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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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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 한 뼘의 진보를 위해

예비교사 64.4%, 체벌 심각성 느끼지 못해…
교과부에 정책제안서 제출한 세이브더칠드런 “아동인권 존중, 학교폭력 문제 해답 될 것”
등록 2012-04-13 15:36 수정 2020-05-03 04:26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예비교사들의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은 생각과 실천에서 괴리가 보인다. 경기도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칙을 어긴 학생들이 체벌을 받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예비교사들의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은 생각과 실천에서 괴리가 보인다. 경기도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칙을 어긴 학생들이 체벌을 받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이상을 담은 문장은 아름답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름답다.

“모든 회원국은 아동에 대해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국적, 민족, 재산, 장애, 출생 등에 상관없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사법체계 안에서 협약에 표현된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협약 2조) “1. 회원국은 모든 아동은 날 때부터 생존권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2. 회원국은 아동의 생존과 발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6조) “회원국은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폭력, 학대, 방치, 착취,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법적·제도적·사회적·교육적 수단을 써야 하며 부모나 법적인 보호자 등이 아동을 보살피도록 해야 한다.”(19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아동과 여성이 수없이 숨졌다. 1989년 미국의 주도로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이 체결됐다. 193개국이 비준했다. 생존의 권리,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 등 모든 아동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4가지 권리를 상세히 규정했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

이상을 담은 문장은 아름답지만, 이상이 발 디딘 현실은 핍진하다. 이상은 겨우 한 뼘씩 현실이 된다. 그 한 뼘의 진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결과가 최근 다시 나왔다. 어린이구호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이 전국의 초·중·고 예비교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77.8%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들어본 바 없다고 답했다. 또 ‘수업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가 학생에게 신체를 이용해 체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지 않은 예비교사들이 긍정적인 답을 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예비교사의 아동인권 인식 제고를 위한 정책제안서’ 작성을 위해 국내 교사 양성 과정 강의 내용을 분석했다. 2011년 9월부터 두 달 동안 전국의 예비교사를 상대로 아동인권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 전국의 12개 교육대 학생 783명과 10개 사범대학생 647명 등 모두 1430명의 예비교사가 설문에 응했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응답자의 98.5%가 ‘아동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답했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안다’고 답한 예비교사는 22.2%에 그쳤다. ‘아동이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란 문항에 예비교사의 90.6%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7.5%는 ‘그런 편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체벌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문항에 11.5%가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고, 23.9%가 ‘심각한 편’이라고 답했다. 64.6%가 현재 한국 교실에서 벌어지는 체벌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셈이다.

체벌 문제에서도 이런 괴리가 발견됐다. 체벌에 대한 설문조사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교대생과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사범대생에게 따로 물었다. ‘수업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교사가 초등학생에게 신체를 이용해 체벌할 수 있는가’라는 문항에 교대생의 35.3%가 긍정하거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교사가 학생을 손이나 발로 때리는 행위에 대해 사범대생들은 더 관대했다. 44.1%가 손이나 발로 직접 때리는 체벌에 긍정적 답을 하거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매를 이용한 체벌에는 더 관대했다. 교대생의 74%, 사범대생의 82.4%가 긍정하거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예비교사의 31.6%와 중·고교 예비교사의 28%만 체벌을 근본적으로 반대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제안서에서 “응답들 간 차이를 통해 예비교사들의 인식과 교육현장에서의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예비교사들 다수가 학생 시절 체벌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제안서를 보면, 전체 예비교사의 85.3%(1153명)가 ‘엉덩이나 허벅지를 맞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단체 기합이나 손바닥 체벌을 경험하지 않은 예비교사는 거의 없었다. 체벌에 대한 예비교사들의 기억은 다양했다. 체벌이 당연하다고 느꼈다는 예비교사도 있었지만 ‘반성보다 분노가 생겼다’는 등 모욕감과 뒤틀린 분노를 경험한 예비교사도 많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체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교대·사범대생들이 과거 자신이 받았던 체벌 경험에 대해 가진 태도가 교사가 되어서도 유지된다면 앞으로 교육현장에서도 체벌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동인권 교과목 개설과 이수 제안

세이브더칠드런은 학교폭력과 아동인권 문제가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세이드더칠드런은 제안서에서 “아동인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예비교사들의 아동인권 인식을 높일 정책이 담긴 제안서를 3월27일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했다. 예비교사를 위해 아동인권 교과목을 필수과목으로 개설하고, 교사자격증 취득 때 반드시 아동인권 교과목을 이수할 것을 제안했다.

이상주의자들은 늘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1919년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든 영국인 에글렌타인 젭도 마찬가지다. 당시 옥스퍼드대를 나온 흔치 않은 여성 엘리트인 젭의 첫 직업은 교사였다. 가르치는 보람 대신 빈민가 아이들의 궁핍을 바라보는 슬픔을 겪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사회운동가가 됐다. 1차 세계대전 뒤 그는 연합국의 경제봉쇄로 독일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다. 독일 어린이들을 돕자며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들었다. 보수파는 적을 이롭게 한다며 반대했고, 계급투쟁만 고민하던 진보파와 사회주의자는 무관심했다. 이상주의자들은 90년 넘게 살아남았고, 한국에 지부도 운영한다. 현실에 아랑곳 않는 이상주의자들이 한 뼘씩 현실을 바꿔왔다는 취지가 세이브더칠드런이 교과부에 보낸 제안서에 담겨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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