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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없는 창비는 삼성전자 없는 삼성?”

소설가-평론가-출판인 긴급 메신저 방담… 신경숙 표절 사태가 드러낸 한국 문학의 위기 “차라리 새 술은 새 부대에”
등록 2015-06-23 10:59 수정 2020-05-03 04:28

“그들의 베끼기는 격렬하였다. (중략) 여자는 벌써 표절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한 트위터 이용자의 패러디)
신형철 평론가(문학동네 편집위원)가 6월19일 오전 다소 늦게 밝힌 입장에 포함된 대로 “한국문학을 조롱하는 일이 유행이 된 것처럼 보이는 때”다. 그 ‘조롱’의 최전선에 소설가 신경숙이 섰다. 6월16일 소설가 이응준이 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신경숙 작가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문제를 제기했다. 이응준 작가의 표현대로 신경숙 작가는 한국에서 “문단 권력”이다. 판권은 28개국에 팔렸고 15개국에 번역 출간돼 ‘한류문학’이라는 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문학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드물게 ‘읽히는 작가’라는 점이 그 권력의 근거다. 그래서 표절 논란이 미치는 여파가 더욱 크기도 하다.

한국문학의 대표 소설가 신경숙 작가의 단편 ‘전설’이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경숙 작가는 “(그 작품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수 기자

한국문학의 대표 소설가 신경숙 작가의 단편 ‘전설’이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경숙 작가는 “(그 작품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수 기자

창작과비평사(창비)는 표절 논란 하루 뒤인 6월17일, 문학출판부의 이름으로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며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입장 발표는 더 큰 논란을 불러왔고, 창비라는 ‘상징성’을 띤 출판사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결국 창비는 6월18일 강일우 대표이사 이름으로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표절을 수용하는’ 입장의 사과문을 내놓았다.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문인·평론가·출판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6월19일 오전, 이들을 급히 불러모았다. 메신저 그룹대화방에서 조영일 평론가, 김곰치 소설가, 평범한 독자를 자처하는 한 출판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메신저 대화상 축약된 표현과 사실관계들은 기자가 보충해 넣었다.

“창비 첫 입장, 높은 분 의도 느껴져”

이번 사태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터질 게 터졌구나, 이런 생각이었죠. 문학 전공자들은 다 알던 이야기고요. 1999년 기사로 한 번 제기됐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야기가 있었죠.

김곰치 일단 표절이냐 아니냐, 그 판단이 가장 중요했는데 보자마자 말할 것도 없이 ‘표절이군’ 했죠.

조영일 SNS가 역시 무섭구나. 예전에는 몇 사람 입만 막으면 됐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진 거죠. 문단 관리 잘하기로 유명한 신 작가께서 시대의 변화를 놓친 거죠.

김곰치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명예욕·인정욕·출세욕이 엄청 강한데, 신경숙 작가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제 욕망 변화의 궤적을 잘 기억하고 있어서 아는데 등단할 무렵에는 창비에 단편소설 싣는 것이 문학적 꿈이었어요. 그것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했죠. 지금은 지역출판을 하지만. 신경숙 작가는 끝까지 그 욕심이 엄청 과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표절은 명백하게 모두들 동의하는 것 같아요. 이 사태를 더 키운 건 실은 창비의 대응이었던 것 같아요.

김곰치 창비 문학출판부가 낸 첫 번째 입장은 곡학아세의 표본 같은 글이었죠. 창비 이름으로 나온 최악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 보도자료에서 더 높은 분들의 의도가 느껴졌어요. 문학출판부가 저런 ‘평론가’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요. ‘창비의 스타작가’가 한 일인데 이 무슨 재 뿌리는 일이냐, 이런 말투잖아요. 굉장히 낡고 오래된 글을 마주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단지 편집부의 입장일까 싶더라고요.

조영일 창비본색.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낯. 대응으로는 부적절했을지 모르지만, 속마음이었을 거예요.

창비의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돈 없어도 정기구독하던 독자들이 만들었죠. 그런데 마치 자신들은 표절에 책임 없고 심지어 표절 작가는 내 작가인데 왜 욕하냐라는 태도가 정말 문제였죠.

출판사가 유명 작가 매니저?

