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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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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폭발만 남았는가

토건족 퍼주기로 강을 죽인 ‘4대강 살리기’, 박정희식 개발주의로 빚어진 구미 불산 누출
이명박·새누리 정권에 의해 ‘사고사회’라 불러야 할 지경
등록 2012-10-30 09:19 수정 2020-05-02 19:27
핵발전소는 무시로 고장나 멈춰서고, 화학공장에선 유독 물질이 흘러나와 주변 도시와 마을을 황폐하게 만든다. 4대강에선 물고기들의 떼주검이 발견된다.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고, 일상은 살얼음판이다. 어찌해야 하나. ‘위험사회’의 틀로 한국 사회를 진단해온 홍성태 교수의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_편집자

홍성태 상지대 교수

유출된 불산 탓에 말라죽은 경북 구미시 산봉면 멜론농장의 작물들. 사진 구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출된 불산 탓에 말라죽은 경북 구미시 산봉면 멜론농장의 작물들. 사진 구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위험’(危險)이라는 한자는 험난한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상태에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죽거나 크게 다치게 된다. ‘위험’을 뜻하는 영어 ‘risk’는 본래 항해할 때 만나게 되는 암초를 뜻했다. 암초가 있다고 해서 항해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암초를 피하지 못하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위험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다. 안전을 원한다면 위험에 올바로 대처해서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위험에 올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미나마타병(1957~97년), 보팔 가스 누출(1984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1986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참담한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 핵발전, 고위험 기술·저정비 사회

현대사회는 천연두·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대표되는 숱한 자연적 위험을 극복했지만 수은 오염, 불산 가스 누출, 핵발전소 폭발, 지구온난화 등 숱한 인위적 위험을 생산했다. 이런 점에서 현대사회는 풍요사회이자 위험사회다. 야누스적 양면성은 현대사회의 본성이다.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해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계기로 출간된 이 책에서 울리히 벡은 현대 문명을 ‘활화산 위에 선 문명’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동력인 과학기술이 바로 현대 문명을 위협하는 위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위험사회의 핵심 지표는 핵발전 유무다. 핵발전 국가들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과학기술의 위험성과 사회체계의 정비도를 기준으로 유형화하면, 독일은 ‘고위험 기술·고정비 사회’에 해당되고, 한국은 ‘고위험 기술·저정비 사회’에 해당된다. 한국은 각종 비리가 횡행하며 고위험 기술을 올바로 관리하지 않아 대형 사고가 빈발하는 ‘악성 위험사회’다. 나는 2008년 6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권이 명백한 위험을 도외시하고 무모한 개발을 강행하기 때문에 한국은 아예 ‘사고사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정말 그렇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사고사회’라고 해야 할 상태에 이른 악성 위험사회 한국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응은 사실상 없는 것 같다. 참여정부 말기에 국무총리실에서 각종 위험 문제에 대응하는 부서를 만들려고 했으나 너무 늦은 시도여서 그냥 무산되고 말았다. 돈을 위해 생명의 원천인 강도 죽이는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위험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해서 이 나라를 심각한 ‘사고사회’로 만들어버렸다. 4대강 살리기, 불산 누출, 핵발전 확대 등의 사례는 이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지 않는가?

이명박·새누리 정권이 강행한 ‘4대강 살리기’의 실체는 ‘4대강 죽이기’다. 이 사업 때문에 이미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이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막고 고용 증대와 지역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엉터리 약장수의 약속처럼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34만 명의 고용을 약속했으나 정규직 고용은 3천~4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 4대강 살리기는 준설·굴착, 보·댐 건설, 제방 건설, 자전거도로 건설의 네 가지 토목사업을 핵심으로 한다. 그 결과 4대강 전역이 본래 모습을 잃고 대대적으로 훼손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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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생물들이 죽는 ‘엠비아가라’

