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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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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산] ‘결혼게임’의 심판을 보다

등록 2001-08-15 00:00 수정 2020-05-03 04:22

조건 대 조건의 치열한 승부 속에서… 결혼정보회사 커플매니저와 이벤트 스태프 체험

첫째, 배우자 고르는 ‘눈’을 대폭 낮출 것.

둘째, 혼자 살 배짱이 없으면 주저없이 결혼의 구속을 택할 것.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결혼문제가 느닷없이 다가온 나이, 나는 이런 ‘소박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결혼제도에 몸을 옭아매진 않겠어!”라고 외치는 건 물론 용감한 일이지만, 한순간의 치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생의 동반자를 찾을 것인가. 슈퍼우먼+신사임당의 조건을 갖춘 상대를 찾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내 주변엔 아직도 이런 공상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만들어온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다듬고 다듬어 머릿속에 집어넣고 만나는 상대마다 그 기준에 따라 이리저리 재단해가며 “흡족하지 않더라”라는 오만을 부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건 허망한 일이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한 것은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짧게나마 이벤트 스태프와 커플매니저 체험을 한 덕택이었다. 그곳에는 하나의 정교한 게임이 있었다. 참가자는 외로운 사람들이며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 게임에 들어갈 준비가 됐다면 우선 자신의 경쟁력을 잘 파악하고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베팅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파악’이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일확천금’을 노린다면 그건 ‘반칙’이고, 십중팔구 실패한다. 나는 그 게임의 중재자, 혹은 ‘심판’을 맡았다.

연속 4주째 휴일 근무

“꼭 4지망까지 쓰셔야 돼요!” 결전의 순간이 왔다. 맘에 드는 한 사람의 번호만 쓰는 ‘순정’은 금물이다. 자칫하면 아까운 참가비만 허공에 날릴 수 있다. 나는 ‘희망상대 선택표’를 서둘러 참가자들에게 나눠줬다. 고심에 또 고심, 한번 더 이성 참가자들을 둘러보는 눈빛이 번뜩인다. 책상과 선택표를 들고 우리는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선 선택표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눈 뒤 번호순서대로 정리하고 한명씩 맞춰나간다. “남성 0번 1지망 여성 00번.” “예, 여성 00번 3지망에 썼네요.” 원래 4지망까지 적게 돼 있는 선택표에 줄을 그어 6지망, 7지망까지 쓴 ‘의지의 한국인’들은 기어이 목표를 달성했다. 모두 10쌍의 커플이 탄생했는데, 이 정도면 꽤 풍성한 결실이다. 커플 발표가 시작되자 경쟁의 ‘생존자’들은 쌍쌍이 손을 잡고 승리감에 도취돼 있고, 탈락자들은 맥빠진 박수를 치기에 바쁘다. 미팅 이벤트 절정의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7월의 어느 일요일, 압구정동 한 카페. 아침 10시부터 시작하는 만남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9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듀오에서는 회원간의 일대일 만남을 주선하는 것 외에 이런 집단적인 미팅을 정기적으로 연다. 이번 이벤트는 오후 5시까지 카페에서 만남을 갖고 잠실야구장으로 이동해 프로야구 두산 대 LG전을 관람하도록 짜여져 있었다. 스태프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좌석배치였다. 예상 참가인원은 남녀 각각 54명. 이들이 각조에 분산돼 앉을 수 있도록 소파와 의자들을 날랐다. 장기자랑을 펼칠 수 있도록 카페 공간을 치워놓고, 앰프 놓을 자리와 접수석을 만들고…. 아침부터 중노동이었다. 김종훈 이벤트팀장은 이벤트가 거의 휴일에 열리기 때문에 데이트할 시간이 없다며 애인을 데리고 나왔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같이 일했던 여성 스태프 중 한명은 연속 4주째 주말에 출근하고 있다고 했다. 화려함 뒤의 그늘, ‘스태프’라는 이름은 언제나 그런 냄새를 풍긴다.

