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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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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돌봄계약의 피해자들

환자, 간병인 모두에게 부담·불만인 현행 간병 시스템 개편 중 “저임금·중노동 비공식 간병노동자, 정부가 제도권으로 끌어안아야”
등록 2016-05-10 08:23 수정 2020-05-02 19:28

매일 새벽 3시30분이면 눈을 떴다. 환자 9명을 챙기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밤새 더러워진 기저귀를 갈고 비위관을 준비한다. 흔히 ‘콧줄’로 불리는 비위관은 입으로 음식을 먹기 어려운 환자에게 코로 유동식을 주입하는 관이다.
‘콧줄 식사’는 새벽 5시를 시작으로 하루 4번 나온다. 콧줄 식사를 마치면 콧줄을 씻어 널어야 한다. 기름기가 낀 콧줄은 찬물에 잘 씻기지 않는다. 따뜻한 물에 여러 차례 흔들고 비비고 나서야 깨끗해진다. 박아무개(72)씨는 지난 3월 내내 경북의 한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 9명을 돌봤다. 그 가운데 치매 환자가 5명이었다.
콧줄 청소·배변 수발… 시급 3천원 노동

9년차 간병인 박아무개씨가 지난 5월4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의원에서 하지정맥류 치료를 받고 있다. 류우종 기자

9년차 간병인 박아무개씨가 지난 5월4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의원에서 하지정맥류 치료를 받고 있다. 류우종 기자

“콧줄을 씻은 다음, 소변통을 다 비우고 몽땅 세수시켜야 해요. 따듯한 물에 수건을 적셔다가 얼굴이고 손이고 발이고 다 닦아줘요. 그다음에 직접 먹을 수 있는 분들의 식사를 준비해요. 아침 6시40분이면 식사가 들어오니까. 식사 챙겨드리고 밥상 치우고 물도 가져오고. 그러니 앉을 새가 없어요.”

박씨는 간병인이다. 간병인은 환자의 식사와 대소변 수발부터 욕창 방지, 가래뽑기, 목욕, 재활치료 보조, 말벗까지 직접적인 치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활동을 도와준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펴낸 연구용역보고서 ‘의료기관 간병서비스의 제도적 수용 방안’에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병인이 4만5천여 명으로 집계돼 있다(하단 그림1 참조). 2011~2012년 조사 당시 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병인 수만 집계한 결과다. 그러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박대진 사무국장은 전국 간병인 수를 2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구직 중인 간병인 등을 포함하면 공식 집계 수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간병일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간병일과 관련된 법적 자격자는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이다. 하지만 민간시설에서 교육받은 간병인이나 특별한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비교육 간병인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간병서비스가 국가보건 체계에 포함돼 있지 않고 사적 계약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무자격자도 보호자의 대리인 신분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런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간병인의 상당수, 특히 비교육 간병인의 절대다수가 조선족이다. 박대진 사무국장은 “(비교육) 간병인의 상당수는 조선족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씨도 중국 옌볜 출신이다. 경북의 한 요양병원에서 박씨와 같은 병동에서 일한 간병인 7명 모두 조선족이었다.

간병인의 급여는 대부분 일당으로 책정된다. 24시간 기준으로 7만~9만원이다. 일종의 시장가격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3천원가량 된다. 근무시간이나 기간도 환자의 상태나 보호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24시간 내내 환자 옆에서 먹고 자며 대소변 수발 등을 해야 한다. 노동 강도와 형태를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라고 할 수 있다.

간병일을 한 지 9년째인 박씨는 여전히 일이 고되다. “환자 한 명만 돌보면 좋겠지만, 나처럼 좀 약하고 나이가 있으면 (한 명만 돌보는 간병인으로) 잘 안 쓰려고 해요. 여러 명 (간병)하면 돈은 많이 주죠. 한 달에 260만원까지 받아봤어요. (그래도 여러 명 간병하는 일이 힘드니까) 어지간한 사람은 안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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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낮고 값싼 ‘공동간병’이 약 40%

개인간병인은 환자 한 명을 돌보지만, 공동간병인은 환자 여럿을 돌본다. 공동간병인은 비용을 줄이려는 요양병원과 간병비가 부담스러운 환자 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다.