김곰치 다음날 창비 대표가 다시 낸 입장은 상황을 주시해보겠다는, 극도로 신중한 어법이었죠. 아주 아슬아슬…. 그러나 1차 보도자료보다는 진일보한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의견을 정리해나갈지 그건 좀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영일 권성우 평론가가 페북에 그런 이야기를 썼죠. “표절이면 표절이고 아니면 아니지 표절으로 볼 수 있을 법하다니”가 말이 되냐고.

창비가 가을에 내는 계간지에서 이 문제를 다룰까요?

김곰치 계간지에서 다뤄야 할 겁니다.

조영일 김곰치 샘은 창비에 애정이 아직…. 다루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형태로는 아닐 겁니다. 다음호가 나올 정도 되면 이슈도 식을 거고요.

전 이 사태가 한 작가의 표절 시비가 출판사에 대한 독자들의 분노로 발화했다는 점에서 신기했는데, 따져보면 마치 대한항공 오너가 ‘내 비행기니까 돌려’ 하면 안 되듯이 창비라는 출판사 대표도 ‘내 작가니까 욕하지 마’ 이러는 게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곰치 오히려 저는 일반 독자들의 분노에서 작가와 문학에 대한 아직 죽지 않은 믿음 같은 것도 본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창비는 신경숙이라는 상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거겠죠?

조영일 신경숙 포기하면 한국문학 망합니다. 삼성전자가 없는 삼성그룹.

김곰치 조영일 샘, 그렇습니까? ㅎㅎ 왜 나도 있는데!

ㅋㅋ 안 망할 것 같은데요.

조영일 창비가 그렇게 신경숙 작가를 감싸고 도는 건 한국문학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어요. 아무도 책을 안 읽으니 돈이 되는 작가가 몇 명 없는 거죠. 전혀 팔리지 않으니까 한두 작가에 올인하는 거죠. 그게 한국문학의 전부가 된 거고요.

전 출판인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출판사가 자기 작가를 감싸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같은 출판계 안에서도 분노가 커요. 이건 ‘독자’라는 출판의 정체성을 망가뜨린 대처였으니까요. 독자는 버리고 유명 작가 매니저처럼 굴면, 거기서 일하는 출판사 직원들은 뭐가 됩니까? 결론적으로 신경숙 책 팔아서 직원 월급을 주니까. 뭐, 이런 생각만 하며 자괴감에 빠지겠죠. 한국 문단의 최고봉인 출판사니까. 이게 일종의 배신감이 들더라고요.

조영일 이건 창비의 문제만도 아닌 게 문제의 작품인 이 실린 것은 예요. 그리고 신경숙을 그동안 찬양한 진원지는 문학동네고요. 이번 신경숙 사태의 거대한 침묵을 보세요. 시국선언문에는 이름을 올려도 이런 문제에는 실명 걸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찍히면 끝이죠. 이건 창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문학계 전체의 문제예요. 아침에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신형철 평론가가 말을 하긴 했죠.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해당 단락에 대해 표절을 인정하면서도 “논란과 무관한 뛰어난 작품들에 제출한 상찬을 철회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표절 문제를 문제의 단락에만 국한시키고 모티브나 구성의 유사함은 논하지 않은 점, 표절 대신 사용한 ‘불행한 결과’에 주어가 없다는 점에서 ‘진짜 평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형철 입장도 “반성문 아닌 반성문”

김곰치 표절이 지적된 작품 외에 신형철씨가 상찬한다는 신경숙 책들을 놓고 엄밀한 재평가도 필요한 일이겠죠. 인생 좀 살았다는 분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할 것 같네요. 작가정신이란 게 생겼다가 말았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의 입장은 반성문이면서도 조금도 반성문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문학계 안팎을 아우르는 거국적인 논란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여러 생산적인 글들이 계속 나올 것 같고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독자도 어느 때보다 평론을 많이 읽을 기회가 될 거고요.

이명원 경희대 교수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장한 방법인데 표절이 밝혀진 저작은 모두 폐기 내지 수거하라는 주문에 공감해요. 그래야 출판계도 경각심을 가지겠지요.

김곰치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려면 창비가 진실한 반성문을 내고 신경숙 작가도 입장을 번복하고 통렬하게 반성하는 게 일차 과제일 것 같아요.

조영일 이번 사태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 거예요. 처음(1999~2000년) 문제제기가 됐을 때 크게 반성했다면 지금 이런 일은 없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문학계 전체의 공동책임입니다. 그러나 우주가 돕지 않는 한 문단이 바뀌긴 쉽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이참에 제대로 망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나아요.

정리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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