자, 이제 ‘멍석’을 깔았으니 오늘의 ‘선수’들이 등장해야 될 때다. 행사 시작 10분 전쯤부터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등장하는 모습도 가지가지다. 잔뜩 긴장한 채 조용히 자리에 앉는 사람, 연신 싱글벙글하며 앉자마자 옆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 어느 내성적인 남성참가자는 행사가 시작됐는데도 스포츠신문만 들여다보다 사회자에게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함께 손을 꼭 잡고 입장한 두명의 여성참가자는 나중에 짝이 정해졌는데도 자기들끼리 손잡고 퇴장했다(그들이 참가한 이유는 뭘까?). 우리는 참가자들이 입장할 때마다 명단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나눠줬다. “번호표는 항상 잘 보이는 가슴에 다셔야 돼요.” 앉을 자리를 가르쳐주며 이 말을 계속 되풀이해야 했다. 맘에 드는 상대방을 적어낼 때 엉뚱한 번호를 써버린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참가자들이 모두 도착한 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풀어졌다. 사회자의 입담에 좌중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스태프들은 그 웃음의 대열에 끼어들 여유가 없다. “뭐 부족한 거 없으세요? 물 더 드릴까요?” 좌석을 돌아다니며 냅킨을 나르고 물을 따르는 일도 스태프의 몫이다. 대화의 화제는 주로 여름휴가였다. “여름휴가는 일본으로 갈 생각인데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여기 나왔어요.” 한 남성참가자가 은근슬쩍 ‘유혹의 손길’을 뻗치자, 다른 참가자들도 각자의 휴가계획을 밝힌다. 즐거운 여름을 보내기 위한 온갖 전략이 난무하고, 각자 상대방의 전략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

“못생긴 건 용서 못한다”

행사는 어느덧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최종선택에 앞서 한 사람씩 무대에 나와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낙점을 받기 위한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사실 미팅보다는 야구경기 관람한다기에 나왔어요.” 이 남성참가자는 물론 짝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에 애인과 헤어졌어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나왔죠.” 이런 대담한 발언을 한 여성참가자는 신기하게도 많은 남성들의 지목을 받았고, 짝을 찾았다. 솔직함이 미덕인 세상인가. 나중에 사회자가 옛 애인보다 지금 상대가 더 맘에 드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자기 차례가 오자 갑자기 긴장한 듯 화장실로 뛰어간 여대생도 있었다. 나중에 간신히 자기소개를 마쳤지만 이 숫기없는 여대생은 끝내 ‘낙오자 그룹’에 남았다.

자기소개와 커플발표가 끝난 뒤 우리는 무전기를 들고 야구장 매표소까지 사람들을 안내했다. “남자들만 모여 있지 말고 여성분들하고 좀 같이 다니세요.” 힘들게 인솔하는 와중에도 이런 잔소리를 해야 했다. 드디어 잠실야구장 앞. 한명씩 표를 나눠주고 스타디움에 들여보내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 잘들 사귀어 보시라!” 속으로 이런 덕담을 하며 미련없이 돌아섰다. 그날 저녁뉴스를 보니 경기는 3회가 끝난 뒤 비 때문에 취소됐다고 한다. 그 청춘남녀들의 ‘작업’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이벤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 나는 커플매니저 체험을 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듀오 사무실에 사흘간 출근했다. 다른 결혼정보업체와는 달리 듀오는 컨설턴트와 커플매니저 업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다. 컨설턴트는 고객의 재산 정도, 학력, 성격, 원하는 배우자상 등을 상세히 대장에 기록해 프로필을 만든 뒤 담당 커플매니저에게 넘긴다. 커플매니저는 프로필을 검색하여 조건이 맞는 상대와 연결해주는 ‘매칭’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무실에는 항상 수백명의 프로필 대장이 이 책상 저 책상을 떠돌아다닌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커플매니저의 하루는 전화를 걸고 대장을 들여다봐야 하는 단순반복 작업의 연속이었다. 회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상대는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라서 회원의 신뢰를 받고 있는 담당 커플매니저만이 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이야 고작해야 대장을 정리하고 나르는 일이었다.

첫날은 관리2팀 윤덕주 팀장의 조수로 배치됐다. 관리2팀은 여성 73년생 이상, 남성 66∼69년생까지, 비교적 나이는 많지만 ‘만혼’이라고는 할 수 없는 회원들을 관리한다. 첫 출근 때 가장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여성들만 가득한 사무실 분위기였다. 남자는 회사 안에서 유일한 남성 커플매니저인 윤덕주 팀장과 나, 단 둘뿐이었다. “그럼 좋았겠네.” 뭣도 모르는 한 선배는 마냥 부러워했지만 점심시간에 담배 한대 피우려고 남자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을 고치고 있는 미녀들을 보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진상’이라 불리는 여성회원들

“00씨랑 한번 매칭시켜주자.” 자리에 앉자마자 윤 팀장이 옆자리 커플매니저에게 프로필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 너무 세잖아? 00대까지 땡겨야 돼?” 옆자리의 매니저는 남성회원의 조건이 너무 좋아 여성회원과 잘 맞지 않는다며 꺼려하다 대장을 받았다. 관리2팀의 골치아픈 회원은 정해져 있었다. 우선 너무 외모만 따지는 남성회원이 문제다. 처음부터 “못생긴 건 절대 용서 못한다”고 강짜를 놓는 회원도 있지만 처음에는 성격이나 취미를 본다고 했다가 결국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스타일이 많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회원들은 어느 연령대나 풍부하게 분포돼 있었다. 구제할 길 없는 남성의 욕망, 그것만 버리면 선택의 폭이 바다같이 넓어질 것이다.

