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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낮아진 문턱 없다

한-중 FTA ‘조기 발효’ 효과는 허구… 중국산 귀금속에 소상공인 칼바람, 한류 시장 개방은 ‘과장’
등록 2015-12-10 16:46 수정 2020-05-03 04:28

이번엔 중국이다.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11월30일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 정부의 바람대로 중국이 서둘러 비준 절차를 완료하면 이르면 연내에 발효된다. 한-중 FTA 규정에 따라, 가령 올해 12월31일에 발효되면 바로 그날 1년차 관세 인하가, 다음날인 2016년 1월1일부터 2년차 관세 인하가 이루어진다. 정부 표현을 빌리면, 이게 바로 “조기 발효” 효과다.
정부는 지난 6월 한-중 FTA에 정식 서명한 뒤, 늦어도 11월까지는 한-중 FTA를 비준하라고 국회에 ‘교시’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중 FTA가 조기 발효돼야 중국의 어마어마한 내수시장을 한국이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중 FTA를 통해 한국만 누리는 특혜, 즉 중국이 한국에만 허용하는 추가적 시장 개방과 추가적 규제 완화를 통해 한국이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먼저 중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구체적인 선점 효과가 얼마인지도 내놓았다. 한-중 FTA를 당장 발효시키지 않으면 날아가는 돈이 하루 40억원. 말도 안 되는 억지 셈법이었지만, 정치적 효과는 컸다. 야당은 맥없이 무너졌다.
낮은 수준의 FTA… 자동차·농산품 빠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11월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날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11월3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날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한-중 FTA는 중국 입장에서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낮은 수준의 FTA’이다. 일단 중국의 상품 및 서비스, 투자 시장을 거의 열지 못했다. 한-중 양국의 최대 민감 품목인 자동차와 농산품이 개방 대상에서 빠졌다. 다른 품목들은 미미한 관세 인하가 전부다. 관세 인하 속도도 느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한-중 FTA 성과라고 대표적으로 선전하는 품목들도 초라하다. 정부는 “중국은 콘택트렌즈, 주방용 유리 제품 등 생활용품 시장 대부분을 개방”했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협정문을 보면 이들 품목은 중국이 15~20년 동안 관세를 유지하는 초민감 보호 품목이다. 또 정부는 협상 타결 직후 중국의 거대한 화장품 시장이 열렸다고도 홍보했지만, 한-중 FTA의 화장품 관세는 발효 1년차 4.74%, 2년차 4.48% 등 찔끔 인하되는 반면, 중국이 지난 6월부터 전세계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적용하는 화장품 관세는 2%에 불과하다.

이미 중국 시장을 노리고 대거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관세가 인하되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반면 ‘메이드 인 차이나’의 한국 시장 공습은 우리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바로 칼바람이다. 대표적으로 귀금속업계의 경우 중국 시장은 장기간 보호되는 반면 한국 시장은 바로 빗장이 열리게 돼 있어, 업계의 사활이 경각에 달렸다.

서비스·투자 분야는 더 초라하다. 정부가 한-중 FTA의 가장 큰 성과로 자랑하는 것은 한류 시장의 개방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수준 높은 영화와 드라마는 중국의 스크린쿼터 제도에 가로막혀 중국 시장에 발도 디뎌보지 못했다. 그런데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한-중 FTA 덕분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드디어 13억5천 명의 중국 시청자에게 다가가게 됐다.

그러나 협정문을 들여다보면, 한국이 중국과 공동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중국산 콘텐츠로 인정해준다(그러므로 스크린쿼터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는 내용이 전부다. 게다가 이건 발효 중인 ‘한-중 간 영화 공동제작 협정’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도 누리고 있었던 내용이지, 한-중 FTA로 새롭게 얻어낸 성과가 아니다.

또 정부는 한-중 FTA 덕분에 앞으로는 한국인이 중국 현지에 관광회사를 세워 직접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관광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협정문에는 “한국 관광회사의 아웃바운드 관광사업 운영 승인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데 우선권을 부여”한다고만 쓰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한류 시장 개방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그나마 내세울 게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중 FTA를 통해 한국에만 추가로 완전히 개방된 서비스 시장은 아예 없고,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일부 제한적으로 개방됐을 뿐이다(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중 공연 중개 및 공연장 사업 서비스가 개방됐을 뿐인데, 그마저도 중국 기업과 합작해야 가능하고, 합작기업의 의사결정권은 무조건 중국이 가지는 조건이다). 16개 서비스의 개방 제한이 일부 완화됐으나, 8개 서비스의 개방 제한은 오히려 강화됐다.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에 편입되는 등 중국 금융시장의 판도가 송두리째 뒤바뀌고 있지만, 한-중 FTA의 금융서비스 분야는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없다.

“50점만 됐어도…” 정부조차 아쉬워하다
한-중 FTA를 당장 발효시키지 않으면 날아가는 돈이 하루 40억원, 말도 안되는 억지 셈법이지만 야당은 맥없이 무너졌다. 11월 30일 국회에서 한-중 FTA 비준안이 가결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한-중 FTA를 당장 발효시키지 않으면 날아가는 돈이 하루 40억원, 말도 안되는 억지 셈법이지만 야당은 맥없이 무너졌다. 11월 30일 국회에서 한-중 FTA 비준안이 가결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한-중 FTA의 시장 개방 수준이 이렇다보니 정부 또한 옹색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 관계자 입에서 “한-중 FTA가 50점만 됐어도…”라는 아쉬운 소리가 나왔겠는가. 그래서인지 정부는 한-중 FTA의 진정한 효과는 “중국 내 각종 비관세장벽 및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 해소”에 있다고도 주장해왔다. 시장 개방 수준은 미흡할지 모르지만, 중국이 한국에만 비관세장벽(관세 이외에 상품·서비스 수출 및 투자를 가로막는 모든 제도 및 관습)을 낮춰주니 시장 선점 효과는 여전히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사실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힘든 건 ‘관시’(關係)로 대표되는 중국의 악명 높은 비관세장벽이다. 가령 중국에서는 수많은 상품에 중국강제인증(CCC) 제도가 적용된다. 그래서 한국 기업이 해당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려면 반드시 CCC를 받아야 한다.

