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가 고용안정, 임금인상에 앞장서겠습니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에버랜드 노동자 바로 당신입니다!”
지난 7월19일 경기도 용인의 삼성에버랜드 정문 앞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그리고 ‘삼성노동조합 설립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삼성노조 박원우 위원장을 비롯해 에버랜드 노동자 4명이 이 자리에 섰다. 박 위원장은 전날 고용노동부가 내준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내보였다. 삼성에 ‘진짜 노조’가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박 위원장 등은 먼저 가족의 동의를 얻었다. 이들은 2008년 아내와 아이들과 경남 거제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생후 50일 된 조장희 부위원장의 아들도 함께였다. 조리사 출신들답게 가족에게 음식을 선물하면서 노조 설립 의사를 밝혔다. 에버랜드에서 만나 평생을 약속한 아내들도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을 잘 알고 있어 동의했다.
식구들의 응원을 등에 엎은 뒤 노동단체들과 연대했다. 가방에 노동법과 관련된 책들을 넣고 수시로 손때를 묻혀가며 읽었다. 노동단체로부터는 근로기준법, 노동법 등을 배웠다. 지난해부터는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합숙하면서 노조 설립을 착착 준비했다. 노조 설립 뒤 회사 탄압을 이겨내려고 ‘노조건설 준비위 탄압 대응 원칙’이라는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오랜 준비는 지난 7월13일 결실을 맺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4명뿐이다. 박 위원장은 “지금은 초미니 노조지만 곧 슈퍼 노조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에 현장 조합원이 주도하는 노조가 세워진 사실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문의와 격려를 해오고 있다. 박 위원장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다른 계열사 3곳 이상에서 노조 가입 및 설립에 관한 문의가 문자메시지와 전자우편을 통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태 회계감사도 ‘부산에서 응원한다’고 쓰인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많은 분들이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있다”고 웃었다.
그동안 삼성 안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은 많았다. 가장 치열한 움직임을 보였던 것은 삼성SDI(옛 삼성정관)다. 1985년 말부터 노조 결성을 위한 준비 모임을 시작으로 1987년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노조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회사 탄압으로 좌절됐다. 1999년에는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이들이 납치·감금돼 퇴사를 강요받았다. 결국 강제로 희망퇴직서에 서명하고 삼성을 떠났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죽은 사람 명의를 도용한 휴대전화로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노동자들이 위치를 추적당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2004년 8월9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삼성 쪽의 회유와 압박으로 한 달도 안 돼 탈퇴하고 말았다. 이 밖에 삼성중공업, 삼성에스원, 호텔신라, 삼성전자 등에서 노조 설립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회사 쪽의 탄압으로 번번이 사그라졌다.
지금 삼성그룹 계열사에는 9개 노조가 있다. 최근에 생긴 삼성에버랜드(복수노조)를 비롯해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정밀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에스원, 호텔신라, 삼성화재, 삼성메디슨 등에 있다. 하지만 제 구실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단체협약 등 실질적인 역할은 ‘노사협의회’라는 삼성만의 조직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발적인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유령노조’이며, 나머지는 삼성 계열사로 인수·합병된 업체의 기존 노조가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삼성에서 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
‘진짜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삼성 쪽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지난 7월7일 노조 설립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회사는 박 위원장과 김영태 회계감사의 집을 찾아왔다. 동시에 조장희 부위원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삼성 쪽은 7월11일 징계위원회 참석을 통보했다. 그리고 18일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조 부위원장의 해고를 결정했다. 이유는 2009년 6월부터 2여 년간 협력업체와의 거래 내역이 담긴 경영 기밀과 임직원 4300여 명의 개인 신상정보를 외부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부위원장은 “노조 활동을 위해 직원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을 회사 인트라넷에서 엑셀로 작업한 것이며, 외부 유출이라는 것도 내 개인 이메일에 보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렇게 중요한 자료라면 2년간 벌어진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왜 노조 설립 이후에야 문제를 삼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에버랜드 하주호 상무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노조 설립과 맞물린 것이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 내규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김영태 회계감사에 대해서도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런 삼성 쪽의 징계 움직임은 이전과 한치도 다를 게 없는 전형적인 행태라는 반응이 많다. 김갑수 전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 위원장은 “과거부터 이어진, 노조를 없애려는 전형적인 징계”라며 “4명 가운데 2명을 해고해 분리시키고, 남아 있는 2명에게 해고자 2명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노조가 쉽사리 좌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이전과 달리 노조 설립이 법으로 보장됐기 때문이다. 예전 삼성중공업, 삼성에스원 등에서는 회사가 먼저 지방자치단체에 ‘유령노조’를 신고해 노조의 싹을 자를 수 있었다. 그런데 ‘복수노조 금지’라는 삼성 쪽의 법적 방패막이 7월1일부터 사라졌다. 더군다나 노조 설립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예상해 지난 3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조 부위원장은 “회사의 탄압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어차피 노조 전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해고 여부와 상관없이 노조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조 부원장은 삼성에버랜드 노사협의회 노동자 위원을 6년간 하는 동안 동료 직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왔다. 2년마다 하는 선거에서 내리 3번을 이겼다. 김영태 회계감사는 “당시 선거에서 회사에서 미는 사람이 상대 후보로 나왔는데도, 계속 선거에서 이겼다”며 “그만큼 회사 안에서 신망이 높다”고 말했다.
