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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상처받은 이들의 인정욕망

등록 2013-06-06 18:46 수정 2020-05-03 04:27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논란이 되면서 일베 현상에 대한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일베 현상의 핵심은 ‘일베를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인데 그동안 나온 분석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렇다. 다수의 ‘룸펜 프롤레타리아’에 소수의 룸펜 부르주아와 일탈적 테크노크라트가 가세하고 있다는 분석(표창원), 중간계급이나 몰락한 중산층 혹은 그 자녀라는 가설(박권일),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남성이 다수라는 추론() 등이다. 물론 이런 가설에 대해 일부 일베 이용자들은 이른바 ‘학력 인증 대란’을 일으키며 반발하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파시즘 닮아가는 일베 현상

어쨌든 그간 나온 분석을 정리하면 일베 이용자가 주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룸펜이라는 것인데 이는 상당한 함축을 지닌다. 여기에서 룸펜이라는 계급성 못지않게 청년이라는 세대성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교육제도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미성숙한 청년 시기의 일탈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여기에 불안정 심화라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가세함은 물론이다.

지금 청년의 상당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 유학,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수직서열화된 교육체제에서 일찍이 ‘낙오’를 경험한 세대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일베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있다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치료제조차 주지 않는 한국 사회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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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들은 일베를 하는가? 결국 상처 때문일 것이다. 강자와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약자에 대한 폭력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베 현상은 파시즘과 상당히 유사하다. 에리히 프롬은 파시즘에 대해 고독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개인들이 강자에게 도피하는 것으로, 빌헬름 라이히는 약자에게는 군림하려 하고 강자에게는 굴종하려는 대중의 권위주의적 성격 구조로 설명한 바 있다.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독점화 과정에서 독일의 중간계급 대중은 몰락해갔고, 그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강자에 대한 무한한 복종과 약자에 대한 거친 폭력으로 보상받으려 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박사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 및 친밀감에 대한 강한 갈구’가 일베의 주요 동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보다 넷우익 사정이 심각한 일본의 상황은 일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시사적이다. 일본의 르포작가 야스다 고이치가 쓴 에 따르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등 일본 넷우익들의 존재 이유 역시 인정욕망에 있다. “솔직히 우리는 부모에게도, 세상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활동할 때 동지들은 반드시 저를 인정해주었어요”라는 재특회 회원의 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인정욕망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경제적 존재만은 아니다. 정말 돈만 있다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존감은 생존의 필수적 요소다.

어찌 일베충에게만 돌을 던지랴

그러니까 일베는 일자리도, 미래의 희망도, 그럴듯한 삶의 의미도 주지 못하는 사회,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상처 입은 젊은이들이 존재 증명과 상호 인정을 위해 결집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그래도 노력만 한다면 일간베스트로 올라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냥 증오의 욕설만 뱉는다 해도 속은 좀 풀리기 마련이고, ‘눈팅’만 한다 해도 좋은 것이다. 그게 서로를 인정해주는 공간의 힘인 법이다. 이렇듯 토양과 시스템이 문제인데 토양을 고치지 않고 어찌 일베 이용자 개인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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