인증 절차의 첫 단계는 인증을 위한 샘플 상품을 중국에 보내는 것인데, 고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CCC를 받기 위해 보내는 샘플인데도 중국 국경에서 CCC 마크가 없다며 퇴짜 놓거나 벌금을 물리기 일쑤다. 어찌어찌해서 중국에 샘플을 들여보내면 이번에는 중국 현지에서 안전·품질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한국이나 유럽의 권위 있는 검사기관에서 발급한 검사 결과를 내밀어봐야 소용이 없다. 수백∼수천만원의 검사비가 추가로 들어간다.

간신히 검사를 통과하면, 이번엔 중국 행정 당국에서 인증 마크를 발급받아 제품에 부착하라고 하는데 그 과정이 또 험난하고 돈도 많이 든다. 천신만고 끝에 CCC를 받아내면, 몇 년마다 새롭게 인증을 갱신하라고 요구한다. ‘산 넘고 산’이 아니라 ‘장벽 넘고 장벽’이다.

FTA란 바로 이런 것을 개선하라고 있는 제도다. 그런데 이 중 한-중 FTA에서 개선된 것이 있을까? 유일하게 이루어진 개선은, 정보가 적극 홍보하듯 “전기·전자·제품 분야 국제공인시험(IECEE CB) 성적서의 상호 수용을 촉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상호 수용한다는 게 아니라 한번 생각은 해보자는 것이다. 정부가 홍보하는 것도 이런 수준인데, 다른 수많은 비관세장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한-중 FTA에서 한국에‘만’ 개방된 시장은 사실상 없다. 한국에‘만’ 낮춰지는 비관세장벽도 없다. 그러므로 선점 가능한 시장이란 애당초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한-중 FTA를 꼭 조기 발효시켜야겠다던 정부의 논리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

필자는 지난 10월 말 국회의 한-중 FTA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한-중 FTA를 조기 발효시켜봐야 선점 효과가 없다는 필자의 진술에, 여당 의원들의 반론이 참으로 당당했다. 듣고 보니 선점 효과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중 FTA로 손해 볼 것도 별로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법률’과 ‘행정규칙’, 한-중 불평등한 법 지위

한-중 FTA의 조기 비준은 우리의 법치주의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국내적으로는 통상 문제에서만큼은 헌법의 삼권분립이 무의미하고 정부의 독재가 허용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국제적으로는 한국에서 ‘법률’ 지위를 갖는 한-중 FTA가 중국에서는 ‘행정법규’에 불과한 어처구니없는 선례를 남기게 됐는데도, 정부는 조기 발효가 더 중요하니 대충 넘어가자고 한다.

경제적으로 잃은 것도 크다. 성장 한계에 부닥친 중국은 최근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수정하고, 이에 따라 산업구조 전환과 자발적 시장 개방을 단행하고 있다. 성장 한계에 부닥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중 FTA는, 정부의 말마따나 중국의 이러한 전환기에 부쳐 중국 내수시장을 선점하는 획기적이고 종합적인 기획이 될 수 있었다. 이 좋은 기회를 정부는 ‘조기 발효’라는 명목으로 별 성과 없이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더 나아가 한-중 FTA는 급변하는 통상 질서 속에서 호혜와 상생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고유의 새로운 무역 규범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한-중 FTA는 미국식 FTA를 기준으로 오직 플러스·마이너스만 가능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통상 규범 경쟁에서 미국식 FTA를 우위에 올려놓았다.

한국과 중국 두 노동 후진국이 만났지만 양국의 노동조건을 개선함으로써 공정한 무역질서를 만들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환경 분야는 서로 협력한다는 공허한 수사만 남겼을 뿐이다. 식품 안전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고, 농업은 한국 쪽 개방 수준이 낮다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국과 중국이 맺는 FTA인데도 북한을 동아시아 분업 구조 속으로 평화롭게 편입시키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한-중 FTA의 개성공단 조항은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개성공단 제품의 가짓수를 일부 늘리는 데 그쳤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무시무시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가, 론스타 사태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한-중 FTA에 그대로 포함됐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보호하는 장치라는데, 거꾸로 말하면 중국 기업이 한국을 공격할 무기라는 이야기다. 가령 중국 기업이 론스타처럼 한국을 상대로 5조5천억원(약 46억7950만달러)을 물어달라며 ISD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5조5천억원은 40억원을 3년9개월 동안 차곡차곡 모아야 쌓이는 돈이다. 40억원의 이익은 기업이 가져가지만, 5조4천억원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다.

‘균형 회복’ 앞세워 TPP로 내달린다

무엇보다, 이제 한국의 FTA 린치핀(수레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 기울었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미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제치고 한-중 FTA를 체결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미국·일본 축을 떠나, 중국 축으로 이동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 상태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은 FTA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중 FTA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린치핀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부는 이제 앞뒤 보지 않고 TPP로 내달을 것이다. 그렇다, 다음은 TPP다.

노주희 변호사·민변 국제통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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