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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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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탄압’ 업체와 18년간 수의계약"

숭실대 청소노동자 ‘용역업체 교체’를 통한 노동조건 개선 촉구하며 천막농성…
총동문회 이사 출신이 회장으로 있는 용역업체, 지속적인 감시·연차수당 체불 등 문제 일으켜
등록 2015-02-13 05:18 수정 2020-05-02 19:27

학생들이 떠난 겨울의 교정은 삭막하다. 몇 안 되는 교직원들마저 퇴근하고 나면 사람의 온기가 없다. 지난 2월2일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은 서울 동작구 숭실대 본관 앞 천막엔 몸을 옹송그린 환갑의 여성 노동자들이 남아 대학본부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번을 정해 집에도 가지 않고 천막을 지킨 것이 벌써 17일째였다.

용역업체 교체를 촉구하며 숭실대 교내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0일째를 맞은 2월5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분회 조합원들이 천막에 앉아 오후 피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용역업체 교체를 촉구하며 숭실대 교내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0일째를 맞은 2월5일,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숭실대분회 조합원들이 천막에 앉아 오후 피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18년이에요. 대학이라는 곳이, 인권을 탄압하는 나쁜 업체와 18년 동안 수의계약을 맺어온 걸 이해할 수 없어요.”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산하 숭실대분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장보아(60)씨가 말했다. 숭실대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각박하기로 이름난 대학 청소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최저 수준이다. 세전 112만8600원을 받는데 국립대인 서울과학기술대(157만원)에 비춰도, 이화여대·연세대(143만원) 등 사립대에 견줘도 턱없이 작다. 그러나 지난 1월16일 44명의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에 나선 뒤 삭풍을 견디며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임금 인상이 아니다. ‘용역업체 교체’를 통한 노동조건 개선이다.

노동부조차 ‘불량사업장’으로 꼽은 업체

농성 중인 조합원들은 용역업체인 (주)미환개발이 법도 무시하며 노동인권을 탄압해왔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집 지키는 셰퍼드는 아니잖아요.” 부분회장을 맡고 있는 홍순이(58)씨가 말했다. “어디로 움직이질 못하게 해요.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서 잠깐 다른 층에 가기라도 하면 관리자가 나타나서 ‘자기 층으로 돌아가라’고 하거든요.” “어떤 여자 조합원은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어갔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니까 남자 관리자가 지키고 서 있더래요. ‘내가 몇 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 나오냐’면서요. 어떻게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따라와서 통제를 하나요.”

천막을 지키고 앉은 조합원들이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내듯 앞다투어 말을 꺼냈다. “비품을 주지 않아서 왁스질에 필요한 걸레나 장갑, 걸레 짜는 짤순이도 개인 돈으로 샀어요.” “일하다가 다쳐서 아프면 산재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어요. ‘집에서 영원히 쉬라’고 하거든요.” 그나마 2013년 8월 민주노조가 결성되면서 인권 탄압에 가까운 처우는 일부 개선됐지만 이후 사 쪽에 친화적인 ‘어용노조’가 설립되면서 탄압이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차별 행위로 옮겨갔다는 게 숭실대분회의 설명이다. 장보아 사무국장은 “어용 노조는 임금 인상 대신 명절수당·근속수당을 받는 것으로 교섭이 타결되면서 수당을 받고 있지만 민주노조에는 사 쪽이 ‘부분 타결은 안 된다’며 임금 인상도, 수당 지급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는 법이 정한 권리도 보장하지 않았다. 숭실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노동절수당과 연차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을 받을 수 있는 줄도 몰랐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는 미환개발이 노동절수당과 연차수당 2400여만원을 체불했다며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노동부에 진정을 낸 민주노조 조합원 44명의 3년치 임금이어서, 전체 직원이 십수 년 동안 받지 못한 체불임금을 모두 합하면 수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경비 업무의 특성상 안전사고가 빈발할 수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의무화하는 노동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한 적도 없다. 그런 탓에 2009년 노동부가 발표한 200여 곳의 ‘산재예방관리 불량사업장’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숭실대가 노동부조차 ‘불량사업장’으로 꼽은 업체와 18년 동안 수의계약을 맺어온 까닭은 뭘까.

‘교내 집회’ 노동자들 형사고발한 숭실대

미환개발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사풍(80)씨는 숭실대 사학과 출신으로, 2013년 숭실대 총동문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성공회 신부인 김씨는 1996년 청소·경비 용역업체인 미환개발을 세우면서 숭실대의 관리를 도맡아왔다. 그는 꾸준히 숭실대 쪽에 학교발전기금·장학금 등의 명목으로 수억원대 기부금을 내왔다. 김씨 명의의 강의실이 있을 정도다. 숭실대 쪽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고액 기금출연자 예우에 맞도록 현재 종합강의동 웨스트민스터홀 완공을 앞두고 진행하는 ‘네이밍 캠페인’을 통해 김사풍 동문 명의 강의실을 명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본부에서 특별히 ‘예우’할 수밖에 없는 상대인 셈이다. 김씨가 경영에서 물러난 2013년부터는 딸인 김유란(44)씨가 사장직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립대학이라고 해도 이유 없는 수의계약은 회계감사의 대상이다. 교육부령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35조를 보면, 사립학교는 경쟁에 부칠 여유가 없거나 경쟁에 부쳐서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정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해당 물품의 생산자가 1명뿐인 경우 등을 제외하면 일반 경쟁에 의해 계약을 체결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숭실대 대학평의회는 지난해 10월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도급계약을 진행할 것을 대학본부 쪽에 요구했다. 국회 을지로위원회와 노조도 수의계약 문제를 지적하며 숭실대 쪽에 용역계약서·재무제표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업체의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아직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숭실대가 앞장서서 용역업체를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회에 따르면 미환개발은 2012년 ‘3년 뒤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3년간의 수의계약을 맺어, 오는 2월28일 계약이 만료된다. 숭실대 쪽은 계약 만료일이 가까워오는데도 공개입찰을 실시하는 대신 미환개발과 재계약하려는 모양새다. 조합원들이 무기한 천막농성이라는 배수진을 친 이유다.

숭실대 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꾸린 재학생·졸업생들의 모임인 ‘파랑새 서포터즈’ 회원들은 지난해 교내 구성원 1420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 쪽에 용역업체 교체를 촉구했다. 학교 쪽은 학생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대신 학생들이 학내에 붙인 관련 대자보를 떼어내는 것으로 일축했다. 이에 반발한 숭실대분회 조합원들과 학생들이 교내 피케팅 등 선전전을 이어가자 형사고발로 대응했다.

숭실대는 업무 방해, 퇴거 불응, 교내 집회 미신고 등을 이유로 지난 1월 숭실대분회 간부 10명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서울일반노조는 성명을 내어 “지난 1년8개월간 수십 차례가 넘는 학내 집회를 진행했다. 천막농성장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합의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바로 뒷날, 분회 뒤통수를 치며 형사고발까지 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분회 핵심 간부에 대한 형사고발은 엄연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다”라고 비판했다.

언제까지 비판 여론을 감당할 건가

숭실대 홍보팀 관계자는 이같은 비판에 대해 “오랜 노사 갈등으로 시간을 끌어왔고 (숭실대분회가) 학기 중에도 수업을 방해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환개발과의 재계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노조 160여 명은 임단협을 맺었는데 민주노조는 교섭에 임하지 않고 선전전 등을 이어가고 있어 어쩔 수 없다”며 언급을 꺼렸다. 18년 수의계약의 기록이 19년, 20년 다시 쓰게 될 때까지 숭실대가 비판 여론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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