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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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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캠프, 5년 뒤로 폭탄 돌리시네

등록 2012-11-09 09:52 수정 2020-05-02 19:27
2012년 3월 현재 연소득의 6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는 가구가 56만9천 가구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00가구 중 12가구꼴이다. 이들은 주로 수도권에 사는 40∼50대 자영업자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상한선(60%)을 넘어서고 대출금이 보유 자산보다 많은, 사실상 ‘깡통 주택’ 소유자만 10만1천 가구로 나타났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3월 현재 연소득의 6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는 가구가 56만9천 가구로 집계됐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00가구 중 12가구꼴이다. 이들은 주로 수도권에 사는 40∼50대 자영업자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상한선(60%)을 넘어서고 대출금이 보유 자산보다 많은, 사실상 ‘깡통 주택’ 소유자만 10만1천 가구로 나타났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주택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채무 상환 능력이 낮은 차주들(빌린 쪽)에게 대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차주들은 대출 상환을 위해 주택 처분에 나설 수밖에 없어 주택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한국은행의 2012년 10월 금융안전보고서)

‘깡통 주택’ 10만1천만 명의 47조5천억원

2012년 6월 전국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과도하게 빚내어 집을 산 사람들이 빚을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로 내쫓길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주택을 담보로 잡고 빚을 내라고 부추겼던 금융기관이 이제는 빚을 갚으라고 재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맞벌이 부부 ㄱ씨는 2008년 경기도 과천의 5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그중 3억원은 은행에서 빌렸다. 은행이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집값의 60%까지 대출해주는 걸 활용했다. 대출 방식은 5년간 이자만 내고 나중에 한꺼번에 갚는 거다. ㄱ씨는 집값이 오르면 아파트를 팔아 대출금을 갚을 작정이었다.

문제는 집값이 내리막을 달린다는 거다. 아파트 가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고점(2008년 9월)에 비해 평균 6.9% 하락했다. 과거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지역의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더 크다. 서울 강남 개포주공1단지는 30.8%, 과천 주공8단지는 32.4%나 떨어졌다. ㄱ씨의 아파트 시가가 3억4천만원으로 떨어졌다. 매달 내던 은행 이자까지 더하면 4년 만에 2억여원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제 은행이 나선다. 집값이 3억4천만원으로 떨어졌으니 빌릴 수 있는 돈도 2억원(집값의 60%)으로 줄었다며 1억원을 당장 갚으란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를 압류하고 경매에 넘긴다고 한다. 4년간 은행 이자를 내느라 저축도 한 푼 못한 ㄱ씨는 연체이자 18%까지 떠안았다. 결국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았다. 그런 아파트가 쏟아지자 집값은 더 추락한다.

금융연구원이 지난 10월30일 발표한 ‘가계부채 미시구조 분석과 해법’을 보면, 2011년 3월 현재 연소득의 6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쓰는 가구가 56만9천 가구로 집계됐다.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100가구 중 12가구꼴이다. 이들은 주로 수도권에 사는 40대와 50대로, 자영업을 한다. 특히 이 가구들 가운데 주택담보 가치 대비 대출금 비율(LTV)이 상한선(60%)을 넘어서고 대출금이 보유 자산보다 많은, 사실상 ‘깡통 주택’ 소유자만 10만1천 가구로 집계됐다. 이들의 대출 규모는 47조5천억원이다.

ㄱ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만기 일시상환 대출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수도권 일부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져 LTV 규제 상한(60%)을 초과하는 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LTV 60% 초과 비중은 2009년 말 현재 11.6%에서 2012년 6월 말에는 17.9%로 상승했다. 이 가운데 ㄱ씨처럼 집값이 상승하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수년간 이자만 낸 주택담보 대출은 35조3천억원(전체의 11.5%)에 달한다. 집값이 급락한 현재 상황에서는 만기가 도래해도 원금 갚을 방법이 없는 ‘하우스푸어’들이다.

박, 현재의 위기를 5년 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며 각 대선 후보들이 하우스푸어 해법을 내놓았다. 출발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빨랐다. 9월23일 ‘집걱정 덜기 종합대책’에서 박 후보가 내놓은 핵심 공약은 ‘지분매각 제도’다. 대출로 허덕이는 집주인이 보유 주택의 일부 지분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에 팔아 은행 대출금을 일부 갚게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살던 집에서 임차인으로 한동안 거주할 수도 있다.

ㄱ씨의 경우 1억7천만원이 생긴다. 공공기관이 ‘주택 시세의 50%(1억7천만원)’나 ‘주택담보 대출금(3억원)’ 중 적은 금액만 지분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ㄱ씨의 아파트 50%를 소유하게 돼, ㄱ씨는 임대료(공공기관 지분의 6%)를 내야 한다. 하지만 주택담보 대출의 원리금이 절반으로 줄어 은행이자가 많이 줄어든다. 박 캠프는 “하우스푸어의 원리금 상환 부담금이 평균 60% 절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는 5년 뒤에는 도돌이표다. 공공기관에 1억2천만원을 돌려주고 주택 소유권을 찾아와야 하는데, ㄱ씨에게 그런 여력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집값이 오르면 추가로 빚을 내서라도 공공기관의 지분을 되찾겠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공공기관이 그의 아파트를 팔아 원금을 가져갈 것이다. 물론 은행도 남은 빚을 회수하는 ‘빚잔치’에 가담할 터다. ㄱ씨는 알거지가 되어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다. 결국 박 캠프의 공약이 성공하려면 부동산 거품이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이 제도를 실제로 이용할 대상자를 박 캠프는 3만 가구 정도 예상하고 있다. 재원은 3조원 정도. 부동산 시장에 의미 있는 효과를 끼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실제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에서는 유명무실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입했는데, 현재 1천가구 정도만 혜택을 입었다. 우리금융지주가 11월1일 시작한 ‘신탁 후 임대’ 방식도 700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신탁 후 임대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주택소유자가 우리은행 신탁 계정에 3∼5년 동안 집을 맡기고 임대료를 내는 제도로, 지분 매각 방식과 유사하다.

