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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시대의 낭만적 사랑?

170여 개 업체, 시장 규모 200억~500억…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소셜 데이팅 앱’ 시장, <한겨레21> 교육연수생이 직접 뛰어들어 들여다보다
등록 2016-05-11 06:13 수정 2020-05-02 19:28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스카이피플’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SKY) 출신 남성이라야 가입할 수 있다. 본인 확인을 위해 학교 전자우편이나 회사 명함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소셜 데이팅 앱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한 커플은 보통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다. 김혜인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스카이피플’에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SKY) 출신 남성이라야 가입할 수 있다. 본인 확인을 위해 학교 전자우편이나 회사 명함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소셜 데이팅 앱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한 커플은 보통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다. 김혜인

“쉘위댄스(177cm, 슬림탄탄, 연세대학교)님의 카드가 도착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이하 아만다)를 설치한 뒤 죽은 줄 알았던 스마트폰이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가입했지만 ‘승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본인 인증, 나이, 직업, 몸매 등을 선택하고 나니 얼굴 평가가 남았다. 잘 나온 셀카 사진을 3장 골라 올렸다.

삼수 끝에 가입한 데이팅 앱

‘이성 회원들에 의한 심사 중’이란 문구 옆에 빠르게 올라가는 남성 회원들의 평가 점수. 최종 평점은 5점 만점에 2.49점. “안타깝습니다. 다시 한번 프로필을 수정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성 이용자 30명한테 3점이 넘는 점수를 받아야 합격이다. 무엇보다 빨간색 도장으로 찍힌 ‘불합격’ 표시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오기가 생겼다.

재도전했다. 잘 나온 셀카 사진 3장을 싹 바꿨다. 결과는 2.78점. “너무 아깝네요. 재도전으로 합격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점수가 올라가니 말투가 친절해졌다. 아는 선배는 키를 높여 입력했더니 바로 합격했다고 귀띔해줬다. 몸매를 ‘보통’에서 ‘글래머’로 바꿔볼까 했지만 양심에 걸렸다. 셀카 사진을 다시 찍었다. 겨우 3점이 넘었다.

“아만다 회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노골적으로 외모를 평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14년 11월 출시된 ‘아만다’의 회원 수는 현재 110만 명이 넘는다. 가입 승인 점수 3점을 넘기 위해 재도전하는 이들 때문에 ‘아만다 삼수생’이란 유행어까지 생겼다.

결혼, 연애도 포기한 ‘N포 세대’라고 부르지만 청년들이 만남 자체를 포기하진 않았다. 다만 만남의 형식은 바뀌었다. 지인보다 가까운 스마트폰이 중매해주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이성을 소개받고 만남이 이뤄지는 ‘소셜 데이팅 앱’의 전성시대다.

데이팅 앱에서 월회비를 따로 낼 필요는 없다. 다만 연락처 등 상대의 더 많은 정보를 받아보려면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한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으면 3300~4천원 정도를 내는 식이다. 데이팅 앱은 가입자들이 입력한 관심사, 장점, 취미 등을 바탕으로 이상형의 키, 종교, 성격, 체형에 가장 가까운 이성 회원을 연결해준다. 조건을 자세히 입력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앱에서 제시하는 2~4명의 이성 가운데 관심 가는 사람을 골라 앱에 돈을 내면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 소개 요청에 불응하면 ‘커피 한잔 쏟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스펙, 종교, 외모 등 기준 점점 세분화”

소셜 데이팅 앱은 하루에 1명 이상을 자동으로 소개해준다. 정보기술(IT) 기업 신입사원인 김아무개(27)씨는 “회사원이 되면 소개팅이 많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앱은 매일 2명을 소개해주니까 짧은 시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셜 데이팅 업체는 170여 개에 이른다. 관련 시장은 200억~5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현재 아이폰 앱스토어의 ‘소셜 네트워킹’ 최고 매출 10위 안에 8개가 소셜 데이팅 앱이다. ‘아만다’가 2위, ‘정오의 데이트’가 3위, ‘이음: 국가대표 소개팅 어플’이 5위를 차지하고 있다(5월4일 기준).

“거주지와 일터는 사회계층에 따라 분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계급에 속한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에바 일루즈, ) 이 때문일까? 소셜 데이팅 앱 시장이 넓어지면서, 계급이나 종교 등 공통분모를 특화한 ‘타깃 맞춤형’ 앱도 등장하고 있다.

출시 2년째인 ‘스카이피플’은 남성들의 학벌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SKY) 출신이라야 가입할 수 있다. 최근엔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까지 가입 범위를 넓혔다. 본인 확인을 위해 학교 전자우편이나 회사 명함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다만 여성은 4년제 대학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이면 가입할 수 있다. ‘스카이피플’ 서비스 개발자인 최호승 에이치소사이어티 대표는 “소셜 데이팅 앱 분야가 늘어나면서 스펙이나 종교, 외모 등 기준이 더 세분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크리스찬 데이팅’의 경우엔, 출석하는 교회와 신앙을 갖게 된 계기 등 자세한 인증을 요구한다. 회사원 조아무개(25)씨는 ‘크리스찬 데이팅’으로 인연을 찾았다. 같은 신앙은 그에게 중요한 만남의 조건이었다.

소셜 데이팅 앱이 겨냥한 연령대는 만 20~34살이다. 스마트폰과 친숙한 세대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전화보다 앱을 선호하는 세대다. 데이팅 앱 이용에도 거리낌이 없다. 게다가 20대들은 명확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데이팅 앱은 직접 만나기 전에 상대방의 직업, 취미 등 정보를 미리 제공한다.

더구나 저렴하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받을 수 있으니 요즘말로 ‘가성비’도 높다. 만남에서조차 ‘가성비’를 따지게 된 배경에는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이 작동한다.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불가피하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시간, 돈의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다. 데이팅 앱은 명료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노동과 에너지 낭비를 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재숙(동국대 가정교육과 박사) 교수가 맡고 있는 교양강좌 ‘결혼과 가족’은 인기가 많다. 이 강좌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직접 이성을 만나 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수강생들은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장 교수는 전했다. “3년 전만 해도 큰 문제 없었는데, 요즘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느라 바빠 그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관계맺기의 수고가 사치가 된 세대

“연애 감정은 낭만적인 것이어서 피로감이 덜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많이 지쳐 있다. 관계를 맺을 때 발생하는 수고로움조차 이들에겐 피로다. 만남의 복잡한 과정을 사치이자 낭비로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성문화교육 전문가인 한금윤 박사는 소셜 데이팅 앱에 몰려드는 청년들의 사정을 안타까워했다.

데이팅 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속적이고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긴장 관계를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능력·조건만 보고 만나게 해주는 데이팅 앱은 이런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혜인 교육연수생 h4543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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