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에는 ‘오너’가 없다. 그러니, 상지대나 세종대, 조선대처럼 비리 재단이 설칠 틈이 없다. 오너가 없으면 대학은 어떻게 굴러갈까. 12명의 이사(이사장 포함)로 구성된 법인이사회가 있다. 지난해 11월1일자로 개정된 연세대 법인 정관을 보면 이사회 구성은 이렇다. 기독교계 2명, 연세대동문회 2명, 총장, 사회유지 4명, 개방이사 3명. 정관 시행 세칙에는 기독교계 이사에 대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창립에 크게 공헌한 교단에 소속된 목사로 하되, 이 법인의 설립 정신을 존중하고 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자로 한다”고 돼 있다. 기독교 건학 이념에 따라 세워진 연세대는 “기독교적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기독교계, 정관 개정 취소 소송 계획
연세대 학생이나 일반인 가운데는 연세대를 소유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회장을 지낸 방우영(84) 현 상임고문이 연세대 재단이사장으로 16년째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연세대 동문들과 기독교계에서 “가 연세대를 사유화하려 한다”며 방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 운영의 전권을 가진 이사회가 기습적으로 개정한 정관 내용이 발단이 됐다. 기존에 협력교단 4곳, 즉 대한예수교장로회·기독교대한감리회·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가 파송하도록 돼 있던 이사 4명을 “기독교계 인사 2명”으로 뭉뚱그려 축소했기 때문이다. 교단들이 가지고 있던 이사 추천 권한도 사라졌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가 신문-방송-사립대학에 걸쳐 거대한 권력 벨트를 달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목회서신을 지난해 12월14일 전국 교회에 돌렸다.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까지 나서서 “정관 개정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교 설립 취지를 훼손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계 쪽은 급기야 오는 1월 말 연세대 이사회를 상대로 정관 개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현 연세대 이사회의 골격은 1957년에 만들어졌다. ‘재단법인 연희대학교’와 ‘재단법인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하나로 합쳐지며, 두 재단의 앞글자를 따서 ‘연세’로 정했다. 당시 이사회의 이사는 ‘15명 내지 30명’을 두도록 했는데 이사 추천 기관은 이렇다. 가나다연합선교회(1명), 대한감리회총리원(3명), 미국북장로교선교회(3명), 미국남장로교선교회(1명), 미국감리교선교회(3명), 호주장로교선교회(1명),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3명), 연세대동문회(3명). 이사회 구성은 계속 바뀌어 지난해 개정 직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1명), 기독교대한감리회(1명), 한국기독교장로회(1명), 대한성공회(1명), 연세대동문회(2명), 총장, 사회유지(5명) 등 모두 12명으로 정리됐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사회의 큰 줄기를 기독교계에서 맡는다는 뼈대는 변하지 않았다.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왔다. 지난해 10월27일 목요일 오후 2시 연세대 법인사무처 2층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감사 선임 등이 끝난 뒤 방우영 이사장이 ‘기타 안건’을 상정했다.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렇다. “방우영 이사장은 오늘 이사회에서 심의하고자 하는 정관 개정(안)은 지난 2011년 9월15일자로 각 이사님들께 통지된 공문에는 안건으로 명시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립학교법 제17조 제3항 단서 및 우리 법인 정관 제34조 제2항 단서 규정에 따라 이사 전원이 집합되고 또 이사 전원이 동의하면 정관 개정을 상정할 수 있으므로, 오늘 이사 전원이 참석하신 이 자리에서 이사 전원이 동의해주시면 정관 개정을 상정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이사 전원이 찬성하여, 방우영 이사장은 정관 개정 안건을 상정한다.”
16년차 이사장 방우영의 ‘무소불위’ 권력
이날 ‘기타 안건’으로 올라온 정관 개정안은 △4개 협력교단 이사를 기독교계 이사로 통합(4명→2명)하고 협동기관의 추천 요건 삭제 △사회유지 이사 수 축소(5명→4명) △개방이사 3명 배정 △차차기 총장부터 교원 정년(65살)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사립학교 이사회 정관, 그것도 이사 선임 방법을 규정한 부분은 정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학재단의 정관을 개정하거나 새 이사를 선임했을 때 감독기관(교육과학기술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과 사학재단 사이의 기나긴 싸움도 이사회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런 ‘중요 안건’을 방 이사장은 ‘기타 안건’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이다.
방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연세대가 설립된 이후 기독교 관련 이사들의 참여와 헌신으로 우리 대학이 크게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적 요청에 따라 발전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또한 세계적인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변화의 흐름에 맞춰 정관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세대동문회와 연세대 교수 사회도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단 파송이사들께서 어려운 입장이시겠지만 대국적인 관점에서 임원 선임 방법과 관련된 정관 개정에 동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교계 쪽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추천·파송 이사인 이승영(63) 새벽교회 담임목사가 당시 정관 개정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지만, 방 이사장이 큰 힘을 발휘하는 이사회 운영을 어쩌지 못했다고 전했다.
