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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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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아름다운 독학의 시간

반지성적 사회, 독학자들의 반란…
주류 질서의 척도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즐기는 이들을 만나다
등록 2011-09-30 17:1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명문대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1993년생들의 대학입시 거부운동을 주도하는 ‘투명 가방끈들의 모임’의 요구 가운데 하나다. “입시가 배움 자체를 더럽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대로 배웠다면 재밌고 흥미로워서 배움에 이끌렸을 텐데…. 지금 입시를 준비하는 애들 중 누가 공부하고 싶어 할까요.” 대입 거부선언 준비모임에 나온 한 고3 학생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향학열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는 사회 전체에 넘실거리지만 어찌된 일인지 학문이나 교양 따위를 쳐주지 않는 반지성적인 분위기 일색이다. 준비모임을 찾은 한 대학생은 지금 2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며 “만약 인생이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여정이라면, 대학교를 안 갔다면 제 삶은 아주 평화롭고 보들보들하고 재밌었겠다”고 한탄했다. 대학을 안 갔으면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학 밖에서 독학의 길을 찾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김해완씨.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해완씨.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성적표를 찢고 배움을 얻다

93년생,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 고3이었을 김해완씨는 매일 7시쯤 자취하는 집을 나선다. ‘수유+너머’ 연구실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김해완씨의 일상은 대한민국 고3만큼이나 단순하고 열렬하다.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기를 반복하다가 밤 9시쯤 집으로 돌아간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2년 동안 지켜온 “책 읽고 글 쓰고 밥 먹고 산책 가고 다시 책 읽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중졸 백수의 일상”이다. 그가 공부하는 과목은 지금 단 두 가지다. 역사와 들뢰즈. 언어와 수리, 외국어와 씨름하는 다른 고3보다 단순해 보이지만 지식 체험은 여느 대학생보다 더 깊고 강렬할지 모른다. “미시사 학습에 들어가면서 루아 라뒤리의 를 읽고 있는데 몹시 충격을 받았어요. 별 볼일 없고 평범한 사람들을 700쪽으로 공들여 기술한 책이에요. 점에 우주가 있는 거죠. 나도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존재하는 나를 강렬하게 느꼈어요.” 김해완씨는 지난해 라는 책을 냈다.

71년생, 글쓰기 학교 강사인 김지영씨는 아이들을 학교

김지영씨.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지영씨.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에 보내고 책을 읽는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학위를 얻은 것도 아니고 공부 를 직업이라고 밝힐 수도 없는 그가 최대한 낼 수 있는 독학 시간은 하루 3~4시간 남짓이다. “어떻게 보면 목적 없는 공부를 해왔고 그래서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규칙적인 걸 좋아하지 않아요. 악착같은 성격도 못 되고요.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가능하지도 않고요. 오전에 아이들이 학교 갔을 때는 될 수 있으면 책을 보려고 애쓰고 밤에 애들이 잠들면 다시 책을 읽죠.” 기나긴 독학의 시간 동안 김씨가 읽어온 책은 대체로 세 갈래다. 철학책과 시집과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이야기들이다. 요즘도 10월부터 열릴 ‘짜라투스트라와 글쓰기’ 강좌를 위해 니체의 를 다시 읽고 시읽기 세미나를 위해 시집을 정리한다.

83년생, 이진혁 감독에게 지금 일과 공부는 구별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빚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등록금도 급식비도 낼 수 없었다. 선생님은 반장이 된 그에게 “작년 반장은 500만원, 부반장은 300만원을 냈는데…”

이진혁 감독.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이진혁 감독.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라며 말끝을 흐렸다. 학업은 끝까지 마쳐야 한다지만 아이들 앞에서 무상급식을 신청할 것인지 묻는 학교에 발붙이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이후 당장 잠잘 곳도 없는 상황에서 사회에도 그가 갈 곳은 없었다. 대학교는 물론 영화계에서도 누구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광고감독, 영상연출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독특한 이력은 그가 감독이 되는 일반적 경로에서 벗어난 인생을 살아왔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검정고시든 대입이든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도가 그의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 “만약 학교를 다녔다면, 누군가의 제자로 들어갔다면, 이렇게 빨리 자리잡지는 못했겠지요. 내가 해낸 일로 내세울 수도 없었겠지요.” 혼자 배워서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고 지금은 다큐멘터리 연출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그의 단편 은 EBS 국제다큐멘터리 사전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여자 권투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극장 개봉을 위해 장편으로 촬영 중이다.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는 영화의 주제가 간절한 까닭은 이 말이 감독에게 간절했기 때문이다.

배움을 환원하는 고졸자의 독립운동

고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80% 수준인 사회에서 한 해 7만 명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그만둔다. 어찌 보면 배움을 중단한 이들이 아니라 제도교육을 나온 이들일 뿐이지만, 사회는 이들을 학업중단자로 바라본다. 고졸자도 대학 중퇴자도 압박과 좌절은 만만치 않다. 김진표(29)씨는 대학은 못 갔지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틈틈이 공부도 하고 학원도 다녔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졸자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란 연예인 지망생이 아이돌 가수가 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만 깨쳤다. 그러나 고졸자의 시간도 멎어 있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복사와 스캔, 행사장 도우미, 짐 나르는 일. 사회는 그를 비정규직 노동자로만 바라보지만 그 10년은 그가 틈틈이 독서를 넓혀온 시간이기도 하다. 사회과학 서적은 대학생보다 많이 읽었을지 모른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을 읽는 길잡이가 돼준 스승이고, 경제평론가 우석훈씨는 사회에 대한 눈을 틔워준 멘토다. 그들의 저작을 빠지지 않고 섭렵하던 길에 우석훈의 ‘사회과학 방법론’ 강좌에 나가 함께 공부하는 동지들도 만났다. 그는 최근 아시아크리에이티브아카데미라는, 정부에서 만든 디자인 학교에 등록했다. 디자이너의 꿈과 독학의 길은 계속된다.

