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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 돌아가야 건강해진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6년, 해고자·복직자 등 정신건강 전수조사… 항우울제·신경안정제·수면제 복용 경험 해고자의 22.1%, 복직자 10.8%
등록 2015-06-10 21:53 수정 2020-05-03 07:17

그날 집으로 ‘노란 봉투’가 날아왔다. 해고 통지서였다.
머릿속이 노래졌다. 내가 왜 해고 대상자가 된 거지? 회사는 미리 해고를 귀띔해주지도, 해고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데, 생각할수록 가슴에선 뜨겁고 붉은 것들이 솟구쳤다.
2009년 6월 초, 쌍용자동차 1차 정리해고자 명단에 오른 1056명에게 나란히 ‘노란 봉투’가 우편물로 배달됐다. 정도영(45·가명)씨는 ‘노란 봉투’를 처음 받았을 땐 “화가 많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은 무덤덤하다”. 정씨는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그의 인생은 덤덤하지 않았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지난 6월4일 고려대 하나과학관 강의실에서 해고자 142명의 건강 상태를 설문조사한 연구 결과를 노조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가 지난 6월4일 고려대 하나과학관 강의실에서 해고자 142명의 건강 상태를 설문조사한 연구 결과를 노조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09년 그 자리에 멈춘 인생 시계

쌍용차는 그해 6월8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77일간의 공장 점거 투쟁을 벌였다. 파업이 끝났지만, 그는 일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공공근로, 보험, 대리운전, 택시운전, 건설현장과 평택항 일용직 등으로 전전했다. 일자리와 함께 그는 웃음도 잃었다. 아내와 이혼했고,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하루벌이로는 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이틀에 하루꼴로 술을 마시고서 잠든다. 어디 딱히 아픈 데는 없지만, 그렇다고 건강이 좋을 리도 없다. 휴대전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그의 대답은 툭툭 짧게 끊겼다. 무덤덤한 게 아니라, 애써 무덤덤해지려는 듯했다.

2015년 6월8일이면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일어난 지 꼬박 6년이 된다. 그동안 쌍용차 해고자,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28명의 부고장이 날아들었다. 누구는 몸이 아파서, 누구는 마음의 고통을 참지 못해 죽었다. 달력 72장을 갈아끼우고, 시곗바늘이 하루 24바퀴씩 2190번을 뱅뱅 돌아가는 그 긴 시간 동안, 쌍용차 해고자들의 인생 시계는 2009년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몸과 마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나섰다. 5월28일~6월1일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A4용지 18쪽 분량의 설문지로 신체·정신 건강, 직업과 생활 수준, 공적·사적 안전망의 보호 정도, 차별과 사회적 낙인에 따른 스트레스 등을 두루 따져물었다. 해고자 187명 가운데 142명(76%)이 설문에 응했다. 2011년 평택대학교가 쌍용차 해고자와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457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이후 최대 규모의 전수조사다.

나아가 해고자와 복직자, 다른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와의 차이도 비교해봤다. 2013년 1월 복직한 무급휴직자 455명 가운데 176명에게 똑같은 설문을 진행했다. ‘해고’와 ‘복직’의 경험이 그들을 어떻게 두 갈래로 찢어놨을지를 비교하는 연구다. 자동차와 부품 제조업에서 일하는 34~60살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일반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상태와도 견주어봤다. 데이터 자료는 2011년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3차 근로환경조사(KWCS)에서 추출했다.

은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와 연구 결과 보고서를 입수해 자세한 내용을 소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했던 것보다 해고자들이 훨씬 많이 아프다”(김승섭 교수). 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는 6월8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1. 해고는 살인이다?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해고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도 병들게 했다. 쌍용차 해고자는 10명 가운데 4명꼴(39.5%)로 스스로 “건강이 나쁘다”고 답했다. 공장으로 돌아간 복직자(24.2%)도 일반 자동차 공장 노동자(2.5%)의 10배 가까이 “건강이 나쁘다”고 자가 평가했다(표1 참조).

지난 1년간 나타난 구체적인 증상을 살펴보면 세 집단 사이의 격차는 더 도드라진다. 우울 및 불안장애를 겪은 해고자는 75.2%로 복직자(30.1%)의 2.5배에 달한다. 일반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경우엔 응답률이 고작 1.6%였다. 불면증 및 수면장애가 나타난 해고자도 72.2%로 복직자(49%)나 일반 노동자(2%)보다 월등히 많았다. 해고자 10명 가운데 9명 가까이(88.4%)는 두통과 눈의 피로를 호소했다. 또 열에 아홉(88.7%)은 전신 피로를 경험했다. 복통이나 호흡곤란을 겪은 비율도 10명 중 3명꼴로, 복직자보다 2~3배 많이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나타나는 피부 문제(42.2%), 청력 이상(26.5%) 등을 호소한 해고자도 적지 않았다.

해고자 김일도(53·가명)씨는 2009년 이후 얼굴에 붉은 반점이 얼룩덜룩하게 생겼다. 대학병원에 갔더니 “원인을 모르지만 심한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많다”고 진단했다. 약을 꾸준히 먹어도 낫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도 평택공장 앞에만 가면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선다”. 2009년 공장 점거농성 때 회사 편에 서서 새총을 쏴댔던 회사 동료들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아서다. 당시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산 자’였지만 노조 간부로서 파업에 가담했던 김씨는 그 뒤 징계해고됐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2년간 단식·노숙 농성을 한 뒤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을 얻었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 종종 어지럼증을 느낀다.

복직자도 일반 노동자에 견주면 심각한 상태다. “대량 해고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기존 연구를 보면, 해고 때의 트라우마가 있다. 쌍용차 복직자들이 일반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보다 건강 상태가 나쁜 건 그래서다. 해고자들에 대한 죄책감, 인력이 줄어들면서 심해진 노동 강도 등이 더해지면서 해고자 못지않게 복직자들도 아프게 된다.” 김승섭 교수의 분석이다.

