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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뒤흔든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의 전말

아이슬란드 총리 사임 등 끌어낸 세계적 탐사보도 참여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전하는 취재 뒷이야기

제1108호
등록 : 2016-04-18 18:16 수정 : 2016-04-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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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검찰과 경찰은 4월12일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 본부를 압수수색했다. EPA 연합뉴스 

1972년 6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한 사건은 2년 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추적 보도는 미국 현직 대통령을 재임 중에 물러나게 했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위대한 승리로 꼽힌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스>가 터트리기 시작한 ‘펜타곤 페이퍼스’(Pentagon Papers)도 워터게이트 보도에 필적하는 저널리즘의 찬란한 유산이다. 펜타곤 페이퍼스, 즉 미 국방부 기밀문서 보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명분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해 종전을 앞당겼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내부고발이자, 최대의 내부기밀 유출에 힘입은 저널리즘의 승리로 역사에 남아 있다.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로 촉발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워터게이트’와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둘 다 세상을 바꾼 세기의 탐사보도다. 특히 펜타곤 페이퍼스는 아날로그 시대를 통틀어 최대 규모의 기밀문서가 유출된 사례다.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에 바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76개 나라, 109개 언론사 소속 또는 프리랜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376명이 함께 취재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워터게이트와 펜타곤 페이퍼스에 비견될 만하다.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에 바치는 오마주

지난 4월4일 새벽 3시(한국시각) 전세계에서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한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령회사에 수백만달러를 감춘 아이슬란드 총리가 보도 이틀 만에 사임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파키스탄, 몰타 등 각국 정상들도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파나마 검찰과 경찰은 지난 4월12일 조세회피처 관련 내부 자료가 대규모로 유출된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를 압수수색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의 35개 회권국 대표들도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대책을 논의하는 등 후폭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언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협업에 참여한 건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7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전자우편을 한 통 보내왔다. 파나마 로펌에서 유출된 자료를 공동 취재할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뉴스타파>가 참여했던 이전 두 차례의 국제 협업(2014∼2015년 룩셈부르크 리크스와 스위스 리크스) 때는 한국 관련 정보가 비교적 적었지만 이번 유출 자료에는 아시아 국가의 이름도 꽤 보이고 한국 이름도 제법 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참여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ICIJ에서 보안 서약 양식이 왔다. 보도 목적 이외엔 자료를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였다. 보안 서약에 서명해서 보내자 ICIJ 데이터팀에서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유출 자료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왔다.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ICIJ 데이터팀이 이미 비정형 상태의 유출 자료를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전세계에서 극소수, 한국에선 아무도 본 이가 없는 비밀의 봉인을 뜯어내는 그 순간의 느낌은 이런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간단한 검색 등 초벌 분석을 시작했다. 8월 하순 ICIJ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 자료를 최초 입수한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모여 데이터베이스의 성격과 검색 방법을 설명하고 아이템을 공유하는 회의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9월8일 아침, 바로 전날 밤 독일에 도착한 <뉴스타파> 취재진은 뮌헨 외곽에 자리잡은 <쥐트도이체 차이퉁> 사옥으로 향했다. 목가적 풍경을 뒤로하자 완만한 언덕에 유리벽으로 된 2개 동의 현대식 고층 건물이 나타났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간지 중 하나고 중도 좌파 성향의 전국지라는 정도만 알고 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발행 부수가 40만 부가량이어서 한국의 100만 부 넘는 거대 신문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각국 기자 376명, 문서 1150만 건 분량 뒤졌다

<뉴스타파>는 4월4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 취재 결과를 1차 발표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회의장인 본관 26층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자 입구에서 ICIJ 스태프들이 명부를 대조하며 참석 기자들에게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고 있었다. 회의장엔 이미 여러 나라에서 날아온 100명 넘는 기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몇몇 낯익은 얼굴과 수인사를 나눴다.

