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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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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또 하나의 코즈모폴리스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아시나요… 들어서면 이방인 아닌 주민 되는 마을에 가다
등록 2013-07-19 02:24 수정 2020-05-02 19:27
남산 아래 펼쳐진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에 사는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주민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산 아래 펼쳐진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에 사는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비로소 이방인이 아닌 주민이 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골목에는 유난히 햄버거 가게가 많다. 밤이 되면 영국식 펍에 맥주잔을 손에 쥔 사람들이 북적인다. 한 무리의 나이지리아인들이 맥주캔을 손에 쥐고 편의점 앞을 점거했다. 피자를 파는 집은 그날 아주 중요한 승부인 듯 오스트레일리아 풋볼 경기 중계를 벽에 걸어놓은 TV마다 틀어놨다. 이런 이야기가 손님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는 식당도 있다. 샌드위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그 식당은 모로코에서 온 두 형제가 운영하는데, 요리 솜씨는 본국에서 기사식당을 했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란다. 샌드위치 가게는 저녁 어스름 문을 열어 그날 재료가 떨어지면 곧장 문을 닫아버린다. 커다란 오믈렛을 내놓는 브런치 식당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손에 지도를 들고 찾아온다.

여기는 해방촌. 어디서는 요즘 ‘뜨는’ 거리라 하고, ‘패션피플이 밤과 주말이면 모여드는 핫스트리트’라고도 한다. 짧은 골목 안에 다양한 국적의 식당이 몰려 있어 ‘리틀 이태원’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올봄에는 이태원 일대에서 계절마다 열리는 맥주 축제가 해방촌과 경리단길 인근에서 펼쳐졌고, 매년 봄·가을에는 이름 없는 밴드들이 모여 록페스티벌을 연다. 유명하지 않다고 해서 심드렁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작은 동네가 북적이는 날이다.

새로운 문화에 개의치 않는 공기

하지만 가이드북 한 장, 잡지 한 쪽, 블로거의 맛집 포스팅이 말해주는 것 말고도 이 동네에는 가지가지 펼쳐진 골목만큼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여타 동네와 다르게 입구를 통하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는 동네, 고여 있는 시간 사이로 언제나 새로운 문화가 치고 들어온 동네, 폐쇄적이지만 끊임없이 이주의 역사를 받아들인 동네, 그곳이 해방촌이다.

주소지상으로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를 해방촌이라고 부른다. 해방촌은 1950년대 피란민들이 남산의 배를 가르고 만든 동네다. 전쟁 직후 미군부대가 들어와 미군과 한국 주민들이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적당히 모른 체하거나 혹은 때때로 의지하며 지내온 동네다. 2013년 6월 현재 용산구청에 등록된 용산2가동 주민 수는 1만2648명, 등록 외국인 수는 1065명이다. 거칠게 말해 12 대 1 정도의 비율로 한국을 국적으로 둔 이와 아닌 이들이 섞여 있다는 말이다. 해방촌에 사는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동네는 서울에서 10년 이상 산 외국인을 찾기 가장 쉬운 동네라고 한다. 동네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미군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지내다보니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다른 곳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 여전히 다양한 국적의 문화가 넘실대는 이유는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 공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산 지 2년6개월째라는 초등학교 영어교사 윌리엄 폴은 “해방촌 언덕 위쪽, 오거리 인근에 처음 온 날 바로 동네의 끈끈한 분위기에 반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해방촌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뉜다. 특별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새로운 가게가 많이 들어서는 녹사평역 쪽으로 난 길과 그 인근을 아랫동네라 하고, 오래된 번화가인 해방촌 오거리 인근을 윗동네라 부른다. 윌리엄은 “소란스런 서울에서 몰래 숨겨놓은 듯 편안하고 작은 마을 같은 이곳”이 그는 마음에 쏙 들었다. 2년 넘게 살면서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지내는 이곳의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윌리엄은 해방촌의 역사적 유래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을 정도로 동네에 대한 애정이 깊다. “거대하고 지루한 모양새의 아파트촌이 없다”는 점도 그가 매료된 점이다.

윌리엄은 동네의 정취에 반해 해방촌에 머물게 됐다고 말하지만, 이 동네에 오래도록 외국인들이 드나들면서 닦아놓은 기반이 편리하기에 이곳을 떠날 수 없기도 하다. 윌리엄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해방촌에 모이는 이유로 “이미 이곳에 외국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한국 슈퍼마켓에서 팔지 않는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친구들이 모여드는 익숙한 분위기의 술집이 있고, 입에 맞는 식당 같은 곳들. 아마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꼽는 평범한 이유일 것이다.