“노조는 걸림돌”… 이상한 신념 교육그동안 삼성은 ‘무노조 경영’ 기조를 복수노조가 법으로 허용된 뒤에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김택순 부회장이 이끌게 된 것도 ‘무노조 경영’ 지속의 시사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삼성SDI 대표이사 시절 노조 설립을 막으려는 불법 위치추적의 책임자로 지목된 바 있다. 미래전략실은 2008년 경영쇄신안으로 없앤 전략기획실을 이름만 바꿔 부활시킨 것이다. 그룹 컨트롤타워는 그동안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여러차례 이름을 바꿨지만 공히 비자금, 로비, 도청 등의 오명을 안고 있었다.
삼성 쪽은 복수노조가 법으로 허용된 시기에 ‘무노조 경영’을 이어가려고 무던히 노력해왔다. 지난해 황우찬 전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무급으로 영입한 것이나, 미래전략실 산하 인사지원팀장을 노사 전문가로 교체한 것 등은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한 것으로 풀이됐다. 직원들에게는 ‘당근’도 안겼다. 상·하반기에 각각 최고 150%씩 지급하던 성과급을, 100%는 기본급으로 돌려 고정화하고 나머지 50%만 차등화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 6월 모든 임직원에게 1인당 20만원의 국민관광상품권을 지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지지를 얻지 못해 고립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며 “직원들의 복지를 늘리는 것도 같은 차원”이라고 전했다.
에버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 그룹 전체에 실시된 ‘비노조 신념화 교육’이 에버랜드에서 지난해 3월에 이어 올해 3월과 6월에 이뤄졌다. 교육을 맡은 외부 단체와 에버랜드 인사팀은 ‘노조가 회사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고 애썼다. 아울러 에버랜드의 3개 사업부와 본사에 노무를 담당하는 ‘신문화조직팀’을 신설했다.
그런데도 에버랜드에 ‘진짜 노조’가 생기자 그룹 전체가 바빠졌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전체 그룹에 비상이 걸렸다”고 전했다. 애초 삼성그룹의 각 계열사 사장들은 복수노조 시행 이후 노조 설립 ‘1번 타자’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두 번째로 생기는 곳이 자사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삼성이 에버랜드 노조원들에게 강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룹 계열사에 노조 설립 도미노 현상이 이는 것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삼성 관계자는 “조 부위원장 등 노조원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경하게 대응해야 다른 계열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 수뇌부 사이엔 삼성전자를 비롯해 이른바 ‘약한 고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탕정사업장을 비롯해 삼성SDI, 삼성중공업 등이 노조 설립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에버랜드도 그중 하나였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삼성 쪽이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각 지역에 미리 만들어놓은 ‘지역대책위원회’(지대위)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대위는 삼성 계열사 사업장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5~8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등은 ‘수도권지대위’,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등은 ‘중부지대위’ 등으로 불린다. 지대위는 주요 계열사 사업장에서 파견된 인사·노무 담당 과장급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다른 계열사도 준비… 삼성노조 2번 타자는 누구주요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7월 들어 노무팀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하는 등 귀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부분 휴가를 반납하고 야근하고 있어 ‘너무 힘들다’며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조를 세울 것으로 의심되는 이른바 ‘MJ사원’(문제사원) 등에 대해서는 ‘그림자 감시’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자 감시란 감시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4월에도 삼성 관계자가 김갑수 전 삼성해복투 위원장을 미행하다 들통나자 김 위원장을 자동차에 매달고 도주하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바 있다.
이처럼 과거 모습을 답습하는 것에 대해 삼성노조의 지도위원인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이미 다른 계열사 동료들도 노조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노조는 아직 과도기이기는 하지만, 회사의 탄압을 잘 버텨내면 다른 계열사 노동자들도 결합해 삼성에 노조가 설립되는 물꼬가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혁신과 창의를 필요로 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구시대적인 ‘무노조 경영’을 일관해서는 회사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건희 회장이 과거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과는 이미 국내외 경영환경이 바뀌었음을 깨닫고 노사관계의 선진적인 모습을 갖추는 것이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삼성맨’들은 선배들에 비해 충성심과 헌신성이 떨어진다”며 “삼성맨의 자발적인 자부심과 헌신을 끌어내려면 과거 모습을 고집하지 말고 새 전략과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3월 “지금이 위기다”라고 밝히고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올해 삼성에 첫 자주적인 노조가 세워졌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계속 고집하면 위기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 참고 문헌: (후마니타스 펴냄), (인물과사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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