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벌레들을 유혹하던 도시 간판의 불이 하나둘 꺼질 때, 결코 고집을 꺾지 않는 곳이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가 아니면 문 잠길 일 없는 가게, 연중 셔터 내릴 일이 별로 없는 그곳, 편의점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유행가가 흐르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인기 있는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되고, 없는 것 빼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파는 편의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요구에 가장 발빠르게 반응하는 곳이다.
전국의 편의점 수는 2014년 기준 2만6천 개(한국편의점산업협회)가 넘는다. 이게 얼마나 많은지 와닿지 않는다면 동네마다 있는 경찰지구대와 파출소를 생각해보자. 둘은 전국에 각각 514개, 1436개(2014년 기준) 분포해 있다. 은행은 어떨까. 전국은행연합회에 등록된 유인 점포 현황을 살펴보면 2014년 기준 7400여 개의 은행이 동네마다 스며 있다. 편의점은 지하철 구내에, 대학과 고등학교에, 군부대에, 심지어 서울구치소 면회장에도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이다. 한국은 인구당 편의점 개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편의점의 속사정은 늘 고달프다. 대기업과 편의점 가맹점주, 편의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갑을 논란, 골목 상권 문제 등 가난한 시민을 옥죄는 이슈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수치상 드러나는 매출과 영업이익은 어제오늘 할 것 없이 반짝이며 치솟는다. 유통업계 전반이 매출에 부침을 겪고 있음에도 편의점은 독보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월26일 발표한 ‘7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편의점은 31.4%의 큰 상승폭을 보였다.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7% 올랐고, 대형마트는 1.8% 감소를 보였다. 편의점은 지난 6개월 월평균 매출 상승폭이 26.2%다.
한편에서 고달픈 영업을 이어나가는 영세 점주들이 있는가 하면, 주식시장에서 편의점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편의점의 촘촘한 망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회학자 전상인 교수는 에 “편의점을 스쳐간 사람들이 남긴 자취, 그리고 편의점이 찾아낸 사람들의 흔적은 사회의 판세를 읽고 세상의 추이를 분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편의점을 스쳐간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보았다. 8월27일, 우리는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약속 장소까지 걸어서 6분, 그곳을 찾아가기까지 4개의 편의점을 지나야 했다. 1분 조금 넘어 하나씩 편의점을 지나친 셈이다.
그렇게 많고 많은 편의점 중의 하나, 서울 명동의 세븐일레븐 한 지점에서 만난 이기원(29·가명)씨는 월~금요일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가끔 번역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벌이가 한 달에 채 10만원도 되지 않아 편의점이 그의 주요한 일터다.
“어서 오세요, 세븐입니다.” 상황에 따라 “시원한 주스와 커피가 있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진열대를 정리하다가도 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오면 기원씨는 인사를 외쳤다. 등에 손님을 알아보는 센서라도 있는 것 같았다. 출입구 쪽으로 비스듬히 등을 지고 있을 때도 그는 손님의 방문을 알아차리고 인사를 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일상적이지 않은 이 인사가 너무 어색했다.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웅얼거리는 그에게 점포 관리 사원이 목소리를 더 크게 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1900원입니다.” 칫솔 세트를 사는 고객에게 계산기로 바코드를 찍고 다시 건네주며 기원씨가 말했다. “○○원입니다”는 그가 인사말 다음으로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카드 받습니다” “거스름돈 ○○입니다”라는 말도 자주 한다. 손님과 가게 주인 혹은 아르바이트생의 대화는 늘 일방적이다. 주로 계산대 안에 서 있는 사람만 말을 한다. 기원씨가 일하는 곳은 늘 아르바이트생이 2명 있어서 그럴 경우가 없지만, 대부분의 편의점에서는 홀로 가게를 지키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
부산의 한 주택가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진우(25·가명)씨는 “이번 방학 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얼마입니다’였던 것 같다. 기계적으로 계산을 반복하다보면 계산기가 바코드를 찍는 소리도 몸에서부터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계산대 위로 끊임없이 물건이 올라오면 때때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고도 말했다. 어떤 일터에서는 기계화와 자동화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는데, 이 작은 공간에서는 물건의 바코드를 더듬으며 사람이 기계가 된다. 매뉴얼에 맞춰 기계화된 일상은 양면적이다.
기원씨는 이렇게 바쁘고 능숙한 일상이 썩 나쁘지 않다. 바쁘게 지내다보면 힘든 것도 모르고 시간이 잘 간다. 자신이 일하는 점포에는 다양한 국적의 손님이 많아서 스펙터클하게 일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때때로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도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너무 많은 요구를 할 때는 어지럼증이 들 정도다.
마치 스마트폰 편의점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이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움직일 일 없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가 게임 속 캐릭터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계산을 하고, 계산을 쉬는 동안에는 진열대를 정리한다.
“이거 페이스업 하면 되나요?” 손님들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빼가고 난 빈자리를 가지런히 채워넣는 것을 ‘페이스업’이라고 한다고 기원씨가 설명했다. 물건의 라벨이 고객으로부터 등지고 있지 않도록 바르게 정리하는 것도 페이스업에 해당한다. “유제 빈 것은 안 채워도 되나요?” ‘유제’는 유제품의 줄임말이다. 빠진 물건은 창고에서 꺼내오거나 오전과 야간에 물건이 배송되길 기다렸다가 채워넣어야 한다.