백주선 변호사는 “안일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문제가 해결되므로 현재의 문제를 5년간 미루자는 안일함이 배어 있다. 또 주택 가격이 상승할 전망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는 발상도 위험하다. 소득 능력에 따라 대출을 해준다는 금융의 기본원리를 망각한 채 마구잡이로 주택담보 대출을 늘린 은행들은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10월16일 ‘가계부채 대책’에서 금융권을 정조준했다.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아니라 채무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정책을 펴야 한다.” 구체적 대책으로는 고리 사채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이른바 ‘피에타 3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고리 사채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등장하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를 인용한 것이다. 핵심 내용은 △대출 적합성 기준과 설명 의무를 강화한 공정 대출법 제정 △대부업 이자율 상한을 현행 연 39%에서 25%로 내리는 이자제한법 개정 △과도한 채권추심을 막는 공정채권추심법 개정 등이다.

제935호 초점-박 캠프, 5년 뒤로 폭탄 돌리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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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흡사

피에타 3법이 미래의 하우스푸어를 보호하려는 정책이라면, △통합도산법 개정 △‘힐링통장’ 도입 △취약한 대출 구조 개선 등은 현재의 하우스푸어를 위한 공약이다. 통합도산법의 개인 회생 기간을 5년(최장 8년)에서 3년(최장 5년)으로 단축하고, 주택담보대출에 특례조항을 추가해 1가구 1주택은 보장하도록 한다. 현재는 개인 회생 절차에서 주택을 경매 처분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일정 액수 미만의 주택은 면제 자산으로 규정한다. 면제 자산이란 채권자가 가져가지 않고 채무자에게 재활하는 데 쓰라고 법원이 허가해주는 자산이다. 서울시의 경우 임차 보증금이 7500만원 이하인 경우 2500만원까지는 최우선 면제해준다. 이런 방식을 하우스푸어로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또 신용불량자라고 하더라도 압류나 담보 제공이 금지되는 힐링 통장을 1계좌는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 그 통장의 저축액에 대해선 매칭펀드 형태로 자금도 지원해 제2의 출발을 응원한다.

특히 주택담보 대출의 구조를 집값 하락에 취약한 ‘변동 금리, 단기 일시상환’에서 ‘고정 금리, 장기 분할상환’으로 바꿀 계획이다. 금리 변동이나 유동성 위험을 채무자에게 전가하는 현재 금융기관의 대출 형태를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장기 대출로 압박받는 금융기관에는 주택금융공사가 장기 주택채권이나 유동화 증권을 발행해 재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0년 현재 변동금리 가계 대출 비중은 94.9%로 미국(10%), 독일(10%) 등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주택담보 대출 중 일시상환 대출도 41.3%로 미국(9.7%), 유럽연합(7.5%)의 4∼5배다.

1930년 대공황 이전 미국이 현재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당시 미국의 주택담보 대출은 만기 5∼10년의 단기 대출로 만기가 되면 일시 상환하거나 지속적으로 만기를 연장하는 형태였다. 대부분 변동금리였고 LTV는 50%였다. 대공항 이후 부동산 시장이 붕괴해 집값이 반 토막 나자 은행들은 대출 연장을 거부했고, 빚진 자들은 집을 처분했다. 1931~35년 전체 주택의 10%가 시장에 쏟아졌다. 담보 물건의 가치가 하락해 금융권 또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미국은 10년간 침체에 빠져들었다. 이후 미국은 주택담보 대출을 장기 모기지로 전환하는데 주력했다.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변동금리, 단기 일시상환 대출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10월25일 ‘가계부채 및 하우스푸어 해결을 위한 6대 과제’를 발표하며 주택담보 대출 기간을 최장 20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금융권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문 후보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통합도산법을 개정해 파산자와 개인 회생자의 주거권과 6개월간 생활비를 보장한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안, 금융기관이 새 출발 도와야

다른 정책은 ‘진심 새출발 펀드’다. 안철수 캠프 경제민주화포럼의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 펀드에 대해 “국가가 이들(패자)을 버리지 않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패자부활전’을 강조해온 안 후보의 색깔이 깃들여 있다.

진심 펀드는 금융기관과 정부가 공동으로 출자해 2조원 규모로 만들어 부양가족이 있는 파산 가구주 1인당 300만원 한도의 주택임차보증금(바우처 형태)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모든 파산자에게는 3개월 동안 재활훈련비(매월 20만원)를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금융기관이 펀드에 출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전성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기관은 관행적으로 차주의 상환 능력을 심사하지 않았고, 이에 공정하게 대출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래서 가계부채 및 하우스푸어 대책의 첫 번째 원칙을 ‘채권자와 채무자의 공평한 손실 부담’으로 정했다. 파산자가 재기하도록 돕는 게 장기적으로 금융기관에도 이익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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