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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되지 않나요? 나도 그래요

조현병 환자·우울증 환자·정신과 의사 등 ‘사람책’ 빌린

‘2014년 휴먼라이브러리’ 4월 정기행사
등록 2014-05-02 01:04 수정 2020-05-02 19:27
희망제작소와 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4년 휴먼라이브러리’ 4월 정기행사가 ‘너는 마음대로 되니?’란 주제를 걸고 지난 4월22일 열렸다. 올해 처음 열리는 이날 행사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_편집자


희망제작소와 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4년 휴먼라이브러리’ 4월 정기행사 ‘너는 마음대로 되니?’가 지난 4월22일 저녁 7시 서울 도봉구 보건소 1층 블루터치 카페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조현병 환자’ ‘우울증 환자’ ‘정신과 의사’ 등 4명이 사람책으로 나서 대출자 20여 명과 대화를 나눴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희망제작소와 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4년 휴먼라이브러리’ 4월 정기행사 ‘너는 마음대로 되니?’가 지난 4월22일 저녁 7시 서울 도봉구 보건소 1층 블루터치 카페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조현병 환자’ ‘우울증 환자’ ‘정신과 의사’ 등 4명이 사람책으로 나서 대출자 20여 명과 대화를 나눴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지난 4월22일 저녁 7시. 서울 도봉구 보건소 1층의 블루터치 카페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들었다. 평소라면 일찌감치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지만, 이날 카페는 조명을 환하게 밝혔다. 4개의 탁자 위엔 각각 ‘조현병 환자’ ‘우울증 환자’ ‘정신과 의사’ ‘정신질환자 가족’이라고 쓰인 팻말이 놓여 있었다. 사전에 신청 절차를 마친 ‘대출자’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탁자마다 네댓 명의 대출자들이 둘러앉았다. 곧 40여 분에 걸친 ‘대출’이 시작됐다.

마음이 너무 여린 사람

2012년 어느 날, 정미영(40·가명)씨는 문화예술센터에서 업무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복도를 마구 뛰어다녔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게 정씨가 맡은 일이었다. 유달리 눈에 띄던 한 아이에게 차분히 한마디를 던졌다. “얘, 뛰지 마.” 갑자기 아이 엄마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뭐하시는 거예요. 애들이 좀 뛸 수도 있지.” 나무라는 아이 엄마한테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러곤 이내 정신을 잃었다.

돌발행동? 편견!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너무 여려요, 이 사람이.” 정씨가 힘겹게 말을 할 때마다 옆에서 남편이 한마디씩 거든다. 수더분한 인상의 정씨는 ‘조현병 환자’ 사람책이다. 행사 전 희망제작소가 일반인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조현병 환자는 돌발행동을 할 수 있어서 위험하고, 일상생활이 힘들며, 이야기를 들어주면 환자에게 더 안 좋다” 따위의 다양한 편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그때 겪은 일로 인해 조현병이 더 심해졌다. “생각이 너무 많아요. 신경증이 심해요.” 심해지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나흘 잠을 자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보기도 힘들다. 정신을 잃고 ‘내가 예수다’ ‘내가 요정이다’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래도 약을 복용한 뒤 증상은 많이 나아졌다. “약이 생각을 누르는 느낌이에요.”

어릴 적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일을 해야 했다. 3남매 중 막내였던 정씨는 혼자 방치됐다. 고등학교 졸업 뒤 21살에 조현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게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17년 전 지금의 남편을 중매로 만난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정씨는 자원봉사 일도 오래전부터 해왔다. 새마을문고에서 대출 업무도 맡고, 법원에서는 안내 업무를 1년간 했다. 남편 역시 남을 위하는 게 몸에 뱄다. “난 와이프 하나만 지켜주면 되잖아요. 그래서 친구들 만나면 내가 술을 사요. ‘넌 가족이 있으니까’라고 하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줘야 할까요.” 한 대출자가 물었다. “마음에 안정을 주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남편 역시 한마디 거든다. “관심을 가져주면 첫째로 좋아하더라고요. 다만 이용해먹고 놀려먹는 사람들이 문제지.”

우울한 날들이여, 안녕

“계속 문을 닫고 틀어박혀 있었어요.”

