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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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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말고 탈핵

박근혜 정권에서는 핵발전 확대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10만 명의 탈핵 시민’ 모여 ‘탈핵기본법’ 제정 촉구 등, 시민들이 행동해 국가적 변화 앞당겨야
등록 2012-12-28 02:27 수정 2020-05-02 19:27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을 보면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같은 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에 대해서도 ‘테스트를 한 뒤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돼 있다.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서도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것을 전제로 재검토하겠다’는 태도다.
매우 소극적이고, 사실상 핵발전(원전) 확대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어차피 원전 마피아들이 수행할 ‘테스트’에서 ‘노후 원전은 위험하니 폐쇄하라’는 결정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돼야 신규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것은 그냥 원전을 짓겠다는 얘기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초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 이후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지붕을 이용한 태양광발전 등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을 모색해왔고 100% 에너지 자립을 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초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 이후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지붕을 이용한 태양광발전 등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을 모색해왔고 100% 에너지 자립을 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

“테스트 결과…” “다른 에너지원 확보돼야…”

당장 내년 초에 3기의 원전(신고리 3·4호기, 신월성 2호기)이 새로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23기인 원전은 26기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말 탈핵을 이룰 희망이 없는가?

프랑스의 노지식인 스테판 에셀은 “절망이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분노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과 방사능의 위협에서 벗어나려 해도 마찬가지다. 절망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핵발전의 진실에 대해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민 1만 명이 있으면 탈핵은 가능하다. 1만 명의 탈핵 전도사가 있다면 여론을 바꿀 수 있다. 또한 핵발전에 반대하는 행동에 참여할 10만 명이 있으면 탈핵은 가능하다. 이런 시민들이 있으면 정치에서 ‘탈핵’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렇게 동심원처럼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인도의 간디가 영국의 악법에 저항하는 행진을 시작했을 때 불과 70명이 함께했지만, 행진이 끝날 때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그런 힘이 영국의 부당한 지배를 극복하게 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지역의 변화다.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완전히 폐쇄하기로 한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독일에서는 국가 차원의 탈핵 결정을 하기 이전부터 지역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을 모색해왔다. 환경수도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초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난 뒤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지붕을 이용해서 태양광발전을 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지자체 차원에서 실시해왔다. 앞으로는 100% 에너지 자립을 하는 도시로 나아가려 한다. 이런 지역 차원의 에너지 전환 노력이 바탕이 될 때 국가적인 탈핵도 힘을 받을 수 있다.

독일 2002년 ‘원자력법’ 개정 뒤

우리나라에서도 46개 지방자치단체가 탈핵·에너지 전환을 선언했다. 서울시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원전 1개 줄이기’를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남 순천시에서는 핵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공부한 시민들이 제안해서 탈핵·에너지 전환 도시를 선포했다.

국가 차원의 탈핵을 위해서는 핵발전 확대냐 탈핵이냐를 판가름짓는 결정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제안된 게 ‘탈핵 및 에너지전환 기본법’(탈핵기본법)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원전 관련 법률과 정부 계획, 예산은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짜여 있다. 원자력진흥법이 대표적인 예다. 법률의 명칭에서 드러나듯 우리나라는 ‘원자력 진흥’이 공식적인 방침이다.

정부가 수립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원전 확대가 기본 방향으로 설정돼 있다. 전기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행 32%에서 59%로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다. 매년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이 원전 관련 연구·개발에 쓰이고 있다.

따라서 탈핵을 위해서는 법·제도와 정부 계획, 예산 구조를 대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원자력진흥법 같은 법률을 폐지하고, 탈핵을 위한 결정적인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탈핵기본법이다.

현재 녹색당 등이 제안하고 있는 법률안의 내용은 단순명쾌하다. 우선 노후 원전은 폐쇄하고 신규 원전은 건설을 중단시켜 2030년까지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자는 것이다. 기존 국가계획도 탈핵 방향으로 전면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전을 줄이는 대신 전기 수요를 관리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탈핵 과정을 전체적으로 통제·관리할 국가기구로 ‘탈핵 및 에너지전환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탈핵기본법이 제정되면, 원전 확대로 일관해온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탈핵으로 큰 물줄기를 바꾸게 된다.

탈핵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에도 이런 식의 큰 변화가 있었다. 독일에서는 탈핵을 하기로 결정하며 2002년 ‘원자력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원자력법에는 원전 신규 건설을 금지하고 기존 원전의 수명을 32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0년 이 법을 재개정해서 17기 원전의 수명을 연장했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나자 다시 원상회복됐다. 또한 2000년에는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해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주기로 했다. 이는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되는 전력량의 폭증을 가져왔다. 2000년 전체 전기의 6.4%에 불과하던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이 2011년에는 20%를 넘어섰다. 그와 함께 36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올해 총선·대선의 결과는 탈핵기본법이 언제쯤 제정될 수 있을지 한숨을 쉬게 만든다. 그러나 탈핵이라는 큰 결정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이 법률을 추진해야 한다. 서명도 하고, 정부에 항의도 하고, 국회에 압력 행사도 해야 한다.

독일의 탈핵 결정이 있기까지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행동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집회가 열렸으며, 여러 번의 선거가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탈핵이 된 것이다. 지금부터 탈핵기본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이미 탈핵기본법 제정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www.nonuke.or.kr)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작은 행동에서부터 큰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막무가내 절전 요구 대신 정책을

내가 사는 지역부터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지역으로 바꿔나가자. 지역에서부터 전기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채택하게 만들자.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도 지역에서부터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형식적인 절전 캠페인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막무가내로 절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을 교육하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가정에서의 절전을 지원하는 것도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지역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시민들의 행동이 확산되고 탈핵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지역이 늘어날 때 국가적인 변화도 앞당겨질 수 있다. 이제 믿을 것은 풀뿌리뿐이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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