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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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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달린’ 메르스와 불평등

‘인권’과 ‘사회정의’로 분석한 2015년 메르스 사태 보고서… 국가가 강화한 ‘위험의 차등적 분배’
등록 2016-03-01 14:09 수정 2020-05-03 04:28

이 세계에 불편부당한 불행은 없다. 총알에는 눈이 달렸다. 전쟁이 터지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날아가 박힌다. 바이러스도 공명정대하지 않다. 저 높은 멸균 공간에 떠다니는 사람들에게 감염병은 낮고 더러운 지상의 문제다. 평등한 멸망도 없다. 시스템이 붕괴됐거나 미비한 국가에서 사람들은 돈·권력에서 먼 순서대로 사라져갈 것이다.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가 극적으로 노출되는 계기였다. 분배의 끝자리에 선 사람들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배치한 자신의 서열과 위치를 느닷없이 확인해야 했다.

메르스로 마을 자체가 폐쇄(14일간)됐다 격리 해제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을 2015년 6월19일 방역 요원들이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로 마을 자체가 폐쇄(14일간)됐다 격리 해제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을 2015년 6월19일 방역 요원들이 소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가 확인시킨 ‘재난의 위계’

“네 군데 보건기관에서 확인을 했지만 몸살이라고 했어요. (메르스 위험 환자라고) 쫓겨났어요.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저 안 아픈데요, 일할래요’ (했지만 사장님은) ‘안 돼, 너 오지 마, 오지 말랬잖아’ (했어요. 내가) ‘사장님 나 안 아파요, 있을 곳도 없고’ 하니까 사장님은 ‘어디든 가 있어, 여기 오지 마’ 이런 거예요. 1년 내내 다른 곳은 가본 데가 없는데, 일만 했던 사람인데.”

농업이주노동자 ㄱ은 경남의 한 농장에서 일했다. 그는 매달 하루나 이틀만 쉬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모처럼의 휴일(계약서상 휴일이지만 실제로는 휴무하지 않은 날)에 그는 경기도 용인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고 왔다. 감기 증상이 있어 의료기관 4곳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았다. ‘메르스 음성’ 진단서를 떼어왔으나 고용주는 작업장 출입을 막았다. 감염이 의심된다면 자가격리를 시켜야 했지만 고용주는 농장에서 내쫓고 숙소를 폐쇄했다. 갈 곳이 없던 ㄱ은 거리를 헤맸다. 정말 감염자였다면 메르스는 ㄱ을 파괴한 뒤 거리에서 그와 스친 사람들을 옮겨다니며 숙주로 삼았을 것이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와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평가한 연구보고서 를 2월15일 펴냈다. 메르스 유행 원인과 대처 과정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 정부·언론·학계의 분석이 ‘간과했던 영역’을 살폈다.

보고서는 ‘재난의 위계’에 초점을 맞췄다. 국가의 메르스 대응 체계에서 배제됐던 ‘투명인간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비애를 복기했다. ‘인권’과 ‘사회정의’를 분석 틀로 삼았다. 재난이 벌어졌을 때 작동하는 국가의 수습 메커니즘이 ‘불평등의 정치학’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투명인간들은 증언한다. ‘메르스 위험분자’로 사업장에서 내쫓긴 이주노동자 ㄱ은 ‘불법체류자’로 신고까지 당했다.

“사용자가 이탈 신고를 했어요. 미등록이 됐어요. 사장님이 전염병이 다 지나가기 전까지 오지 말라고 (해서) ‘(그럼) 뭘 어떻게 (해야 되냐), 무슨 약속이 있어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더니 (사장님이) 이탈 신고를 한 거예요. ‘쉬는 날 쉬어야지 왜 용인 갔냐’고, ‘내가 너 용인 가라고 했냐’고요. (제가) 노동청에 하소연을 했거든요. 거기도 마찬가지예요. ‘왜 돌아다녔냐’고.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메르스와 고용허가제가 ㄱ의 몸에서 만났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금한다. 사업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고용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들은 직장을 바꿀 수 없다. 고용주의 사인 없이 직장을 옮기면 무단이탈이 돼 체류 자격을 빼앗긴다. 2004년 도입 이래 인권단체들이 끊임없이 폐지를 요구해온 ‘문제적 조항’이 메르스와 얽혀 ㄱ의 삶을 파괴했다. “불공정한 제도와 인종차별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보고서는 표현했다.