현재 연세대 이사는 이사장을 포함해 9명이다. 12명에서 세 자리가 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성공회 파송이사가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임기가 끝나 물러났는데 연세대 이사회는 이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해당 교단에서는 여러 차례 추천 인사를 이사회에 통보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단 파송이사가 2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관 개정까지 밀어붙이자 교단 쪽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정관 개정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인 이훈삼 목사는 “15년 넘게 방우영씨가 이사장을 맡으면서 방 이사장의 말을 이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사립학교에서 이사회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데, 방우영이라는 개인이 15년째 이사장을 하고 있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닌 가 배경인 사람이다. 가 종합편성채널에 이어 대표 사학인 연세대까지 사유화하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법인이사회 쪽은 “가 연세대를 사유화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연세대 이사로 정관 개정에 찬성한 김한중(64) 총장은 사립학교법과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개방이사를 두도록 2007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됐는데 이를 정관에 반영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연세대의 경우 교단 파송이사나 동문회 쪽 이사 모두 사실상 개방이사와 마찬가지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해 개방이사를 따로 두도록 한 다른 사학들과 동일한 잣대로 보지 말고 파송이사를 개방이사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국회와 정부에 해왔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정관을 고치게 됐다.” 그러면서 방 이사장처럼 교단 파송이사들의 ‘역할’을 에둘러 비판했다. “교수평의회나 동문회 등에서 교단 파송이사들이 학교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연세대 총장 “사유화 주장은 오해”
기타 안건으로 기습 처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교계 쪽의 반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법인이사회도 현재의 갈등 상황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 총장은 “정관 개정을 미리 공지했다면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에서 굉장한 문제 제기를 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정리하려면 이해관계인 쪽에 사전에 노출되지 않아야 했다”면서도 “정관 개정 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사학법이 바뀐 뒤부터 꾸준히 논의된 사안이다. (현재의) 이런 반발을 생각해 공식적 논의를 미뤄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세대와 비슷한 조건에 있는 이화여대도 교단 파송이사를 받지 않기로 진작에 정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임기가 끝난 교단 파송이사의 후임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12명으로 정해진 이사 수를 초과하지 않도록 개방이사 ‘티오’로 남겨놓은 것이지 일부러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방 이사장의 ‘존재’에 대해 김 총장은 “재단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학교 돈을 1원도 안 쓴다. 또 이사들 눈치 보지 않고 총장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특히 연세대처럼 주인 없는 기관에는 어느 정도 권위 있는 분이 지켜주는 것이 학교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나도 목사 아들이다. (가 연세대를 사유화한다는 것은) 진짜 오해다. 성균관대와 삼성그룹, 중앙대와 두산그룹 같은 관계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계 쪽의 반발과 대응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이들은 연세대 이사회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일사천리’로 정관 개정을 승인해준 교육과학기술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지난 2년치 정관 개정 자료를 보면 전문대 정관 개정 승인에도 평균 20일 정도가 걸리는데 불과 며칠 만에 연세대 정관 개정 승인이 떨어진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연세대 신과대학 동창회장인 이진 목사는 교단 파송이사의 ‘기여도’에 대해 이사회 쪽과는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법인이사회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내놓은 엉터리 같은 얘기”라는 것이다. “파송 교단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연세대에 기증하기도 했고 교인들의 장학금 기부도 연세대가 교단들과 파송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연세대 사유화’에 대해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연세대를 기독교 대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방우영씨가 이사장을 오래 맡으면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번 새 총장 후보 면접에서도 한 이사가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방 이사장이 ‘주도’를 했다고 한다. 가 연세대를 공식적으로 ‘접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소불위의 방 이사장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연세대를 사유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사회 구성의 퇴행, 복마전화
이사회 구성의 퇴행과 단조로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연세대에서 보직을 맡았던 한 현직 교수는 “무색무취한 종교계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오다 보니 과거에는 이사회의 역할을 두고 말이 나온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인가 이사회가 학교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배후조종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과거에 물의를 일으켰던 일부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오는 등 마치 연세대 이사회가 복마전 비슷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사 구성이나 총장 선출도 의대나 상대 등 특정 단대로만 계속 쏠리다 보니 학교가 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현재 교단 파송이사 2명을 제외한 이사 7명과 감사 2명 등 임원 9명 가운데 상대(4명)와 의대(4명) 출신만 8명에 달한다. 새 총장으로 임명된 정갑영 교수도 상대 출신이다. “세계적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사 구성을 바꾼다고 했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시대적 요청”을 따라갈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쪽은 “교단 파송이사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기독교 이기주의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권력과 자본이 교육 현장까지 사유화하려는 것을 감시하고 막아내기 위한 활동”으로 이해해달라는 말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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