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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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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아 종북아 뭐하니

민노당적 가졌다는 이유로 법복 벗은 전직 검사들
1심 판결은 “당적 갖고 공무원 됐어도 위법 아니다”
등록 2014-01-07 09:05 수정 2020-05-02 19:27
지난해 12월20일 검사 출신인 윤태중 변호사가 10년 전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가입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정당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는 1심에서 무죄·면소 판결을 받았다.박현정

지난해 12월20일 검사 출신인 윤태중 변호사가 10년 전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가입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정당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는 1심에서 무죄·면소 판결을 받았다.박현정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대신, 인터넷 매체 가 나섰다. 2013년 최고의 유행어로 꼽히는 ‘종북’. 무차별적으로 붙여지는 ‘종북’ 딱지의 기준을 명쾌하게 밝혀주겠다며 지난해 말 ‘종북 셀프 테스트’를 제시했다. 테스트 방법은 간단하다. 34개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당신의 ‘종북’ 여부가 드러난다.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통합진보당 당원인가?’

‘종북 감별사’가 된 검찰총장

2011년 8월 취임 당시 ‘종북·좌익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한상대 전 검찰총장에게 이 질문은 ‘종북’을 가려내는 명확한 잣대였을지 모른다. 지난해 11월 보수 성향 사단법인 ‘푸른한국’이 주관한 ‘법질서 준수와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세미나’에서 나온 한 전 총장의 발언은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총장 재직 당시 1900여 명을 모두 스크린한 결과 종북주의를 신봉하는 검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종북 활동을 하다 검찰로 들어온 검사를 찾아내 남자 검사는 사퇴시켰고, 여자 검사는 징계했다.”(2013년 11월25일 )

한 전 총장 재임 전후 ‘정치활동’과 관련해 징계를 받거나 사퇴한 검사는 당시 부산지검 동부지청 윤태중(36·사법연수원 40기), 수원지검 안산지청 강 아무개 검사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두 사람은 각각 2004년과 2002년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있다. 윤 변호사는 2006년 2월 이후 당비를 내지 않았지만, 당원으로 남아 있었다. 별다른 탈당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는 검사가 되기 전, 탈당 절차를 밟았다고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탈당계를 냈음에도, 2011년 8월 윤 변호사는 당원 가입 및 이중 당적을 가진 혐의(국가공무원법·정당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해 10월 ‘면직’ 징계도 받았다. 앞서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강 변호사는 입건 유예됐다.

2010년 교사·공무원 등 273명 기소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뀐 건, 2009년 시국 상황과 연관이 깊다. 그해엔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한 종교인·교수·학생 등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공무 외 ‘집단행위’를 했다며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수사는 교사·공무원들의 민노당 가입 및 정치후원금 납부 혐의로 확대됐다. 우리나라에선 공무원·교사들의 정당 가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2010년 전·현직 교사와 공무원 등 273명이 이런 법을 어겼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2011년 8월 교사·공무원 1647명을 무더기로 불구속 기소한다. 이들 중 한 명이 윤 변호사였다. 200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진로를 바꿔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기소가 된 건, 검찰 임용 6개월 만이었다.

“처음 민노당 당원이냐는 연락을 받았을 땐, 그럴 리가 없다고 했어요. 민노당에 확인 전화를 해보니 ‘당원이 맞다’는 거예요. 2007년 이후 기록만 남아 있는데, 당비를 낸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예전에 정치기부금을 내고 연말정산을 받으려 했던 기억이 나서 옛날 계좌를 다 뒤져봤어요. 돈을 낸 기록이 있더라고요. 열린우리당에도 돈을 낸 흔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주당에 전화를 해봤죠. 또 ‘당원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열우당 가입 여부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자백을 했어요. 굉장히 멍청했죠. (웃음)”