오전 9시, <쥐트도이체 차이퉁> 편집국장과 ICIJ 대표 제라드 라일의 환영사로 언론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될 기자들의 국제 협업 회의가 시작됐다. 시간대별로 빽빽하게 짜인 1박2일의 일정, 먼저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두 탐사보도 전문기자, 바스티안 오베르마이어와 프레데리크 오베르마이어가 유출 데이터 규모, 파일 유형 등에 대해 설명했다.

두 기자는 당초 독일 내 탈세 문제를 취재하던 중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파일 규모는 무려 2.6테라바이트(TB). 여기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가 관리해온 고객 관련 자료 40년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문서로 따지면 1150만 건이 넘는다고 했다.

2010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가 1.7기가바이트(GB), 2013년 ICIJ의 조세회피처 프로젝트 데이터(조세회피처 유령회사 설립 대행사 PTN, CTL 유출 문서)가 260GB, 2014년 ICIJ의 룩셈부르크 프로젝트 데이터가 4GB, 2015년 스위스 HSBC 비밀계좌 데이터가 3.3GB였음을 상기하면 ‘파나마 페이퍼스’ 데이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두 기자는 자료를 들여다보고 한 언론사가, 아니 일국 단위에서 다룰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들은 바로 ICIJ에 연락해 국제 협업을 제안했다.

데이터 소개가 끝난 뒤 자료가 유출된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를 ‘이해’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로펌은 직원 500여 명에 전세계 주요 도시와 조세회피처에 40여 곳의 지점을 거느린, 이쪽 세계에선 ‘역외 비밀 도매상’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처음엔 알아듣기도, 발음하기도 힘들었던 모색 폰세카라는 이름이 반나절 정도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Korea’ 들어간 파일 1만5천 개 전수조사

이후 이틀간의 일정은 ICIJ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 검색 방법과 파일 유형 설명, 각국 참여 기자들의 초기 분석 내용 공유, 보도 일정 논의 등으로 채워졌다. <뉴스타파>도 초기 검색을 통해 발견한 북한 관련 페이퍼컴퍼니 자료 등을 발표했다. 북한 관련 내용은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이틀째인 4월5일 영국 와 <가디언> 등을 통해서도 크게 보도됐다.

독일 회동에서 돌아온 <뉴스타파> 취재진은 본격적으로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 ‘Korea’로 검색해 모두 1만5천 개가량의 파일을 추출했고 이를 일일이 전수조사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놓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지만, 끝없이 시간이 들고 극심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면서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 195명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나 주소와 이름이 나와도, 그 사람의 신원을 바로 특정할 순 없다. 다음 단계의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뉴스타파>는 195명 가운데 현재 3분의 1 정도의 신원을 파악해 보도 가치가 있는 인물들을 차례로 공개할 계획이다.

문제는 모색 폰세카 유출 데이터에 들어 있는 한국인 이름이 ‘Korea’라는 검색어로 다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에 거주하거나 외국 영주권 등이 있는 한국인의 경우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에서 한국 주소를 기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취재진은 한국인이 흔히 쓰는 이름의 영문을 무작위로 검색하다 ‘Ro Jae Hun’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이름과 같았다. 하지만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데이터베이스를 정밀 검색해 ‘Ro Jae Hun’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모색 폰세카에 제출한 ‘홍콩거민신분증’ 사본을 발견했다. 사진과 생년월일을 대조한 결과 이 인물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과 동일인임을 최종 확인했다.

노씨는 2012년 5월18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원아시아인터내셔널’(One Asia International), ‘GCI아시아’(GCI Asia), ‘루제스인터내셔널’(Luxes International) 등 3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 회사 모두 노재헌씨가 이사이자 주주인 동시에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 등재돼 있었다. 1달러짜리 주식 한 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였다.

