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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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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던 그 길을 너가 함께 걸었다

도시인의 ‘녹색갈증’ 풀어주는 가로수…통치자의 취향에 맞춰 시대의 기호에 맞춰 쉽게 바꿔치기당한 아까시·포플러·플라타너스들
등록 2013-11-08 05:51 수정 2020-05-02 19:27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 옆 은행나무 풍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 옆 은행나무 풍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람의 유전자에는 초록에 대한 태생적인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 그 막연한 그리움을 에리히 프롬은 ‘녹색 갈증’(Biophilia)이라는 낱말로 붙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에 대해 타고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자연을 경험하려는 생물학적 욕구를 느낀다는 뜻이다. 가로수는, 더 이상 초록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게 된 도시민들의 궁여지책이다. 가닿을 수 없는 자연을 인류는 삶의 공간에 옮겨 심었다. 사람의 가장 가까운 곳에 뿌리내린 가로수는, 그 욕망에 가장 깊이 상처받은 자연일 수밖에 없다.

고종 32년 근대적 가로수의 등장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김현승, ‘플라타너스’) 시인의 노래 이후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는 가로수의 전형이 되었다. 높이 솟아 행인을 내려다보는 플라타너스를 사랑한 이는 김현승 시인만이 아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를 점령했을 때 아테네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도 플라타너스에 반해 유독 그 나무만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기원전 5세기 에게해에서도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사랑받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문헌에 가로수가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왕조 시기다. 세종 23년(1441)에 새로 만든 자로 역로의 거리를 재고 30리마다 나무를 심어 거리를 분간하도록 했다고 은 적고 있다. 아직 가로수가 거리를 가늠하는 ‘기능’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때다. 그 손자인 단종 1년(1453)에 이르러 비로소 가로수에 도시 경관의 의미가 채색된다. 단종은 중국 주나라를 본떠 “서울 교외 도로의 양편에 땅의 성질을 감안해서 소나무·배나무·밤나무·회나무·버드나무 등 알맞은 것을 심도록 하고 그 보호를 철저히 하라”고 명을 내렸다.

좀더 근대적인 의미의 가로수는 1895년 고종 32년에 등장한다. 에는 정부에서 ‘도로 좌우에 수목을 심기를 권하는’ 훈시를 전국에 내려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경기도 양주 홍릉(명성황후 묘)에서 동대문에 이르기까지의 길 양쪽에 백양목을 심었다. 가로수를 제도화하고 구현한 첫 사례인 셈인데, 1930년대 도로를 넓히면서 일제가 베어버렸다.

통치자들이 심은 나무가 아직 앙상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때, 한국의 마을 풍경에서 어떤 나무는 전설이요 신화였다. 마을 어귀에 어김없이 자리잡은 당산나무는 때로 귀목으로, 때로 마을의 섬김을 받는 신목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살과 뼈가 여문 마을’의 상전벽해를 이룬 풍경 속에서도 ‘맨 먼저 가슴을 후려친 것은 왕소나무가 사라져버린 사실’이라고 한탄한 이는 소설가 이문구()다.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영물’이라는 전통적 의미의 자연 체험이라면, 근대적 자연 경관에 대한 한국인들의 첫 경험은 말끔한 신작로에 단정하게 늘어선 아까시나무 풍경일 것이다.

북미 대륙에서 건너온 아까시나무는 향이 짙고 생장이 빠르다. 1907년 한반도에 들어와 헐벗은 조선땅을 금세 뒤덮었다. 해방 뒤엔 주가가 급락했다. ‘일제가 나라를 망치려고 소나무를 베어내고 심은 가시나무’라는 손가락질이 수십 년을 따라붙었다. 친일 청산은 못했어도, ‘일제 나무’ 청산에는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산림녹화에 기여했던 아까시나무는 도로 ‘잡목’ 취급을 당하며 뽑혀나갔다. 베어진 가로수들에 대한 부채감을, 훗날 고은 시인은 “고속도로 혹은 4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그런 길(시골 신작로)로 접어 들었을 때는 마치 오랫동안 홀대하거나 망각했던 조강지처를 새로 만난 죄책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라고 적었다.

