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만나는 일을 30년 세월 동안 해왔다는 것이 내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우는 중요한 ‘자격’이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그 세월 동안 한 가지 일을 해왔다면 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몇 마디 할 수 있는 ‘자격’은 있지 않겠느냐고 동의를 구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고 봐준다. 그런데 김진숙은 노동자로 직접 살아온 세월만 30년이 넘는다.
나는 “강의를 좀 한다”는 말을 듣는다. 진정성 때문이라는 칭찬을 가끔 듣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김진숙보다 더 진정성이 담긴 강의를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지 못했다.
나는 “글도 좀 쓴다”는 말 또한 듣는다. 내가 쓴 책이 한동안 노동문제 분야 누적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인 바로 다음에 오른 적도 있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은 책이 김진숙의 다.
나를 비롯해 노동문제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주변 노동자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주워섬긴다. 김진숙은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 강의나 글이 몇 배나 더 감동적이라며 우리 집 아이들조차 “아빠는 왜 김진숙씨처럼 하지 못하냐?”고 힐난한다. 맞는 말이다.
“제가 크레인을 가져갈 생각은 없었거든요”
김진숙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이른바 ‘비합의 시대’인 1980년대 중반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모든 사회운동 단체가 지하에서 비밀리에 활동해야 했던 그 무렵 노동문제와 관련된 자료를 숨어서 몰래 만들던 글발깨나 있는 활동가들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랫녘에서 올라오는 글들 중에 읽다 보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직한 감동이 밀려 올라와 눈물을 쏟게 하거나 치미는 분노로 목줄기가 뻣뻣해지도록 만드는 글이 가끔 있었는데, 그 내용이나 문장으로 보아 그 글들을 쓴 이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이름도 모른 채 그이가 써보내는 글들만으로 그의 존재감을 느꼈다.
그 사람이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노동자, 한진중공업 최장기 해고자 김진숙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세월이 흐르고 나서 한 출판사가 그의 글을 모아 라는 책을 펴낸 뒤부터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김진숙, )
노동열사의 장례식이나 추도식에서 김진숙이 피맺히게 외쳤던 말들을 사람들은 한자 한자 일일이 받아적어 돌려 읽었다. 스물한 살.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들어가 아저씨들에게 제일 먼저 배운 일은 목욕 타월로도 지워지지 않던, 손에 새까맣게 낀 기름때를 시멘트 바닥에 벅벅 문질러 지우던 일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읽으며, 사람들은 울었다.
김진숙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우선 신기하게 느끼는 점은, 노동운동 ‘투사’의 상징처럼 알려진 그이가 실제로는 풍부한 인간미와 넘치는 유머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크레인에 오른 며칠 뒤, 동료들이 스마트폰을 사서 밧줄에 매달아 크레인 위로 올려보냈다. 고립무원의 크레인 위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던 유일한 수단이 ‘트위터’였다. 사용법을 익힌 뒤 김진숙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누무 건(스마트폰) 약도 빨리 떨어지구 충전시키기 바쁘이. 근데 갈아 낄 때마다 참 거석헌 게 할딱 베낄 수밖에 없는 건지. 야도 굴욕감 만만찮을 텐디….”
지난 11월, 크레인 점거 농성을 풀 수 있는 상황이 308일 만에 만들어졌지만 경찰이 회사 안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회사가 시설물 보호를 위해 경찰 병력을 요청했다는 말도 있다”고 했을 때, 김진숙은 이런 말로 받았다. “제가 크레인을 가져갈 생각은 없었거든요. 몸만 내려오려 했는데 왜 크레인을 보호하는지….” 이런 김진숙 때문에 도리어 우리가 웃었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나’
지난 12월19일, 김진숙은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종강 수업에 찾아왔다. 크레인에 오른 뒤 처음 부산 지역을 떠난 서울 나들이였다.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불편한 걸음으로 내가 몸담은 그곳에 찾아와준 김진숙에게 그 고마움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진숙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싸웠던 많은 동지들, 쌍용차, 재능교육 등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관심 가져주세요. 내가 309일 동안이나 크레인 농성을 하는 바람에 그보다 더 적게 농성하는 사람들의 투쟁이 주목받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김진숙 지도위원)
나는 이런 김진숙을 존경한다. 살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나’ 싶은 느낌을 주는 이를 만날 때가 있다. 김진숙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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