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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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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처럼 기차 타고 유럽에 가고 싶다

[초점]경의·동해선 철도 연결구간 시범운행 뒤 MB정부 출범으로 5년째 멈춰선 남북철도 연결사업…
남북철도는 평화와 경제와 상상력을 실어나른다
등록 2012-05-16 06:23 수정 2020-05-02 19:26
철마가 달리고 있다. 2007년 5월17일 경의선 문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남쪽 통문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향하자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 직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철마가 달리고 있다. 2007년 5월17일 경의선 문산역을 출발한 열차가 남쪽 통문을 지나 비무장지대로 향하자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 직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근대 신여성의 효시라고 하는 나혜석, 그녀의 유럽 여행은 남녀평등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1927년 나혜석은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 만주와 옛 소련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여행했다. 철도를 통해 조선 여성이 근대를 경험한 것이다. 나혜석이 파리 여행을 할 수 있게 했던 경의선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운행이 중단되었다.

상상력의 차단, 영감의 봉쇄

그 뒤 한반도 남쪽은 삼면만 바다와 접하는데도 육로를 통해서는 대륙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대륙으로의 진출이 막힌 것은 상상력의 차단, 영감의 봉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철도를 통해 시베리아와 유럽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나혜석이 그랬듯이 철학적·예술적 영감이 우리의 삶을 지금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혜석의 유럽 여행 80돌이 되는 해인 2007년 5월17일,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을 위한 시범 운행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끊어진 철도·도로를 연결하기로 북한과 합의했다. 2007년 5월 경의·동해선 남북 연결구간 시범 운행이 있었고, 그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개성~신의주 철도 연결에 합의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은 실종되고, 철도는 아직까지 연결되지 않고 있다. 철마는 아직도 달리고 싶어 할 뿐이다.

대륙으로의 철도 연결은 해상운송의 보완재다. 한국에서 소비하는 원자재의 99.9%는 해상운송으로 조달된다. 대체재인 육상수송로의 확보는 국가 생존 전략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동중국해나 말라카해협, 소말리아해 등 한국의 주요 해상수송로가 봉쇄되는 것을 대비한다면, 수송로를 다양화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 이런 전략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언급한 대양해군론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도 마찬가지다.

대륙으로의 철도 연결은 경제적 잠재력과 역동성을 가진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확대하고 촉진할 것이다. 동북아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점유해 북미·유럽연합(EU)과 함께 세계 3대 교역권을 형성하고 있다. 2020년에는 그 비중이 30%로 증대될 전망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항구가 부족해 화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국 철도망과 한국 철도망이 연결된다면, 한국의 항구들은 세계 공장의 물자를 수송하는 기지가 된다. 아울러 중국 동북 3성과의 교류 협력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철도 연결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이르쿠츠크·안가르스크 등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지나는 지역에는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5.6%, 천연가스의 40.1%, 석탄의 23.4%가 매장돼 있다.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유럽 간 물동량이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이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한반도는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가 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의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현대화 사업에 기초해, 부산과 나진을 물류기지로 만들려는 남-북-러 국제 컨소시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이 중단돼 국제 컨소시엄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한국에서 참여한 기업들은 계약 불이행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금강산 관광 장기 중단으로 이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이나 강원도 고성 지역 영세상인들이 손실을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동북아 경제공동체 형성 촉진

철도 연결이 되면 많은 경제적 이익을 안겨준다. 길이 생기고 사람이 만나면 문화와 공동체가 형성된다. 경제적 이익 창출과 교류의 확대는 철의 실크로드를 만들고,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이를 증명해준다.

유럽 철도망이 교통망으로서 역할을 하며 유럽의 경제·사회·문화를 통합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것이 EU의 출범을 앞당겼다. 19세기 독일과 미국의 철도는 봉건 독일을 통일시키는 데 기여하고,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은 미국 연방의 결속을 가속화했다.

남북 간 철도 운행은 대륙철도 연결의 출발이기도 하지만 민족 내부의 소통 통로가 되어 분단에 물꼬를 내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출발이 될 것이다.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은 남한에 매력적이지만 철도시설 확충이 없이는 그림의 떡이다. 철도는 북한의 지하자원을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남한에 공급하게 만든다. 철도는 자원뿐만 아니라 관광사업도 활성화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의 사회·문화적 접촉도 늘어날 것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인 2000년 9월18일 경의선 철도 개통식이 열렸다. 그로부터 7년 만인 2007년 5월17일 시범운행이 있기까지 많은 곡절이 있었다.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북한 군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군은 휴전선 일대인 전연(전방)지대에 동서로 4개 군단이 배치돼 있다. 이들 4개 군단은 물자를 철도를 이용해 수송한다. 철도가 연결된다면 마침내는 전연지대에 배치된 북한군의 물자수송용 철도까지 남북 물자수송을 위해 이용하게 될 것이기에 북한 군부가 반발했던 것이다.

열차가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남북을 왕래하고 북한 군부의 물자수송 철로가 자원수송용·물자수송용 철로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남북 간의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뜻한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안고 누워 있는 철마가 다시 달리고 싶은 것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도의 경제적 효과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신의주와 개성 철도를 복선화해 중국과 남한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할 경우 1년에 4억달러가량의 수익이 발생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다. 중국의 동북 3성에서 동해로 물자를 수송할 경우 연 10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북한이 철도 연결에 속도를 내지 않은 것은 안보상 불안감 때문이었다.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는 신의주와 개성의 철도를 개·보수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남북 공동응원단을 경의선을 통해 베이징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북한이 안보상 불안에서 벗어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남북의 사회·문화 교류를 수용하겠다는 자세 전환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아직까지 그 자리에 멈춰 있다.

현정화와 이분희의 상봉 무산

철도 연결은 멈춰 있고 남북 교류는 중단되었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를 제패한 현정화 선수와 북한의 리분희 선수는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당국의 눈치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달린 5년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정책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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