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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고공21

고통을 털어놓고 불안을 마주한, 하늘과 땅의 ‘해고계’

평택·구미의 하늘 노동자들과 서울의 해고노동자·독자들의 만남 ‘<이창근의 해고일기>북토크’ …“해고자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은 하늘” 뿐인 현실과 벼랑 끝 싸움의 절박함에 대하여

제1050호
등록 : 2015-02-13 01:01 수정 : 2015-02-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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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자 이창근의 ‘<해고일기> 북토크’가 2월9일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열렸다. 한겨레 박승화
하늘과 땅의 ‘해고계’가 모였다.

<이창근의 해고일기>(이하 <해고일기>·2월5일 출간)가 다리를 놨다. 쌍용자동차 굴뚝을 지원하는 <굴뚝일보>와 <한겨레21>의 특별 섹션 <주간 고공21>이 공동기획을 추진했다. 하늘에 매달린 ‘고참 해고자들’과 최근 일을 잃은 ‘신참 해고자들’이 한겨레신문사(청암홀)에서 만났다. 2월9일 ‘<해고일기> 북토크’로 굴뚝의 밤은 깊었다.

경기 평택 굴뚝의 이창근(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김정욱(사무국장)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으로 찾아왔다. 평택 및 경북 구미의 하늘 노동자들과 서울의 해고노동자·독자들을 3원으로 연결했다. 평택 굴뚝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들의 얼굴과 음성을 <굴뚝일보> 발행인의 디지털 기기로 전송했다. 영상을 수신한 <굴뚝일보>는 청암홀 단상의 브라운관에 두 사람을 띄웠다.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와는 전화 연결을 통해 목소리를 초대했다. 최근 마인드프리즘에서 계약 해지된 김미성(치유활동가·경영난 이유)과 MBC에서 해고된 권성민(예능 PD·일명 ‘유배툰’을 그렸다는 이유), 맥도날드에서 내쫓긴 이가현(알바노조 조합원·노조활동 이유)이 패널로 자리했다. 사회는 칼럼니스트 박권일이 맡았다.

이창근은 ‘해고계’가 있다고 했다. 해고를 경험한 사람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세계를 뜻했다. 6명의 해고계 신구 멤버들이 공간의 장벽을 넘어 50여 명의 청중 독자와 조우했다.

추운 날이었다. 눈이 쌓였고, 바람이 거셌다. 이창근·김정욱은 지난해 12월13일 70m 굴뚝에 오른 뒤 가장 늦은 시간까지 외부와 통신을 연결했다. 이날 발행된 <굴뚝신문> 2호 100여 부가 북토크 현장으로 배달됐다. 고공농성 3대 매체가 한마음으로 만나 ‘조속한 폐간’과 ‘하늘 노동자 없는 세상’을 꿈꿨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에서 농성중인 김정욱, 이창근을 화상통화로 연결해 진행 됐다. 이창근 제공
고공농성 3대 매체가 한마음으로
 

박권일오늘 서로의 고통과 불안을 털어놓고 그 고통과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결국 해고는 우리 모두의 문제란 사실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패널들의 해고는 우리 모두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추위에 떨며 출연을 기다리는 평택 굴뚝부터 연결하겠다. 영상 신호가 잡히다 끊기길 몇 차례 반복했다. 한 개의 이어폰을 양쪽으로 나눠 낀 이창근·김정욱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창근은 머리에 헤드랜턴을 쓰고 어두운 천막에 조명을 밝혔다. 내 말 들리시나.

이창근 잘 안 들린다. 고함 지르듯 말해달라. (청중 웃음) 브라운관은 패널들 중앙에 배치됐다. 객석을 향해 맞춰진 영상통화 카메라는 이창근·김정욱의 시선이기도 했다. 그들에겐 사회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박권일 굴뚝에서 내 모습이 보이도록 앉겠다.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만큼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자가 굴뚝인들의 눈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소리를 지르다시피 질문했다.

이창근 그래 보인다. (웃음) 이제 잘 들린다.

박권일 <해고일기>를 쓰게 된 동기부터 말해달라.

