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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⑩ 라디오

현대에 되살아난 ‘구술문화’(진중권) vs 귓속말하는 친구여, 영원하라~(정재승)
등록 2011-07-29 11:39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font size="5"><font color="#991900">현대에 되살아난 ‘구술문화’</font></font><font color="#006699">집단적 수용 목표로 하는 대중소통 매체 라디오… 선전·선동의 도구부터 학창 시절의 추억까지 기능 전환으로 살아남아</font>

진중권 문화평론가

‘라디오’(Radio)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무선통신에 사용되는 기기를 일컫는 데에 사용된다. 무선통신의 발명자는 이탈리아의 기술자 마르코니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전파, 즉 전자기적 방사(Electromagnetic Radiation)를 산출하고 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하인리히 헤르츠에 의해 발견된 바 있다. 거기에 사용되는 기계장치 역시 마르코니에 앞서 존재했지만, 이 실험실 안의 장치를 실용적인 무선통신의 체계로 만든 업적은 온전히 마르코니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1895년 최초의 야외실험 이후 송수신의 거리를 점차 넓혀가던 그는 1901년 대서양 횡단통신에 성공한다.

<font color="#006699">라디오는 귀, TV는 눈의 연장 </font>

오늘날 무선통신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선’(Wireless)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의미하게 사용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컴퓨터와 주변장치 사이에서일 게다. 하지만 마르코니의 시대에 ‘무선’통신은 기술적 발명을 넘어 지성적 충격을 의미했다. 한쪽 끝에 존재했던 신호가 중간에 사라졌다가 다른 쪽 끝에서 다시 나타나는 현상은 ‘존재’라는 것을 새롭게 사고할 기회를 주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E=mc²)이 철학에서 ‘사물=(공간을 차지하는) 연장실체’라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무너뜨렸다면,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은 일상에서 ‘존재’의 사라짐을 확인시켜주었다.

당시에 무선통신이 던진 형이상학적 충격의 자취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1915)에 나타나는 순수추상은 무선통신에 나타나는 ‘존재의 사라짐’이라는 계기를 회화적으로 수용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무선통신의 등장은 동시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을 통해 기술은 기계의 수준에서 전자의 수준으로 진화하고, 사회는 산업혁명의 단계에서 정보혁명의 단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명은 실은 마르코니의 패러다임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꿔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라디오’라 부르는 것은 송신 기능 없이 오로지 수신만 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무전기다. 무선통신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통을 의미한다면, 라디오는 집단적 수용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대중소통(Mass Communication) 매체라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마셜 매클루언은 대중매체, 특히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전자매체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그의 ‘의족명제’에 따르면, 라디오는 귀의 연장이요, 텔레비전은 눈의 연장일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전자 감각기관을 갖춘 일종의 사이보그로 만들어준다.

매클루언을 비롯한 토론토 학파의 학자들은 전자매체에서 사라진 ‘구술문화’의 부활을 기대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말’은 ‘글’이 되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과거에는 책조차도 낭송을 했으나,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독서는 목소리를 읽고 묵독이 되어버렸다. 독서의 대표적 형태가 되었다. ‘말’에는 상대가 필요하기에, 말을 통한 소통은 ‘나와 너’(1인칭-2인칭)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글’에는 굳이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 묵독을 하는 인간은 ‘나와 그것’(1인칭-3인칭)의 관계 속에서 고독해진다. 무엇보다 글 속에서 말이 가진 원초적 표현력은 사라지고 만다.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과거에는 정보가 사운드로 전달됐다면, 인쇄술 등장 이후에 정보는 텍스트로 전달된다. 인쇄술은 청각을 시각화함으로써 감각들 사이의 균형을 깨뜨렸다. 토론토 학파의 학자들은 전자매체가 청각을 부활시켜 이 무너진 감각의 균형을 바로잡아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들은 동시에 전자 구술매체의 정치적 함의에도 주목했다. 즉 이 새로운 구술매체가 모든 시민이 말로 함께 국사를 논하던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부활시켜줄 것이며, 나아가 이 전자매체를 통해 한때 사라졌던 공동체 문화(‘지구촌’)가 다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font color="#006699">인상적인 라디오 방송들</font>

