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이 발언의 주인공,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다. 친일·반민족적 역사관을 가진 자에게 총리직을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이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이다. 총리 적격 여부를 다시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발언이 과연 공권력을 동원하여 처벌해야 하는 표현인지가 우리의 쟁점이다.
‘막말’을 법적으로 막고 벌하자는 주장들
괜한 가정은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발언’을 처벌한다는 취지의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의 공식 명칭은 ‘일제 식민지배 옹호행위자 처벌 법률’, 대표발의자 스스로 붙인 별칭은 ‘문창극법’이다. 2005년과 2014년 8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고, 2013년에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을 처벌하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되었다.
이 법률안들의 공통점은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반인륜 범죄’ ‘친일반민족 행위’ 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인·왜곡·날조를 처벌한다는 것에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역사 부정’에 대해 처벌할지를 논쟁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이 논의는 표현의 자유 한계에 관한 논쟁의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 부정을 처벌하자는 쪽에서는 으레 ‘유럽에서는 이런 발언들을 엄벌하고 있다’는 논거를 들고나온다. 실제로 2007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회원국들에 종교적·인종적 혐오 선동의 처벌을 요구하는 결의와 협약이 채택된 바 있으며,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체코·폴란드 등 14개 국가에는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부정’을 처벌하는 명시적 입법이 있다.
실제로 이 법에 의해 처벌된 경우가 적지 않고, 이 중에는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1970년대 나치의 가스실, 유대인 학살, 히틀러의 살인 명령 등의 사실을 부정하여 처벌받은 역사학자 로베르 포리송의 경우다. 흔히 혐오 표현의 규제를 다룰 때, 폭력이나 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선동’(incitement)과 그렇지 않은 수준의 ‘의견’(opinion)을 구분하곤 한다. 구체적 해악을 야기하는 선동에만 적용 범위를 한정하여 무분별한 확대 적용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포리송처럼 학문적 의견 개진도 처벌된 경우가 적지 않다. ‘나치를 부활하자’ ‘유대인을 몰아내자’는 식의 직접적 선동이 아니라, ‘홀로코스트 희생자 수는 과장되었다’ ‘히틀러가 살해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는 수준의 의견 표명도 처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배경이 있다.
첫 번째는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위상이다. 홀로코스트는 인류가 유사 이래 행한 최악의 범죄행위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절한 반성으로 유엔이나 EU처럼 평화와 인권을 지향하는 국제질서가 탄생했다.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국제질서의 대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끊임없이 일어난 민족 간 분쟁을 딛고 통합 유럽의 시대를 열게 된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 부정에 강경하지만...둘째, 홀로코스트 부정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중대한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것은 그러한 인권침해를 감행하겠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신나치·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서유럽이나 민족적·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 동유럽의 현실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정이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세 번째 맥락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정은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처벌법은 대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이 ‘폭력’이나 종교·인종·민족적 ‘차별’의 선동과 결합될 때 적용된다. 국제인권규약도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증오의 고취”를 금지하고 있다. 게다가 반유대주의는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신나치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는 아프리카·아랍·아시아 출신 비유럽 이주자들에 대한 증오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소수자 차별은 다시 폭력을 부른다. 홀로코스트 부정죄는 이렇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는 연결고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비판적 입장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이탈리아, 북유럽 국가들에는 홀로코스트 부정을 처벌하는 법이 없다. 이 국가들은 홀로코스트 부정에 관한 유럽 차원의 공동결의가 마련될 때에도 선동적 요소가 없는 의견에 대한 처벌을 반대했다. 피터 싱어나 노엄 촘스키 같은 저명 학자들을 비롯하여, 학계에는 학문적 의견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
처벌의 효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히틀러의 이 금서인 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 가면 얼마든지 그 책을 구할 수 있다. 국경을 넘어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더더욱 규제하기 어렵다. 다른 나쁜 표현들은 자정에 맡기자고 하면서, 유독 홀로코스트 부정만 처벌하는 것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최근 중동과 이슬람권의 일부 지역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한 서방의 강경 대응이 시온주의를 부추긴다는 불만과 함께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풍자한 덴마크 신문의 만평이 ‘표현의 자유’로서 옹호되자, 홀로코스트 부정은 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역사 부정 처벌? 보수도 나설 텐데!이러한 논란을 피하고자, 영국에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단순한 의견이 아닌 종교적·인종적 증오의 선동에만 처벌 범위를 제한한다. 하지만 선동과 의견이 그렇게 간단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노골적으로 ‘인종청소’를 선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600만 명 전원이 가스실에서 집단 살해된 것은 아니라든가, 어떤 단일한 명령이나 계획에 의해 학살이 자행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법 그럴듯한 근거를 동원하여 홀로코스트가 ‘화학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예 의도적으로 의견을 빙자해 교묘하게 폭력과 차별을 조장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식민지배를 찬양하거나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표현을 처벌할 필요가 있을까? 일제 청산과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의 핵심적인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폭력이나 소수자 차별을 야기할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고, 쿠데타를 부추기거나 군부독재로의 회귀를 획책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유럽의 사례’만으로는 충분한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왜 홀로코스트 부정만 문제가 되느냐’는 의문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민주화운동 부정만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으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진영에서는 민주화운동 부정을 처벌한다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근대화의 기수, 박정희’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도 처벌하자고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법정에서의 유무죄 판단으로 협소화되고 왜곡되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가차 없는 처벌에 앞선 다른 방법들그렇다고 역사에 대한 부정이나 왜곡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홀로코스트 부정을 가차 없이 처벌하는 유럽의 국가들도 처벌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에게 홀로코스트 부정죄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재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대내외적인 ‘상징’일 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피해 배상 등의 철저한 과거 청산,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인권의식의 확산, 민주시민 교육의 강화, 그리고 건강한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에 더욱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처벌법일 뿐이다. 강력한 형사처벌법의 도입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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