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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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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등록 2011-08-25 18:22 수정 2020-05-03 04:26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왔다. 대기업 회장이 청문회에 불려나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큰 사건이기는 하나, 마감이 급박해 청문회 소감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외국에 나가 있다고 알려진 동안 국내에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는데 무얼 더 기대할까. 2006년 정리해고는 없다고 노동조합과 약속한 것을 뒤엎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거짓말’이야 사정이 있었을까 짐작이라도 해보겠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부끄럽고 두려워 거짓말할 정도가 되면, 아이고,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원한으로 떠도는 세계의 진실

청문회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가깝게는 에 실린 글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이 담았다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할 것이다. ‘해법’의 요지는 회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그 ‘불편한 진실’이 모두 사실이면 좋겠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차라리 분명해지면 좋겠다. 노동조합과 약속한 걸 도저히 지킬 수 없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한 여성노동자가, 가까운 동료들의 죽음과 긴 세월을 등에 지고 35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 230일 가까이 위태롭게 서 있어도, 정리해고 철회가 쉽지 않다는 게 차라리 확인되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얼마나 처참한 싸움인가.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없다. 진실은 언제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진실이 쟁점이 될 때는 이미 두 개 이상의 세계가 부딪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나 청문회에서 지적한 사실의 정확성을 따지거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는 것은 내 깜냥을 넘어선다. 그리고 지금 4차를 향해 달려가는 희망의 버스도 사실을 밝히려고 수많은 탄압을 견뎌내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그저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외치고 있다는 진실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은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펼쳐 보이는 세계의 진실이고, 희망의 버스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수많은 마음들이 지탱하는 세계의 진실이다. 살아 있는 목소리들의 세계, 그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불편해해야 한다.

그 세계에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함께 급격히 정리해고가 확산된 이후, 삶이 산산이 조각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떠나지 못하고 남아 울리는 세계다. 왜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아무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 속이 곪아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세계다. 통장에 매달 찍히던 급여가 증발하고, 고된 일을 마치고 소주 한잔 나누던 동료가 사라지고, 모처럼 맞는 휴일에 가족과 둘러앉은 식탁의 따뜻한 웃음이 식어버린 세계, 살아온 한 세계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떠나지 못한 그 세계다. 짐짝처럼 내던져져 파편만 남았는데도 사라질 수 없는 원한으로 떠도는 세계다.

해법이 아니라 방법을 찾자

그러니 경영이 눈곱만큼도 어렵지 않았으면, 너무 억울하다. 차라리 조금 어렵다고 하자. 자본가들이 생각하기에는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인가 보다 이해해주자.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낫다. 이제 해법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를 다시 세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굳이 사람을 자르지 않아도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과 함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잘라야만 한다고 귀를 막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들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다른 세상으로 거침없이 깔깔깔 달려가겠다는 희망의 버스가 8월27일 서울로 온다. 아무리 고민해도 혼자서는 잘 모르겠어서 몰래 괴로운 거라면, 조용히 희망의 버스로 오시라. 정리해고는 사람 할 짓이 못 된다는, 소박한 진실의 세계가 거기에서 열릴 것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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