하지만 이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의 다분히 낭만적인 소망과 달리,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매스’(Mass)라는 접두사 속에는 이미 전체주의적 경향이 내재돼 있는지도 모른다. 나치 시절 히틀러의 연설은 외딴 농촌의 부엌으로까지 구석구석 중계되었다. 라디오의 구술문화적 성격은 외려 이성을 마비시키는 히틀러 연설의 선동적 어조와 신경증적 표현성을 날것 그대로 각 가정으로 나르는 데에 적합했다. 선동의 효과는 엄청났다, 훗날 연합군 쪽에서 “독일의 저항 의지가 꺾인 것은 군사력을 무력화했을 때가 아니라, 선동기구를 파괴했을 때”였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세계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라디오 방송은 아마도 1945년 8월15일에 있었던 일본 국왕의 항복 선언일 것이다.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원폭)을 사용하고, 끝없이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살상하고 있어, 그 참담한 피해가 어디까지 미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노라.” 이 방송을 통해 제국의 신민들은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천황’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전 국민이 90도로 고개를 숙이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천황의 방송을 들으며 오열하는 장면에는 어떤 섬뜩함이 있다. 국가 자체가 거대한 종교 집단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디오 방송은 6·25 발발 직후에 나갔던 이승만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일 것이다. “나는 서울을 사수할 것이니 동요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 녹음된 담화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갔을 때 그는 이미 서울을 떠난 상태였다. 4·19 직후에 그는 또 하나의 역사적 방송을 남긴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고….” 여전히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내가 들은 방송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80년 5월 계엄사의 담화였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잔혹한 내용을 나열하더니 이런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은 신고하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머리맡에는 진공관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거기서 흘러나온 프로그램 중에 기억나는 것이 다(나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했던 이기명씨로부터 자신이 그 프로그램의 작가였다는 말을 들었다). 내게 처음 라디오가 생긴 것은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의 일이다. 납땜인두로 조립한 광석 라디오였는데, 연결된 집게로 금속이나 전선을 집어주면 신기하게도 별도의 전원이 없이도 작동했다, 학창 시절 숙제나 시험 공부를 하는 자리에는 늘 감상적인 시그널 뮤직과 함께 흘러나오던 음악방송이 있었다.

당시 라디오 음악방송은 최신 유행의 가요나 팝송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LP를 구입할 돈이 없던 시절, 녹음기가 딸린 카세트 라디오로 방송에 나온 음악들을 녹음해 돌려 듣던 기억이 난다. 노래가 시작한 다음에 흘러나오는 DJ의 멘트는 녹음을 망치는 주범이었다. 돌이켜보니 이미 그 시절에 라디오 음악방송의 몰락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당시에 나와 같은 까까머리 학생들은 비디오라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타의 부음을 열심히 뇌까려댔다.

<font color="#006699">‘노동’에 수반되는 라디오</font>

TV가 등장했을 때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 예견한 이들이 있었지만, 라디오는 기능을 전환해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오늘날 TV는 ‘여가’의 영역에 속하나 라디오는 ‘노동’에 수반된다. 하지만 라디오가 살아남았다 하여 라디오 스타들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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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 시절 히틀러의 연설은 외딴 농촌의 부엌으로까지 구석구석 중계됐다. 라디오의 구술문화적 성격은 외려 이성을 마비시키는 히틀러 연설의 선동적 어조와 신경증적 표현성을 날것 그대로 각 가정으로 나르는 데 적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6월14일 청와대에서 TV와 라디오로 생방송된 제42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독일 나치 시절 히틀러의 연설은 외딴 농촌의 부엌으로까지 구석구석 중계됐다. 라디오의 구술문화적 성격은 외려 이성을 마비시키는 히틀러 연설의 선동적 어조와 신경증적 표현성을 날것 그대로 각 가정으로 나르는 데 적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6월14일 청와대에서 TV와 라디오로 생방송된 제42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font size="5"><font color="#991900">귓속말하는 친구여, 영원하라~</font></font><font color="#006699">4D 영화가 지배하는 세상에도 살아남은 ‘명품’ 라디오… 과학 시대의 ‘낭만’ 보여주는 사라지지 않을 인류의 문화유산</font>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1997년 가입자가 무려 1500만 명을 웃돌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삐삐. 그 많던 삐삐는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4천만 명을 넘어선 요즘, ‘휴대전화를 받으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선언이 과장이 아닌 이 시대에 삐삐는 말 그대로 ‘골동품’이 되었다.

그렇지만 삐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삐삐를 사용하는 사람은 약 12만 명 정도다. 의사나 군인처럼 직업상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을 빼더라도 순수 삐삐 이용자가 5만 명에 이른다. 매달 1천 명 정도가 새로 삐삐를 찾고 있으며,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이른바 ‘삐사모’ 회원 수도 매달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통신료도 싸고, 스팸메일도 없으며, 시도 때도 없이 받으라고 아우성치는 휴대전화 벨소리와는 달리 ‘호출’과 통화 사이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삐삐가 아예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삐사모 회원들은 항변한다.

