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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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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팔아 운영 말이 안 돼, 점조직처럼 집회 알바 포섭”

‘뒷돈 수수 의혹’ 어버이연합에 대한 보수단체 대표의 비판… “전경련과 재향경우회의 돈이 다가 아닐 것”
등록 2016-04-26 06:11 수정 2020-05-02 19: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보수 시민단체가 불법적인 뒷돈 수수 대가로 수년간 정치집회를 주도했다는 의혹에 대해 보수 진영 인사들도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천도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대표(사진)는 4월21일 과 만나 “어버이연합이 이런 부정한 돈을 받기 위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세월호 유족을 비난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막말을 퍼부었던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북핵 실험 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초상화를, 일본의 안보법안 제·개정안 통과 뒤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초상화를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해온 보수단체의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다.

오 대표는 또 “어버이연합 기존 회원들이 탈북자나 노인들을 중심으로 점조직 형태로 포섭하고, 이들에게 집회 참가 뒤 몇만원씩 돈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행사 규모가 수백 명에 이르는 경우가 잦았던 점을 고려하면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경련과 재향경우회의 돈이 다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대표의 주장과 관련해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의 입장을 들으려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보수 시민단체 얼굴에 먹칠 보수단체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참담하다. 이런 부정한 돈을 받으려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고, 세월호 유족을 비난하고, “딸이 위안부여도 일본을 용서했을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막말을 퍼부은 것이냐. 보수 시민단체가 ‘박근혜 정부 2중대, 정권의 호위무사’는 아니지 않나.

대기업 관련 단체에서 왜 보수 시민단체에 돈을 줬겠나. 정부에서 입김을 보내니까 돈이 가는 거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주최한 집회 참가자들이 평범한 시민들을 향해 “빨갱이, 종북”이라고 비난한 대가로 뒷주머니에 넣어준 것이다. 보수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창피스러운 느낌은 처음이다. 보수 진영과 보수 시민단체 얼굴에 먹칠한 것이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알바 동원’ 현실은 어떠한가.

어버이연합에 대해 이쪽 바닥에서 들리는 얘기가 많다. 지금 언론 보도는 축소된 것이다. ‘일당 2만원’이 아니다. 5만원 받은 사람이 있고, 10만원 받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7명만 동원해도 70만원이 깨진다. 지방에 갈 때는 관광차량비와 밥값까지 챙겨줘야 한다. 100~200명만 모여도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다. 노인이나 탈북자 입장에서는 점심밥도 챙겨주고, 사람도 만날 수 있고, 끝나면 돈도 주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집회 알바’는 어떻게 모집되나.

‘핏줄’을 타고 점조직 방식으로 사람을 모은다.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단체나 일부 탈북단체의 책임자급들이 핏줄이 시작하는 곳이다. 탈북인이나 노인들이 어디에 있겠나. 대개 서울 종묘공원 같은 곳이다. 그 안에도 좌·우파가 나뉘어 있다. 어버이연합의 기존 멤버들이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짝짜꿍이 돼서 피라미드식으로 조직이 꾸려진다.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들 입장에선 세력을 불려야 하니까. 거기에 탈북자들이 연관된 거야.

어버이연합, 운영비 어떻게 댔을까 이런 일이 일반화돼 있나.

보수 집회를 따라다니는 ‘알바’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 양반들은 노골적으로 “집회에 참가할 테니 돈을 달라”고 한다. 일당 2만원이란 보도가 있지만, 10만원씩 줘야 할 때도 있다. 당연히 우리 단체에도 “다른 데처럼 돈을 주면 집회에 참가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번에 ‘노’라고 했다. 우리도 사람들이 모자란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오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 산하단체가 아니라 시민단체다. 불가피한 경우엔 다 내 돈으로 한다.

‘돈줄’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민국재향경우회(재향경우회)가 지목됐다.

보수단체가 무슨 돈이 있나. 특히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는 자체 수익사업을 할 능력도, 인물도 없다. 하지만 서울 종로에 사무실이 있고, 상근 직원도 있다. 이것만 해도 연간 수억원이 들어간다. 핵심 인물인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돈이 없다. “폐지를 팔아서 운영한다”는 주장이 말이 되는가. 전경련과 재향경우회가 돈을 줬다고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다 정부에서 나오는 거야. 추 사무총장이 원래 ‘친박’ 쪽 사람이다. 이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또 다른 ‘돈줄’이 있을 것이란 의혹이 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같은 관변단체들의 돈이 흘러가는 것 아니겠나. 다 국민 혈세다. ‘아스팔트 보수’라는 비아냥을 받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 대표도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나.

과거에 연락이 몇 차례 왔다. 신분도 안 밝히고 찾아와서 “대표팀 활동하기 힘드시죠. 지원 좀 받으시죠”라고 말한다. 누군지 묻지도 않았다. 세 번 정도 거절하니까 이젠 안 온다.

어버이연합이 돈을 받았다는 시점 이후 달라진 게 있나.

달라지려고 돈을 받았을 거 아닌가. 초가삼간 살다가 서울 강남에 빌딩 산 것 같은 수준이다. 특히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정부 들어 집회마다 사람을 수백 명씩 달고 다녔다. ‘날개차’라고 불리는 아주 큰 선거용 차량도 얼마든지 동원했다. 규모가 확 커졌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가 뉴라이트를 끌고 갔지만, 박근혜 정부는 보수단체 쪽에서 어버이연합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국민행동본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자유북한운동연합 같은 곳도 다 비슷하다. ‘국가 관리대상’으로 분류돼 경찰 정보과 등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는 얘기도 많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집회 규모 커져추 사무총장이 보수단체 인사들과 연락을 끊었지만, 오 대표와는 연락이 닿았다고 들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서 터진 뒤, 추 사무총장이 SNS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이 (언론 보도에 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받았고, 중간에서 ‘자폭’(김 회장이 ‘알바 자금’ 내역을 직접 어딘가로 유출했다는 뜻)한 것이라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나한테 뒤처리를 해달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보수단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국정감사를 통해 우선 이번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정부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국민을 동원해서, 없는 여론까지 만들려고 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민심을 모른다. 보수든 진보든 시민단체라는 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다. 돈 받고 집회 나가서, 아무 근거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빨갱이다, 종북이다’라고 서슴없이 소리치는 게 보수단체가 아니다. 보수 시민단체들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시민사회가 썩으면 나라가 썩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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