박정희의 포퓰리즘, 미루나무

엎치락뒤치락하는 사람의 역사에 끼여 희생당한 나무는 아까시나무만이 아니다. 어느 시대나 권력의 필요에 따라 나무는 국토의 도로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쉬 사라졌다. 아까시나무와 함께 신작로를 장식했던 ‘포플러’(미루나무)도 그러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빠른 녹화사업을 위해 직선으로 쑥쑥 자라나는 포플러를 선택했다. 어디서나 잘 자라기에 그 이름도 희랍어 ‘populus’(인민)에서 유래했다. 이 미국산 ‘인민의 나무’를 더 빨리 자라는 나무로 개량하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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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서울대 농과대학의 현신규 박사가 그 꿈을 이뤄주었다. 미국산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를 잡종 교배한 은수원사시나무를 대량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 박사의 이름을 따 새 나무를 ‘현사시나무’라 부르도록 지시했다. 주요 조림 수종으로 지정된 현사시나무는 1980년대 초까지 온 나라에서 볼 수 있었다.

영광은 길지 않았다. 꽃가루와 씨앗 솜털이 사회문제로 비약됐다. 재질이 물러 쓸모도 적었다. 한때 ‘국력’의 상징으로 추어올렸던 나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용산구는 꽃가루가 날려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현사시나무 309그루를 베어내었고”( 1994년 4월28일치), “종로구는 청와대 주변의 현사시나무를 벌목하고 대신 소나무를 심기로 했다”( 1996년 2월12일치).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사람에게만 미친 것은 아닌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한 나무가 또 있다. 고유종인 이팝나무다.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라고도 불리는 이팝나무의 꽃은 영락없이 수북한 쌀밥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도 그런 이유로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경북 구미시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로 이어진 박정희로 2.1km에 25억원을 들여 이팝나무길을 조성했다. 박정희로뿐 아니라 구미시 곳곳에는 1만여 그루의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수목일을 맞아 청와대에 20년생 이팝나무를 심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던 시절에도 기념식수로 이팝나무를 곧잘 심었다고 한다.

어떤 권력자는 가족의 재산을 불리는 데 가로수를 이용하기도 했다. 1988년 10월11일 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가 가로수 수종에 맞지 않는 잣나무와 현사시나무 수만 그루를 서울시와 부적절하게 거래한 사실을 보도했다. 당시 서울시(염보현 서울시장)는 1982년부터 6년 동안 경기도 화성에 있는 이씨의 농장과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을 맺고 현사시나무 4만7천 그루, 잣나무 5만1천 그루 등 총 7억원대 가로수 묘목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살아남는 일은 끝없이 고달프다.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살지 못할 곳에 옮겨 심는 이들 때문이다. 2012년 8월에는 4대강 사업 지역인 남한강과 낙동강 수변에 심은 가로수들이 말라죽었다. 당시 충북도의회는 “강가에 습지에 맞는 수종을 심어야 하는데 영산홍·이팝나무 등 일반 공원에 적합한 관목을 심어 영동광장에 심어놓은 감나무 가로수 52그루가 말라죽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전시성 행사에 맞춰 동원된 가로수들의 최후인 셈이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법을 잊은 사람들의 사회에서 가로수는 시대의 기호에 맞춰 쉽게 바꿔치기당한다. 전국 가로수 중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어떤 나무일까. 플라타너스도, 은행나무도 아니다. 2011년 말 기준 전국에 가장 많은 가로수는 벚나무류(22%)다.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은행나무가 18%, 느티나무·이팝나무·플라타너스가 각각 6%씩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국립수목원은 “봄철 벚나무 꽃길을 조성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증폭된” 것을 벚나무 인기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경기도,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등 관광산업이 먹거리인 지역에서 주로 벚나무를 심고 있다.

