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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무모함과 절박함으로!

아시아 5개 나라와 국내 청년 혁신가 15명이 모인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 사회혁신가의 명암에 대한 경험 주고받아
등록 2014-07-09 15:01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 주최로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청년 아시아의 미래를 열다‘ 행사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 주최로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청년 아시아의 미래를 열다‘ 행사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회혁신가에게는 열정과 영감, 꿈이 있어야 한다. 눈물과 좌절,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여정이 그렇듯, 가장 어두울 때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른 타이의 사회혁신 비영리기관 ‘체인지퓨전’의 대표 수닛 슈레스타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하고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주관한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 첫날 행사가 열린 7월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시청 다목적홀 8층에서는 수닛 슈레스타와 빠띠팟 수삼파오 타이 ‘오픈드림’ 창립자,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 가토 데쓰오 일본 ‘월드인아시아’ 상임이사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사회적 기업의 성장 조건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파트너십’은 사회적 결혼과 같아

이날 객석에는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진 서울시민, 비영리단체 활동가, 학생, 사회적 기업가 등 50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청중은 사회혁신가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무대를 향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네팔 고산족은 국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고용하려면 복잡한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다. 영어로는 충분치 않아 현지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네팔에서 ‘미티니’라는 카페를 여는 등 아시아 이주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지혜 대표는 사업을 꾸리며 겪었던 현실적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여행이 아닌 거주하는 일이다. 진지하게 이웃을 만나야 하고, 부동산을 알아봐야 한다. 가격 흥정도 해야 한다. 지역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 내 회사의 소셜 미션을 외국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지역의 노동문화를 이해해야 하는데, 한국 사람의 기준에서 ‘빨리빨리’로 통하는 결과에 대한 강요가 불가능하다.”

그저 장밋빛만은 아닌 도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시아에서 모인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하나씩 예전 경험을 털어놨다. 빠띠팟 수삼파오는 “사업 초기에 중간관리자 5명을 고용했을 때 매해 10만달러씩 손실을 봤다. ‘진정한 파트너십’은 사회적 결혼과도 같다. 돈이 손실되더라도 선택의 여지 없이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순이익이 300달러 정도 났기 때문에 계속 사업을 진행했다. 사회혁신가가 된다는 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가토 데쓰오는 “나라마다 사회혁신가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 파트너를 구해 투자를 받으려면 그 사람을 믿는 수밖에 없다. 신뢰를 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년, 아시아의 미래를 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타이·홍콩, 그리고 국내 청년 사회혁신가 15명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첫날 포럼의 기조연설은 홍콩 지역에서 오랫동안 청소년 창의교육 활동을 벌여온 변호사 출신의 홍콩현대문화원(HKICC) 설립자 에이다 웡이 맡았다. 그는 아시아의 청년 혁신가들이 신뢰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협업을 벌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변화를 불러오는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가 될 수 있다”며 창의적 교육을 위해 자신이 홍콩에서 벌여온 홍콩창의학교 설립 사업과 코워킹 스페이스(굿랩) 등의 경험을 소개했다. “여러 청년들이 모여 사회적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인 굿랩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침묵 연극’과 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해치백 택시’ 등을 만들었다. 현장의 사정을 잘 아는 지역 사람들을 신뢰하고 이들에게 기회를 주면, 시민사회가 충분히 대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보여주기식 아닌 진정성으로”

이어진 세션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4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아시아 청년 혁신가들의 사업 소개와 토론이 벌어졌다. 아시아 지역에서 사회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를 주제로 한 첫 세션에서 인도네시아 사회적 기업 지원단체 ‘언리미티드 인도네시아’의 대표 로미 차햐디는 복잡한 아시아 지역에 나타나는 역설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7%였다. 경제 고성장으로 아시아에는 복잡한 문제가 쌓여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 지역의 빈곤율은 12.5%다. 산림 벌목 현상도 심각해 2초마다 축구장 2개 면적에 해당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다. 청년 사회혁신가가 이런 아시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사회적 환경에서 민주적 사업 운영이 가능한지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필리핀 빈곤 지역 여성과 함께 패션 상품을 만드는 ‘래그스 투 리치스’(R2R)의 리스 페르난데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없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역사회로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의 의사결정도 지역사회 장인들에게 많은 권한을 줘 존중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과 국내외 숲 조성 사업을 연결해 주목받고 있는 ‘트리플래닛’의 김형수 대표는 “일반 기업에서 하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 몽골에 조성한 숲의 경우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고 지역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청년 사회혁신가의 조건’에 대한 참석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무모함’과 ‘절박함’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저가 보청기 공급으로 저소득 난청인의 어려움을 덜어준 ‘딜라이트’의 김정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하기에 청년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비현실적인 꿈을 꾸거나 기존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약간의 무모함, 그리고 성공 가능성보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16년 전부터 출산 여성의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요시오카 마코 일본 ‘마드레보니타’ 대표는 “창업 당시에는 ‘사회혁신가’라는 단어조차 몰랐고, 창업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출산 뒤 건강 영역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m 정도 걸어오다보니 사업이 점점 확장돼갔다. 사람들은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의 청년 사회혁신가들은 ‘달콤한 성공담’만 꺼내놓지 않았다. 포럼 현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건, 이들이 겪었던 ‘위기의 순간들’에 대한 소개였다. 로미 차햐디는 “사회적 기업은 어떤 배경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어려움도 다르다고 본다. 공익적 영역에서 출발했다면 기업가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깨닫는 것이다. 공익적 부분과 기업 영역에서 활동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적 배경에서 일을 시작한 경우에도 공익적 분야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은 다양하다. 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꿈을 계속 좇아야 할까? 반대로, 돈이 너무 많으면 무엇을 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의 꿈을 계속 좇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사회혁신가가 겪게 될 ‘내적 갈등’에 대한 경험도 나왔다. 베트남에서 책임여행과 소액금융지원(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을 하고 있는 ‘블룸 마이크로벤처스’의 대표 로안응우옌은 “가장 큰 어려움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었다. 또 가족이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나 어느 시점이 오면 성숙하게 내가 하는 일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청년 사회혁신가 지원단체인 씨즈의 김영석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청년 사회혁신가에게 자원과 경험의 부족은 항상 존재한다. 스스로 처음에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처음에 문제로 생각했던 것을 풀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좀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청년 사회혁신가를 위한) 지원과 제도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소셜 미션을 지향하는 마음은 스스로 계속 동기부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 “확실하게 돕겠다”

앞서 포럼 현장에는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과 서형수 풀뿌리사회적기업가학교 교장, 송경용 서울사회적경제네트워크 이사장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정영무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는 개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시아 청년 혁신가의 공동체가 꾸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상 메시지를 보낸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으로 이 활동이 확장될 수 있도록 서울시도 확실하게 돕겠다”고 말했다.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들은 포럼 다음날인 7월4일 오후 서울시청에 모여 아시아 차원에서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는 등 향후 활동에 대한 논의를 했다(상자 기사 참조). 혁신을 나누는 아시아 차원의 거대한 공유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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