목숨값이 다르다는 ‘진실’

ㄴ은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였다. 검역 대상자 수용기관으로 지정된 한 공공시설을 청소했다. 해당 기관은 검역 대상자를 받으면서 소속 노동자들을 대피시켰다. ㄴ에겐 변함없이 청소 임무가 맡겨졌다. ㄷ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휴교 조처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학교를 비웠을 때도 돌봄 교실을 맡아 출근해야 했다. 정규직 직원들이 빠져나간 건물과 교사들이 떠난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남아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휴교를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일을 쉬려면 연가를 사용하라고 했어요. 그 차별이 우리를 서럽게 했어요. 안타까운 건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문제제기를 못하는 거예요.”(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가난한 집의 아이들도 방치됐다. 휴교할 때마다 그 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지역아동센터들도 휴원했다. ㄹ은 학교도 센터도 휴원해 갈 곳이 없었다. 부모는 ㄹ을 혼자 둔 채 출근했다. 학교·지역아동센터와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ㄹ은 집에서 홀로 지내거나 동네를 배회했다. 센터에서 저녁을 먹던 아이들은 밥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휴교·휴원 이후) 아이들이 (길에) 굉장히 많이 나와 있었어요. 가정에서 보호받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사람 많은 곳에 더 자주 노출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제대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지도 못했고요. …1인당 부식비 4500원에 맞춰 양에도 차지 않을 걸(햇반, 스팸, 3분카레 등) 사서 집에 갖다주면서 한숨 푹푹 쉬고. 차라리 3명이 붙어 있으면 1만2천원으로 먹을 만한 걸 먹일 수 있었을 텐데….”(지역아동센터 교사)

공공의료시설을 이용해온 노숙인들과 에이즈 환자들은 병상을 비우고 쫓겨났다. 그들은 시설이 남아돌 때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잔여적 복지 시스템’의 피해자였다. 돈 안 되는 음압병실을 갖춘 공공의료시설로 메르스 격리자들이 몰리면서 병상 확보를 위해 노숙인과 에이즈 환자들은 ‘치워졌다’. 국가의 ‘감염병 재난 시스템’ 속에서 그들의 건강은 보호받아야 할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비싼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홈리스들은 사실상 지정된 공공병원에만 갈 수 있어요.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환자만 받게 되다보니 홈리스들은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됐어요.”(노숙인 지원단체 활동가)

국립의료원에서 나온 에이즈 환자 3명(기초생활수급자)은 민간병원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으로 퇴원했다. 민간 의료시설로 전원한 한 에이즈 환자에겐 300여만원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취약한 공공의료 체계의 부담은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들에게 전가됐다.

전북 순창 장덕리 마을 폐쇄는 ‘지역 간 서열’까지 드러냈다. 폐쇄 기간 동안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주민이 지병 악화로 사망한 경우도 발생했다. 감염자가 나온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가 집단 격리된 일은 없었다. 삼성서울병원 주변 학부모들의 간담회엔 황우여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지역 국회의원, 삼성서울병원 진료 부원장이 직접 참여했다. 학부모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학교마다 메르스 전문요원 배치도 약속했다.

“도시 아파트가 더 위험하지 않나요. (공평하게 하려면) 아파트 동 전체를 격리해야 하는 거잖아요. 힘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 (마을 폐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힘없는 사람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거예요.”(장덕마을 주민)

“위험 거버넌스 구축해야”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바이러스는 그렇게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인도됐다. 누군가의 삶을 희생해 국가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스템은 불평등을 동반한다. ‘눈 없는 재난’이 특정인들을 골라 집중되는 데는 위험을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국가의 역할이 컸다. “자본의 분배가 상층에 편중된다면, 위험의 분배는 하층에 편중된다.” 특정인에게 더 위험한 재난은 낮은 민주주의가 촉발한 사태라고 보고서는 진단한다. ‘노동의 열세’도 사태의 뿌리에 닿아 있다. 불평등한 노동시장이 공고해질수록 ‘사람마다 목숨값이 다르다’는 진실은 재난이 닥칠 때마다 재확인될 수밖에 없다.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사전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하고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위험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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