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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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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하고 저작권료 받고?

2000년 이후 표절 판결·논란 곡에 주어지는 저작권료 20억원에 달해
저작권협회에 저작권을 모두 신탁하기에 소송 제기할 권한조차 없어
등록 2013-09-12 14:47 수정 2020-05-03 04:27

결코 뜸하게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끔씩 ‘누가 누구 노래를 표절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런 소식에 등장하는 노래들은 대부분 유명세를 탔거나 적어도 유명 가수와 작곡가가 관련된 것이라서 잔상이 오래 남는다. 자기 곡을 표절당한 작곡가가 억울한 건 당연한 노릇이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가해자 쪽 가수’까지 피해를 입는데도, 희한하게 ‘가해자 작곡가’는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표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대중은 논란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보니 이제는 표절이 분명해 보이는 때도 ‘가해자’가 당당하게 버티는 경우가 흔해졌고, 바야흐로 누가 ‘도둑’인지 ‘도둑맞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누가 도둑인지 도둑맞은 사람인지

올해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올 초에는 라는 노래에 관한 항소심 판결과 이에 대해 억울해하는 당사자의 호소가 며칠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신인 가수의 자작곡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사건은 당사자가 상고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음악저작권침해에 관한 기념비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는 하고 있다. 하지만 판결이 나온다 해도 계속되는 표절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원래 이용 가능한 소재에 한계가 있어 비슷한 느낌의 곡이 나올 수 있는 것이 대중음악의 특성이기도 하거니와 실은 침해당한 권리를 구제하거나 되찾기가 너무 수고로운 현실이 권리자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 누리집 갈무리

선덜랜드 누리집 갈무리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2000년 이후 발표된 곡 중 표절 판결을 받았거나 표절 논란이 불거진 대중가요 20곡에 지급한 저작권료가 20여억원에 달한다고 국회에 보고를 한 적이 있었다. 논란만 있었던 곡은 그렇다 치고, 판결까지 내려진 곡에 저작권료가 지급됐다? 아마 실상을 알게 되면 허탈할 것이다.

필자는 이 20곡 중에서 저작권침해로 판결이 내려진 사건을 2006년에 담당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어떤 가수(피처링을 주로 이용했기에 랩을 주로 하는 뮤지션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까?)의 곡 가 ‘그룹 더더’가 부른 (It’s You)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사건이다. 내가 대리한 의 작곡가는 유명 싱어송라이터였다.

당시 당사자들은 가수가 아닌 작곡가들로 모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가입해 음악저작권을 협회에 신탁한 상태였다. 필자는 우선 협회에 회원의 저작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통지하고 대응을 요구했다. 저작권침해를 확신한 변호사의 대응으로는 안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협회에 대한 요구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협회에 저작권을 신탁한 회원에게는 신탁 약관상 저작재산권을 행사할 아무런 권한이, 심지어 침해자를 상대로 저작재산권침해 소송을 제기할 권한조차 없었다. 그 권리는 모두 협회에 유보된 것으로 저작재산권에 관해서는 협회가 권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리자인 협회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데도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로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상대방도 회원이어서였다. 그러면서 협회는 판결을 받아와야 움직일 수 있다고 거꾸로 요구했다. 저작권에는 재산의 성격과 인격의 성격이 있는데, 협회에 맡긴 것은 ‘재산’ 부분만이므로 ‘인격’ 부분을 침해했다며 협회에 저작인격권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서 그 전제 사실로 저작재산권침해를 다툴 수밖에 없었다. 소(訴)제기권까지 포함해 권리는 전부 신탁됐으나 침해 구제는 수탁기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야 하는 현실이 표절이 계속되는 배경일지도 모른다.

지난한 과정, 미약한 결실

재판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다. 최초 배당된 단독판사 재판부에서는 제대로 된 변론이 진행되지 못한 채 인사 이동 기간을 통과해야 했고, 새로 부임한 재판장은 결국 합의부로 사건을 이송하고야 말았다. 다행히 사건이 이송된 전담 합의부에서는 변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멜로디, 화성·코드, 리듬의 유사성에 대한 치열한 공방과 더불어 실용음악부 교수들의 전문적인 감정, 사실 조회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문제의 곡들을 직접 들어보는 검증까지 이루어졌다. 검증을 위해 양 곡의 유사 부분을 청취할 수 있는 여러 버전을 준비해서 갔다. 우선 조를 맞춘 뒤 각 곡을 따로 녹음한 버전, 겹쳐서 녹음한 버전, 가사를 생략한 버전, 피아노로만 연주한 버전, 허밍으로 노래한 버전 등을 준비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음악저작권침해에 관한 판결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 ‘ 판결’이 나오게 되었다. 손해배상액은 1천만원. 이 판결은 음악저작물의 실질적 유사성 판단, 즉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처음 제시했고, 여기에 적용된 논리가 이후 나온 몇 건의 침해 사건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고 ‘인격’ 부분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중대한 침해의 배상치고는 규모가 지나치게 작았다. 침해를 입증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이에 비해 미약한 결실, 이것이 표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침해자의 어두운 뒷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해당 곡의 후렴구에 대한 침해 판결을 받아 협회에 제출했으나, 일찍이 판결을 받아오라고 했던 협회는 해당 판결은 인격에 관한 것일 뿐 재산에 관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협회에서 저작자에게 지급하는 저작권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니 침해자와 합의를 해오라는 참으로 허탈한 요구를 했다. 협회에 유보된 권리를 스스로 행사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인격권침해 판결을 받아온 마당에, 그 판결문 안에는 저작재산권침해의 내용과 위치, 분량이 구체적으로 모두 적시돼 있는 터에, 협회는 이제 막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감정의 대립이 극한까지 다다랐던 상대방과 합의를 해와야 저작권료를 지급할 수 있다고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외국과 달리 일부 표절의 효과를 곡 전부에 미치게 하지 않는 것이 나름 근거가 있는 논리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작권료 지급에 관해(결국 저작재산권에 관한 것이다) 합의를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저작재산권에 관한 재판을 당사자들끼리 다시 해보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대방과 합의해 문제의 표절곡에 대한 저작권료는 양쪽에 따로 지급되고 있다(아이러니하게도 공동저작자로서 말이다). 그 결과 2010년의 통계와 같은 기이한 현황이 나오게 된 것이다.

표절자와 피해자가 나란히 공동저작자

2006년의 판결 이후에도 필자는 화제가 된 몇 건의 표절 논란에 대해 자문을 해준 적이 있으나 소송에까지 이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멀고 먼 구제의 길 때문이고, 들어간 공력에 비해 턱없이 과소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권리자들이 이런 현실에 먼저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13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표절 권하는(?) 사회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남상철 변호사·법무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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