다” 수차례 표명해왔다. 토건 기반의 울뚝불뚝한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시정 틀의 대전환이었다. 결결이 낭만과 이상도 느껴지는 기치였다.

서울의 그늘, 소외와 대척하겠다고 주저 없이 팔을 걷을 때마다 그랬다. 보통의 지도자에게 그늘과 소외는 최우선의 관심사가 되기 어렵다. 그늘과 소외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보고 듣겠다 한들 ‘참새 발톱’만큼도 걷어내기 쉽지 않은 탓이다.

‘복지시장’의 선언“무엇보다도 복지시장이 되겠습니다. 사람냄새가 나는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어디 살든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서울 하늘 아래에서 밥 굶고 냉방에서 자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정책투어를 시작합니다. 복지는 인간에 대한 가장 높은 이율의 저축입니다.”(2011년 11월, 서울시장 첫 취임사)
“제가 당시 서울시장이었다면 저 앞(용산 참사 현장)에 가서 강제철거를 못하게, 경찰 물러나라고 했을 겁니다. (참사 과정에서) 물대포를 쏜 게 (서울시 관할인) 소방인데, 내가 시장이었다면 물대포 쏘지 말고 철수하라고 했을 겁니다.”(2012년 7월, 용산 참사를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 관람 뒤)
“서울 ㅅ동 임대아파트에서 연이어 자살한 것에 충격받았다. 금년 연말까지 건설 위치, 입주자 구성부터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드는 데까지 일관되고 종합적인 임대주택 대책을 마련하겠다. (빈곤층에게) 집 하나 주고 ‘알아서 살겠지’ 했는데 정말 많은 문제와 하소연이 있었다.”(2012년 9월, 서울시 고위 실무진 간담회)

2012년 한강 이북권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100여 일 동안 7명이 자살했다. 그해 8월 보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서, 한 입주민이 ‘살려달라’ 서울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은 보도 당일 부시장을 급파해 사태를 파악했고, 본인은 낙인효과를 우려해 다른 임대아파트에서 1박2일 ‘숙박 청책’까지 했다. 9월 고위 실무진 간담회는 유관 책임자가 모두 집결해 ‘패스트트랙’으로 대책을 숙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넉 달 뒤 2013년 초, 40대 노숙인이 공원화장실에서 죽었다. 이후부터 최근까지 그의 언어 정치는 계속됐다.

“돌아가신 그분 영전에 작은 국화 한 송이를 놓으며 참회합니다. (…) 저희들의 소홀을 탓해주십시요. 사망사고를 보고받으면서 질책과 더불어 향후 서울시 노숙인 4273명 전체를 카드화해 한명 한명 보호하고 병력 관리하며 한파가 심해지면 행방을 일일이 확인할 것을 지시했습니다.”(2013년 1월, 페이스북)
“그러면 유족들 다 쫓아내는 게 좋아요? (세월호 유가족 농성천막을 설치하도록 했다며 당시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하자)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그래요. 내가 잡혀갈게요. 왜 나를 소환 안 했나 몰라. 유족의 슬픔과 아픔, 한을 생각하면 그것 좀 해드리는 게 뭐가 그렇게 그래요. 법령 위반도 아니고.”(2015년 5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청년문제를 놓고서도 기성세대와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정쟁만 하고 있습니다. (…) 세대가 다른, 시대가 다른 저의 경험을 앞세워 지금 청년 여러분을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꼰대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2016년 2월, ‘반값 등록금’ 첫 수혜 학번이 나온 서울시립대 졸업식 축사)
“서울메트로 관행 잘 알지 못했다”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 숨진 ‘김군’을 추모하며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 숨진 ‘김군’을 추모하며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그러니까, 위기는 어쩌다 왔을까. 박 시장의 화살 같은 언어들은 왜 지하철에서 무기력했을까.

서울메트로 출신이 설립한 은성PSD는 2011년과 2015년 사업을 따낸 대신, 서울메트로의 요구대로 서울메트로 전적자들을 채용해 고임금을 보장하고 자체 채용한 ‘김군들’의 임금은 최소화했다. 최저가낙찰제 때문이다.

2015년 입찰 때 은성PSD와 유일하게 경쟁입찰했던 ㅎ사의 윤아무개 대표는 에 “우리 직원 월급이 200만~250만원, 최저가 150만원인데,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군이 받았다는 140만원은 너무 박하다”며 “사업 따내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메트로 전적자들은 450만원 안팎을 받았다.

안전관리 비중도 철저히 줄였다. 가 은성PSD의 2015년 입찰 평가서를 확인한 결과, 50가지가 넘는 평가 기준 가운데 안전 관련은 세 항목에 불과했고, 배점도 100점 중 3점에 불과했다. ‘무시해도 되는 점수’에서도 은성PSD는 3점 만점을 획득했다. 2013년 성수역 사망사고를 낸 곳인데도, 사고 전력이 전혀 없던 ㅎ사가 2.55점을 받은 것과 판이한 평가를 받았다.

서울메트로의 가장 깊고 짙은 ‘그늘’에 김군이 있을 수밖에 없던 구조다. 또 다른 지시를 좇아 컵라면 담긴 가방을 메고 달려가는 역사와 열차에서 수없이 보았을 또는 스쳤을 노동존중, 청년서울, 경제민주화, 사회혁신, 서울복지기준, 마을변호사, 한강축제 같은 박 시장의 시정 홍보 구호 너머로 말이다.

결국 지하철 공공부문에서만큼은 박 시장의 시정 철학과 기치가 전혀 투사되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실제 박 시장은 두 번째 임기 들어 적자로 허덕이는 지하철 사업을 ‘박원순식’으로 경영효율화한다는 목표로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 통합을 강하게 밀어붙였으나 이때도 부조리한 위험의 외주화, 그로 인한 비용 따위는 고민도 겨냥도 되지 않았다.

박 시장은 김군 사망사고 뒤 “서울메트로의 특혜·관행을 잘 알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박원순 이후 서울메트로 5년은 박원순 이전 서울메트로와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이 날카롭게 박 시장을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위기 대응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까진 원인이 바깥에 있는 사안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번 문제는 박 시장 체제에 원인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지난 6월16일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안전 관련 7개 업무 분야를 직영으로 전환하고, 김군과 함께 은성PSD에서 일하는 10대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겠다고 발표했다. 위험업무의 외주화를 직영화로 본격 선회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격이다.

박 시장은 앞서 “어떤 말도 글도 쉽게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 청년의 꿈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사죄드립니다. 시민 여러분의 질책 또한 달게 받겠습니다. (…)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서 지위 고하 없이 책임을 묻겠습니다”라며 “산하기관의 외주 실태를 전수조사해 적어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한 외주에 맡기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나 시민의 안전 비용에 대한 추가 부담 없인 녹록지 않은 과제다. 게다가 서울메트로 전적자들이 직영 과정에서 역으로 고용 배제되는 등의 쟁점이 잠복해 있고, 이는 서울시 기관의 원·하청 재구조화 과정에서 언제든 재현될 여지가 크다. 과제가 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의 외주화 끝날까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섯 달 뒤 최장수 서울시장이 된다. 선출직 가운데 가장 오래 서울시를 이끌었던 오세훈 전 시장의 기록(5년56일)이 12월20일이면 깨진다. 이는 곧 남은 임기가 1년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구의역 사고 뒤 박 시장은 페이스북 대문사진을 “첫 마음 그대로”란 문구로 바꿨다. 두 번째 시장에 당선된 2014년 6월의 자필 다짐이다.

임인택 지역에디터석 수도권팀장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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