요양병원이 우후죽순 늘면서 병원 간 경쟁이 심해졌다. 병원 처지에선 비용을 줄일 필요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줘야 하는 요양보호사 등을 정식 고용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대신 위탁업체를 통해 (비교육) 간병인을 파견받는 간접고용을 선택했다. 만성질환자가 많은 대다수 요양병원에선 공동간병인 1명이 평균 8명 이상 환자를 맡고 있다.

환자나 그 가족 입장에서도 이 방식이 나쁘진 않다. 개인간병인을 부르면 하루 7만~9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공동간병인을 쓰면 2만~3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환자에게 들이는 정성과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환자 쪽에서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요양병원은 위탁업체를 통해 공동간병인을 파견받고, 환자는 간병비가 포함된 병원비를 내고, 간병인은 위탁업체에서 월급 받는 방식이 정착됐다.

공동간병인은 병원 내 식당에서 식사가 제공된다. 간접적으로나마 병원과 고용관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개인간병인에 비해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동강도가 워낙 높아 공동간병을 선호하는 간병인은 드물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연구용역보고서 ‘의료기관 간병서비스의 제도적 수용 방안’을 보면, 종합병원·일반병원 등 ‘급성기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은 약 2만8천 명, 이를 제외한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은 약 1만7천 명으로 집계했다. 요양병원 대다수가 공동간병인을 간접고용하고 있으므로 전체 간병인 가운데 약 40%는 공동간병을 하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정부가 규정하지 못하는 사적 영역에서 간병서비스 계약이 이뤄지다가,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공동간병인 형태의 ‘공적 노동’이 ‘비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간병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와 그 가족은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평범한 주부였던 노아무개(48)씨는 지난해부터 공인중개사로 벌이에 나섰다. 1년6개월 전, 친정어머니가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수술과 재활치료 등으로 병원비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매달 병원비 100만~150만원에 개인간병비 250만~300만원을 더하면 보통 400만원 이상이 들었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워 맞벌이를 시작했다. 병원도 옮겼다. 수도권 중소도시에 사는 노씨는 얼마 전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가족들의 금전적 고통은 말로 못해요. 돈과의 싸움이에요.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7~8년 됐더라고요. 저희도 장기전에 대비해야죠.” 공동간병인을 제공하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병원비와 간병비를 합해 월 180만원 정도로 비용이 줄었다.

비용은 줄었지만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은 여전하다. “환자를 돌보는 건 원래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인데, 간병인이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석션이나 소독도 (간호사가 아니라) 간병인이 대신하는데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 통일된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돈은 돈대로 나가고 (의료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환자가 된 간병인, 시어머니 된 간병인

요양병원에선 치매환자를 침대에 묶어두기도 한다. 낙상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이므로 보호자들도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인권침해 여지가 있다. 2014년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 화재사건 때 치매환자들이 침대에 묶여 있다 빠져나오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간병인 입장에선 이런 지적들이 억울하다. 간병인들은 치매환자가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치매환자는 고성을 지르거나 이상한 소리를 반복해 내기도 하고, 간혹 간병인을 때리기도 한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는 일도 잦다.

공동간병인으로 일했던 박씨는 병원과 환자 보호자 사이에서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환자가 똥을 주물러요. 변을 보고 비비고 만지고 머리맡에 놓고. 내 가방에도 넣고. 그래서 의사들이 잘 때만 느슨하게 팔을 묶으라고 해서 묶었거든요. 근데 이번에 보호자 한 명이 그걸 보고 난리를 치더라고. 그땐 좀 서럽더라고요. 병원에서 하라고 해서 한 건데.”

치매환자가 아니라 해도 간병은 중노동이다. 박씨는 자신이 보살폈던 한 할머니를 기억한다. 겉으로는 곱고 참한 할머니였는데, 매번 주저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때마다 박씨는 익숙하게 그의 뒤를 살폈다. 검은콩 같은 마른 변이 항문에 박혀 있었다. 노인은 혼자 힘으로 변을 밀어내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살살 긁다가 단번에 뽑아냈다. “그걸 파내드리면 소리치고 울어요. 이제 내 살았다고. 한번에 꼭꼭 파내줘야 하는데…. 그 할매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싶어.”

지난 3월 마지막 날, 박씨는 간병인이 아닌 환자로 병실에 누웠다.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밤에 잘 때나 엉치 좀 붙여보지,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다리에 무리가 와서 피가 잘 안 통하고 부었어요.” 간병인 생활이 길어지면서 몸 여기저기가 삐거덕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박씨는 환자를 돌보다 환자가 되어버렸다.