<font color="#006699">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술 10가지</font>

삐삐의 아슬아슬한 연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삐삐는 휴대전화에 밀려 사라지는 듯싶더니, 2002년부터 오히려 판매량이 적게나마 증가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몇몇 대기업은 여전히 상당한 업무를 삐삐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그마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신률을 자랑해 휴대전화 불통 지역에서 자주 애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운전 중 통화로 인해 일어날지 모를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전화 통화로 개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수신기가 돼 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즐겨 보는 테크놀로지 저널 <mit>는 몇 년 전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기술 10가지’를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물론 삐삐도 그중 하나다). <mit>에 따르면, 불멸의 10대 기술은 최첨단 기술이 놓치고 있는 틈새를 메우기도 하고, 때론 결코 추월당할 수 없는 기술적 우위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면,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도 그중 하나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이 프린터는 ‘찌직~ 찌직~’ 소리로 유명하다. 그때는 그 소리가 엄청나게 귀에 거슬렸지만,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를 선호하는 골동품 애호가들은 이젠 이 소리에서 추억의 향기를 맡는다. 특히 회사나 은행, 약국 등 빠른 속도, 신뢰성, 경제적 효율성을 요구하는 곳에서 인기 만점이다. 분당 2천 줄, 한 달에 무려 250만 장 이상을 프린트하면서도 비용은 장당 1센트에 불과하니, 미국에선 살아남을 만하다(우리나라에선 AS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이 목록에 ‘타자기’가 끼어 있다는 사실은 즐거운 발견이다(미국 전자소비재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 타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약 50만 명이라고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도 없고, 소프트웨어 고장이나 배터리 소모도 걱정할 필요 없는 타자기는 모든 작가들의 로망이다.
그 외에도 1960년대 처음 등장한 골동품 ‘카세트테이프’에서부터 인간적인 소리로 많은 오디오 마니아를 광분시키는 ‘진공관’, PC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쓸모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은행에선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는 ‘메인프레임 컴퓨터’, C언어와 자바 스크립트가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과학기술 연산에 꿋꿋이 사용되는 ‘포트란 언어’ 등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술 10가지 목록’에 포함됐다.

<font color="#006699">라디오, 우주에서도 인간 존재 증명</font>

날마다 21개 기술이 새롭게 등장한다는 21세기. 도대체 어떤 기술은 살아남고 어떤 기술은 사라지는 것일까? 인류가 외면한 기술은 무엇이며, 오랫동안 사랑한 테크놀로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술 10가지 목록에 가장 빛나는 이름으로 자리한 ‘라디오’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라디오가 아주 오랫동안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인간과 함께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캐나다의 발명가 레지널드 페선든이 1906년 진폭 변조 방식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면서 탄생됐다(2006년 라디오 탄생 100주년 방송 현장에 있었던 것은 라디오 마니아인 내겐 너무나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1910년대 무선통신 사용이 크게 늘고, 특히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좌초됐을 때 무선통신을 통해 인근 선박이 조난신호를 수신해 인명을 구하자, 그 관심이 급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선 한정된 전파 자원을 이용하는 라디오 방송을 공공서비스로 볼 것인지, 개인 영리사업으로 볼 것인지 논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유럽에선 라디오를 공공서비스로 간주하고 국가 독점의 방송사를 설립했다. 한편 미국에선 제너럴일렉트릭, AT&T, 웨스팅하우스 등이 지분을 소유한 RCA를 설립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27년 한국방송의 전신인 경성방송에서 했다.)
라디오의 등장을 인류가 처음부터 반긴 것은 아니었다. 음반회사에선 ‘라디오에서 공짜로 음악을 틀어주면 누가 음반을 사냐’며 격렬히 반대했다. 물론 지금은 음반 발매의 가장 중요한 홍보매체가 라디오이며, 이제는 음반회사에서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매니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 PD들의 책상 위에 앨범을 살포시 갖다놓는 것이다.
과학자에겐 라디오가 각별한 매체다. 인류의 목소리와 수많은 민족의 음악, 그리고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라디오 전파는 날마다 지구를 떠나 이 우주로 송신된다. 전 우주적 스케일에서 보면, 라디오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사는 인류가 이 거대한 우주에 쏟아내는 특정 주파수의 메시지다. 어느 귀 밝은 외계인들이 인류의 라디오 전파에서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을,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우연히 발견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아마 그들도 곧바로 비틀스와 이글스의 팬이 될 것이다. 이 음악을 듣고도 우리를 쳐들어오겠다고 생각하는 ‘비인간적인’(?) 외계 종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1천 년, 2천 년, 수많은 세대가 지난 뒤 우주의 어느 한 언저리에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줄 전파는 라디오뿐일지 모른다. 설령 그 크기는 자그마하더라도.
1940년대 TV가 등장하면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던 라디오. TV와 영화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3D TV, 4D 영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하지만 (Video kills the radio star)는 노래가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되었지만, 라디오는 아직도 우리 곁에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 무료함을 달래주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font color="#006699">삶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드는 기술 </font>

이런 라디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기술은 제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기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즘, 결국 살아남는 것은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을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들이다. 기술이 문화가 되는 순간, 기술은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된다. 귓속말하는 친구, 라디오가 꾸준히 우리 곁에 남아서 ‘과학의 시대에도 낭만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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