여성회원들 중에는 이른바 ‘진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자신의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최고학벌에 최고연봉, 어마어마한 집안 출신만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매니저들끼리 이런 회원들은 임금님에게 바치듯 상대를 고르고 골라야 한다고 해서 ‘진상’이라 부른다. 이 단어를 들은 것은 한 여성회원에게 만남의 결과를 묻는 전화를 걸고난 뒤였다. 박사학위 소지자에 부모님은 대학교수, 연봉도 높은 남자면 좋아할 만도 한데, 그 여성회원은 “00학과 출신이라 마음에 안 든다”며 퇴짜를 놓았다. 윤 팀장은 슬며시 내 얼굴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상이에요.”

하루종일 프로필을 검색하고,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한 뒤 약속시간과 장소를 통보하고(자율적인 만남을 위해 커플매니저가 약속장소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 만남을 가진 회원들에게 계속 교제할 것인지 의사를 묻는 업무가 이어졌다. 업무 도중 갑자기 윤 팀장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신에게 들어온 메일을 가리켰다.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이 윤 팀장의 억양과 단어 선택의 문제점을 무려 A4용지 넉장 넘는 분량으로 보내온 것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세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 때문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플매니저는 말 한마디에도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피곤한 직업이다.

이튿날은 재혼과 만혼 회원을 관리하는 관리3팀의 전임선 주임에게 배치됐다. 출근하자 전 주임은 한 남성회원의 프로필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그의 입에서 어느 딱한 회원의 사정이 쏟아져 나왔다. 아내와 이혼한 40대 남성, 학벌도 없고 직장도 별로다. 시간이 없어 이벤트를 못 나올 정도로 어려운 처지인 이 남성은 애 둘을 혼자서 키우기가 너무 벅차서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조건맞는 상대를 고르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결국 어렵게 다른 매니저가 관리하고 있는 여성회원과 매칭을 시도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얘기가 나온 김에 전 주임은 또 한명의 프로필을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는 무용과 출신 여성이다. 결혼경력은 없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서 재혼상대만 찾고 있었다. 콤플렉스 때문인지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만남을 가져도 고개를 푹 숙이고 묻는 말에 대답만 했기 때문에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열몇번 정도 미팅하더니 기술이 생겨서 최근에는 인기가 높다고. 관리3팀은 다른 어떤 팀보다 사연이 많다. “우리 얘기 다 하자면 밤을 새워도 어려울걸요.” 전 주임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매니저들이 모두 맞장구를 쳤다.

재혼을 원하는 회원들은 아이문제가 가장 큰 장벽이다. 듀오는 관리3팀에 가입하는 남성회원들은 아이 두명 이하, 여성회원은 여자아이 하나로 제한하고 있다. 그 이상은 어차피 조건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딸 하나 키우는 이혼녀에겐 아이의 성을 바꾸는 문제가 숙명처럼 뒤따라다닌다. 아버지와 다른 성을 가진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그래서 50대 처녀는 매칭이 쉽지만 30대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훨씬 어렵다. 최근 모 결혼정보회사가 호주제 폐지운동에 앞장선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혼하면서 애를 나눠가지는 것도 매우 좋지 않다. 이혼해도 아이들과 연락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다.

“저랑 같이 납골당에 가주실래요?”

관리3팀이라고 문제회원이 없으랴. 업무 도중 아이 하나 딸린 이혼남이 전화를 했다. 여성은 70년생 이하여야 하고 출산경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전 주임의 치열한 ‘설득작전’이 시작됐다. “너무 젊은 사람은 좋지 않아요. 애도 낳아본 사람이 잘 키우죠.” 결국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 매칭이 성사됐다. 관리3팀은 엉뚱하게 처녀장가나 출산경험이 없는 여성만 원하는 남성회원들 때문에 매일 두통을 앓고 있다. 자신에게 아이가 있으니 남의 아이도 키울 수 있다는 너그러운 자세를 갖기가 그렇게 어려운가보다. 여성은 ‘무임승차’하려는 회원들이 문제다. ‘무임승차’도 ‘진상’과 같이 매니저들끼리 사용하는 은어인데, 주로 자신은 능력이 없으면서 월등한 조건의 남자만 원하는 이혼녀들을 뜻한다. 직업도 없는 여성이 연봉 5천, 6천만원 넘는 상대자만 만나겠다고 하면 매니저로서는 정말 막막해진다. 이런 사례도 있다. 아이 한명을 가진 이혼녀에게 연봉 1억원인 보험회사 직원을 매칭했는데, 상대의 회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퇴짜를 놨다. 매니저가 “그래도 연봉 1억인데요”라고 말하자 그 여성 왈 “그 나이에 1억도 못 버는 남자가 어딨어요!”

