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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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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인수씨는 왜 난민이 됐나

병역거부 성소수자로 살아온 한 평화주의자의 버거운 30년…
관광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 들어가 난민 신청 5개월 만에 자격 인정
등록 2013-07-23 03:56 수정 2020-05-02 19:27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인수(34·가명)씨는 이제, 난민으로 불린다.
두 달 전인 4월23일,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RRT)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지난해 12월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지 5개월 만이다.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정치적 견해·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등을 이유로 국적국에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 김인수(가명)씨.김인수 제공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 김인수(가명)씨.김인수 제공

인수씨는 동성애자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도 했다. 난민재심재판소는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지난 5월, 인수씨는 다섯 달 넘게 억류돼 있던 시드니 난민수용소에서 풀려났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체류할 수 있는 영주권을 얻었지만, 무국적 상태다. 새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왜 이런 길을 택한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인수씨와 전화 연락이 닿았다. 수화기 너머로 옛 기억을 더듬던 목소리에는 간혹 설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10년 전 어느 날, 인수씨는 구치소에 있었다. 평화주의자인 그는 군 입대를 원하지 않았다.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병역법 제88조 1항 1호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 안에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았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됐다. 또 다른 구치소 수감자들로부터 ‘도대체 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거냐’는 타박을 들었다.

10년 전 구치소서 들었던 “군대 왜 안 가?”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재판 과정에서 병역거부를 포기한다. 병역거부를 고집했다면 옥살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장을 다시 받아들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군 입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위계적인 군대에서 동성애자 군인들은 이성애자인 것처럼, 숨죽여 살아야 한다. 인수씨는 진단서 등을 군에 제출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지만 군 복무는 계속됐다. 그렇게 ‘관심 사병’이 되니, 총을 잡는 건 최대한 피할 수 있었다.

인수씨는 폭력이 싫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10대 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체벌을 가하는 학교가 공포스러웠다. 고교 시절엔 학생 인권운동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다 학교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집은 그에게 울타리가 돼주지 못했다. 보수적인 아버지와는 소통이 힘들었다.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를 가볼 기회가 생기면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우가 다르니까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징병제를 실시하는 오스트리아·핀란드 등 6개국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한국을 떠날 수 있는 방법 중엔 이민도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나라로 이민을 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영어 능력, 직업 경력이 있어야 해요. 제 경우엔 이민을 갈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았어요.”

경제적·기술적 능력이 없는 외국인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나라는 드물다. 오스트레일리아 이민부는 인수씨가 망명을 신청하자, 발급해준 관광비자가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취소했다. 입국이 거부된 그는 난민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 생활은 끔찍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보호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한국과 비슷한 문화를 지닌 아시아권 사람들로부터 성적인 모욕을 듣기도 했어요. 평소 앓고 있는 질환에 시달려 약을 복용하기 위해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대응이 없더라고요. 항의를 했더니 환경이 더욱 열악한 방으로 옮겨버렸어요.” 수용소에서 그는 탈북자들과 불법 체류 사실이 적발된 한국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의아해했다. 한 베트남인은 그에게 물었다. “(한국인인) 네가 여기 왜 있는 거니?”

인수씨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게 된 사유는 복합적이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증명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난민재심재판소가 발급한 난민 인정 결정문을 보면, 북한 대남기구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글을 트위터에서 리트윗(RT)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논란이 된 박정근씨 사건이 언급돼 있다. 동성애자 차별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우 문제 외에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상황이라는 인수씨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박씨의 기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 대남기구 글을 트위터에서 리트윗한 적이 있다. 앞서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곧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수용소에서 수많은 난민·이주민을 만나면서, 국경이라는 울타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와도 경제적 난민은 난민으로 받아주지 않아요. 전세계 부의 불균형 문제나 국경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일단은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돈을 모은 다음에 노르웨이로 건너가고 싶어요. 그 나라엔 박노자 교수님이 계시니까. 지금의 제 로망이에요, 로망.”

난민수용소의 베트남 동료 “한국인이 여기 왜?”

양심적 병역거부·동성애자 차별을 이유로 난민의 삶을 택한 한국인은 인수씨가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당시 28살이던 김아무개씨는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IRB)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캐나다에 입국한 지 3년 만이었다. 평화주의 신념을 지키고, 동성애자로서 군대에서 겪을 인권침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김영식 판사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21)씨가 신청한 병역법 제88조 1항 1호에 대한 위헌 여부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어느덧 아홉 번째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위헌심판제청이다. 2004년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합헌 판결을 하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했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9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지난 6월 펴낸 자료를 보면, 전세계에서 종교·신념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교도소에 갇힌 이들 중 90% 이상은 한국인이다. 국내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는 7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인수씨가 떠나간 2013년 한국의 현실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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