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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차별하라’고 말하라

[[노 땡큐!]
등록 2011-12-01 11:29 수정 2020-05-03 04:26

고백하자면, 2009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만들 때부터 내심 조마조마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있던 것에 시비를 걸어온 이들이, 학생인권조례 차별 금지 조항에도 마찬가지로 포함된 ‘성적 지향’에 시비를 걸어올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처 발견을 못했는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성적 지향’이 차별 금지 사유에 있는 것은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 광주에서 두 번째로 학생인권조례가 시의회를 통과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차별금지법은 장애조장법?

그런데 유독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놓고서만 반응이 격하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동성애 조장, ‘임신 및 출산’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임신 조장이라며, 아이들을 위해 반대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만 안 될 이유도 정략적인 것 외엔 찾아보기 어렵겠으나, 무엇보다 일단 논리가 이상하다.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경제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가난을 조장하는 것인가?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장애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되라고 권하는 법이란 말인가? 최소한의 어휘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별 ‘금지’와 ‘조장’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차별 금지는 말 그대로 특정한 사유로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최소한의 조치이고 원칙일 뿐이다.

대개 사람들은 차별 금지를 윤리적·법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지는 매우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다. 예컨대 우리는 세금에 관해서는 소득이 더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선거권에 차등을 두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영역에서 어떤 차별이 금지돼야 하는지는 사회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아무도 ‘외계인 차별 금지’ 같은 법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아직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려는 것도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다. 성소수자 차별을 없애나가는 것은 사회적 흐름이다. 최근 한국 정부에 대해 권고를 낸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차별을 금지하는 법에서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명시되지 않는 것에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성소수자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학생들 중 상당수가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경험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집단괴롭힘, 차별 등을 당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청소년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거리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집단폭행·린치를 가하는 ‘혐오범죄’가 일어나,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던 성소수자 차별이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당신 가족이라도 그러겠나

서울시의회 자유게시판에 들어가보니 동성애 차별 금지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라”며 “당신 가족이라도, 당신 자식이라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묻는 글이 보였다. 만일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동성애자라면 나는 차별금지법이, 성적 지향 차별 금지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있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내 가족이 상처받고 차별당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라느니 “동성애 조장은 안 된다”느니 하는 얘기는 그만하면 좋겠다. 아집과 독선에 빠져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차라리 ‘차별하자’고 하는 게 솔직하다. 자, 어디 한번, 청소년들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인권을 짓밟히고 목숨을 잃어도 되니까 ‘차별하자’고 말해보라.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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