이창근 2011년부터 여러 매체에 쓴 칼럼을 모았다. 애초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 호소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급하게 썼다. 아버지의 입장, 남편의 입장, 해고자의 입장 등을 의식하고 쓰지 못했다. 지난해 2월 고등법원에서 해고무효소송을 이긴 뒤 8월이면 회사가 해고자들을 받아들일 거라 판단했다. 출간 시기도 그때쯤으로 잡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했고 한 달 뒤 굴뚝에 올랐다. 책을 낼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반대했다. 책이 투쟁에 도움이 될 거란 출판사의 설득에 결국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이 가난했다. 가난한데 엄마가 요리를 잘했다. 밀가루 하나로 수십 가지 요리를 하셨다. 쌍용차 사태를 글로 쓰는 일은 엄마가 밀가루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내가 쓸 수 있는 단어가 많지 않았다. 쌍용차 사태를 이야기할 때 단어 100여 개로 설명했다. 그 단어들을 부여잡고 여기에 쓰고 저기에 붙였다. 그렇게 다급하게 쓴 글들을 윤문하지 않고 묶었다. 고쳐 쓰면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한정된 단어들을 가지고 쓴 글들을 그때 그 상태로 읽어주길 바라며 그냥 뒀다. 노동자들은 몸이 언어다. 우리가 맨몸뚱이로 싸우는 것은 그것만이 허락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행동의 언어를 읽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집단 난독을 생각해봐야 한다.

박권일 책을 읽다 가장 뭉클했던 부분이 12월13일 굴뚝으로 올라간 뒤 굴뚝에서 26번째 희생자의 소식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보도자료를 썼다는 문장을 읽으며 울컥했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이창근 너무 놀랐다. 올라왔을 땐 이미 사망한 뒤였다. 창원지회장이 우리가 놀랄까봐 이야기를 안 한 거다. 내가 나이도 어리면서 지회장에게 막 따졌다. 굴뚝에서 그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 살려고 그랬다. 그 죽음을 더 쥐어짜듯이 이야기하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박권일 기자 시절이던 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가 사망(‘정리해고 반대’ 고공농성 129일 만에 목숨을 끊음)했을 때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오른 적이 있다. 크레인 위에 서자마자 두려움으로 주저앉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다. 두 분도 어마어마한 공포와 싸우고 있을 것 같다.

김정욱 굴뚝에서 59일째다. 처음 올라왔을 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공장에 들어오면서 두려움이 시작됐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면서는 다시 내려갈 수 있을까 무서웠다. 무엇보다 추위와 맞서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변화의 메시지를 확인하면서부턴 두려운 마음도 조금씩 바뀌었다. 나를 가장 울컥하게 한 것은 공장 안 동료들이다. 농성 첫날 공장 안의 동생이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눈물이 났다. 내가 힘들 때마다 공장 동료들이 힘을 줬다. 그 힘에 의지해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김미성 사회자가 앉았던 자리로 나와 굴뚝인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지난해 창근씨가 책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다. 나는 “이효리씨도 있고 주변에 유명인이 많은데 왜 나한테 써달라고 하냐”고 물었다. 이창근씨는 ‘다른 유명인들은 추천사만 써주면 끝이겠지만 김미성은 지속적으로 끝까지 책을 팔아주고 홍보해줄 것’이란 이유를 댔다. 송경동 시인이 책을 냈을 때 내가 100권을 샀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당신도 한 권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라’며 책 릴레이를 퍼뜨렸다. 그런데 이젠 내가 해고자가 됐다. 창근씨 책 홍보를 적극적으로 못해 미안하다.

마인드프리즘에서 계약 해지된 치유활동가 김미성씨. 한겨레 박승화
‘입장의 동일화’에 대해
   

이창근 (멍한 표정으로 김미성을 쳐다보며) 미안하다. 트위터 하느라 못 들었다. (청중 폭소) 이창근은 다른 패널들이 이야기할 때 자주 고개를 숙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하다 ‘발각’돼 수차례 핀잔을 들었다. 그와 김정욱은 굴뚝 벽에 고정한 휴대전화를 통해 북토크를 ‘시청’했다. 이창근은 굴뚝에서 ‘북토크 실황’을 촬영해 글과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창근 @Nomadchang

MBC 권성민 피디. 꼭 복직하세요. 파이야~

이창근 @Nomadchang

김미성 치유활동가. 해고계에 대한 이해 혹은 입장의 동일함.

