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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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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돼지 소송’

육류 소비는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먹는 것…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 공장식 축산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소송 추진해
등록 2012-12-15 01:20 수정 2020-05-03 04:27

12월4일 언론에 속보가 하나 떴다. 경북 청도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소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밀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 뉴스는 2년 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2010년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된 구제역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량살상 사태를 낳았다. 348만 마리의 소와 돼지 등이 ‘살처분’이라는 이름하에 생매장 등의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조류독감으로 인해 627만 마리의 닭과 오리도 목숨을 잃었다. 짧은 시간 동안 1천만 마리에 가까운 생명이 사라진 것이다.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살찌우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조류독감, 구제역 등의 질병이 쉽게 창궐한다. 돼지 축사에서 소독 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살찌우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조류독감, 구제역 등의 질병이 쉽게 창궐한다. 돼지 축사에서 소독 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닭·돼지·소의 아우슈비츠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잊어버린 사람이 많듯이, 1천만 마리가량의 생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잊혀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고기를 찾고 있다. 소·돼지의 사육 수는 구제역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의 소·돼지 사육 규모는 소 356만 마리, 돼지 993만 마리에 달했다. 과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도 되는 것일까?

외식을 하려고 식당을 찾아보면 눈에 띄는 것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요리해서 파는 식당들이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는 온갖 모임과 회식이 거치는 정규 코스가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1970년 한 해 동안 1인당 5.2kg의 고기를 먹었으나, 2010년에는 1인당 41.1kg의 고기를 먹게 되었다.

이 고기의 대부분은 공장식 축산을 통해 공급된다. ‘공장식 축산’이란 생산량을 최대화하려고 비좁은 공간에 동물들을 가둬놓고 최대한 고기와 달걀 등을 뽑아내는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국내의 공장식 축산을 통해 공급되기도 하지만, 외국의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고기를 수입하기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대부분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2010년 7월 기준으로 총 1억80만 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으며, 그중 85%가 공장식 축산을 통해 사육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은 비인도적ㆍ반환경적이다. 우리나라의 돼지 한 마리에게 허용된 사육 공간은 평균 1.4m²(0.43평)에 불과하다. 사육 규모가 커지면 공간은 더 좁아진다. 5천 마리 이상을 사육하는 대규모 농장에서 돼지 1마리에게 허용된 공간은 1.3m²(0.39평)에 불과하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는 것이 공장식 축산의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가 서로 상처를 입힐까봐, 태어나자마자 송곳니를 잘라내고 꼬리를 잘라낸다. 수퇘지는 노린내가 난다며 거세를 시킨다.

닭의 운명도 비극적이다. 닭의 자연수명은 20~30년이지만, 공장형 닭농장에서 사육되는 ‘육계’는 35일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이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는 빽빽하기 짝이 없는 ‘케이지’에서 사육된다. 여기에서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A4용지 한 장에도 못 미친다. 더 많은 달걀을 얻으려고 굶기기, 물 안 주기, 잠 안 재우기 같은 잔혹 행위도 이루어진다.

당뇨·전립선암·아동비만 증가의 원인

‘마블링’이 좋은 쇠고기를 얻으려면, 소를 비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곡물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여야 한다. 연한 송아지 고기를 얻으려고 송아지를 2.5m²(0.76평)짜리 어둡고 비좁은 사육상자에 가둬놓고 5개월 만에 죽인다.

한마디로 공장식 축산을 하는 농장의 동물들에게 농장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다름없다. 밀집해서 사육을 하다 보니 폐사율도 높다. 국내 돼지의 폐사율은 2009년 11.4%에 달했고, 그중 새끼돼지의 폐사율은 24.7%를 차지했다.

공장식 축산은 단지 동물의 생명과 건강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구제역, 조류독감 같은 질병이 창궐해 많은 피해를 낳는 것은 공장식 축산 때문이다. 밀집해서 사육하는 방식 때문에 이런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도 위협하는 광우병은 공장식 축산이 낳은 괴물이다. 공장식 축산을 하는 과정에서 소를 더 빨리 살찌우려고 동물의 사체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인 것이 광우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육류를 과다 섭취하는 것이 비만·고혈압·당뇨 등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1월27일 국회에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장식 축산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공장식 축산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한 ‘베지닥터’의 이의철 사무국장은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육류와 우유 등을 과다 섭취하는 것이 만성 질환과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의 증가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이 아시아 1위, 세계 4위에 달하는 것은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육류 소비의 증가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여성의 초경 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아동비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도 육류 소비 증가와 관련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6~11살 연령의 비만율은 1998년 5.8%에서 2010년 8.8%로 증가했고, 12~18살 연령의 비만율은 1998년 9.2%에서 2010년 12.7%로 증가했다.

공장식 축산은 지구환경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가축 분뇨는 땅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게다가 공장식 축산은 기후변화의 핵심적 원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자동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보다 공장식 축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18% 이상이 축산업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 등의 동물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도 문제고, 사료를 대량 재배하려고 열대우림을 불태우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먹는 고기를 얻으려고 지구를 점점 더 뜨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먹는 것이다.

그러면 ‘고기를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얘기는 아니다. 동물의 복지도 생각하고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줄이는 ‘동물복지 축산’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도 이 개념은 도입돼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여전히 공장식 축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축산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축산업을 더 대규모화하려고 한다. 또한 공장식 축산을 통해 나온 미국산 쇠고기 등을 무분별하게 수입하고 있다.

누구나 소송의 원고로 참여할 수 있어

물론 동물복지 축산을 할 경우에는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육류 가격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육류 섭취가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과연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이제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지식인·전문가와 녹색당,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가 공장식 축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소송 명칭은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이다. 말 그대로 공장식 축산을 줄여나가는 것이 동물의 생명도 존중하고, 인간의 건강도 지키며, 지구환경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www.4animalrights.org’에 들어가면 누구나 소송의 원고로 참여할 수 있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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