2. 복직이 그래도 치료약이다?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이번 설문조사에서 해고자와 복직자 집단은 거의 유사했다. 해고자 142명과 복직자 176명의 기본 정보를 평균해봤더니, 나이(해고자 44.4살, 복직자 43.7살)나 자녀 수(둘 다 평균 1.6명)가 비슷했다. 근속연수도 복직자들이 2013년 이후 일한 2년여를 제외하면 13.2년(해고자)과 13년(복직자)으로 엇비슷하다. 2009년 대량 해고의 경험은 함께했으되, 2013년 이후 해고자와 복직자라는 신분으로 나뉜 것만 다를 뿐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 상태는 ‘복직’이 얼마나 중요한 치유 요소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표2 참조).

우선 약물 복용 경험. 최근 1년간 항우울제·신경안정제·수면제 등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지를 똑같이 물었다. 해고자의 22.1%가 “그렇다”고 답했다. 복직자의 응답률은 그 절반인 10.8%였다. 지난 일주일간 ‘상당히 우울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잠을 설쳤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등의 우울증 경험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랬더니 해고자 10명 중 8명가량(78.6%)이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직자의 우울증 경험은 52.8%였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에 몸이 아픈 비율도 해고자가 복직자보다 높았다. 병원에 입원한 경험(해고자 52.7%-복직자 40.1%), 위·십이지장궤양(20.7%-7.7%), 고혈압(23.3%-12.5%), 지방간(18.6%-9.5%), 디스크(13%-6.5%) 등 해고자의 발병률이 복직자보다 최대 3배까지 높게 나타났다.

3. 해고는 사회적 낙인이다?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 연구 대상: 2009년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142명 비교연구 대상: ① 2009년 무급휴직자 중 복직자 176명 ② 자동차 제조업 정규직 종사자 442명(2011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KWCS) 자료에서 추출) 조사 방법: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온·오프라인 설문 진행(5월28일~6월1일)

지난 6년 동안 해고자들은 거리에서 싸웠다. 상복을 입고 대한문 앞을 지켰고, 굴뚝에 올랐고, 아스팔트 도로 위를 오체투지했다. 할 말은 하고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못한 말이 많았다. 새카맣게 타들어간 가슴속 말은 꺼내지 못했다.

해고자의 93.8%는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는 응답도 90%에 이르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이어진다. 해고자의 75.6%는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당혹스럽다”고, 70.1%는 “해고당한 나 자신이 실망스럽다”고 답했다. 그러다보니 해고자들은 자꾸만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내가 해고당한 것이 남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74%)거나,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73.6%)는 식이다. “해고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것”(74.8%)이다(표3 참조).

이같은 트라우마를 갖게 된 해고자들은 차별을 경험해도 속으로만 삭인다.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87%나 됐지만, 이 중 41%는 참았고 16%는 무시했다. 해고자들은 일자리라는 공적 안전망을 잃었을 뿐 아니라, 2011년께 80%가량이 예금·적금·생명보험 등을 해지했다. 더 이상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기댈 언덕이 사라진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 계층을 묻는 질문에 대한 해고자들의 응답은, 2008년 사다리의 중간보다 약간 아래인 4.7(1이 바닥, 10이 꼭대기)이었다가 현재는 바닥에 가까운 2.1까지 내려왔다.

지난 6월4일 고려대 하나과학관 강의실에서 조사 결과 브리핑을 듣던 해고자 고동민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내가 남들한테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자리를 피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라고 답한 동료들이 70%가 넘는다. 사회적 낙인이 스스로를 굉장히 자신 없게 만들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고서 해고자 형님들이 또 한숨을 쉬며 소주잔을 비울 텐데… 휴….”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해고자들의 이같은 건강 상태가 방치되면 언젠가 또 다른 불행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본교섭을 통해 빨리 복직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평택공장을 방문한 뒤 처음으로 교섭 테이블이 마련돼 쌍용차와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14차례에 걸쳐 실무교섭을 했다. 하지만 숨진 해고자 유가족에 대한 실태조사 등에만 합의했을 뿐, 핵심 쟁점인 해고자(187명)와 희망퇴직자(353명)의 복직 문제에 대해선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티볼리 생산량 6만 대로 늘리지만…
지난 1월 쌍용자동차 신차 티볼리를 출시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행사장 입구에서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숨진 동료 26명을 상징하는 신발 26켤레를 늘어놓는 행사가 열렸다. 박승화 기자

지난 1월 쌍용자동차 신차 티볼리를 출시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행사장 입구에서 2009년 정리해고 사태 이후 숨진 동료 26명을 상징하는 신발 26켤레를 늘어놓는 행사가 열렸다. 박승화 기자

쌍용차 신차인 티볼리는 출시 4개월 만에 판매량 2만 대를 돌파했다. 회사는 올해 티볼리 생산량을 애초 계획한 3만8천 대에서 6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인력 충원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쌍용차지부는 실무교섭 대신에 최종식 사장과 김득중 지부장 등 대표자들이 직접 나서는 본교섭을 진행하자고 회사 쪽에 제안했다. 해고자 김일도씨는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쌍용차가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직업을 얻긴 했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가슴 한구석에 든 멍이 빠지지 않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김승섭 교수는 쌍용차 해고자들이 파업 직후 겪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유병률(50.5%)이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미군(48%)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9년 쌍용차의 파업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미군 포로들은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기라도 했지, 해고자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직 전쟁 같은 싸움을 끝내지 못했으니.” 싸움이 끝나야,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가야, 그들이 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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