윤 변호사가 두 정당에 낸 돈은 모두 28만원이었다. 경기도 포천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인 2004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매달 1만원씩 24만원을 민노당에 기부했다. 열우당엔 4개월간 총 4만원을 내고 자동이체를 중단했다.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정당 두 곳을 후원하기란 빠듯했기 때문이다. 2003년 말 일명 ‘차떼기 사건’이 불거졌다. 2002년 16대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측근들이 현금 150억원이 실린 트럭을 통째로 넘겨받는 등 재벌들로부터 82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이다.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소액기부가 권장되던 시기였다. “‘차떼기당’ 이외의 다른 정당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민노당과 열우당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당원 가입을 하고 당비 자동납부를 신청했어요. 그때 민노당에서는 10만원을 정당에 기부하면 연말정산 때 환급해준다는 광고도 했거든요.” 강 변호사는 대학 3학년 재학 시절인 12년 전, 주변 선배의 권유로 민노당에 가입했다. 학생회 임원이라든가, 운동단체의 일원은 아니었다.

검찰은 윤 변호사에게 징역 4개월을 구형했으나, 2011년 11월 부산지방법원 형사13부는 무죄·면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사법연수생과 검사 임용 전에 정당 가입을 한 것이 분명하고, 당원 신분을 유지한 채 공무원이 됐다고 하더라도 정당법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당 가입을 한 시점에 범죄행위가 끝난다는 ‘즉시범 논리’를 따랐다. 대법원 역시 단체 가입죄에 대해 ‘즉시범 논리’를 판시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탈당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범죄행위가 이어진다는 ‘계속범 논리’를 내세워 교사·공무원에 대해 정당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민노당·열우당 두 곳에 가입한 혐의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3년이라 기소할 수 없다며 면소 판결했다. “이중 당적을 왜 처벌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당원이 누구인지도 알기 어려워 처벌 전례도 거의 없어요.” 1심 선고에 대해 검찰은 항소했다. 항소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0년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교사·공무원 88명의 상고심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즉시범 논리’를 따라 민노당 가입 등 정당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3년이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후원금 납부로 인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벌금 30만~50만원을 선고했다. 다른 하급심에서도 대체로 정당법 위반 혐의에 대해 면소,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2010년 기소된 교사 중 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받은 이들은 대부분 행정소송을 통해 징계처분 취소 판결을 받았다.

범인 잡는 형사부 검사를 꿈꿨는데…

윤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제대로 범인을 잡는 형사부 검사가 되고 싶었다. 반년 남짓한 검사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2011년 말, 서울행정법원에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면직처분취소 청구소송을 낸 건, 검찰에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2012년 7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면직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징계 사유가 있으나, 면직은 재량권을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라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검사로 임용되기 약 5년 전부터 당적 보유 외 아무런 정당·정치 활동을 한 바 없으며, 직무상 정치적 중립성을 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4월 대법원은 면직 처분을 취소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시간이 흐르자 상처도 아물었다. “‘차라리 잘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검사 일이 보람 있지만 박봉이고 고생도 많으니까.” 2년6개월가량의 검사 생활을 접기 아쉬웠던 건 강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일에 대한 보람과 재미를 알아가던 시기였다. 검사가 된 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었다. “적성과 부모님 의견을 고려해 공무원이 되고 싶었어요.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웃음) 저는 공무원 정당 가입이 위법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사표를 낸 것에 억울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다만 법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은 있어요. 무엇이 정치적 중립성인지. 특정 정당 당원에 대해서만 차별적 기소일 수도 있고요.”

“억울함 없지만, 법의 정당성엔 의문”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10년 전 선택은 달라졌을까. “학생 신분을 벗어나 처음 돈을 벌어 한 달에 1만~2만원을 내면서 나름대로 사회에 공헌한다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마 옛날과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윤 변호사) “정당 가입은 하되 탈당은 제대로 했을 것 같아요. 학창 시절 정당에 가입하는 건 잘못이 아니니까요.”(강 변호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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