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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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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박경신 교수, 음란물 유죄 선고 논란

등록 2012-07-26 08:07 수정 2020-05-02 19:26

박경신 승 재판부 패
유죄판결로 논쟁의 덫에 걸린 재판부, 이제 시작된 음란물 가치 논쟁


@jhohmylaw ‘박경신 판결’한 판사. 박 교수가 논쟁하기 위해 올린 블로그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성기만 본 채 엉뚱한 상상만 한 것 아닌지 의문.

최근 서울서부지법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의 성기 노출 사진을 올린 박경신 교수를 ‘정보통신법’상 음란물 유포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 그다지 억울할 일도 아니다. 1심에서 나름 가벼운 벌금형을 받은 것도 생각해보면 그다지 센 처벌이 아니다. 재판부는 박 교수가 던진 밑밥을 물어버린 것이다. 법원에서 입질을 했으니, 이제 그가 원하는 사회적·문화적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판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논쟁은 시작됐다. 그가 제기하려는 논쟁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건을 통해 박경신 교수가 의도하는 논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음란물의 정의와 처벌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의 자유의 이해와 범위에 대한 것이다. 음란물을 어떻게 정의할까? 성적으로 자극되는 모든 표현물?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것? 맥락에 관계없이 남녀의 성기가 노출되는 모든 것? 세 경우 모두 음란물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다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서부지원 김재호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성기 노출은 성적 수치심과 흥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서도 “교육적·사상적·과학적·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맥락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음란한 사진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대로라면, 성기가 노출돼도 그것이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다면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박경신 교수가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성기, 특히 발기된 성기 자체에 있다. 그는 그것이 도대체 왜 음란한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한 것이다. 그의 의도는 성기중심주의의 금기를 깨자는 데 있다. 그 질문에 재판부는 당신이 제시한 성기 사진과 당신의 행위는 교육적·사상적·과학적·학술적 가치가 없으니 음란하다고 엉뚱한 판결을 했다. 박 교수의 행위와 그 의도는 역설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재판부가 말한 그 가치를 입증하게 되었다. 법원이 뻘짓을 한 것이다. 법원은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음란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그의 주장 역시 일관적이다. 그는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기본 권리임을 원칙적으로 주장한다. 마치 영화 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그랬듯이, 스스로 ‘나쁜 실천’을 통해 이 논쟁을 제기했다. 그 근본적 물음에 법원은 가치 운운하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박 교수를 이기려면 그에게 무죄판결을 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이로써 음란물의 가치 논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냥 박 교수의 의도를 무시하고, 한 교수의 ‘또라이 짓’으로 단순 사고 처리했어야 한다. 박 교수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논쟁에서 승리자는, 지금까지는 법원이 아니라 박경신 그 자신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경신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법원은 음란물로 판결했다. 논란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림을 싣는다. 사진 한겨레 강제훈

박경신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법원은 음란물로 판결했다. 논란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림을 싣는다. 사진 한겨레 강제훈

박경신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법원은 음란물로 판결했다. 독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림을 싣는다.

박경신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기원>을 법원은 음란물로 판결했다. 독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림을 싣는다.


네 짓은 음란하다 네 몸은 죄악이다
반 포르노그래피 도 `여성음부 그림'으로만 보는


@mindgood 상업적 의도를 가진 영화조차 영화적 맥락에 맞으면 성기 노출을 허용하는 상황에서 검열 문제 토론을 위해 성기 사진을 올렸다고 박경신 교수에게 유죄. G20 쥐 그림 이래 표현의 자유를 망각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실.

박경신 교수에게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나는 이 시끄럽고 반복적인 음란물 소동 과정에서 의 기사가 제일 흥미로웠다. 쏟아지는 언론 공세에 맞서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박 교수가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을 블로그에 올리자, 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로 이를 소개한 것이다. ‘남자성기 사진 올렸던 방통심의위원 이번엔 여성음부 그림 올려’.

은 당대 누드화의 미적 판타지에 반감을 품은 작가가, 대상에 대해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은 채 여성의 가슴과 음부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흔히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피사체를 어떤 은밀함도 없이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역설적 의미에서 반(反)포르노그래피의 지위를 얻어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 ‘음란물’ 논쟁이 등장할 때 어김없이 인용되는 역사적 텍스트다. 그러거나 말거나 와 그와 유사한 지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은 그냥 ‘여성음부 그림’일 뿐이다.

비아냥을 위해 소개한 게 아니다. 나는 을 ‘여성음부 그림’으로 소개하는 멘탈이야말로 이 지루한 논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을 클로즈업하든 광각으로 관조하든, 거기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서사가 있든 없든 아무 상관 없다. 그저 인간의 몸이라는 실체에 ‘음란함’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을 망치고 파괴할 이 ‘음란함’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이 다수다. 그들에게 아무리 클로즈업을 통한 효과를 설명하고, 이 지닌 역사적 맥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극적 대상화가 어떻게 반(反)대상화가 되는지 항변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들에게 몸은 그저 막연하게 음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 몸은 음란하다’ ‘네 몸은 죄악이다’라는 말은 중세에나 어울릴 법한 방언 같지만, 결국 2012년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것, 보여줄 수 있는 것의 기준점은 중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나라의 ‘정상성’이 중세가 아닌 현대에 어울리는 수준이라면 적어도 을 ‘여성음부 그림’으로 소개하는 기사는 유력 일간지가 아닌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렸을 것이다. 법정에 소환돼 논쟁돼야 할 주제는 ‘이게 정말 음란한가요?’처럼 아이들 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누가 보더라도, 그러니까 이를테면 국민의 90% 이상이 음란하다고 판단할 만큼 노골적인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표현의 자유 논란이었을 것이다. 만큼이나 이 문제에서 자주 인용되는 영화 속 대사처럼 “나 같은 쓰레기 3등 시민의 자유가 보호받을 수 있다면, 여러분 같은 1등, 2등 시민들의 자유 또한 당연히 지켜질 것”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법의 판단이란 유난스러운 사감 선생의 회초리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질이 나쁜 것이며 자유국가를 표방하는 우리는 그것을 어떤 법적 근거와 논리를 통해 수용하거나 거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모든 합당한 기대는 망상에 불과하다.

허지웅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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