‘백룸’은 편의점에서 사무실이자 창고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기원씨가 일하는 곳의 백룸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과 직원용 사물함, 작은 책상과 컴퓨터가 있었다. 한 직원이 그곳에 앉아 물건을 발주하고 있다. 기원씨와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동료가 말했다. “이 점포가 진짜 바쁜 곳이지만 더 바쁜 데가 있어요. 공항에 있는 점포에서 일하는 사람들 별명이 ‘두더지’예요. 손님이 항상 너무 많아서 고개 들 새도 없이 계속 계산기를 찍어야 하거든요.”
최근 편의점 매출이 대폭 상승한 데는 담뱃값 인상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담배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물품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데,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2014년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은 담배로 매출 중 39%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담뱃값 상승으로 단순 매출이 증가하기도 했지만 영업이익도 늘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2%,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65%, 세븐일레븐은 68.4% 늘었다고 밝혔다.
900원, 2300원, 8700원…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결코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았다. 편의점은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몇 시간이고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15년 7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을 보면 대형마트는 1인당 구매 단가가 4만1244원, 백화점은 6만1891원인 데 비해 편의점은 4993원이다. 사람들은 미리 살 것을 마음에 정해두고 천원 단위의 돈을 쓰고 나갔다. 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을 파는 편의점에,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쳐지나는 것 같았다. 편의점 직원은 다른 모든 직업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대화나 교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스쳐지나는 것 같았다계산대 앞에 마주 선 사람을 잠시나마 유심히 보는 순간이라면 계산기에 ‘객층키’를 누르는 순간일 것이다. 계산하는 순간 빅데이터를 쌓아가는 편의점에서는 계산을 완료하기 위해서 어떤 물건을 구매한 고객이 어린이인지 청소년인지, 성인 남자인지 성인 여자인지 등을 구분해 입력해야 한다.
그런 데이터가 촘촘히 모여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먹거리의 경우를 보자. 우리는 어쩌면 마시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는지 모른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품목은 담배가 1위, 다음으로 식품과 주류인데, 1~5위 순위가 카스1.6ℓ, 카스500mℓ, 참이슬, 카스355mℓ, 바나나맛우유다.
계산대에 가만 서서 보면 외로운 동물이었던 우리는 잠시 사회화되었다가 다시 외로운 순간으로 돌아간다. 시간대별로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구매 패턴을 보면 그렇다. 기원씨가 있는 곳은 오피스 밀집 지역으로 오전에는 아침을 거른 직장인들의 방문이 많다. 빵·샌드위치·핫바 같은 것을 사가고, 여성들은 요구르트 같은 것을 사간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사람부터, 점심 먹고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몰린다. 오후에는 캔커피나 아이스크림 등을 한꺼번에 사가는 사람이 많다. 밤이 되어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다시 혼자서 담배나 숙취 해소 음료, 간식 등을 사러 드나든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단골 고객도 생긴다. 몇몇과는 서로 말을 트고 지내기도 하지만, 이곳은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100번을 마주 서도, “사실 말이 필요 없는 공간”이라고 기원씨가 말한다. 김애란의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의 화자는 “계산은 빨리 편하게 되는 것이 목표다. 손님 쪽을 향해 있는 모니터도 있기 때문에, 점원과 손님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계산을 끝낼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어떤 말도 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화자는 편의점 직원이 자주 오는 고객이 사는 물품으로 미뤄 짐작해 사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거북해하면서도 사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한 익명의 공간임을 깨닫고 더 외롭고 불편해진다. “손님이 먼저 아는 척하기 전에는 말 붙이기 어렵죠.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자주 오는 손님은 들어왔을 때 무얼 사갈지 대충 짐작이 돼요. 예컨대 자주 오는 여성분은 항상 같은 담배를 사가는데, 그분이 들어오시면 슬그머니 말버러 실버를 꺼낼 준비를 해요.”
언제 손님이 먼저 말을 거느냐고 묻자 기원씨는 손님보다 물건을 사지 않는 방문객이 말을 붙이는 데 더 적극적이라고 말한다. 길을 물으러 들어오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영화관이나 대사관처럼 구체적인 장소를 묻고, 외국인들은 “여기가 명동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는 광장만큼 많은 사람이 드나들지만 이들 익명의 존재는 서로의 필요만 충족하고 그곳을 떠난다.
계산대를 떠난 뒤에야 진짜 인간이 된다편의점은 대도시의 삶을 압축한다. 매뉴얼화한 시스템과 익명성이 주는 안락함과 불편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원씨의 일상도 여느 도시인의 평범한 하루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편의점은 점심 무렵 손님이 정점을 찍은 다음 비교적 한산해진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편의점 24시간 영업 중 오전은 아침 8시~낮 12시, 오후는 4시부터 자정까지 고객이 집중돼 있다. 평일 오전 8~12시에 이용 고객의 16.5%가 몰리고, 오후 4~8시, 8시~자정에 각각 21.7%, 23.1%의 손님이 찾는다.
낮 12~1시 무렵 기원씨는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로 점심을 먹는다. 각각 점심시간을 40분 정도 쓰는데, 기원씨는 주로 외부에서 음식을 사오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백룸에 들어가서 먹는다. 밥을 먹고 쉬면서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 식사 직전까지 그는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서야 진짜 대화를 나누고, 진짜 보고 싶었던 무언가를 읽는다.
우리는 왜 편의점에 가는가. 그곳에 가면 이 시대를 점령한 대부분의 물건을 대하며 내가 사는 오늘을 읽을 수 있으므로? 싼값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기호를 구매하면서 취향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므로? 아니면 이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사소한 습관부터 우리가 처한 현실의 한계와 문제점까지, 작금의 세계가 그 안에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커피와 빵, 스타킹과 담배를 사면서 일상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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