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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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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원인은 ‘개인’ 아니라 ‘시스템’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폭행 사건 뒤엔 열악한 보육환경 문제…

교사 처우·평가인증제도 개선 등 보육 개혁해야
등록 2015-01-20 16:58 수정 2020-05-03 04:27

1월8일 낮 12시50분께 인천 송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4살짜리 아이를 폭행했다. 점심시간에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에서였다. 가냘픈 아이 얼굴을 향해 보육교사의 무지막지한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아이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머리부터 방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 모습이 어린이집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선명하게 담겼다. 더 충격적인 것은 폭행 다음의 장면이다. 맞은 아이는 놀라서 울거나 멍해 있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무릎 꿇고 앉아 바닥에 떨어진 김치 조각을 주워 담는다. 다른 아이들은 겁에 질린 듯 두 손을 모으고 폭행 장면을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쳐다봤다.

분노한 엄마들의 릴레이 시위

공개된 CCTV를 본 엄마들이 분노와 불안에 휩싸였다. 해당 어린이집이 있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엄마들은 1월15일부터 릴레이 시위에 들어갔다. 인터넷카페 ‘송도국제도시주민연합회’ 회원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 인근 아파트 단지 앞에서 “우리를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라는 손팻말을 들고 아동학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265건으로 2013년(232건)에 비해 14.2%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08년(61건)과 비교하면 4.3배 늘었다. 2008년 이후 민간어린이집이 1만여 개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2012년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가정에서 키우던 아이들까지 어린이집으로 쏟아져나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주부 김혜영(28)씨는 3월부터 5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던 계획을 접었다. “유치원(추첨)에서 다 떨어졌다. 내년에 입학했을 때 또래랑 못 어울릴까봐 올해는 어린이집에 넣으려고 했다. (보육교사의 아동 폭행) 동영상을 보니 할 말을 잃었다. 동물한테도 그렇게 못할 텐데….” 직장맘 하승희(38)씨는 “불안하지만”이라고 한숨지었다. 출산휴가가 끝난 뒤 아이(3)는 가정어린이집에 다녔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국공립어린이집에 지원했지만 아직도 대기번호는 200번대다. 폭행 동영상을 본 날, 하씨는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선생님이 때려?” “응.”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울었어?” 하고 캐물었다. “아니.” 아이는 천진하게 웃었다. “일부 몰지각한 보육교사가 그렇겠지, 설마 우리 아이 선생님이 그럴까, 안 그렇겠지 이렇게 믿고 싶고, 믿을 수밖에 없다.” 직장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분주해졌다. 우선 해당 폭행 사건을 조사 중인 인천 연수경찰서는 1월15일 보육교사 양아무개(33)씨를 상습 폭행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아동보호법에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적 학대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돼 있다. 특히 보육교사는 지난해 9월 말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돼 최대 징역 7년6개월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복지부는 해당 어린이집에 운영 정지 처분을 내리고, 보육교사와 원장의 자격을 즉시 정지했다. 경찰이 추가로 법률 위반 사항을 밝혀내면 아동복지법 및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 폐쇄 조치와 함께 원장을 고발할 계획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 행위시 1년 이내 어린이집 운영 정지나 폐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제48조)에는 벌금형 이상을 받은 아동학대 가해자는 자격 취소 및 10년간 관련 시설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복지부는 또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으로△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평가인증제 등 부모 참여 강화 △보육교사 자격 요건 강화 등을 발표했다.

학력·경력을 반영하지 않는 임금체계

하지만 시설 하나를 폐쇄하거나 학대 교사를 처벌한다고 해서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근절되진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잘 들여다봐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수한 인력을 보육교사로 확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최근 보육교사 자격증은 사이버대학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주로 딴다. 학점만 이수하면 시험도 없이 자격증이 나온다. 지난해 전체 2급 신규 자격증 취득자의 58.2%(4만1183명)가 이렇게 보육교사가 됐다. 문제의 송도 어린이집 폭력 교사도 학점은행제로 2급 자격증을 땄다가 현장 경험을 더해 1급이 됐다.

반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보육교사보다 유치원교사를 선호한다. 보육교사의 월평균임금(119만원)이 유치원교사(148만원)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학력이나 경력을 반영하지 않는 보육교사의 독특한 임금체계 탓이다. 4년제 대학 졸업자든, 학점은행 방식 이수자든 보육교사는 무조건 1호봉부터 시작한다. 유치원교사의 경우 학력에 따라 6호봉에서 9호봉까지 다르게 출발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보육교사와 유치원교사의 임금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민간어린이집에서 일하는 10년차 보육교사가 말한다. “근로계약서에 호봉은 아예 기재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1년 뒤 급여를 올릴 수 있으면 올리고 아니면 못 올린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급여는 거기서 거기다.” 서울 민간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다른 보육교사는 “다른 지역에서 보육교사가 오면 무조건 1호봉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했다. 2013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시 보육교사 400명에게 ‘경력과 호봉이 일치하느냐’고 묻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호봉이 없다’는 응답이 37%로 가장 많았다. ‘일치한다’는 35.3%, ‘일치하지 않는다’는 27.8%였다.

보육교사는 근무할 때도 유치원교사에 견줘 전문성을 갖출 기회가 부족하다. 보육교사교육원 1년 과정을 이수한 3급 교사가 원장이 되는 데까지 6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치원교사의 경우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을 이수한 정교사 2급이 원장이 되려면 9년이 걸린다. 전문성 향상을 위한 보수교육(직무교육)도 보육교사는 40~80시간인 반면 유치원교사는 90~135시간이다. 이마저도 형식적이다.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온라인으로 보수교육을 하는데 그냥 틀어놓고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교사가 어린이집 교실을 떠나는 걸 원장과 학부모가 싫어해서다.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원장이 (복지부 평가인증에 반영된다고) 알아서 교사 교육을 신청하는데, 일이 많아서 교육을 못 쫓아간다. 대체교사도 쓰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다”고 했다.

평가인증에 매달리느라 보육은 뒷전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서류) 내용은 다 거짓말”이라고 고백했다. “원장이 모임에 다녀오면 어디서 무엇을 했더니 좋다더라며 교사에게 온갖 서류를 다 작성시킨다. 그것을 하면 점수를 잘 받는다고. 그냥 시키니까 꾸며낸다.” 그렇게 인증에 매달리다보면 보육은 뒷전으로 밀린다. 일산의 국공립어린이집 교사는 “평가인증은 기한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을 때도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송도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에서 95.36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보육에 소홀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교사 양성 체제, 급여 수준, 과잉노동 등을 개혁하지 않으면 참담한 사건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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