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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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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라이브러리 기획자와 이야기 나눈 6월…
“만남의 장을 주는 것, 서로에게 입을 트는 첫 단계가 중요”
등록 2014-07-05 06:24 수정 2020-05-02 19:27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희망제작소 주최로 열린 ‘휴먼라이브러리’ 행사에서 다양한 사람책이 대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명진 기자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희망제작소 주최로 열린 ‘휴먼라이브러리’ 행사에서 다양한 사람책이 대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명진 기자

희망제작소와 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4년 정기 휴먼라이브러리’ 6월 행사에선 휴먼라이브러리 기획자를 초청했다. 최영인(33) 희망제작소 교육센터 선임연구원의 사회로 이민영(28) 희망제작소 교육센터 연구원, 최하늬(29)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 코디네이터, 김효준(30)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간사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휴먼라이브러리를 운영하며 경험한 사람책과 독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난 6월24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길담 서원에서 열린 휴먼라이브러리 행사를 지상 중계한다. _편집자


최영인(이하 사회)- 휴먼라이브러리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김효준(이하 김)- 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TNA(Talk & Action)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리 주변의 이웃들, 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활동 방법으로 휴먼라이브러리를 제안했다. 한 친구가 지난 2월 이 보도한 ‘휴먼라이브러리 컨퍼런스’ 기사를 인쇄해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독자와 사람책 모두 만족 높은 소규모 대출

최하늬(이하 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편견은 많지만 실제 병역거부자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특히 양심이나 신념 같은 것들은 개인의 문제이자 고민이기 때문에 대형 강의실보다는 가까운 자리에서 소규모로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이나 오해를 조금은 없애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회-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 한강 둔치에서 열었다. 사전 신청자보다 현장 참여자가 더 많았다. 바람대로 됐다.

사회-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한 가지 주제로 기획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주제가 좁은 것을 커버하기 위해 4인4색의 특색을 살렸다. 청소년활동가, 앰네스티 활동으로 친숙한 사람 등 각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고, 각각의 색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지점에 주목했다. 장소는 템플스테이에서 좌식으로 했다. 편안해서 인기가 높았다. 독자는 여성이 절반을 넘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남성,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남자친구를 둔 여자친구, 개인의 자유와 국가안보에 관심 있는 사람 등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아무도 쉬지 않고 열띤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사회- 편견을 깨는 데 휴먼라이브러리가 적합했나.

- 소규모로 하니 독자도 사람책의 만족도도 높았다. 대형 강의를 하면 궁금한 게 있어도 질문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람책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 편견이 있는데 우리가 편견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참여자에게서 후기를 받았다. 처음에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대부분 응답했다. 외국인을 만난 다음에야 자신의 편견을 적기 시작했다. 사람책 역시 한국 사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고 했다. 불특정한 한국인들을 독자로 만날까봐 무서웠단다.

사회- 다른 행사 때는 참여자가 많다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개개인이 어떤 느낌을 가졌고, 뭘 느꼈고, 누가 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손이 많이 가는 행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기억에 남는다. 휴먼라이브러리를 하면서 스스로 깨달은 편견이 있다면.

- 편견을 편견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편견은 이미 깨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다만 그것을 깨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내 자신의 편견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오면 다 이슬람교도일 것 같다, 미국인은 다 뚱뚱할 것 같다 등이 기억난다.

13살 독자 “다 그런 게 아니다”

이민영(이하 이)- 사람책 사전 인터뷰를 할 때 중국인이 ‘한국 사람들이 더 시끄럽다’고 말한 게 인상 깊었다. 한국인은 중국어를 못 알아듣고 사성도 있어서 중국인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어가 들리지 않으면 똑같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버마인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 전까지 내가 만났던 동아시아인은 키가 작았다. 그 버마인은 180cm가 넘었다. 당신이 특별하게 키가 크냐고 물었다. 자기가 태어났을 때는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아서 자기 또래는 키가 크다고 했다. 아랫세대부터는 정치적 상황이 나빠져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키가 작아졌단다. 대화를 하면서 많이 알게 됐다.

사회- 독자의 질문이 사람책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 채식주의자 보디빌더가 사람책이었는데, 첫 번째 대출 때 이상하게 독자가 적었다. 채식에 편견이 있는 할아버지가 두 분 계셨다. 할아버지들이 건강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까 마음을 졸였다.

- 외국인에게 상처가 될 말이나 질문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외국인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할 태도를 미리 정리해 독자들에게 안내했다.

사회- 만나고 싶은 사람책이 있나. 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얼마 전 서울 종로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왔었다. 몇몇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와서 소리를 치고 경찰 버스에 노란 쪽지를 붙이고 했다.

-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그렇게 목소리가 커야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까, 궁금하다.

- 성소수자.

- 퇴직한 남성을 만나보고 싶다.

사회- 휴먼라이브러리에서 느낀 점은.

- 알고 싶다 했을 때 가서 그냥 물어보는 게 휴먼라이브러리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듣는 것이 다르니까. 건널 수 있는 다리를 하나 깔아주면 듣고 돌아갔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이 문을 만들어주는 게 휴먼라이브러리가 아닐까. 유명인을 데려오고 진로 상담으로 활용되는 게 안타깝다. 지역적 특성에 맞게 변화해야 하겠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 열린 공간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게 좋았다. 초등학생이 두 명 왔는데 다른 행사에서는 만날 수 없는 연령대였다. 쫄래쫄래 형이 동생 손을 잡고 왔다. 외국인을 만나보고 싶다고. 9살짜리 아이가 후기에 “외국인은 이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13살짜리 아이는 “미국인은 다 뚱뚱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 그런 건 아니다”라고 했다.

동성애자 만나는 자리에 반대하는 사람이…

사회- 폴란드에선 동성애를 주제로 연 휴먼라이브러리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참석한다고 한다. “너희가 잘못되지 않았느냐”라고 2~3시간 난상토론을 하고. 우리는 대화를 잘하지 않는다. 난상토론이 끝나고 편견이 깨졌을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휴먼라이브러리 창시자인 로니 아베르겔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을 주는 것, 서로에게 입을 트는 그 첫 단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중에 대화했던 걸 다시 떠올리는 과정까지 효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휴먼라이브러리를 하면서 무언가를 얻고 결과를 잘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물꼬를 틀 수 있다면.

정리 이슬기 서강대 종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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