마인드프리즘 노조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이창근 @Nomadchang

굴뚝의 밤. 맥도날드 투쟁을 하고 있는 알바노조 이가현님, 꼭 승리할 겁니다. 싸움의 고리를 잘 잡고 이깁시다. 알바공화국 이젠 바꿔봅시다! 승리 꽥꽥! 단결 꽥꽥!

이창근 @Nomadchang

구미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Fpag3JH1mmfUqAe) 전화 연결. 오늘 2월9일 현재 259일째입니다. 민주노조를 꼭 지켜주시길. 함께 응원과 격려, 그리고 뜨거운 연대를! 물론 팔로잉도요.

이창근 @Nomadchang

굴뚝의 밤 ‘토크’ 2시간40분이 지나고 있다. 재밌어 시간 가는지도 모르겠다. 무등 탄 주강이처럼 재미있고 유익한데. 내 표정은 점점 이렇게 변하고 있다. 재미지다~ 재미지다(0.0;;;;)

김미성 해고 이전 치유활동가로 일할 때와 해고 이후가 180도 다르다. 해고 전엔 해고노동자들에게 한 번만 만나달라며 ‘구걸형 치유’를 했다. 해고 뒤엔 굴뚝의 두 분이 오히려 연락을 많이 한다. 정욱씨는 툭툭 문자를 보내 “괜찮냐”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내가 1인시위를 할 때는 아무런 설명 없이 노래 하나를 녹음해 보내기도 했다. 창근씨는 “노조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이런저런 일이 생길 것”이라며 내 전담 치유자가 된 듯 말한다. 내가 해고되니까 해고자들이 예전보다 나를 편하게 대한다. ‘입장의 동일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창근 쌍용차 사태를 안타까워하는 많은 분들이 ‘당신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게 잘 안 된다. 생태계처럼 ‘해고계’가 있다. 곤충이 돼보지 않으면 생태계 안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모른다. 일단 해고계에 들어오면 밖에선 잘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이해된다. 해고노동자들이 왜 갑자가 버럭 화를 내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각자에겐 각자의 계가 있다. 그 계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김미성씨의 해고계 입성을 축하한다. (청중 웃음)

권성민 예능 PD답게 물었다. 굴뚝이 어떻게 생겼나. 생활할 만한가.

이창근 높이가 70m고 중간 턱까지 35m다. 굴뚝 중앙의 원지름이 6m 정도 된다. 그 옆으로 1m가량의 통로가 있다. 우린 그곳에 앉아 있다. 시청각이 중요하지 않겠나. 이창근이 스마트폰으로 천막 안팎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보시는 것처럼 천막 위를 터서 바람이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했다. 밧줄과 비닐로 만든 중세 유럽풍 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내친김에 바깥도 보여드리겠다. 천막을 나가자마자 거센 바람 소리가 육박했다. 이창근이 굴뚝 아래를 비췄다. 높이에 놀란 청중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굴뚝 저편의 불빛들 보이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 같지 않나.

권성민 난방은 하고 있나.

김정욱 못한다. 오전에 따뜻한 물이 올라왔다. 저녁에 북토크도 있고 해서 외모를 신경 쓰다보니까 (웃음) 샤워를 하려고 물을 뒤집어썼다. 머리에 비누칠을 하자마자 얼어버렸다. 이곳은 날씨 변화가 심하다. 몽둥이로 두들겨맞는 것처럼 근육이 아프다. 고무주머니에 담아 올려주는 온수를 끌어안고 자면 좀 낫다. 권 PD님 나중에 고공농성 할 때 참고하시라. (청중 웃음)

권성민 우리 회사엔 굴뚝이 아니라 송전탑이 있다. 굴뚝 노하우가 도움은 별로 안 될 것 같다.

이가현 알바노조 조합원. 한겨레 박승화
우리에겐 하늘밖에 없었다

이가현 사실 두 분은 아버지뻘이다. (웃음) 이창근이 두 손을 휘저으며 강한 거부 의사를 표했다. 2008년에 나의 아빠도 명예퇴직을 당했다. 대학생인 나는 등록금이 없어 알바를 하다 잘렸다. 두 분의 해고 과정을 보며 아빠 이야기 같다고 느꼈다. 미래의 내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이창근 대한민국이 알바공화국 아닌가. 정말 중요한 싸움을 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의 노동 문제로 싸우곤 있지만 패스트푸드는 드시지 마시고 밥을 드시면서 싸우시라. 많이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냈으면 좋겠다. 애정한다.