가을마다 툭툭 떨어지는 은행나무 열매는 귀찮고 냄새나는 손님이 됐다. 서울 송파구의 거리에서 구청 직원이 은행 열매를 따는 모습(왼쪽). ‘가로수의 왕’이라던 플라타너스도 점차 다른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탁기형

가을마다 툭툭 떨어지는 은행나무 열매는 귀찮고 냄새나는 손님이 됐다. 서울 송파구의 거리에서 구청 직원이 은행 열매를 따는 모습(왼쪽). ‘가로수의 왕’이라던 플라타너스도 점차 다른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탁기형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나 중구 다산로에선 소나무가 인기다. 침엽수여서 그늘을 만들 수 없고 공해에 약한 소나무는 도심의 가로수로선 적절치 않다. 곽정인 서울시립대 도시과학연구원 박사는 “소나무는 자랄 때 햇볕을 필요로 하는 등 도시형 가로수로는 맞지 않다. 무엇보다 도시 환경 적응성이 높은 나무가 가장 좋은 가로수다. 가로수도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을 깊이 살피고 식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벚나무·은행나무에 밀린 ‘왕년의’ 플라타너스는 이제 새 인기 수종인 이팝나무에도 밀리고 있다. 키가 커서 간판을 가리거나 벌레가 많이 꾄다는 민원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플라타너스가 ‘가로수의 으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임학자인 임경빈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에서 이렇게 예찬한다. “플라타너스는 우리의 정감을 사로잡는다. 세계적으로 보아 가로수의 왕이라 할 수 있으며 찬양받아야 할 아름다운 나무임에 틀림없지만 이것은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다. 노래와 예술, 때로는 철학적인 그 무엇에서 우리는 이 나무를 좋아한다.”

국내에서 저물어가는 인기와 상관없이, 플라타너스는 마로니에(서양칠엽수)·히말라야시더(개잎갈나무)와 함께 늘 세계 3대 가로수로 꼽힌다. 넓은 잎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엔 아름다운 단풍을 물들인다. 가로수의 중요한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인, 도시의 공해를 견뎌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도심 환경을 개선하는 능력이 획기적이다. 서울시가 2008년 8월 조사한 ‘가로수의 도시열섬현상 저감 효과’를 보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 가로수를 심지 않은 곳은 기온이 40.1℃, 플라타너스를 두 줄 심은 곳은 30.1℃였다. 가로수를 심은 것만으로 무려 10℃나 차이 나는 것이다. 다른 가로수에 견줘도 효과는 탁월하다. 을지로에서 플라타너스를 한 줄 심은 곳은 기온이 29.3℃였지만, 소나무를 한 줄 심은 곳은 38.1℃로 거의 기온을 낮추지 못했다.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하루 동안 내놓는 수분은 에어컨 8대를 5시간 동안 켠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벤트로 나무를 이용하는 정치모리배

은행나무 역시 최근 수모를 겪고 있다. 암나무에서 열리는 은행 열매의 냄새가 불쾌하다는 원성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 어린 은행나무의 잎을 통해 암수를 조기에 감별하는 ‘DNA 성감별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서울시는 세종로의 은행나무를 순차적으로 수나무로 바꿀 계획이다. 대구시도 지난 10월부터 시내 4만7천여 그루의 은행나무 가운데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꾸기로 했다. 서울 서대문구는 연세대 앞 대중교통 전용지구 공사를 하면서 아예 거리의 은행나무 60여 그루를 모두 베어냈다.

생태작가 강우근씨는 저서 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정치모리배들은 하루아침에 새 옷을 갈아입히듯 도시 미관을 바꿀 수 있는 이런 이벤트 사업을 좋아한다. 효과도 크고 바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정치적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 나무가 몇 년 뒤에 말라죽든, 바꾼 가로수가 적당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몇 가지 경제 논리와 전문가들의 그럴싸한 거짓말을 섞어서 그렇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포장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가로수는 저만치 떨어진 숲과 다르다. 사람과 함께 역사를 버텨낸다. 1980년 봄 광주 금남로에서는 가로수가 사람과 함께 쓰러졌다. 1923년 지어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장에 끌려 들어가는 사형수들은 형무소 앞 미루나무를 붙들고 통곡했다. 사람은 간 곳 없어도 ‘통곡의 미루나무’는 90년이 지난 지금도 우뚝 서 있다. 그러니 이 가을에는, 한 번쯤 나무를 안아주는 것이 어떠랴. ‘오냐. 모진 세월, 모진 인간 속에서 너 참 잘 견뎠구나’ 하고.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 (메이데이), (국립수목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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