특이한 건 ‘GCI아시아’를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루제스인터내셔널’의 주주로 해놓는 등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해놨다는 점이다. 보도가 나가자 노씨는 대리인을 통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건 사실이지만 실제 사용하지 않았고, 친구와 지인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노씨는 홍콩에서도 자본금 1달러짜리 법인을 다수 설립하면서 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를 주주로 등재해 소유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도록 해놓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노재헌·포스코에 대한 수사 필요

유출된 문건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왼쪽)의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정황이 담겨 있다고 <뉴스타파>는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엔 한국 대기업의 이름도 종종 나온다.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했지만, 좀더 찾아보면 정상적으로 공시했고 외화 반출 신고를 한 기업이 적지 않다. 물론 이런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운업 등의 산업 특성상 조세회피처 이용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간혹 이상한 거래도 포착된다.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 자료에서 포스코의 주력 계열사인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이 2011년 S&K홀딩이라는 파나마 법인으로부터 ‘이피시에쿼티즈’(EPC Equities LLP)라는 회사의 지분을 각각 50%(394억원), 20%(157억원)씩 인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피시에쿼티즈가 영국 법인이지만 2008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영국 공시 자료에 자산이나 현금흐름이 완전 ‘0’인 휴면 법인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모색 폰세카는 이피시에쿼티즈 쪽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이 인수 계약에 참여했다. 유출 자료엔 지분 인수 계약서 등 포스코 관련 문서가 수백 건 확인되는데 이 중엔 인수 당시 포스코건설 대표이사이던 정동화씨의 여권 사본도 포함돼 있다.

포스코는 이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남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인수 이유로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포스코가 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두 차례의 자산 감액 처리를 통해 장부가액을 ‘0’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불과 4년 만에 껍데기 회사가 됐다. 그런데도 포스코는 100억원 가까이를 더 투자해 이 회사의 지분 10%를 추가로 사들였다. 포스코 쪽은 <뉴스타파> 보도가 나가자 이피시에쿼티즈가 시행한 페루 사업의 실패로 손실 처리를 했을 뿐 인수 계약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나 포스코의 경우 국세청이나 수사 당국의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조세 당국이나 수사 당국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지수다. <뉴스타파>는 2013년 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역외 탈세 추적 프로젝트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등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해외 비밀계좌를 개설한 한국인 18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국세청은 이 가운데 40여 명에 대해 2천억원 가까운 세금을 추징하고,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후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매우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뉴스타파>는 3년 만에 다시 조세회피처로 간 한국인들을 추적해 공개하고 있다. 조세 당국, 수사 당국이 3년 전의 미온적 태도를 되풀이하지 말고 이번에는 조세정의를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전세계 수백 명의 탐사저널리스트들이 함께하는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는 조세회피처를 통한 탈세와 검은돈 은닉이 부자나 권력자의 일탈을 넘어 인류에 대한 적대 행위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더불어 저널리즘에 대한 희망도 되살리고 있다.

국경 초월한 협업, 새로운 저널리즘 시대 열려

40여 년 전 워터게이트와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가 아날로그 시대 탐사보도의 백미이자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전범이었다면, ‘파나마 페이퍼스’는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혁명적 변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 초 두 보도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라는 거대 신문사의 울타리 내에서 이뤄졌다면, ‘파나마 페이퍼스’는 경쟁을 배제하고 국경을 초월해 협업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대를 열었다. 그 구심점엔 ICIJ라는 비영리 탐사보도 조직이 자리잡고 있다. 저널리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

유출 데이터 규모  2.6테라바이트(TB)

유출 문서량  1150만건

유출 데이터 생산 기간  1977~2015년

관련 페이퍼컴퍼니, 신탁, 재단 수  21만4488개

페이퍼컴퍼니 설립 지역  21개국

유출 파일 주요 유형  전자우편 파일(msg), HTML, PDF, TIFF, 워드문서

분석 참여자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한국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등 76개국 109개 언론사 및 376명 언론인(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

김용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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