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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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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직원이 보상받으면 안 된다는 기업

‘반올림’ 활동 6년, 171명 직업병 제보, 70여 명 세상 떠나
투병 고통보다 더한 삼성의 잔인함, 피해자-정부 소송에 직접 참가해 산재 보상 못 받게 주장
등록 2013-12-07 05:20 수정 2020-05-02 19:27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활동한 지 어느새 6년이 흘렀다. 그동안 171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제보를 해왔고, 안타깝게도 70여 명은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병명은 백혈병·뇌종양·유방암·루게릭·다발성경화증 등 각종 암과 희귀질환이었다. 제보자와 사망자 수로 그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직업병으로 인해 삶이 파괴된 이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이 느껴야 할 아픔까지 어찌 수로 환산할 수 있을까?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준 고통은 너무 컸다.

경비원 보내 막고 피켓 시위 하고

삼성전자 기흥공장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2012년 5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삼성전자 기흥공장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2012년 5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피해자 대부분이 젊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에 취업한 갓 스물의 노동자부터 30대 초반, 40대까지. 한창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할 이들이었다. 동료가 피부병이나 생리불순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고, 유산이나 불임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피해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얼마나 유해한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생채기를 낼지 몰랐다. 그들은 화학물질의 성분이나 유해성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은 기초적인 안전보건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혹독한 곳이었다. 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교육 같은 법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감시할 시선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삼성의 일류 가치와 높은 벽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아픈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봐왔다. 예쁘던 얼굴은 병으로 퉁퉁 부었고, 몸은 말라갔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이, 시력을 잃어가는 이도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왜 내가 이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지. 마음의 고통은 몇 곱절 더 컸을 것이다. 정작 삼성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삼성 본관 앞에서 사과와 해결을 요구할 때면 삼성은 경비원들을 보내 이들을 맞이하도록 했다. 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이들 앞에 ‘소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피켓을 든 젊은이들을 줄지어 세워놓기도 하고, 건물 근처에 다가서기라도 하면 팔다리를 달랑 들어서 끌어내기도 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물리력에 쉽게 굴하지 않고 저항이라도 하면, 그 실랑이 과정을 채증해 무고한 피해 노동자 가족을 폭력범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조금 여럿이 모인다 싶으면 아예 수십 대의 버스로 차벽을 세워버렸다.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대화가 아닌 외면이었다.

지금까지 제보해온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 가운데 39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보상을 신청했다. 이 중 공단이 산업재해로 인정한 경우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재생불량성빈혈과 유방암, 매그나칩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이렇게 3건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질병의 원인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 단계에서 산재 보상을 포기한 가족도 있었다. 정부에서 처리하는 시간이 너무 긴데다, 철벽 같은 삼성에 맞서 알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직업병 문제 불거지자 ‘프레스 투어’

하지만 정식으로 산재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삼성의 제안을 거절하고 정부의 산재 불승인 판정에 맞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도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산재를 신청한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림프종 피해 노동자들의 경우 2010년 1월에 소송이 시작되었다. 그 뒤 뇌종양·재생불량성빈혈·다발성경화증 피해 노동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로 총 14건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길고 긴 법정싸움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소송이지만 이 중 몇 건은 삼성전자가 직접 참가해 자기 직원들이 산재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법적 절차를 거치며 자신이 일하던 회사도, 정부도 모두 자기 편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진 시간들이었다. 투병의 고통보다 직업병을 부정하고 개인의 질병으로 몰아가는 삼성의 잔인함에 대한 고통이 더 컸다.

삼성은 뻔뻔하게도 피해자들의 질병에 업무 연관성이 없다며 부인하고 은폐하려 했다. 2010년 3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박지연씨가 사망하면서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삼성은 그해 4월 기자들을 공장에 초청하는 ‘프레스 투어’를 갖고 7월에는 회사 안에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를 설립하고 외국계 컨설팅사에 연구를 의뢰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시작했다. 이 중 흥미로운 사실은 삼성전자 건강연구소나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생산하는 연구와 홍보의 내용이 ‘작업 환경이 매우 안전하게 관리돼왔다’는 주장 일색이라는 점이다. 공장에 어떤 위험과 유해 요인이 있는지, 혹시라도 관리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보완하는 연구가 아니라 잘 관리해왔다는 주장만이 있었다. 회사에서 일한 직원들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그 사실을 덮으려 급급하는 모습.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이 시기에, 삼성이 보이는 태도는 아쉽기만 하다.

작업장 내 유해 요인 교육받았다면

반올림 활동 6년 동안 많은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봐왔다. 적어도 노동자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았더라면, 작업장 내 유해 요인에 대해 교육받을 수 있었더라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해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작업 환경에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정부와 사회가 삼성을 감시의 눈으로 지켜봤더라면 수많은 삶들이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한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사회가 그 세상을 지켜줘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이 사라지지 않도록 삼성이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기를 바라본다.

공유정옥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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