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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만 어디가 ‘탈핵의 미래’를 보여줄까요

대만 탈핵운동 이끌고 있는 녹색공민행동연맹(GCAA) 훙선한 부비서장
인터뷰… “대만·한국 모두 더 많은 역량 투입해 핵발전소 논쟁 벌여야”
등록 2015-02-13 13:50 수정 2020-05-03 04:27
한국을 찾은 훙선한 녹색공민행동연맹(GCAA) 부비서장의 모습(위)과 대만 신베이시 궁랴오구에 있는 룽먼 4호기 핵발전소의 모습.  정용일 기자,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국을 찾은 훙선한 녹색공민행동연맹(GCAA) 부비서장의 모습(위)과 대만 신베이시 궁랴오구에 있는 룽먼 4호기 핵발전소의 모습. 정용일 기자,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국과 대만은 닮았다. 두 나라 모두 1980년대 말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겪은 성과와 좌절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두 나라는 ‘닮은꼴’을 하나 더 추가했다. 핵발전소 운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논쟁’이다. 주변국에서 모자란 전기를 끌어올 수도 없는 ‘고립된 섬’인 두 나라에는 오래전 군사정권 시대부터 들어선 핵발전소가 있다. 민주화 이후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도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대만 사회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논쟁은 우리나라에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 공사를 거의 마친 신규 핵발전소의 운영을 반대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만의 국민당 정부는 건설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그 뒤 치른 지방선거에서는 탈핵 정책을 앞세운 민주진보당(대만 제1야당·이하 민진당)이 압승을 거둬 앞으로 대만 에너지 정책의 격변기를 예고하고 있다.

대만 에너지 정책의 격변기

은 이러한 대만 탈핵운동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환경단체 ‘녹색공민행동연맹’(GCAA·Green Citizen’s Actions Alliance)의 훙선한 부비서장을 지난 2월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탈핵학교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인 연대, 에너지정의행동 등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훙 부비서장은 대만에서 7년 넘게 핵발전소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활동가다.

“마잉주 전 국민당 총통은 지난해 5월 이후 룽먼 4호기 핵발전소의 공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탈핵을 요구하는 이들은 ‘폐로’를 원했지만, 국민당은 ‘잠정 중단’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핵발전소 공사를 재개하기는 힘들다. (공사를 다시 한다면) 국민당이 정치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4호기 핵발전소의 공사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만 사회는 탈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13년 3월 탈핵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모일 정도였다. 지난해 4월에는 민진당 전 대표이자 유명한 반핵활동가인 린이슝(74)이 사고가 끊이지 않는 4호기 핵발전소를 당장 없앨 것을 주장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였다. 단식농성은 대규모 탈핵 집회로 이어졌다. 국민당 정부가 “잠정 중단”을 선언한 배경이다. 4호기 핵발전소 이슈가 훑고 간 뒤 치른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국민당은 참패했다. 전국 6개 직할시와 현·시 등 22개 단체장을 뽑는 선거에서 국민당은 단 6석을 건졌다. 그러나 민진당은 13곳(기존 6곳)에서 이겼고, 무소속 후보도 3개 광역단체장에 당선됐다. 2016년 1월에는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 3월에는 총통 선거까지 남아 있어 정치적 변수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제1010호 세계 ‘공정률 98%의 핵발전소를 중단시키다’ 참조).

“민진당에 너무 의존했던 운동 방식”

훙 부비서장은 “현재 대만에서는 4호기 핵발전소의 중단이 결정된 뒤, (1978~85년 건설된) 1~3호기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리·월성 1호기 등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국민당 정부는 4호기는 건설하지 못하더라도 1~3호기의 수명 연장은 꼭 이뤄내려 한다. 그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가동 중단이 결정된다면 대만은 2025년부터 탈핵 국가가 될 수 있다.” 대만 내 환경은 탈핵 진영에 꽤 우호적이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지난 1월 국민당은 새 주석(당대표)으로 주리룬 신베이 시장을 뽑았다. 그는 대부분 찬핵을 주장하는 국민당 안에서 1·2호기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가 시장으로 있던 타이베이 북쪽 신베이시 근처에는 1·2·4호기 핵발전소가 있다. 훙 부비서장은 주리룬 주석이 수명 연장에 반대하게 된 것도 탈핵운동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주리룬 주석은 대체에너지 도입도 지지한다. 그동안 대만 사회 안에서 탈핵운동이 주류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도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찬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탈핵운동 역사를 자세히 되짚어보면 ‘좌절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핵발전소 폐쇄를 정책으로 내세운 민진당을 중심으로 탈핵운동이 이어져왔고, 2000년 정권 교체를 이뤘음에도 핵발전 정책 폐기를 실현하지 못했다. 훙 부비서장은 그 원인으로 “민진당에 너무 의존했던 운동 방식”을 꼽았다. “1990년대 탈핵운동이 한창일 때 많은 시민이 민진당에 기댔고, 그 결과 많은 교훈을 얻었다. 시민운동에 대한 반성과 학습효과라고 생각한다. 대만이나 한국 모두 찬핵을 주장할 때, 국내총생산(GDP)이나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핵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민진당이 정권을 잡아도 성장을 목표로 삼는다면 언제든지 찬핵 정책을 쓸 수 있다. 앞으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큰 민진당이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도 시민사회 영역에서 계속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부분이다.”

관심 높아지는 해외 에너지 정책 성공 사례

지방선거 이후 대만에서는 해외의 에너지 정책 성공 사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탈핵운동을 보면, 신규 핵발전소를 반대하거나 노후 핵발전소 연장을 반대하는 작업이 가장 힘에 부친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부근 주민들은 경제적 혜택에 의존하는 등 설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가 아주 중요하게 각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만 사회에서는 대체에너지를 적용한 정책의 성공 사례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핵발전소가 모두 폐로된 뒤를 생각해야 한다. 예전에는 중앙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고 지방정부가 참여했지만, 이제는 지방정부가 여건에 맞게 어떤 에너지 정책에 역량을 투입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지난해 선거에서 이긴 지방자치단체의 수장들도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만에서는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자급률을 높이는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대만 안에서는 유력한 총통 후보로 꼽히는 무소속의 타이베이 시장인 커원저를 ‘제2의 박원순’으로 부르며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과 비교하고 있다고 한다.

훙 부비서장은 “핵발전소를 지지하는 이들은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만에서는 한동안 서울의 사례가 얼마나 성공할지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에너지 문제에서 한국은 대만의 미래가 될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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