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지영이 쓴 에서 정윤수는 여자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수술비 300만원을 구하려고 한 술집 여인의 집에 찾아갔을 뿐이다. 함께 갔던 선배가 술집 여인과 그의 딸, 파출부를 죽였고 윤수는 돈을 훔쳐 달아났다(영화에서는 윤수가 파출부를 살해한 것으로 그려진다). 주범은 변호사를 사서 그가 한 일을 윤수가 한 것처럼, 윤수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꾸민다. 국선변호인에게서조차 외면받은 윤수는 주범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다.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1994년 10월6일 서울구치소 사형장에서 이필완(당시 41살)씨는 큰소리로 외쳤다. “주범이 자기 자신이 죽였다고 했고, 나는 안 죽였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법은 개판이다. 돈이 없으면 안 했어도 죽인다.” 그는 강간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였다. 당시 형 집행을 지켜본 문장식(78) 목사는 “그의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며 “오판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1983년 법무부가 ‘종교위원’(현 교화위원)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부터 23년간 서울구치소에서 60명의 사형 집행에 입회했다. “사형장에서는 거짓말이 없다. 죽는 순간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해봐야 형 집행이 중단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형수가 13명이나 됐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문 목사는 를 펴냈다.
1985년 8월30일 사형당한 최은수(당시 30살)씨는 현직 경찰관이었다. 농협 직원 2명을 살해한 강도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끝까지 억울함을 주장했다. 1991년 12월17일 형이 집행된 윤도영(당시 38살)씨는 폭행치사를 주장했다. 여자친구의 오빠와 다투다 얼굴을 때렸고 그가 쓰러지면서 깨진 항아리에 머리가 찔려 사망했는데 검사가 살인죄로 기소했다. 문 목사는 “검찰은 계획살인이라고 하면서도 살해 도구라는 삽을 증거물로도 제시하지 못했다. 윤도영은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은 것이 억울해 항소했는데 항소심에서 삽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재판장과 언쟁을 했다.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집행 며칠 앞두고 재심 받은 사형수미국에서는 무고함이 밝혀진 사형수가 잇따라 풀려나고 있다. 2013년 4월 현재까지 DNA 검사로 305명이 면죄를 받았는데 그중 18명이 사형수였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논픽션 실명소설 에 나오는 론 윌리엄스가 그랬다. 촉망받는 고교 야구선수였던 론은 졸업 뒤 마이너리그 야구팀에 입단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산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젊은 여자를 살해한 용의자로 몰렸고 경찰의 강압수사 끝에 허위 자백한다. 정황증거와 거짓 증언, 부정확한 모발 분석, 부실한 국선변호 탓에 그는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 집행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오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비영리 공익단체 ‘결백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가 재심을 청구한다. 사형 집행을 며칠 앞두고 주법원은 론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다. 재심에서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유전자가 론의 유전자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사형 선고를 받은 지 12년 만에 풀려난다.
“사형 집행 뒤에 무고함이 드러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사법살인’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문장식 목사가 반문했다. 2012년 12월 현재 사형 확정자는 60명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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