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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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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전교조 해직 조합원

“까짓것 치르면 되지” 하는 일제고사에 대해 ‘또 다른 선택’이 있음을 보여준 교사들, 그들에게 헌법 정신에 반하는 규제의 잣대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등록 2013-10-05 15:27 수정 2020-05-03 04:27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이번에는 법외노조 통보란다.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고, 이 조항에 위반되면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할 수 있게 돼 있으며,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통보를 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전교조가 해직된 조합원 9명(전체 조합원 6만 명 중 0.2%에 해당한다)을 배제하지 않으면 이른바 ‘법외노조’ 통보를 하겠다는 것이다.

1년차, 책을 싸들고 찾아가 자청한 법률고문

법과의 불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에 출범했으나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 교사 1500여 명이 무더기로 해직됐다. 10년 만에 합법화됐다고는 하지만 그 뒤에도 줄곧 위법성 시비에 시달렸다.
내가 처음 변호사 배지를 달던 1999년은 공교롭게도 이 노동조합이 합법화된 첫해였고, 고등학교 시절 멋쟁이 독일어 선생님이 해직되고 학생회장이 자퇴하는 경험(물론 나는 그런 생각이나 용기가 없는, 철저한 ‘일반 학생’이었지만)을 가진, 이를테면 전교조 1세대로 자연스럽게 기대와 관심이 컸다. 1년차 때 이라는 책을 썼고, 책이 나오자 5권을 싸들고 직접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 교권국장 면담을 신청한 다음 교육법에 대한 열정을 살짝 과장하면서 법률고문을 자청했다. 처음에는 초짜에게 무엇을 맡겨도 될까 고민하셨지만 겨우 마지못해 승낙하셨고, 그로부터 5년, 전교조가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체계적 법률 지원을 받기 전까지, 합법 교원노조의 첫 고문변호사로 좌충우돌을 시작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 조합원에는 학생들을 일제고사를 치르는 대신 체험학습에 참여하게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이 있다. 일제고사는 평가 결과 조작 등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후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2008년 일제고사가 치러진 날 체험학습을 하는 학생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 조합원에는 학생들을 일제고사를 치르는 대신 체험학습에 참여하게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이 있다. 일제고사는 평가 결과 조작 등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후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2008년 일제고사가 치러진 날 체험학습을 하는 학생들.

8대 이부영, 9대 이수호, 10대 원영만 위원장 모두 자립형 사립고 반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교육 현안 문제로 구속돼 재판을 받을 때, 그동안 곪아터진 사립학교 재단 비리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들도 줄줄이 재판을 받고 해직될 때, 아주 드물게는 보람찬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정말 나쁜 판결도 많이 받아 면구한 적이 더 많았다. 이들은, 임금 등 근로조건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교육 현안을 문제 삼으면 노동조합의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벌을 받았고, 임금이나 휴가 등을 문제 삼으면 어떻게 교사가 그런 세속적인 주장을 하냐며 비난을 받았다.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라는 멋진 이름의 법이 있었으나 교섭 대상을 한정짓고, 쟁의를 금지하고, 정치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조문 하나하나가 노동조합을 얽어매고 있어, 풋내기 변호사의 열정은 물론 헌법이나 국제인권법의 논리 역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그럴듯한 성과 하나 없이 고문변호사를 마치고 나는 한동안 전교조 일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교육법을 남들보다 잘 알고 좋아한다는 자신감을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8년 뜨겁던 촛불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갈 때, 다시 이 노조의 이름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제고사 반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는 7명의 교사들을 소개받았다. 시험을 치르는 게 교육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해 이를 알리고, 이 의견에 동의하는 학부모의 자녀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했다는 게 징계 사유라고 하기에, 도대체 자녀 교육 방법을 부모와 교사가 결정했다는데 뭐가 문제인지 황당했다. 이런 일로 중징계를 받을 리 없다며 큰소리를 치고, 기자회견에서 “이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오히려 우리 헌법상 교육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인하고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교사 7명 모두 파면이나 해임의 징계를 받았다. 이미 1989년에 교단을 떠났다가 어렵사리 복직된 노련한 조합원도 있었지만, 갓 임용된 사람도 있었다.

1심 재판부부터 “해임 이상 징계는 과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선후배 변호사들과 일제고사 법률지원단을 꾸리고, 외국 사례나 논문을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거의 3~4년 만에 다시 내 컴퓨터에 ‘전교조’라는 폴더를 생성했다. 서울뿐 아니라 강원도 동해에서도 교사 4명이 해직됐고, 소청심사도 모두 기각돼, 춘천과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됐다. 1심 재판부부터 “해임 이상의 징계는 과도하다”는 판단을 내려 복직을 명했지만, 일제고사 반대의 정당성 자체는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춘천지방법원에서는 법령의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있고, 단체협약에서 “학업성취도 평가의 경우 표집학교를 제외한 학교에 대해서는 단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하라고 정했으므로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없어도 이행되도록 성실히 노력해야 하며, 실제로 평가 결과 조작, 교육과정의 편법·파행 운영 등 일부 문제점이 현실화되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대규모 해직 사태가 일어날 뻔했던 일제고사 사건은 내 사건으로는 아주 드물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그렇게 해피엔딩을 맞게 되었다.

일제고사 사건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시험 까짓것 치르면 되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온 나라를 이렇게 시끄럽게 하냐”고 말하곤 했다. 그것 말고도 교육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고, 학교 서열화나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을 가속화하는 장치가 아주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정도의 시험과 경쟁은 필요악이고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리고 나도 학교 다닐 때 ‘학력고사’나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고사’ 등 시험을 아무 문제 없이 잘 치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 난, 과연 올바르게 배운 것일까.

이때 ‘해직됐던’ 교사들에게는 이런 식의 교육, 이런 방식의 서열화가 옳은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들은 다른 선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보낸 편지에서도 이번 선택을 상의해줘서 고맙다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동안 해온 대로 모든 아이에게, 예외 없이 시험을 치르게 했다면, 선생님도 편하고 학교도 평화로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복직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을 거리에서, 교문 밖에서 소리치고 울면서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관례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성의 없이, 또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념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이러한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누구보다 당당한 스승들

전교조의 규약에서 말하는 ‘부당해고’ 조합원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둔다고 하여, 아무에게도,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 다시 이 노동조합에 헌법 정신에 반하는 규제의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없다.

1999년 합법화된 전교조의 복직교사들이 그랬듯이 오늘의 해직자는, 내일의 교단에서는, 어떤 나라의 교단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한 스승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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