순박한 얼굴의 덩치 큰 소년은 문을 잠갔다. 그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밖에서 나오라고 외쳤다. 고3이던 9월, 또래 친구들은 수능 공부에 매진할 때, 그는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밥을 먹였다. 그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우울증. 수줍은 미소를 짓는 김진성(20·가명)씨는 ‘우울한 지난날이 회복되기까지’를 들려줄 사람책이다.

“친구를 사귀지 말고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모든 게 조금 느릴 뿐인 김씨에게 또래 친구들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어린 나이에 또래에게 거절당하면서 관계회피증이 생겼다. 무엇보다 남고에 진학한 그는 위계질서 문화에 힘들어했다.

새로운 사람과 대화도…

고등학교 시절, 그는 KBS 을 즐겨 들었다. 거기서 나온 박민규씨의 를 듣고 책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었다. 또래 친구들은 그에게 ‘책을 그렇게 읽으면서 언어 영역 성적은 왜 안 나오냐’며 놀렸다. “저를 싫어한다는 걸 느끼니까 고치려 했어요. 노력해도 이상하게 보니까 곪아버렸죠.” 그는 우울장애, 기분 장애 판정을 받아 4급 공익근무로 편입됐다.

병원에서 마음의 고름을 짜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후련함을 느꼈다. 2년8개월 동안 치료받고 공익 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증상이 꽤 사라졌다. 10개월 전부터는 체력단련실에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체중도 7kg 넘게 뺐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요즘이다.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신데 저를 좋아해주셔서 되게 좋아요.”

하지만 그에게 남과 관계 맺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도 슬슬 생겼다. 특히 또래와 잘 어울리고 싶다. 그의 꿈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쪽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사람책의 취지가 감동적이었어요. 저 같은 사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수줍음이 많은 그가 사람책 행사에 용기를 내어 참여하게 된 이유다.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정신과 의사들은 카멜레온 같아요.”

어느 날은 환자의 상황에 100% 공감한다. 또 어떤 날은 딱딱하게 대한다. 때로는 엄마, 아빠, 형제 역할 모두를 소화해낸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에 그는 매일같이 경계를 넘나든다. 전혀 지루할 틈이 없는 직업이다. 노원 을지병원 정신과 의사 이규영(46)씨는 ‘정신과 전문의의 마음 듣기’에 참여한 사람책 주인공이다.

“저는 정신과 의사가 가장 의사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집안의 어른들도 의사였다. 의사라는 직업이 자연스레 다가왔다. 칼을 대는 건 잘하지 못했다. 스스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대일 관계를 표방하는 정신과에 마음이 끌렸다. 작은 진료실에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 누군가를 나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요인이었다. “같이 미쳐버리는 것 아니에요?” 한 여성 대출자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그의 손동작이 빨라진다. 치료실이 어두운 건 아니다. 기분이 ‘업’된 환자가 올 때는 그도 같이 업된다. “선생님 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외래 접수하는 간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런 날은 방에서 웃음이 많이 나온다. 정신과 치료의 핵심은 의사와 환자가 ‘같이 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환자와 함께 늙어가는 것 같아요.”

“정신과에서는 상담치료보다 약물치료를 더 많이 하나요?” 한 대출자가 물었다. “많은 정신 질환은 사실 뇌 질환이에요.” 그는 약물치료를 꺼리는 풍토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소설과 영화에서는 유독 탐미적으로 상담치료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 역시 모든 정신 질환을 상담으로 치료할 수는 없고 환자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를 위해 신중한 고민이 매 순간 이어진다. “약물, 상담, 분석, 인지행동 치료 등 많은 치료 방법 중 효과가 빠른 게 약물치료예요.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많이 돼요.”

스스로에게 ‘나는 건강한가?’

‘나는 늘 건강한가?’ 그가 자신에게 매일매일 던지는 물음이다. 환자의 변화는 더디다. 의사 스스로 중심을 잡으며 준비해야 환자의 속도에 맞춰갈 수 있다. 늘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 너랑 같은 경험 했었어’라며 누군가 들어줄 때 고통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걸 그는 익히 알고 있다. ‘같이 간다’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정신과 문턱이 낮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릴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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