개인간병인을 쓰는 경우에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의 또 다른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주부 황아무개(44)씨는 시어머니 병수발을 위해 개인간병인을 구했다.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째 누워 있는 황씨는 환자보다 간병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더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하루) 9만원으로 오셨는데, 좀 하시더니 힘들다고 더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은 유급휴가를 달라고 하세요. 그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날은 돈이 이중으로 드는 거죠. 근데 보호자 입장에선 간병인이 자주 바뀌면 환자 상태 체크도 잘 안 되고 불안하죠. 그래서 (간병인이)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어요. 도대체 누가 제 시어머니인지 모르겠어요.”

개인간병인 고용은 알선업체를 매개로 이뤄진다. 간병인이 필요한 환자 쪽이 한국간병인협회나 직업소개소 등에 간병인 소개를 의뢰하면 알선업체가 파견하는 식이다. 간병인을 소개받은 환자 쪽은 알선업체에 일당을 지급하고, 알선업체가 간병인에게 급여를 준다. 간병인은 일자리 소개 대가로 한 달에 7만원 정도 수수료를 낸다. 환자 쪽과 간병인이 알음알음해서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계약한 개인간병인은 다른 간병인의 높은 임금과 환자의 곤란한 상태를 앞세워 보호자를 ‘압박’한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황씨는 억울하다. “그 사람들은 소득세 한 푼 안 내는데, 보호자들은 간병비가 세금 공제가 안 돼서 연말정산 때 세금을 오히려 토해내요.”

간병인 배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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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간병도 개인간병도 간병인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 모두에게 불편·불만·불신을 안겨준다. 결국 정부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간병인이나 가족 대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팀을 이뤄 간호에 간병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그림2 참조). 입원환자에 대한 간호·간병 서비스를 병원이 직접 제공하는 대부분 선진국의 사례를 따르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 지방 소재 병원을 중심으로 이를 시범운영했고, 지난 4월1일 상급종합병원과 서울 소재 병원급으로 확대했다.

인하대병원은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다른 대학병원 일반병동에 비해 하루 2만원 정도 입원비가 비싸지만 하루 7만~9만원 수준인 개인간병비 부담을 고려하면 아주 비싼 편은 아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입원치료 중인 송아무개(63)씨는 “원래 간병인을 쓰려고 했는데 여기선 간호사들이 해주니까 (간병비를 줄일 수 있어) 잘됐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통합서비스가 확대될수록 걱정을 덜어갈 환자와 달리 걱정이 늘어가는 이들도 있다. 간병인이다. 정부 사업지침에 따르면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인력은 간호사와 간호보조인력인 간호조무사로 구성된다. 이때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지도·감독 아래 간호보조, 환자의 일상생활(위생·식사·체위변경 등)을 보조하는 일을 맡는다. 병원은 이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그런데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의료법에 근거한 교육기관에서 이론·실습 교육을 합해 1500시간을 공부해야 한다. 요양보호사가 되려 해도 최소 120시간(2급)에서 240시간(1급)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한다. 현재 간병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입장에선 간병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는 정부 정책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규정한 간호보조인력에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를 포함하고 이들 역시 병원이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이상윤 연구위원은 “정부가 간호보조인력을 간호조무사로 한정한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보조인력의 업무는 말 그대로 간호사를 보조하는 일인 만큼 기본적인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정 면허로 자격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병원이 무자격 간병인까지 고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 정도로 간호보조인력의 자격을 제한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공식 노동자인 간병인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현행 제도대로 시행된다 해도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 혜택을 누리기까지 갈 길이 멀다. 2016년 4월 현재 통합서비스 병동을 1개 이상 운영 중인 병원은 전국 148곳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까지 400개, 내년까지 1천 개 병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병원급 이상 전체 의료기관이 1791개이므로 급속히 확대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각 병원마다 1개 병동에서만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간병 서비스가 절실한 모든 환자 및 그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의료서비스’로 자리잡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난한 손 빌려 가난하게 죽어간다

간병서비스를 두고 벌이는 간병인과 환자 쪽의 다툼에 악인은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사는 자와 덜 주어야 사는 자가 있을 뿐이다. 중재자가 사라진 이 싸움에 승자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감정의 골만 깊어갈 뿐이다. 누구도 원치 않는 규칙 속에서 늙고 병든 몸은 가난한 손을 빌려 가난하게 죽어간다.

구은모 교육연수생 gooeunm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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