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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민주통합당 대학 개혁안 논란

등록 2012-07-11 10:59 수정 2020-05-02 19:26

그 제도의 폭력을 그대로 두자고?

폭력이 제도화된 학벌, 반값 등록금 추정 예산 20%만 투입해도 개서

@tokyopapillon 프랑스 대학의 모습을 ‘대학 개혁 결과’만으로 보는 것은 오류예요. 대학 외부의 환경, 즉 ‘사회 개혁 결과’로 보는 게 합당하죠. 또 현재의 주변 환경을 그냥 놔두고 서울대 철폐만으로 학벌주의 병폐는 치유될 수 없어요.

폭력과 제도가 결합하면 폭력은 정당성을 얻고 제도는 권력화한다. 한국에서 학벌은 제도가 승인하는 사적 폭력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선 본교와 지방 캠퍼스의 통합에 반대하는 본교 학생들이 캠퍼스 학생들을 ‘바퀴벌레’로 부르며 지탄했다. 학문을 위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순서에 따라 대학에 배치되는 학생들이 자신의 서열을 정당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의 폭력은 그렇게 조금이라도 권력을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배제하는 수단이 되고, 제도를 낳은 이들은 그들의 다툼 뒤에 숨어 실리를 착복한다. 그리고 권력을 덜 가진 자는 다시 자신보다 권력을 덜 가진 자를 배제하며 폭력의 재현을 확장한다.

학벌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과 착종돼 있다. 정책 하나가 등장한다고 해서 모순이 순순히 풀린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으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모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등장하자마자 트위터에서 ‘서울대 폐지’의 효용론으로 축소돼 뭇매를 맞았다. 안 그래도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서울대를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함께 준비돼야 한다는 반론이 나왔다. 서울대 철폐만으로 학벌주의의 병폐가 모두 치유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비 투자에서 한국의 정부 투자 비율은 0.6%로 평균 1%에 크게 못 미친다. 0.6%조차 2010년 기준 총액(2조392억원)의 29%가 서울대에 집중됐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경북대의 2.8배다. 중요한 것은 사립 연세대가 경북대보다 국고 지원금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국고 지원만 늘린다고 대학 서열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반값 등록금’ 예산 추정액(7조원)의 20%인 1조5천억원만 투입해도 국공립대생들은 준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부모의 기득권을 상속받은 학생에게 국가의 공적 자원을 권리로 획득한 학생이 맞설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다.

서열 상위 대학에 진학하는 주요 목적은 노동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 확보다. 기업이 학벌 중심의 고용 행태를 반복하면 독점적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력학벌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지방 공무원이나 국립대병원 인력 선발에 해당 지역 출신자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하지만 2003년 이후 9년 동안 변주되고 확장돼온 통합네트워크안의 깊이는 트위터에서 편리하게 배제됐다. 정치적 민감성을 알면서도 개혁안을 툭 던진 뒤 복잡한 함의를 설명하지 않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즉자적 거부감도 한몫했고, 선뜻 동의하기보다 일단 우회로를 택해두자는 편의적 냉소도 보태어졌다. 어떤 견해도 ‘지거국’이나 ‘지잡대’생으로 내려보는 멸시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정책의 효용성을 말하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 그 제도의 폭력을 그대로 두잔 말인가.

이재훈 한겨레 기자

서울대는 학벌제도의 정점에 서 있는 대학이다. 2005년 교육단체 회원들이 서울대 입시안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서울대는 학벌제도의 정점에 서 있는 대학이다. 2005년 교육단체 회원들이 서울대 입시안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1회전 패배를 인정한 다음에 보수언론의 일사불란한 공격에 엉성한 대응에 그친 진보언론

@windo21 서울대가 학벌사회와 입시지옥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없앤다는 민주당. 표 얻자고 또 갈등 부추긴다. 서울대는 물론 다른 대학도 육성시키자고 해야지.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이 7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대 명칭을 없애고 지방 국립대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올 12월 대선 공약에 넣겠다”고 했을 때, 사실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새로운 이야기거나 놀라운 말이 아니다. 이미 지난 총선 공약에 들어가 있었고, 몇몇 민주당 대선 후보들도 비슷한 말을 해왔다. 간단히 말해 서울대를 통합된 국립대 틀 속 ‘국립1대학’ 정도로 재배치하는 안이다. 명칭을 없애는 거라 말하기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서울대 폐지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국립대 체계 조정안이라 할 수 있겠다. 공교육 강화라는 차원에서, 지역과 지역대학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서 충분히 검토해볼 사안이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서울대 폐지론’으로 뒤틀자, 그것은 경거망동한 정략이 된다. 여론 확인용 애드벌룬은 정책위의장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뻥 터진다. 역시나 의 날선 이빨, 그 신통한 왜곡의 기동력이 돋보인다. ‘주폭’ 플레이로 탄력받은 이 신문의 프레이밍 공작은 누구보다 신속했다. “‘학벌 상징’ 때려 다수표 잡기”의 수로 기선을 제압한다. ‘포퓰리즘’ 공식을 그대로 대입한다. 민주당을 “눈에 보이는 게 선거밖에 없는” 정당으로 규정할 때, 유권자도 판단을 강요받는다. “나라는 3류로 만들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심산”인 정당과의 거리두기가 지시된다.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진지한 태도로 여론 제조의 공작에 나서고, 그 표적은 이 공약의 토론과 채택 가능성을 없애는 데로 모인다. 트위터 일부에선 그 논리가 그대로 차용됐다.

진보의 흐름을 차단하고 자신들이 보기에 무능한 뉴라이트 MB를 넘어서려는 보수 재집권 결기의 표식과 다름없다. 유사 패턴은 대선 전까지 쭉 반복될 것이다. 왜곡의 속도전으로 나올 게 훤히 예상되는데도 결국 당하고 마는 야당의 미숙한 플레이는 안 된다. 진보언론의 굼뜬 동작도 문제다. 의 “대학 혁신 논란, 대선 공약으로 경쟁하자”는 주장은 맞지만 공허하다. “민주당의 ‘서울대 폐지론’, 합리적 토론 계기 돼야”라는 의 견해 표명도 명백히 뒷북이긴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거친 태클 앞에서 너무 점잖다.

한 템포 느린 수비, 대안의 경쟁력 있는 틀을 짜낼 순발력 부족으로는 진다. 빠르고 강력하게 대시하는 선수를 막기에, 합리적 토론장을 만들고 지지 여론을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적극적인 팀워크 없이 엉성한 플레이를 펼치며, 그래도 관중은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 기대하는 정치학으로는 곤란하다. 이번 회전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맞붙을 때는 훨씬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쳐보여야 한다. ‘서울대 폐지론’으로 죽여놓고는 재빨리 또 다른 의제로 이동한 저들의 샤프한 기동전에 맞서, 어떻게 이 중대한 교육 공약을 책임성 있게 구현해낼 것인가?

전규찬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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