여기서 나아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여름 4대강 전역에서 발생한 초유의 ‘녹조 곤죽’ 사태는 가장 명백한 예다. 이 사태는 이미 2009년 부산가톨릭대 김좌관 교수가 예측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폭염이 원인이라고 했으나 실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강물이 정체돼 심각한 녹조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정화작용을 하는 모래·자갈·습지가 모두 파괴됐으며, 매년 1만t이 넘는 막대한 쓰레기가 4대강 보에 쌓인다. 4대강 살리기는 강물의 부패뿐만 아니라 강변의 파괴도 유발했다. 역행침식이 격렬히 진행돼 강변 곳곳에서 계곡과 폭포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엠비아가라’라고 부른다. 강이 이렇게 망가지니 강의 생물들이 죽게 된다. 10월22일부터 금강의 백제보 상류에서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죽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은 우리의 식수원이다.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22조원의 혈세를 토건족에게 퍼주려고 우리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황당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4대강 살리기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토건국가 문제가 극단적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4대강 살리기가 일으킨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와중에 경북 구미에서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다. 9월27일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주)휴브글로벌이라는 회사의 공장에서 무려 20t의 불산(불화수소산)이 누출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불산의 주성분인 불소는 안정화될 때까지 식물과 동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물의 내부로 들어가 칼륨·칼슘·마그네슘 등의 금속과 강력히 반응한다. 불산이 유출된 구미 봉산리 일대의 식물들이 고엽제를 맞은 것처럼 모두 죽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구미 낙동강에서도 수천 마리의 죽은 물고기가 떠올랐는데, 강 죽이기에 불산의 영향이 겹친 결과일 수 있다.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위험을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보 전달, 대피명령 발효, 심각경계 해제 등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결국 10월8일 정부는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10월23일 피해 지역의 모든 농축산물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주)휴브글로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불산으로 액정표시장치(LCD) 세척제를 제조하는 회사다. 이 사고는 첨단 무공해 산업으로 선전되는 전자산업이 심각한 위험 산업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전자산업에서는 수십 종의 유독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여성 노동자들의 연쇄 사망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최대 전자공단 지역이 된 구미는 1991년의 페놀 유출에 이어 또다시 불산 유출이라는 참담한 전자산업 관련 사고를 당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4대강 살리기 때문에 취수장이 파괴돼 구미는 며칠 동안 수돗물을 쓰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런 사고들을 통해 구미는 한국의 대표적 위험도시로 떠올랐다. 개발과 함께 만들어지는 정상적 위험에 올바로 대처하지 않은 필연적인 결과다.

30년 가동, 폐기에 10만 년… 더러운 발전시설

4대강 살리기와 구미 불산 누출을 보면서 궁극의 사고에 대한 우려가 더욱더 커지게 되었다. 바로 핵발전소 폭발사고다. 1986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에 이은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에 의해 세계는 바야흐로 탈핵발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오히려 핵발전 확대를 맹렬히 강행하고 있으며, 이런 상태라면 머지않아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말 것이다.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2008년에 설계수명을 다한 고리 원전 1호기를 연장 운행하고 있는데, 연장 운행되는 원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무섭게 입증했듯 폭발 위험이 아주 크다. 부산의 고리는 해운대에서 20여km밖에 안 떨어져 있으며 반경 30km 안에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실 핵발전소는 30년 동안 가동하고 10만 년 동안 폐기해야 하는 가장 더럽고, 가장 비싸고, 가장 위험한 발전시설이다. 핵폐기물 처리와 고압 송전선을 포함하면 그 문제는 더욱더 커진다. 이미 30년 전에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미국 스리마일섬 핵발전소 준폭발사고 연구에서 핵발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폐기밖에 없다고 밝혔다.

독일과 일본이 잘 보여주듯 전력 생산의 대안은 분명히 있다. 한국에서 핵발전 확대가 강행되는 이유는 토건국가의 맥락에서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핵발전소 건설은 초거대 토목사업으로서 10조원 이상의 건설비와 보상비가 필요하다. 이렇듯 막대한 혈세를 통해 강력한 정·경·민 유착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발전소 확대가 강행되는 것이다. 핵발전소가 정말 안전하다면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막대한 보상비를 줄 필요가 없으며 핵발전소를 최대 전력 소비지인 서울에 건설해야 옳을 것이다.

구미의 불산 누출사고는 악성 위험사회 한국의 문제를 다시 확인해주었다. 위험을 무시하고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이제 한숨을 돌리고 조금 쉬며 지내려고 하는데 몸이 이상하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말기암이라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보니 여러 화학물질이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불행을 도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안전을 원하지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악성 위험사회 한국은 더욱 그렇다. 정부의 대응은 늘 지체되고 미흡하며, 정책 사기와 과학 사기는 아예 당연시돼 있다.

4대강 살리기는 정부가 토건족 퍼주기를 위해 대대적으로 강을 죽이는 초유의 사고를 일으킨 것이며, 구미 불산 누출은 정부가 경제성장을 내세워 심각한 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무모한 핵발전 확대로 인해 한국은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폭발 위험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심각한 불평등과 위험도로 말미암아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이래 일상의 무의식으로 확립된 성장주의와 개발주의는 악성 위험사회 한국을 지탱하는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안전의 옹호자로 구실할 정부가 절실히 필요하다.

박정희 시스템의 혁파와 진정한 선진화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악성 위험사회 한국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 지금 이 나라는 아예 ‘사고사회’라고 불러야 할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경제성장을 내걸고 전면적인 규제 완화를 추구하고 각종 비리를 창궐시킨 당연한 결과다. 우리의 일상은 개발·공업·발전 등에서 빚어지는 각종 정상적인 위험으로 더욱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내파하게 되었다. 이런 위험에 올바로 대처해야 사회 질과 삶의 질이 제대로 향상될 수 있다. 진정한 선진화는 사회 질과 삶의 질을 목표로 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내세워 독재를 추구하고 세상을 파괴하는 박정희 시스템이 하루빨리 혁파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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