대학을 나와도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88만원 세대 사이에서 독학자들의 분투는 눈물겹다. 제도권 밖 이진혁 감독이 택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공모전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빵 사먹을 돈도 없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 동아리 선배가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을 보고 대회에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당선된다면 상금이 30만원이었다. 고등학교 때 두 번 당선이 됐다. 그래픽디자인과 영상을 좋아하는 그가 학교를 다니지 못해도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듯했다. 8년 동안 11개의 디지털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편의점, 주유소, PC방, 만화방, 술집에서 일하며 밤에는 시간을 쪼갠 결과였다. 그중에는 그의 이름을 알린 부산국제비엔날레전과 디지털영상공모전도 있었다. 2년 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실력은 있으나 학벌 사회에 진입하지 못했던 동지들을 모았다.

독학이 어려운 것은 멘토와 학우를 만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김지영씨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우증권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홀로 읽어오던 사회과학 서적들을 함께 이야기할 동지를 만났다. 언론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최상재 SBS PD가 배움의 스승 역할을 맡았다. 대우증권 노동조합으로 자리를 옮기자 같이 노래패를 하고 세미나를 하며 노동조합 소식지에 실릴 기사를 다듬어주는 동지와 선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배움이 경쟁이 아니라 모두의 자산인 곳에서 사람들은 급히 성장한다. 매일 배우고 익히는 시간들로 충만해서 대학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뒤 15년. 세상은 변하고 고졸과 대졸의 장벽은 더욱 높아졌지만 여전히 가방끈을 늘리지는 않았다. “주류 질서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하면서도 학벌에 대해선 예외가 없어요.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던 이들도 결국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말해요. 저 지점을 내가 뚫어야겠다 마음먹었죠. 혼자만의 독립운동이지만 사람이 자기 영역에서 깨어 있으려면 하나의 결핍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강료 한 번 내지 않고 공으로 배웠으니 이제 되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좌에 나선 것도 고졸인 그가 배움을 공정히 정산하는 독립운동인 셈이다.

대학 밖에서 배움을 찾는 사람을 위한 대안교육 모임들의 손짓이 활발하다. 수유+너머의 서울 남산 강학원.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대학 밖에서 배움을 찾는 사람을 위한 대안교육 모임들의 손짓이 활발하다. 수유+너머의 서울 남산 강학원.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호모 쿵푸스’를 기다리며

김해완씨는 대안학교 이우의 중등과정에서 특강을 나온 수유+너머의 고병권씨를 만난 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앎은 자유다”는 말이 벼락처럼 그를 겨눴다. 공부가 다른 삶을 살게 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외롭고 건조한 입시 공부를 그만두고 나를 설레게 하는 앎의 한복판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 학교 문을 나선 그가 붙잡은 책은 와 이진경의 이었다. 김씨는 졸지 않는 것과 한 권의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겠다는 목표를 세워 두 개의 산을 넘었다. 그 끝에서 어떤 폭풍 같은 구절을 만나 헤아릴 수 없는 열락을 맛보기도 한다. 김해완씨는 “무지한 자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체계적인 공부도 우월한 선생님도 필요 없다. 초·중·고의 순서대로 교육과정을 밟으며 무지를 체계화해서 하나씩 타파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도 없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교육과정 대신 스승을 만났다. 김해완씨의 스승은 수유+너머의 고미숙씨다.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나를 공부시키고자 하는 선생님의 의지와 만났고, 그 만남은 배움이라는 사건으로 새로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와 그의 원전 공부법은 잊혀졌던 오래전 공부 방법을 떠오르게 한다. 돌이켜보면 근대적 학교가 생기기 전 오랫동안 배움은 스승과의 만남이고 고전으로 뛰어드는 사건이었다. 고미숙씨는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공부를 혼자 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인데 대학에서 그 능력이 언제부턴가 사라졌어요. 배움이 즐거워서 친구들을 불러모아 같이 하는 게 공부거든요. 직접적인 공부가 사라지고 돈을 내고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 정말 비정상적입니다.” 을 쓴 가토 히데토시는 “학교에 들어가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최근에야 생겨난 신흥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 의지할 대상은 자기 자신뿐이므로 독학 외에 학문의 정도는 없었다”고 했다.

배움에는 끝은 없고 마디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 마디는 삶을 만나 깊어진다. 영화감독 류승완은 이라는 책에서 “고2 때부터 8mm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었다.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서 남들 대학 다닐 때 일하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왔다. 잘할지 아닌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알지만 일단은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시나리오 써서 장편 시나리오 세 개를 썼다. 팔지는 못했지만 그럼 어떤가. 사는 게 공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면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학 입시라는 지상 과제 앞에 잃어버렸던 배움에 대한 열정과 도취를 되살리는 사람들, 이것이 모두가 고대하는 ‘공부하는 신인류’(호모 쿵푸스)의 모습이 아닐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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