남산 인근서 텃밭 가꾸는 미국인

애초 작은 땅을 차지하고 앉은 해방촌의 집들은 길 건너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있는, 외국인 렌트를 전문으로 하는 단독주택이나 빌라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미군이 경기도 평택 등지로 많이 떠난 뒤에도 해방촌에 외국인 인구가 꾸준히 유입된 이유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다. 영어강사, 모델, 상인 등 평범한 소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해방촌에서 식당 ‘헝그리 도그’를 운영하는 김미정씨는 “육교 건너 경리단길 쪽으로 이사한 친구들이 놀러와서 큰길을 사이에 두고 이곳은 강북, 저쪽은 강남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사실 비슷한 연식의 집이라면 월세가 크게 차이 나진 않지만 상권이 더 번화하고 편리해 그런 얘기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저분한 이 동네에 더 이상 놀러오지 않겠다”고 농담하면서도 이들은 해방촌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인근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온 저스틴 폴라드는 해방촌 꼭대기 남산 인근에서 텃밭을 가꾼다. 지속 가능한 농업과 에너지 문제 등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저스틴의 직업은 영어강사다. 처음 한국에 와서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회의가 많이 들었다. 한국말이 꽤 능숙한 저스틴은 만나자마자 직업인으로서의 고민을 쏟아냈다. “돈을 따라 형성되는 학원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진짜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민이 많았다는 저스틴은 최근 어른들을 위한 수업을 맡았다. 어른들은 자기가 돈을 내고, 수업에서 원하는 것도 확실하기 때문에 마음이 덜 복잡하단다.

그는 생활인으로서의 스트레스를 농사를 지으며 해소한다. 요즘 그의 일상은 절반은 영어강사로, 절반은 도시 농부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기자와 만나기 전날에도 경기도 파주에서 텃밭을 하는 사람을 만나 한국의 기후와 토질 등에 대해 지식을 전달받았다. 전날 만난 사람과의 대화를 이야기하던 저스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거 알아요? 무당벌레가 농사짓는 데 좋은 벌레일까요, 아닐까요? 미국에서는 무당벌레 좋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작물을 해치는 무당벌레도 있다면서요?” 진딧물 대신 작물의 잎을 갉아먹는 28점무당벌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저스틴에게 ‘빅뉴스’다.

진입하는 입구(가운데 사진)가 따로 있는 ‘고여 있는’ 동네 해방촌은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다.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때때로 동네 입구의 벽에는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이 그림(세 번째 사진)은 동네에서 한 차례 갑론을박 논쟁을 일으킨 뒤 지금은 사라졌다.

진입하는 입구(가운데 사진)가 따로 있는 ‘고여 있는’ 동네 해방촌은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다.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때때로 동네 입구의 벽에는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이 그림(세 번째 사진)은 동네에서 한 차례 갑론을박 논쟁을 일으킨 뒤 지금은 사라졌다.

저스틴이 ‘공동체 텃밭’이라고 부르는 땅에서 친구들과 하는 일은 일종의 게릴라 가드닝이다. 황폐한 공유지를 개간해 꽃을 심고 작물을 키운다. 지난해부터 노들섬, 우면산에서 텃밭을 가꾸는 등 도시 농작에 관심을 기울여온 그는 올봄 남산 한 귀퉁이에서 쓰레기에 덮인 채 버려진 땅을 발견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며칠에 걸쳐 개간했다. “잡초를 뽑고 쓰레기와 소주병을 치우고, 그 아래 나타난 죽은 대나무밭의 잔재를 치우기까지 한참이 걸렸다”며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4월 말 시작한 텃밭은 이제 제법 모양을 갖춰 최근에는 거기서 키운 작물을 뽑아 샐러드 파티도 열었다. 공동체 텃밭이 자리를 잡은 뒤 한숨 돌린 저스틴은 요즘 맥주 만들기 수업을 듣고, 도시 양봉도 배우고 있다. 벌침에 알레르기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벌에 쏘여도 처음보다는 덜 붓는다며 웃는다.