사별한 남성이 전처에게 미련을 갖고 있어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가 없는 여성과 거의 결혼까지 갈 뻔한 남성이 전처에 대한 예의로 애를 안 낳겠다고 선포해서 무산된 경우도 있다. 또 한 회원은 처가에서 애봐주기 힘들어 재혼을 종용한 경우다. 그는 아내가 00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같은 대학을 나온 여성만 원했고, 어렵게 만난 상대에게 같이 전처의 납골당에 가자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전처에 대한 애정은 이해하지만 새로 만난 상대에 대한 배려를 먼저 했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책상 위에 회원들의 프로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프로필을 정리하다보면 재미있는 사연을 꽤 많이 만나게 된다. 75살 이상 남성만을 원하는 35살 여성. 그러나 75살 이상 회원은 듀오에 없었다. 도대체 이 여성이 원하는 건 뭘까 궁금해졌다. 삼혼은 규정상 가입이 안 되지만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한 남성회원은 부인과 이혼한 뒤 다시 재결합했다가 또 이혼을 했다. 이렇게 삼혼 아닌 삼혼이 돼버린 남성에게는 예외를 적용해서 받아들였다. 재혼은 신중함이 생명인 것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관리3팀. 업무를 마치고 일어서자 줄거리도 기억 안 날 정도로 긴 영화를 본 듯 머리가 멍해졌다.

다음날, 가장 젊은 회원들만 관리하는 관리1팀에 들어서자 기분이 산뜻해졌다. 마침 그날 세무조사가 들어온 터라 사무실은 정신이 없었지만 젊은 회원들을 관리해서 그런지 커플매니저들도 가장 젊고 분위기가 활력에 넘쳤다. “00여대 나온 76년생이고요 00 거주, 감성이 풍부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이에요.” 매칭을 시도하는 오늘의 ‘사수’ 김영신씨의 목소리도 너무 고왔다. 그러나 이날은 내게 가장 큰 시련을 준 날이었다. 생애 최초로 나의 ‘경쟁력’에 절망하게 됐기 때문이다. 관리1팀은 결혼이 급하지 않은 회원들이니만큼 원하는 조건들이 까다로웠다. 회원들이 특별히 기피하는 조건이 있느냐고 묻자 김영신씨는 “키 170cm 이하, 모 지역 출신, 혈액형 B형을 싫어하는 회원들이 많아요”라고 친절히 답변해주었다. “아, 제가 바로 모 지역 출신이고 혈액형 B형이고, 키도 170cm가 약간 안 되는데요.” 김씨는 그제서야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위로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회원들의 면면을 아무리 살펴봐도 나 정도의 연봉이나 가정환경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내 경쟁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다. 게다가 성격이 나쁘고 까다롭다는 이유 때문에 기자를 기피하는 여성회원들이 많았다. 내 머릿속에서 ‘자격미달’이 될 수밖에 없는 <한겨레21> 동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지나갔다. “여러 기혼 선배들, 서둘러 결혼하길 참 잘한 겁니다!” 나는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얻어맞는 한이 있어도.

경쟁력은 제로여도, 나는 행복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사는 우리는 항상 어떤 종류의 해답을 요구한다. 결혼정보회사 체험을 쓰겠다고 하자 독자편집위원회 남우희 위원은 “왜 우리 사회는 자유로운 만남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결혼정보회사의 성업에 우려할 점이 크다고 비판했다. 원칙적으로 옳지만 나는 ‘현실론’을 택하고 싶다. 어차피 만남이 제한된 사회라면, 또 독신을 고집하며 살기 힘든 사회라면 만남의 기회를 넓히는 일이 나쁜 것인가. 연애든 중매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좀더 중요한 문제는 사랑이나 결혼에서 피상적인 감상이나 외면적인 조건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나와 상대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기술’만 갖추고 있다면 주변의 누구든 결혼정보회사의 회원이 되는 것을 말릴 생각이 없다. 어제 나는 사람들의 ‘결혼강박증’을 혐오하는, 그러나 내 결혼의 유일한 상대라 추정되는 한 여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질문을 조금 바꿔보았다. “너 나랑 결혼할래?” “그러지 뭐.” “언제쯤? 내년쯤?” “그러지 뭐.” 그는 이런 유의 질문엔 항상 농담조로 대응한다. 그래서 나는 좀더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할까?” “… 그랬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만족할 만한 대답이다. 그는 최소한 내 가입을 막을 만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굉장히 행복해졌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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