박권일 또 하나의 굴뚝이 스타케미칼에 있다. 구미 굴뚝에서 홀로 투쟁하시는 차광호씨와 전화 통화를 해보겠다. 사회자가 휴대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뒤 발신 버튼을 눌렀다. 신호 저편에서 “차광호입니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신가. (청중 박수로 환영)

차광호 안녕하다고 말하긴 좀 어렵다. 바람이 많다. 동장군이 쉽게 온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국에서 보내주시는 응원으로 버티고 있다. 차광호는 ‘2007년 5월 옛 한국합섬 파산→2011년 4월 스타케미칼의 공장 인수→2013년 1월 가동 중단→같은 해 2월 권고사직 거부자 해고→사 쪽의 ‘먹튀 의혹’ 및 굴뚝농성 돌입(2013년 5월27일)→두 차례의 교섭 뒤 사 쪽의 일방적 대화 중단’ 과정을 설명했다.

박권일 고공농성계에서 ‘굴뚝 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몸을 만드나.

차광호 시간표를 짜서 계획대로 운동한다. 굴뚝 내경 주위로 1m 정도의 폭이 있다. 거기가 내 운동장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40분 정도 제자리뛰기를 한다. 팔굽혀펴기까지 한 뒤 아침을 먹는다. 점심엔 108배를 한다. 목운동과 허리강화 운동도 한다. 굴뚝 둘레가 26보쯤 된다. 저녁 먹기 전까지 26보의 거리를 고공농성 날짜만큼 왕복한다. ‘줄넘기 없는 줄넘기’를 한 뒤엔 ‘앉았다 일어서기’를 한다. 해고자 11명이 우리 현실을 알려낼 수 있는 공간은 하늘밖에 없었다. 좋은 몸을 만들 목적은 아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없다. 잘 견뎌내야 우리의 목소리도 전할 수 있다.

박권일 외롭진 않나.

차광호 아침에 혼자 눈뜨는 게 두렵다. 밥 먹을 상대가 없고, 말할 누군가가 없고, 같이 있을 사람이 없어, 무섭다.

박권일 오늘로 농성 259일째다. 오늘까지는 유성기업의 이정훈 영동지회장(충북 옥천 광고탑 농성)과 같은 기록이다. 내일부턴 역대 단독 3위(1위와 2위는 각각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309일과 최병승·천의봉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296일)의 장기 고공농성자가 된다. 소회가 어떤가.

MBC에서 해고된 권성민 예능 PD. 한겨레 박승화
해고가 같은 해고가 아니더라

차광호 며칠 했다는 게 중요하진 않다. 오늘 시작했다는 마음으로 지내려고 한다. 처음 올라왔을 때보다 생활물품도 꽤 갖췄다. 공장 재가동과 민주노조 사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날짜는 문제되지 않는다.

박권일 이창근씨가 본인 책을 홍보해달라고 난리다. <해고일기> 읽은 소감을 말해달라.

차광호 나도 쌍용차 투쟁에 여러 번 결합해서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힘들었구나 생각했다.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이창근·김정욱 두 분뿐 아니라 쌍용차 사태의 전반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 두 분 건강이 중요하니까 운동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

이창근 광호 형, 우리도 최대한 같이할게요. 제발 수염 좀 깎아. 두 굴뚝 사이에 “사랑합니다”가 오간 뒤 통화는 종료됐다. (청중 박수)