더불어 요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옥상텃밭이다. 이른바 ‘옥상 셰어링’을 고민 중이다. “해방촌에는 정말 많은 옥상이 있다. 집주인에게 (유지·관리를 위한) 약간의 돈을 내고 옥상텃밭을 나눠쓰면 어떨까.” 해방촌에 살면서도 원주민들과 “어쩔 수 없이 구분되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가드닝을 통해 세대·국적 간 장벽을 허물어보고 싶다. 요즘은 텃밭에 갈 때마다 만나는 어른들이 알은체를 해줘 어쩌면 자신의 바람이 실현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스틴은 농사짓는 땅이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아닌 것에 개의치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적당한 타이밍”이므로 그는 옥탑에 올라가 흙을 다지고 남산 텃밭에 씨를 뿌린다.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권 국가 출신 주민들처럼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축제를 벌이지는 않지만, 해방촌에 사는 외국인 인구 중 세 번째를 차지한다. 용산구청 민원여권과에 따르면, 해방촌 외국인 인구 상위 5개국은 미국, 나이지리아, 필리핀, 캐나다, 영국 순이라고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주로 필리핀 슈퍼마켓 ‘피노이 마트’와 식당 ‘쿠시나’에 모인다.

불쑥 식당 쿠시나에 찾아든 기자에게 주인 다이나 마가트는 자몽과 여러 과일을 섞었다는 필리핀식 주스를 내줬다. 다이나는 식당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예선에 나갈 아들 아세이아가 부를 곡을 고르고 있었다. 벽에 걸린 TV의 노래방 화면에는 가수 이승철이 부른 노래 제목이 떠 있었다. 이승철의 노래가 아들의 음색과 어울려 그중에서 골라야겠는데, 하필이면 음반을 워낙 여러 장 낸 가수다보니 선택지가 많아 곤란한 모양이었다. 용암초등학교 6학년에 다닌다는 아세이아의 사진을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보여주면서 다이나는 옆에 앉은 지인과 “아무래도 댄스가 약간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며 비트 있는 노래 위주로 번호를 메모했다.
다이나는 2006년부터 해방촌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 ‘쿠시나’와 여행사 ‘필트러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 또한 필리핀 사람이지만 이들은 아직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식당과 여행사를 운영하기 전 필리핀대사관에서 비서로 오래 일했다는 다이나는 올해로 한국살이 18년째다. “한국 생활이 편리하고 좋다. 이제는 제2의 고향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해방촌의 시간은 이렇게 대체로 평화롭게 흘러가지만 생활은 때때로 고되기도 하다. 해방촌성당 인근에서 ‘아름드리꽃집’을 운영하는 박용춘씨는 얼마 전 동네에 사는 무슬림 청년이 겪은 일을 전했다. 한국에서 모델 일을 하던 청년이 어느 날 박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모델료도 제대로 못 받고 돈을 떼이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이제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작은 장사를 하고 싶은데 못 받은 모델료가 억울했던 것이다. 박씨가 대신 경찰에 민원을 넣어줘서 청년은 급료를 제대로 받았다고 한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상점 주인으로, 때로는 악덕 고용주에게 급여를 떼이는 노동자로… 사실 해방촌은 한 겹만 벗겨봐도 ‘떠오르는 거리’도, 다국적 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도 아닌, 그저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 가속화 우려도
한국에서 4년간 유학한 뒤 지금은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간 독일인 마티어스 레먼은 해방촌 동네잡지 에 이런 말을 썼다. “해방촌으로 오기 전, 이미 3년 반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사실 완전히 처음 온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방촌에서 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다른 곳에선 이방인이었지만 해방촌에서는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주로 대학생이나 교수들만 알았던 데 비해 이제는 지역 주민도 만나게 되었다. 이는 내가 단지 방문자이기보다는 한국의 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의 시간이 지금처럼 천천히 흐르기를 바란다. 주말마다 해방촌에 와서 아마추어 밴드 연습을 한다는 멕시코 태생의 한 미국인은 “이 동네가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자신을 이방인이 아닌 주민으로 대하는 이 동네가 마치 특별한 것처럼 포장되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다. 동네 잡지 을 만드는 해방촌에서의 삶 8년차 배영욱씨는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외부로 동네를 알리는 일련의 행위들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낙후된 지역에 새 집단이 이주해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가속화해 애초에 이 동네에 들어온 사람들을 떠나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발 들어서면 이방인이 아닌 주민이 되는 이상한 동네, 우리는 해방촌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HBC라고 약칭하는 동네. 도시의 욕망을 상징하는 높고 큰 남산타워 아래에 역설적으로 펼쳐진 낡고 작은 동네에 깃든 보통의 우리 이웃은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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