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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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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고맙습니다

등록 2015-04-16 07:25 수정 2020-05-02 19:27

찬호 아빠 전명선씨. 그는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 고개 디밀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도 미술관에 위치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공기는 그때까지 서늘했다. 유가족들은 낯선 이를 경계했다. 가족대책위 진상규명분과장 찬호 아빠를 만났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는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되물었다. 존엄과 안전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언어로 부유한 채 1년이 흘렀다. 정부 시행령안으로 인해, 세월호 특별법은 쓰레기가 될 판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 시간이다. 수사권, 기소권 있는 특별법이 안 된다던 정치와 알량한 조사권마저 갈가리 찢어대는 정부에 의해 “내 자식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 당연한 호소는 비명이 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무엇이든 안 된다” 말하기 위해 법전이 동원되었다. 바다에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아왔다는 죄책감,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살리지 못한 죄책감이 남았다. 전남 진도 앞바다를 목격한 이름 없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일궈온 체제의 실패를 직관하며 “미안하다”는 고백을 쏟아냈다. 정작 미안하다 위로해야 할 국가만 사라졌다. 구조의 실패에서 끝나지 않았고 애도와 치유, 추모의 실패로 이어졌다. 찬호 아빠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는, 그들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했고 어색한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수십 일 단식을 했으며 물집 잡힌 발로 팽목항까지 걸었다. 국회, 청와대 앞, 광화문 앞에서 노숙으로 밤을 새웠다. 지금도 삼보일배 하며 서울로 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실인 것을 정말 모르냐”며 돈으로 모욕하는 정부에 머리카락을 밀며 대답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이런 것이냐, 가족을 위해 일하며 성실하게 세금 내고 살았는데 도대체 이 상황은 무언지 묻는다. 아빠에게는 찬호 없는 식탁의 부재가 304개의 비어버린 저녁 식사로 보인다. 그는 국가의 본질과 체제의 잔인함을 경험하며 앓고 있다. 입술이 퉁퉁 붓고 입안이 온통 헐어버린 그가 걱정돼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괜찮지 않아요. 아파요. 많이 아파요.”

문득 어떤 아빠가 떠올랐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아빠, 황상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수년 전이었다. “건강하던 딸이 일하다 죽었는데 회사는 개인 질병이라고 합니다. 억울해서 여기저기 찾아갔지만 듣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의 손이 떨렸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어떤 전문가도 장담하지 못했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이끌었다. 유미 아빠 황상기씨의 승리였다. 회사는 수십억원을 들고 찾아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7년을 오가며 승리를 일궈냈다. 유미의 죽음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또 다른 유미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산재 인정 판결이 확정된 날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유미에게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아빠를 두었습니다.”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

모질고 잔혹했던 지난 1년은 찬호 아빠가 만들어낸 유미 아빠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했던 만큼, 앞으로 사랑할 시간만큼 용감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1년, 유미에게 했듯이 말한다. “당신들은 정말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훼손된 존엄을 세우는 중이다. 찬호 아빠가 “존엄과 안전이오?”라고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려 한다. 그것은 당신들의 지난 1년이었습니다. 위로받지 못한 시간 비통한 자들이 토닥여준 위로에 깊은 울음으로 답한다. “고맙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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