박권일 권성민 PD는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권성민 <해고일기>를 읽으면서도 같은 ‘해고’란 단어를 쓰기가 무색했다. 내가 그린 웹툰은 예능국의 생활을 담고 있다. 회사가 불편해할 만한 표현은 수원총국을 ‘유배지’라고 표현한 것 정도다. 해고 사유가 될 수 없지만 지금 회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악화돼 있어 별 느낌 없이 받아들였다. MBC는 쌍용차처럼 회계 조작을 하는 ‘성의’도 없이 나를 해고시켰다. (웃음) 나는 대량 해고 사태의 피해자가 아니고, 노조도 힘써주고 있다. 앞서 회사 해고당한 회사 선배들과 비교해봐도 타당성이 없다. 소송으로 가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떨결에 잘린 뒤 과분한 관심도 받고 있다. 해고계에서도 특권층인 셈이다. 회사가 나를 해고한 것은 나에 대한 괘씸죄 적용과 나머지 직원들에 대한 공포정치 차원이라고 본다. 지금 내가 가장 잘 싸우는 것은 잘 지내는 일이다. 뭘 하면 재미있을까 궁리하고 있다. 그게 회사에서 기대하는 ‘해고 효과’에 최대한 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가현 지난해 5월 맥도날드 노동실태 고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매장에서 기자회견 사진을 보여주며 “너 맞냐”고 확인하더라. 이후에도 일을 잘하고 있었다. ‘이달의 크루’에도 뽑혔다. 점장님이 불렀을 때도 해고할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점장님은 문을 닫은 뒤 노조활동을 문제 삼으며 ‘사직서에 사인해야 방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해고 이후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김미성 해고가 같은 해고가 아니더라. 내가 치유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안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해고자가 된 뒤엔 절실해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미안했다. 나보다 절실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고자들이 왜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됐다. 사람을 치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치유할 사람을 만들지 않는 사회도 중요하다. 나의 해고를 외면한 채 다른 해고노동자를 치유하겠다고 하면 나는 괴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치유활동을 계속하려면 나는 싸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권성민 아버지가 두 차례에 걸쳐 해고를 당했다. 나의 유년기는 매우 가난했다. MBC에 입사했을 때 집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해고 뒤엔 회사 선배들이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미안했다. 예능국 PD는 몇 날 며칠을 울어도 결국엔 웃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절망 속에 있어도 어떻게 하면 웃길까를 고민하다 낭패감을 느낄 때가 많다. MBC 구성원 모두의 고통인데 나 혼자 희생하는 것처럼 비쳐져 송구스럽다. 나는 2012년 파업 도중 입사한 까닭에 선배들이 기억하는 ‘좋은 MBC’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한 번쯤은 그 좋은 MBC에서 그 좋은 선배들과 눈치 보지 않고 일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

이가현 알바는 평등하다. 어딜 가도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이고, 어딜 가도 근로계약서를 안 쓴다. 해고 이틀 뒤부터 점장과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문자를 보내면 씹고, 전화를 해도 씹고, SNS를 해도 씹었다. 내 친구가 건 전화는 받다가도 내가 전화를 하면 안 받았다. 전화를 바꿔서 못 받았다고 하다가도 다음번엔 기존 번호로 전화를 걸어왔다. 대화할 의지가 없구나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액땜했다 치고 다른 알바 하면서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맥도날드는 글로벌 기업인데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내가 싸움을 그만두면 현실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의 ‘<해고일기> 북토크’가 2월9일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열렸다. 한겨레 박승화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박권일 (화면 안의 굴뚝인들을 보며) 저분들이 심심해하는 것 같다. 청중 질문을 받겠다.

청중 고등법원에서 이긴 해고무효소송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했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나.

이창근 대법원에서 졌지만 이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대법원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고등법원 심리도 다시 시작됐다. ‘이명박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였던 이광범 변호사(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 역임)가 우리 변호인단에 합류했다. 그가 왜 돈도 안 받고 변론을 맡았겠나. 반드시 이긴다고 본다. 느낌이 온다. 굴뚝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복직하면 서가 중앙을 사람이 채우는 ‘분홍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해고일기>가 많이 팔려야 한다. (청중 웃음)

김정욱 이렇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건 굴뚝에 오른 이후 처음이다. 오늘 같은 시간들이 소중하다. 우리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내 이야기가 당신과 그들의 이야기다. 우리 모습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내 이야기가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자주 웃음이 터졌고, 때로 탄식이 흘렀다. 2시간으로 계획된 북토크는 3시간30분으로 늘어났다. 이날 법원은 두 사람이 열흘 안에 내려오지 않으면 회사에 매일 100만원씩 지급하라(쌍용차 사 쪽이 제기한 ‘퇴거 단행 가처분 소송’)고 결정했다. 돌아가는 패널과 청중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사람은 화면 속 이창근·김정욱이었다. 평택의 둥근 굴뚝 안에 갇힌 두 사람은 마포의 사각 브라운관 안으로 떠나보낸 마음을 쉬이 거둬가지 못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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